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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추석 차사(秋夕 茶祀)
이장희 추천 0 조회 33 14.04.12 12: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추석 차사(秋夕 茶祀)

추석이 나흘뒤로 닥아왔다.
올해는 어째 모든게 뒤죽 박죽이다. 날씨도 세계적으로 영 엉망인 한해였고 음력도
머리가 살짝 돌았는지 생량(生凉) 돌자마자 추석 이라며 달력을 내 코밑에 들여 민다.
나는 촌놈이라 그랬는지 경성(京城) 유학을 오기전 까지는 추석을 잘 몰랐다. 영남은
역시 단오를 대단하게 여기는 풍습이고 추석은 별로 였다. 남녁이라서 추수가 늦으니
추석 차사(茶祀)를 중구제사(重九祭祀)라고 해서 음력 9월9일 지내는게 보통 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서울로 공부하러 오기전 까지는 추석이란걸 몰랐다는게 솔직한 고백이다.
추석날 지글지글 구워 내놓는 빈대떡 이란걸 서울와서 처음  먹어 보았으니까.
내고향 안동 방식으로는 햇곡식과 과일로 음력 9월9일 중구제사를 지내고 첫서리가 오는
늦은 11월, 시사(時祀)라고 해서 조선(祖先)의 묘소를 ?아 벌초도 하고 제사를 지낸다.
대부분 조선의 묘소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묘위토(墓位土)가 마련되어 있어서 거기서
나오는 소출로 제수(祭需)를 장만했다.
내 경우 이런 패턴이 깨진 것은 미주생활 20여년 하다가 돌아와서 살며 부터다. 자연 서울
살림이니 서울 사람들처럼 음력 팔월 보름에 추석차사를 모시고  11월 늦게 묘사(墓祀)를
지냈다.
그러다가 추석차사 지내고 또 묘소를 ?아 돌며 묘사를 지내는게 이중이란 생각이 들어
삼촌 살아계실 때 허락을 얻어 그만 추석날 산소를 돌며 묘사를 지내는걸로 간소화 해버렸다.
지난 10여년을 그렇게 살아 왔다.

하지만 금년 추석은 너무 절기가 이르니 낭패 스러웠다.
그래서 동생과 상의, 오랜만에 집에서 추석차사를 모시고 11월 늦게 낙엽이 진뒤에 묘사를
지내기로 합의를 했다. 그런데 그저께 동생이 전화를 하고 오늘 딸을 데리고 가서 성묘겸
묘사를 지내고 와야겠다고 했다. 독일 아헨(Aachen)교향악단에서 바이얼린 주자로 일하고
있는 내 질녀가 휴가로 와 있었는데 떠나기전 성묘라도 하고 가는게 도리란 소리였다.
할수없이 이번 추석에는 늙은 아내와 둘이서만 송편이라도 놓고 절하는 도리 밖에 없다.

옛날 우리네 생활에서 제사라는 것 보다 더 프라이오리티(Priority)가 앞서는 것은 없었다.
거의 명줄걸다 싶이 지킨 체면 이었고 인습이며 유가(儒家)의 전통 이었다. 그런데 세월을
못 이겼는지 이게 변하기 시작 했다. 이제는 산적 대신 도미노 피자 한판 올려놓고 절하는
집도 있고 전에 상민 이었을수록 남원 제기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놓고 남보기 그럴사
하게 지낼려고 노력 하는 것 같다.
양반 푼어치도 제사 그거 이제 우습게 생각하고 멋대로 간다. 나도 그 대열에 섰다.
천당 아래 분당 산다는 내 6촌이 어느날 전화를 했다.
“형, 제사 이거 그만 1년에 한번 날짜 정해 지내는 것 어떻습니까? 제가 사는 이 주변에 보면
모두 그렇게 하는데요.”
그러니까 1년에 하루 날짜정해 호루라기 획 불고 조상귀신들 “집합”하여 한번으로 때우자는
이야기 였다. 아마 내가 집안에 장손 이라고 내 동의를 구하면 모양세가 좋다고 생각한 모양 이다.
“그거야 니 마음데로 해라. 그거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세월이 아닌 것 같다. 나도 요즘 할배
할매 제사는 안지낸다.”

그렇다. 나도 할배 할매 제사를 안지내는지 벌써 7년째다. 할아버지 돌아가신지 60주년 제사를
마지막으로 끝냈다. 내 생각에 제사라는 것은 농경사회의 전통 이다. 나이 마흔만 되면 축담
내려설 때 자식이 겨드랑이를 부축 해주던 시절 이야기고 나처럼 칠십이 되도록 아내와 둘이
밤치며 낑낑 제수 마련하고 준비해서 지내기에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상에게 이제 제사 그만 지내겠습니다 신고하는 조매(措埋)제사도 생략하고
“할배, 할매 60년 제삿밥 얻어 드셨으면 되셨지요.”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끝내버렸다.

아울러 나도 살날이 멀지 않았지만 행여 꿈에라도 내 자식에게 제삿밥 얻어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람이다. 유언으로 내제사는 생략해라 말안해도 하나뿐인 며느리가 외국애라 제사문화
하고는 거리가 멀다.
아들이라도 제사 문화를 보고듣고 자랐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제사라는 것 이렇게 저렇게 지내는거라고 아들에게 일러두고 죽을 마음도 내게는 없다.
다시 말해 제사문화는 내대(代)로 우리집에서 끝내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제사를 생략하는 것은 물론 내가 만약 한국서 숨을 거둔다면 내고향 뒷골에 있는 내려오는 땅, 
지목도 묘(墓)로 된것이 기천평 되니 거기에 그냥 평토장으로 묻히고 싶다.

대한민국 온 산천이 봉분 투성이니 나마져 거기 끼여들고 싶지는 않다. 
아예 관(棺)도 종이관 이면 좋고 묻을 때 뚜껑열고 그냥 묻고 미국처럼 동판도 필요없다.
비석조각 같은거는 더더구나 원치 않는다. 나도 이세상에 살며 숱하게 고기나 나물 먹었으니
죽은 내몸 나도 주고 가면 그만이다. 토룡(土龍)선생이 드시고 입맛 다시든 내몸위에 풀이나
나무가 우거지든 나는 상관 없다.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요즘도 제사를 지내며 나는 무릎이 아파 절하는게 무척 고역이다.
그러고 보니 몇백년 내려오던 제사라는 무형의 유산이 우리집에서 자취를 감출날도 얼마남지
않은것 같다.

                                               Sep 8 2011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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