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천사봉 넘어 비로봉으로
1. 일자: 2023. 9. 30 (토)
2. 산: 치악산(1288m)
3. 행로와 시간
[부곡2리마을회관(09:48) ~ 부곡탐방센터(10:04) ~ 큰무레골 입구(10:11) ~ 천사봉(11:04) ~ 비로봉(12:04~33) -> 말등바위 전망대(13:12) ~ 사다리병창 간판(13:30) -> 세렴폭포 갈림(13:51) -> 구룡사(14:29) ~ 대형차 주차장(15:10) / 13,58km]
치악산에 간다. 길이 새로 열려 걷고 싶었던 부곡 코스를 오른다. 선답자의 안내 영상을 보니 치악산 비로봉을 오르는 가장 쉬고 구간이라 한다. 들머리 고도가 510m, 천사봉을 거쳐 총 6km를 가면 비로봉이다. 비고는 꽤 높지만 등로가 완만해 어렵지 않다 한다. 하산은 늘 그렇듯 사다리병창길을 따라 구룡사로 내려온다.
추석이다. 긴 휴일이 무척 반갑다.
안흥 땅에 들어서 낯선 도로를 달려 부곡마을 입구에 선다. 고개 숙인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들녘을 보니 가을이 실감난다. 도로를 따라 1km를 넘게 걸어 탐방센터를 지나고, 큰무레길 갈림에 선다. 좌측으로 가면 곧은재로 간다. 앞서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여기까지는 평지라 무척 빠른 행보다. 우측 오름에 들어선다. 등로가 가팔라진다. 고도가 550m쯤 되는 것 같다.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거칠게 치고 오르고 잠시 평지가 나타나고 다시 오름이 시작되고가 바복된다. 천사봉까지는 진득한 오르막이다. 예상 밖으로 힘겨운 길사정에 당황한다. 비고 450미터를 1시간 만에 오르자 등에 땀이 솟는다.
천사봉에서 올라다 보는 비로봉은 아득했다. 들머리에서 3.5km쯤를 올라왔고 비로봉까지는 2.6km를 더 가야한다. 만만치 않다. 정상으로 오르는 가장 쉬운 길이 라는 안내에 속은 느낌이다. 치악산을 얕잡아 봤다 하며 묵묵히 걷는데, 천사봉 이후 1.3km 까지는 고도 차가 거의 없는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천사는 봉우리 아래가 아니라 위에 있었나 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조릿대가 호위하는 숲을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산이란, 길이란 쉬이 예단해서 안되나 보다. 순응하며 묵묵히 걷는 게 답이다.
잡초가 우거진 헬기장을 지난다. 올려다 보는 눈, 멀리에 비로봉이 우뚝 솟아 있다. 또 오름이 시작된다. 사납지 않다. 견딜만 하다. 마지막 긴 계단을 오르자 안개에 덮인 비로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흐리다는 날씨가 맑아 정상에서의 풍광을 기대했는데, 연무가 모든 것 앗아가 버렸다.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나무 의자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바로 내려가기가 아쉬워 카메라를 세우고 돌탑 앞에 선 내 모습을 담아 본다,
연무는 쉬이 거칠 것 같지 않았다. 서성이다 사다리병창길로 하산을 시작한다. 계단 난간에 서면 먼 풍경이 무척 좋은 곳인데, 오늘은 안개만이 자욱하다. 긴 계단을 내려선다. 지난 몇 번의 산행은, 이곳에서는 고도와 거리를 헤아리지 말라 이른다. 무심으로 내려간다.
오늘 산행에는 젊은 처자들이 많이 왔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젊음이란 참 좋은 게로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말등바위 전망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하늘이 갠다. 전망대 뒤로 치악의 산등성이가 우람한 덩치로 병풍이 되어 준다. 단풍의 붉은 기운도 살짝 느껴진다.
힘겨움과 지겨움이 극에 달했을 때 폭포 갈림에 선다. 지난 비에 수량이 풍부해진 계곡을 우렁찬 소리를 내며 아래로 향한다. 나도 물따라 구룡사로 향한다. 문득 드는 생각, 다음에 치악산에 온다면 계곡길로 하산해 보아야겠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다. 저 마다의 사연으로 길에 나서고 걷도 생각하며 나아간다. 나 역시 그렇다. 구룡사에 도착한다. 절 입구에서 석상과 전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빠르게 걸어 내려간다. 비가 내린다. 우산을 편다. 길에 운치가 느껴진다.
구룡사 탐방센터 앞에 선다. 셔틀 버스를 기다리다 긴 줄에 포기하고 1.7km 거리의 도로를 걸어 내려간다. 산에서는 그리 힘겨워하지 않았는데 도로에서 피로를 느낀다.
무언가를 완수한다는 것, 그 끝은 항상 만만치 않다.
< 에필로그 >
지도를 보며 인도어 클라이밍을 할 때만 해도 천사봉까지는 여유롭게 오르고 이후 비로봉길이 힘겨울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길을 걸으니 그 반대였다. 고도 차를 눈여겨 보았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아둔한 눈과 짧은 생각은 당연한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큰 맘 먹고 오른 부곡길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풍경도 없고 오름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이 계절에 신선한 공기와 싱그러운 숲을 벗 삼아 걸어 덜 지겹지 않았나 자위해 본다.
산행이 늘 기대 대로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 미답 길을 무사히 다녀온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버스가 출발한다. 잠이 쏟아진다. 만만치 않은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