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편
구원의 하나님
요절: 5절
내용 관찰
65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찬양입니다. 첫 절의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는 찬양하기를 원하는 부푼 마음을 안고 마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하며 예배함에 있어서 너무 모르고 버릇이 없는 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좋을 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하면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말고 싶으면 말고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보좌 앞에 나아가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찬양과 기도드림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되었는가를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드릴 때마다 먼저 생각해야 마땅합니다. 드림은 우리에게 있어도 받으심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65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부분(l4)에서는 구속의 은총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구속의 은총이란 다름 아닌 추방당했던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심을 의미합니다.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2) 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무슨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여"(3) 주셨기 때문이고 그보다 먼저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4)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런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4) 하십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성부는 택하시고(4) 성자는 죄를 사하시고(3) 성령은 나아오게 하시고(2) 가까이 오게(4) 해 주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데도 점진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아오고"(2) ”가까이 오게 하사"(4)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드디어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4) 합니다.
둘째 부분(5-8)에서는 창조 세계에 나타난 일반 은총(참고: 마5:45)을 누리고 살아가는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5)들에게도 특별 은총인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5상) 하면서 "주께서 아침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8하) 합니다.
셋째 부분(9-13)에서도 한량없이 공급되는 영육간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9)는 천상(天上)의 강에 가득하게 저수되어 있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 물로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10)고 말씀합니다. 물을 '댄다'는 말이 9절과 10절에 나오는데 이는 공급자 되심을 말씀합니다. 이는 신약시대에 와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엡1:2)라는 보편적인 축복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에 가득한 은혜가 흘러나와 성도들의 마음의 밭고랑에 평강의 강수로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13)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강에서 물이 흘러나와 맺어진 열매들입니다. 이것이 육적 이스라엘에게는 풍년을 주신 일반 은총에 대한 찬양일 수도 있습니다만 시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서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시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음까지 나아가야만 합니다. "초장에는 양 떼가 입혔고"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에서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요4:35)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줍니다.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65편을 바라보노라면 성부의 택하심과 성자의 구속하심과 성령의 공급하여 주시는 성삼위의 사역하심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넘쳐서 풍성한 열매를 산출하여 내는 한편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첫 부분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둘째 부분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셋째 부분에서 어떤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적용: 형제의 마음 밭고랑에, 가정에, 교회에도 ‘물을 넉넉히' 대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양 떼와 곡식이 덮이도록 헌신하십시다.
암송: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9)
제 66 편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라
요절: 16절
내용 관찰
66편의 중심점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5)고 말씀하고, 16절에서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와서 보고 들으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행해주신 일이 무엇이기에 와서 보고 들으라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행해주신 일 가운데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일을(5-7) 언제나 첫손가락에 꼽고 있습니다(예 74:12-13, 78:12-13) 그들은 국가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출애굽 사건을 상기하면서 그렇게 구원하여 주셨다면 이제도 이 위기에서 구원해주실 것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큰 것이 사실이라면 보다 작은 것은 더욱 확실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문제만을 내려다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이 큰일을 행하심을 먼저 더 많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10-12에 의하면 현재도 "시험 "(10)과 "어려운 짐"(11)과 "불과 물을 통과"(12) 하듯 한 시련을 당하였으나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12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행해 주신 일과 현재도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1-2).
66편은 13절부터 인칭대명사가 ‘우리'에서 ‘나'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란 국가 또는 교회 전체를 가리킵니다만 '나'란 그 구성원인 개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민족적으로 행해주신 일이 출애굽 사건이었다면 개개인에게 행해주신 일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16)하고 ‘영혼 구원'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말씀한 후에 개개인을 말씀하는 이것 또한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도입니다. 구원은 도매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얻은 후에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구원 얻은 공 동체의 일원, 즉 몸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선포하리로다"(16)고 말씀하고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17)고 말씀합니다.
구원 얻은 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행해주신 일을 "찬양하고 선포"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13)한 헌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해주신 이 큰 일을 찬양하십시다, 선포하십시다.
묵상해 봅시다.
이 시의 중심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행해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행해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적용: 성도의 서원 갚음(13)은 헌신입니다. 찬양과 선포하는 일에 형제는 얼마나 헌신되어 있습니까?
암송: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