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이 땅에서 가장 큰 배롱나무…… 그리고 평생교육원 강좌 소개
배롱나무 꽃 붉은 계절입니다. 백일 동안 붉은 꽃, 피어 있는 우리의 여름은 도리없이 아름답다 해야 합니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나무여서, 중부 지방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나무입니다만 날씨가 대체로 뜨거워지면서 요즘은 중부 지방에서도 배롱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조경수로 정성들여 키우는 나무이지요. 학교나 관공서 건물의 뜨락, 혹은 도시의 근린공원 등에서 그렇습니다. 겨울이면 온몸에 칭칭 짚 이불을 덮어쓰고 추위를 버텨내느라 안간힘을 쓰지만, 이 여름! 배롱나무는 제 시절을 한껏 즐깁니다. 바로 배롱나무의 절정기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배롱나무 ○
배롱나무 가운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배롱나무로 부산 양정동 화지공원의 배롱나무를 꼽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유일한 배롱나무로, 천연기념물 제168호인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입니다. 부산진구의 화지산 자락에 자리잡은 화지공원은 고려시대 중기에 안일호장 安逸戶長을 지낸 동래정씨 문도文道공의 묘소 앞 양쪽에 서 있는 크고 오래 된 나무입니다. 정문도가 지낸 안일호장은 일흔 살이 되어서 퇴직한 호장으로, 퇴직 후에도 안일하게 살 수 있도록 녹봉을 지급한 벼슬입니다. 그의 후손 가운데에는 〈정과정곡 鄭瓜亭曲〉을 지은 정서 鄭敍가 있습니다.
정문도의 묘가 있는 화지공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당 자리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5명당이니 8명당이니 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경기도 양주 풍양조씨(豊壤趙氏)의 묘지를 비롯해, 전남 나주 반남박씨(潘南朴氏)의 시조묘, 경북 고령 고령신씨(高靈申氏)의 묘, 경남 창녕 왕산 창년성씨(昌寧成氏)의 묘와 함께 바로 이 화지산 묘지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지공원은 풍수지리를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반드시 언급되는 대표적인 명당자리입니다. 지금은 앞쪽으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서 조금은 답답하지만,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좋은 자리임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 후손의 부귀와 영화를 기원하며 심은 나무 ○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는 정문도의 후손들이 가문의 부귀와 영화를 기원하며 심은 나무입니다. 처음 이 자리에서 배롱나무를 심은 건 그러니까, 팔백 년 전 쯤 됩니다. 그때 후손들은 묘소 앞 동서 양 편에 한 그루씩 배롱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 줄기는 썩어 문드러져 사라졌습니다. 그 뒤에 바로 그 자리, 그러니까 처음에 심은 나무의 채 죽지 않은 뿌리 부분에서 새로운 줄기가 솟아오르면서 마치 제가끔 다른 여러 그루의 나무인 것처럼 자랐습니다. 그것도 오래 전의 일이어서, 지금 솟아오른 줄기 가운데 더러는 이미 까맣게 죽기까지 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아주 잘 생긴, 특히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품이 넉넉하고 아름다운 한 그루씩 동서 양편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땅 위로 올라온 줄기가 동쪽에는 네 개, 서쪽에는 3개로 나눠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동쪽에 서있는 나무의 키가 조금 더 커서 8미터를 조금 넘는 규모이고, 서쪽의 나무는 6미터 정도 됩니다. 배롱나무가 위로 높이 자라는 성질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매우 큰 나무인 셈입니다.
○ 팔백 년의 긴 세월을 지켜온 고마운 생명 ○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를 찾아본 건 꽤 오랜만입니다. 처음 이 나무를 찾아보고, 오래된 배롱나무가 갖춘 기품에 감동하여 수시로 나무를 그리워하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자주 찾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가까운 부산 수영동 곰솔이나 푸조나무는 몇 차례 찾아왔지만, 이곳은 들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오랜만에 이곳 양정동 화지공원을 찾게 됐습니다. 그 동안의 안부도 궁금했고, 주변 풍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조마조마했습니다. 매우 번잡한 도심이었으니까 주변 환경의 변화가 더 많이 걱정되기도 했거든요.
나무는 그러나 별 탈 없이 잘 있었습니다. 여전히 너른 가지의 품은 넉넉했고, 폭염경보가 잇따르는 이 계절에 맞춰 춤추듯 흥겹게 붉은 꽃을 온 가지에 가득 피웠습니다. 걱정했던 주변 환경에도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기야 이미 개발될 만큼 개발한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변화는 여의치 않았을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찾아본 뒤로 십 여 년 동안 나무는 숱하게 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자신의 몸을 새로 꾸몄겠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큰 변화의 낌새가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여여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무 앞에 서 있는 사이에 굵은 빗줄기가 몰아치더니 그리 오래지 않아 거짓말처럼 비는 그쳤습니다. 오랜만의 조우를 더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이 함께 노래하는 듯했습니다
○ 서강대 평생교육원의 새 《나무 강좌》에 초대합니다. ○
오늘 《나무편지》에서도 한 가지 알려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번 가을부터 서강대 평생교육원에서 나무를 주제로 한 새 강좌를 시작합니다. 이 강좌는 정원 스무 명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매주 3시간 강의로 15주에 걸쳐 이어지는 긴 강좌여서, 여느 강연에 비해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지금 한창 수강생 등록 절차가 진행 중이니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등록은 [서강대 평생교육원 홈페이지(https://scec.sogang.ac.kr)]에서 [수강안내==>과정목록]으로 가셔서 아래 쪽의 [전문교육과정==>나무인문학]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에 수강신청 페이지를 링크합니다.
서강대평생교육원 《나무인문학》 강좌 수강신청 페이지
배롱나무 꽃 지고 열매 올라오면 여름도 꼬리를 드러내겠지요. 이른 아침 창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에 가을의 기미가 들어있지 싶습니다. 여름의 끝, 모두 평안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