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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다
1. 비판적 사고의 결과는 우울증
저는 논술 시험을 보고서 대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기에 대비해서공부를 했는데, 그 핵심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였습니다. 이러저러한 사회적 현상을 문제로 주고 개선할 방법을 묻는 것이 가장 흔한 논술 문제였고, 실제로 제가 본 시험에서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라는 것이 요구사항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비판적 사고는 저의 공부를 위해 매우 장려되었던 사고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을 잘 익힌 덕분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에 잘 들어가게 되었으니, 저는 이런 비판적 사고야말로 저한테 주어진 숙명이요, 앞으로도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에 더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비판적 사고로 사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지식인의 숭고한 사명”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 선배들과 사회비판하는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판적 사고에 충실한 결과는 우울증이었습니다. 사회의 문제점을 공부하고 그 원인을 따져 들어가보면 그 근본원인은 자본주의에 있다고 선배들은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유행하던 구조주의라는 철학에 따르면,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사회구조는 어느 한 개인의 힘으로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준 결론은 절망과 우울증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사회문제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조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니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사회를 개선하려고 해봐야 너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으니, 사회를 개선할 수 없다.” 세상에 이렇게 암울한 사고방식이 또 어디 있을까요?
저는 저런 암울한 분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군대에 갔습니다. 그러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군대에서는 밥 한 그릇 맛있게 먹는 것에도 감사함을 느꼈고, 고된 훈련 뒤에 오는 꿀맛 같은 휴식시간이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휴식시간을 얻은 것이 너무나 기뻐서 혼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키득키득 웃다가 잠들기도 했습니다. 휴가를 나와서 학교에 남은 여자 동기생을 만났더니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 없이 도망갈 구석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었습니다. 여자 동기생들도 그 절망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는데, 기독교의 피정처럼 소중한 휴식의 기회를 가지려고 어학연수라도 갈라치면, “영어실력을 늘리는 것이 결국 나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나라는 지배계급을 통해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게 아닐까?”라는 자격지심이 들어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들은 자본의 편에 서느냐 민중의 편에 서느냐라는 무식한 이분법에 시달렸습니다.
저를 부러워하던 그 친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법고시 2차시험을 앞둔 때였습니다. 유서를 쓰지 않아서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저는 비판적 사고와 절망감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저의 마음 공부를 더 치열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를 소홀히 한다면 하느님이 저의 목숨도 앗아갈지 모른다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2. 대전환: 바이런 케이티
요가를 오랫동안 하고 요가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이후에도 저의 마음 속에 있는 비판적 사고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욱 재미난 것은, 그 비판적 사고라는 것이 겉으로 보기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숭고한 어떤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현실에 대한 원망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회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거의 안 하면서, 예를 들어 어떤 공무원이 제가 부탁한 일을 친절하게 처리해주지 않는 걸 보면, 마치 그 공무원이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를 판단하며 그를 단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이라고 믿곤 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비판적 사고라는 것도 결국은 이기적 자아(에고)의 작용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판적 사고라는 에고의 작용에서 벗어날 계기는 바이런 케이티에서 나왔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 저를 괴롭히던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렇게 인생에 슬픔이 많은데도 왜 나는 살아갈까? 혹시 기쁨이 더 많은 게 아닐까? 기쁨이 뭔지를 찾아보자”라고 다짐하고서 제가 언제 기쁜지를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인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고, 고통의 순간은 아주 잠시밖에 오지 않는데도, 나의 에고가 고통의 순간을 마치 드라마 재방송하듯이 수십번 수백번 재방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걸 깨달았을 때의 기쁨이 저를 바꾸었고, 그때부터 드림교회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3. 소멸되지 않은 고통의 씨앗들
바이런 케이티를 통해서 기쁨을 발견한 이후에도 비판적 사고는 저의 마음 속에서 계속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몇년간 저는 아내와 가끔씩 다투었는데, 그 원인은 저의 마음 속에 있는 비판적 사고였습니다. 아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사실 그것은 아내가 단지 나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인데도, 저의 마음은 그것을 어떤 "잘못"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이를 개선하라고 아내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런 요구가 아내에게 폭력으로 느껴진 것은 당연했고, 그것이 싸움이 되었습니다. 원인은 저에게-정확히 말하면 저의 이기적 자아에게-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요가철학에서는 어떤 행위의 결과(열매)를 카르마(업)라고 부르고, 그 행위의 결과 우리 마음 속에 남은 기억(씨앗)을 산스카라라고 부릅니다. 요가 철학에 따르면 이 산스카라라는 씨앗이 다시 봄이 되어 비를 맞으면 싹이 트고 열매를 맺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려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이 씨앗들을 명상의 불길로 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흔히 마음을 정화한다는 과정의 핵심이 바로 이 산스카라를 없애는 것인데, 없애는 방법은, 그것이 자기 마음 속에 있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관찰만 하면 사라져버린다고 합니다.
4. 김밥천국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다
지난 주말, 그러니까
결혼식까지 시간이 남아서 오랜만에 삼성혈 구경을 가서 휘파람새 소리를 들었습니다. “쿄오쿄이효오”라는 그 청명한 소리는 고향 제주도에서 언제나 봄을 알리는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렇게 깊은 숲을 즐기고 휘파람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잠시 생겨났습니다. 그러고는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갔는데, 토속음식점으로 유명한 보성시장의 식당들이 다 문을 닫아 고생을 하다가 김밥천국이라는 식당을 겨우 찾아냈습니다. 이때까지도 저의 마음 속에는 토요일 오전에 장사를 하지 않는 식당들에 대한 비판과, 국제 관광도시라면서 관광객을 배려하지 않는 도청에 대한 비판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김밥천국에 앉아 떡국 한 그릇을 시켜 놓고 기다리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놈의 비판은 언제까지 내 맘 속에서 일어날 참인가? 그래, 잠시라도 그만 두자. 남 비판하는 걸 그만두고, 세상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좀 살펴보자.”
이렇게 다짐하고 나니 세상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김밥을 마는 아줌마들도 그전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밤새 일하는 게 얼마나 괴로울까?”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저렇게 몸을 움직여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서 행복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밥을 싸기 위해서 은박지를 뜯어내는데, 무심코 하는 듯한데도 은박지의 크기가 일정했습니다. “이야, 부처님이 자신의 기술을 익혀 세상에 봉사하라는 말을 저 사람은 그대로 실천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 기술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김밥천국이라는 식당은 또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2002년에도 김밥 한 줄에 천원을 받았는데, 아직도 천원이라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으니,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고마운 식당이었습니다. 더욱이 24시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 어떤 시간에든 김밥천국이라는 빨간색 간판이 보이면 저는 반가워 달려가곤 했습니다. 주문한 떡국이 나왔습니다. 쇠고기가 들었는데, 그전 같으면 “원산지 표시도 안 해놨군. 광우병 쇠고기를 먹으란 소린가?”라는 비판의 마음이 생겼겠지만, 이번엔 “귀한 쇠고기로 국물을 내주었군”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배지근한 쇠고기 국물 맛이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5. 비판을 감사로 바꾸니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다.
비판을 감사로 바꾸니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유지했을때, 사회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악의 구렁텅이로 보였지만, 나의 주변에 있는 상황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마자 세상의 아름다움이 보였고 천국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들이 발견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열쇠가 바로 이것이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듭니다.
물론 앞으로도 저의 마음 속에서 비판하는 생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마음 속에 과거에 남을 비판했던 기억들, 즉 산스카라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저는 이를 즉시 알아채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앞으로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남을 비판하는 생각은 글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에게 감사의 기쁨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를 드렸을 때세상은 저를 보호하시려는 당신의 의지가 구현된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뜻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믿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에 감사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오직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출처] 김밥천국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다|작성자 휘파람새
첫댓글 멎지네요! 한 수 배움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아이때문에 마음고생이심했는데..이글을읽으니 많은위로가됬네요..많이배우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