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운동가의 처지에서 <한겨레>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문화’는 사람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또 `민족문화’는 한 민족을 차별화해주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나는 지금의 미국이 힘에 의한 세계지배를 꿈꾸는 것이 어쩌면 빈약한 문화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따라서 언론도 이 `문화’ 특히 `민족문화’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명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겨레>를 보자. 20일치 <한겨레>에는 문화 관련으로 2개면이 채워져 있다. 하나는 `문화마당’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미술·문화재’이다. `문화마당’은 각종 음악회, 전시회 등의 문화 관련 알리미이다. 이 면의 큰 기사로는 교향악 축제, 조각전시회, 영어연극, ‘요즘 뜨는 영화’가 있고, 민족문화 관련은 없다. 그리곤 상자표를 만들어 각종 행사를 소개한다. 모두 8개의 꼭지 가운데 민족문화 관련은 국악, 춤 등 2개뿐이며, 전체 개수로 봐서도 36개 중 6개뿐이다.
다음으로 `문화/미술·문화재’ 경우를 보자. 머릿기사로는 `건축가의 손끝따라 멋깔 내는 동사무소’가 있으며, 주요 기사 2개 중 `굴뚝 모양 손잡이 달린 관’이란 제목의 민족문화 관련 기사가 하나 눈에 띈다. 그리곤 ‘화제의 전시’ 3개와 전시회 관련 상자기사가 있지만 민족문화와는 관련이 없다. 겨우 ‘짧은 소식’에 박물관 행사안내가 3개 있을 뿐이다.
21일치는 무려 5개면이 문화 관련 기사로 채워져 있다. 27쪽에는 대중문화 `세 여자가 띄우는 미소의 힘’, 28쪽에는 영화, 29쪽에는 대중음악, 30쪽에는 만화와 게임, 31쪽에는 종교이다. 그러나 여전히 민족문화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영화, 대중음악, 만화, 게임 애호가들이 숫적으로 민족문화 애호가들보다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애호가들의 많고 적음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시청률 때문에 교양 등을 외면하고, 오락물 위주의 편성으로 비난받는 방송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물론 민족문화 관련 취재거리가 서양문화 쪽에 비해 많이 부족하거나 취재원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한겨레>가 ‘민족자주’를 외치는 신문이라면 단순히 이런 사유로 민족문화 기사가 빈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발로 뛰면, 또 찾으려고 하기만 한다면 기삿거리는 얼마든지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문화는 자생력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민족문화는 정부가, 언론이 지탱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겨레>의 창간정신 중 하나가 `민족’이란 대명제라고 본다면, 민족정신을 지지해주는 민족문화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