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를 트이게 하는 월드 뮤직
긴 손가락을 지닌 기타 플레이어들은 타고난 재능 덕분에 흔히 고난도의 연주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순(38)은 한결같이 평이한 연주에 집착해왔다. 그런데 쉽게 들리는 연주가 꽤 감동이다. 느리지만 적재적소에 꽂히는 선율의 구성력, 어떤 액세서리를 썼는지 호기심을 유발하는 독특한 사운드, 짧은 선율에서도 폐부를 찌르는 연주의 알싸함은 그의 이름 석자를 되돌아보게 하는 특징들이다.
롤러코스터 시절의 그는 다른 리듬에 묻어가는 리프(riff·반복선율)를 구사하는 정도였지만, 그 울림은 컸다. 속주 하나 없지만, 정확한 운지법으로 감동을 안기는 방식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기타 플레이어들에겐 보기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기타는 그룹의 얼굴임에도, 그는 변방을 자처했고 묻어감으로써 더욱 각인시키는 효과를 부지불식간 배가시켰다. '속주를 포기한 기타리스트 같다'고 묻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예전에 기타를 연주할 땐 속주에 대한 강박도 컸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꼈어요. '왜 빨리 치는 것만이 방법인가' 하는 회의였죠. 그렇게 연주하지 않아도 자기표현을 하는 뮤지션은 많았으니까, 제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남들이 잉베이 맘스틴 들을 때, 전 에릭 클랩튼을 들었어요. '테크닉'에도 부류가 많다고 생각하니까, 좀 편해졌죠. 속주는 테크닉의 하나일 뿐이에요."
이상순의 연주에서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톤'(Tone)이다. 보컬로 비유하면 '음색'에 해당하는 기타의 '톤'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의 톤은 롤러코스터 시절부터 꽤 유명했다. 기타에 여러 소리를 낼 수 있는 액세서리('이펙터'-강한 소리, 부드러운 소리 등 사운드를 굴절시키는 기타 부속 장치) 중 그가 특이하고 값비싼 액세서리를 달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두 오판이었다. 그는 자신의 톤에 대해 손맛으로 시작해 손맛으로 끝낸다고 했다.
"톤이라는 건 손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펙터를 사용해 기계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톤은 사람 손이 좌우한다고 믿거든요. 연습할 때도 기타와 앰프만으로 하는 방식을 추천하는 편이에요. 그게 해결이 되면 어떤 곡에서도 좋은 톤을 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상순은 아날로그에 경도돼 있었다. 네덜란드 유학을 결정한 것도 일렉 기타를 가지고도 어쿠스틱한 소리를 내고 싶은 욕심이 내심 깔렸었고, '베란다 프로젝트'에서 김동률과 함께 나일론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아날로그에 대한 무한 동경이 자리 잡은 까닭이다. 그는 "연주의 전쟁터 같았던 뉴욕과 달리, 유럽은 정적이고 내 스타일과 맞았다"고 했다.
최근 이효리의 연인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상순은 이효리의 음악적 취향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전했다. "제가 좋아하는 브라질 음악을 (이효리가)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음악적으로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아주 기뻤어요."
이번 주 '뮤지션스 초이스'의 주제로 이상순은 '내 귀를 트이게 하는 월드뮤직'을 꼽았다. "음악을 시작하면서 영미권 음악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조앙 질베르토 같은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부터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 이쪽 음악들에 관심을 두게 됐죠. 앞으로 발매될 제 솔로 음반에 이런 음악들이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글 / 김평(대중음악 전문필자)
이상순이 선택한 첫 번째 앨범 : Celso Fonseca의 [Natural]
"재킷을 보고 산 음반이에요. 2002년 롤러코스터 멤버들 모두 영국 여행을 갔는데, CD 가게에서 재킷이 아주 예뻐서 골랐어요. 사고 보니, 음악도 아주 좋았어요. 그때부터 팬이 됐고, 네덜란드 유학 때 공연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소극장 공연에서 보사노바를 하는데, 관객들이 어느새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저도 이 아티스트처럼 음악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정말 제가 해보고 싶은 음악이 이 음반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되게 모던한 보사노바인데, 보사노바라는 기본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일렉트로닉한 측면도 많아요. 요즘 사람들이 보사노바를 쉽게 접하고,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게 만든 아티스트예요. 너무 정통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이상한 데로 가지도 않은 중립을 잘 지킨 음반이라고 생각해요."
이상순이 선택한 두 번째 앨범 : Toquinho의 [Toquinho - Disco 2]
"이 아티스트에게 받은 느낌은 기타가 너무 독특하다는 점이었어요. 그렇다고 현대 음악을 하는 건 아니에요. 보사노바와 삼바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데, 이 기타가 학습된 연주가 아니라 정말 혼자서 연구한 느낌이 진하게 베어 있는 연주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되게 특이한 기타인 셈이죠. 들을 땐 너무 편안하게 들리는데, 분석하면 너무 독특해요. 기타리스트적인 면으로 본다면 자신만의 개성이나 문법이 또렷하게 나오는 스타일이에요. 음반 수록곡 'Morena Flor'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인데, 듣기도 편하고 멜로디 라인도 좋은 곡이에요. 보통 브라질의 삼바 노래를 들으면 희한한 느낌이 있어요. 메이저(장조)인데도 슬프다는 거예요. 메이저에서 들려주는 아련하고 슬프고 짜릿한 그런 느낌, 그런 감정을 되게 좋아해요."
이상순이 선택한 세 번째 앨범 : Omara Portuondo의 [Gracias]
"이 분은 목소리만 들어도 아주 좋아요. 이 음반은 젊은 뮤지션들과의 협연이 돋보이는데, 특히 아비샤이 코헨(Avishai Cohen)이라는 테크닉이 좋은 베이시스트가 참여해 멋진 솔로를 선보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죠. 그런 걸 다 떠나서, 이 음반은 아무 생각 안 하고 감상만 해도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부에나비스트소셜클럽'의 마지막 보컬리스트로서, 또 관록의 싱어로서 테크닉 이런 걸 다 넘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뮤지션이에요. 인생을 노래하는 뮤지션이니까, 그 자체로 주는 무한 감동이 있죠. 이 음반은 가장 많이 듣는 음반 중 하나고, 들을 때마다 제게 위로를 주는 음악이에요."
이상순이 선택한 네 번째 앨범 : Joao Gilberto의 [Joao Voz E Violao]
"음반 수록곡 중 'Chega De Saudade'를 무척 좋아했어요. 보사노바 최초의 곡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좋아했죠. 혼자 기타치고, 노래하는 조앙 질베르토의 이 버전을 무척 좋아해서 EBS 프로그램 DJ를 맡고 첫 곡으로 틀기도 했어요. 조앙의 음악은 편안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 조앙의 특유한 레이백(Layback·정박자에서 음을 뒤로 미는 기법)이 거의 한마디씩 뒤로 갈 정도로 박자의 틀을 깨기도 해요. 원곡과 비교하면 엄청난 내공으로 노래하고 있는 셈이죠. 그렇게 밀어내도 결국 모든 박자는 맞아떨어져요. 조앙이 녹음할 땐 소리에 민감해서 카페트조차 교체한다고 하는데, 음악을 그냥 들으면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지만 엄청나게 신경을 쓴 흔적들이 작품에 가득해요. 기타 하나 보컬 하나로 구성된 음반 중에 가장 완벽한 음악을 구현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이 뮤지션의 공연 한번 보는 게 소원이에요."
이상순이 선택한 다섯 번째 앨범 : Jorge Drexler의 [Eco]
"몇 년 전에 알게 된 음반인데, 저한테는 새로운 음악으로 다가왔어요. 새로운 음악이면서 받아들이기 쉬웠다고 할까요? 이 뮤지션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통해서였는데, 마지막 크레딧 올라갈 때 뮤지션 이름 찾고 찾아서 음반을 결국 구했어요. 일단 목소리가 아주 좋고 음악도 너무 깔끔한 게 특징이에요. 또 전통과 모던함이 적절하게 융합돼 있죠. 특히 수록곡 'Salvapantallas'는 어쿠스틱 선율이 아주 좋아서 '베란다 프로젝트'할 때 '산행'이란 곡에 응용을 해봤어요. 젊은 축에 속하는 요즘 뮤지션 음반 중 따라 하고 싶은 음악이에요."
좋은 음악에 대한 수요는 늘 있는 법… 뮤지션은 대중에 맞추는 것이 아닌, 대중을 이끄는 태도 필요
현재 EBS 라디오에서 [이상순의 세계음악기행]을 진행하고 있는 이상순은 이 프로그램 덕에 음악을 듣는 기회와 재미를 동시에 얻고 있다고 했다. 그는 네덜란드 유학 가기 전까진 박창학(작사가)과 윤상으로부터 음악을 많이 접하며 배웠다. 그렇게 얻은 음악적 지식은 앞으로 발매된 그의 솔로 1집에 그대로 투영될 계획. 브라질 음악 스타일이 강하게 채색된 음반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솔로 음반에서도 묵묵히 전개되는 내 연주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젠 연주인보다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꿈꾸기 때문에 연주와 함께 노래도 한다."라고 전했다.
그의 음악적 태도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했다. 좋은 음악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 "음반 시장 상황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고요. 어떻게 좋은 음악을 만들까를 신경 써도 모자라는 시간이잖아요. 저 자신부터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요즘 가요계를 보면 많은 뮤지션들이 대중을 쫓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뮤지션이라면 대중을 끌어들이는 음악적 태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선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어쨌든 전 뮤지션답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상순은 보기와는 달리, 수줍고 온순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마주앉은 이의 말도 진지하게 경청할 줄 알고, 짓궂은 질문에는 얼굴이 금세 달아오를 만큼 순진한 구석도 있었다. 그런 그도 '뮤지션의 태도'에서 만큼은 확고한 의지와 견해를 갖고 있었다. '좋은 음악'은 뮤지션의 성품이 아닌, 음악적 태도에서 나온다. 그가 유순해도 날카롭고 멋진 음악을 구사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첫댓글 횰의 남자이상순...
베란다프로젝트 좋아요^^
김평인가 하는 사람이 카페가입하게 만들었어요 ㅎㅎ
이상순이 리듬감이 무쟈게 좋은 울나라 탑 기타리스트인데, 그 앞에서 속주 어쩌고 저쩌고 하다니,
어이가 없군요. 음악에 대해 별로 몰라도 그냥 느낌으로 평론 할수 있는 건지.
리듬감이 좋다는 것은 순간적인 속주를 자유자재로 섞어넣을줄 알아야 가능한건데 ,,쩝
아마도 속주 기타리스트들은 또 속주만 한다고 어쩌고 저쩌고 할사람이예요
여튼 이효리가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거 같아요. 이상순과 사귀는 것을 보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