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좋은, Comport zone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작가 강좋은은 드로잉과 설치를 넘나들며 소통이라는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지속해 왔다. 작가의 드로잉은 신진작가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생동감 넘치는 선으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작업들이다. 특히 작가의 작업에서 유독 강조되는 신체의 일부는 ‘혀’이다. 인간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일종의 데포르메이다. 특히 2011년에 제작된 <관계들>이라는 드로잉은 인간의 형상과 강조된 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있는 작품으로 작가의 의식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혀’에 대한 강조는 욕망의 리비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언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지기도 한다.
작가는 2차원적인 드로잉을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설치적인 작업들을 진행해 나간다. 2011년의 <혀-1>작품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상징하는 그물조직을 배경으로 혀가 길게 늘어져 있고 군데군데 고무 재질의 혀 형상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비록 형식적인 완성도가 그렇게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가의 의도가 비교적 선명하기 드러나 있다. 하지만 2012년에 제작된 <혀-3>에서는 표현 방식이 보다 과감하게 변하였으며, 색채의 풍부함과 공간 장악력에서 작가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핑크색 시트위에 그물망이 늘어져 있고 가운데에는 천으로 만든 형상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형상들은 신체의 일부이거나 작가가 즐겨 다루었던 혀의 변형된 형태들로 여겨진다.
그리고 최근에 제작된 <타인의 방>에서는 작가가 제작한 구조물과 투명비닐에 새겨진 자신의 드로잉, 그리고 그 드로잉의 그림자가 투사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간다. 이러한 설치방식은 작가의 의도를 더욱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입체적인 구조물의 다양한 형태들과 투명 비닐에 새겨진 드로잉의 그림자가 함께 오버랩되면서 보다 중층적인 의미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기하학적인 구조물과 대비되는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드로잉이 효과적으로 결합하면서 공간에 대한 집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신진작가답게 작가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가며 조형적인 완결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으며 결국 ‘comport zone’이라는 주제와 마주하게 된다.
<타인의 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comport zone에서 드로잉 적인 요소들은 철저하게 절제되면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작가가 구조화하고 있는 공간들은 인간의 신체에서 추출한 45cm~120cm 이내의 공간들이다. 정서적 공간을 현실적 공간으로 치환시킨 이 작업에서 작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소통의 공간, 혹은 소통이 불가능해져 버린 공간의 모습을 기하학적 구조체들의 집합이라는 방법론으로 확립하게 된다.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소통’의 문제를 형태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comport zone은 형식적로는 구성주의나 기하학적 입체추상과 같은 작품들과 유사하지만 근원적인 배경은 전혀 다른 것이다. 형식주의 혹은 미적 아방가르드가 추구했던 이념은 조형적인 혹은 미학적인 자기완결성을 추구한 것이고 강좋은의 작품은 뚜렷한 모티브를 지향하면서 변화된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도달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좋은의 작품의 변화과정을 보면 작가가 하나의 모티브로 진정성있게 접근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자기완결구조를 갖게 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드로잉과 설치를 오가는 작가의 작업은 신진작가다운 흡입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성큼 성큼 넘어서고 있으며, 작가로서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강한 신뢰로 이어진다. 어쩌면 강좋은은 이번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발군의 역량을 보여준 작가중의 한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의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