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舍利에 예배할 수 있는 기연機緣이 없고, 총림叢으로부터 조사. 대덕들의 가르침을 직접 받을 수 없으며, 또 어떤 아쉬운 점이 있는가? 단지 불상을 볼 때 전신불을 생각하고 불경과 조사어록을 볼때 불조가 앞에 계시면서 몸소 법문하신다고 생각하면서 반드시 공경을 다하고 게으르고 부주의함이 없어야 한다. 이는 곧 종일토록 부처님을 친견하고, 종일토록 제불보살, 조사 선지식들을 모시는 것이니, 사리에 예배하지 않아도 총림에서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또한 어떤 유감스러운 점이 있겠는가?
【역주】 《금강반야바라밀다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이 경전이 있는 곳은 곧 부처님께서 계시는 것과 같다(若是經典所在之處 卽爲有佛).” 어떤 부처님인가? 이체의 법신불이자 진신불의 법신이다. 학불하는 사람 대부분은 사대 명산의 보살도량에 가서 직접 예배드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제불법신은 늘 계신다. 즉 일체 중생심은 유정이든 무정이든 곧 제불법신이 아님이 없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공덕과 이익을 추구하고 발심하여 산사를 참배해봐야 연지대사의 가르침을 듣는 것만 못하고, 천리 먼 길 가서 부처님 앞에 향불 피우고 절해봐야 집에 편안히 앉아서 염불하는 것만 못하다.
[제 213칙] 일체경전 이치의 근본은 유심唯心이니, 진성과 공경으로 수지하면 자신과 타인이 모두 수승한 이익을 받을 것이다.
석가모니 대각세존께서 설하신 일체 대승의 현교. 밀교 경전, 그 의리의 원천은 모두 본심에서 나오고(唯心) 그 이치의 근본은 모두 실상에 부합한다. 이러한 불법의 이치(佛理)는 설사 전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거칠지라도 바뀌지 않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부처 이상 열 가지 법계는 반드시 공동으로 준수하여야 한다. 이러한 경전은 본원으로 회귀하고 본성을 회복하여 제불의 도사導師이고, 괴로움을 뽑아 없애고 즐거움을 베풀어 중생의 자부慈父가 된다.
진성과 공경을 다하여 예배 독송 수지할 수 있으면 자신과 타인이 모두 수승한 이익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윽한 곳이든 드러난 곳이든 공동으로 부처님 은혜의 자애로운 빛에 목욕하여, 마치 여의보주(如意珠)같고 무진장無盡藏 같아 취해도 다하지 않고, 써도 다하지 않으며 마음의 현량을 따라 모두 원하는 바를 만족시킨다.
【주】 실상의 원의는 본체. 실체. 진상. 본성 등이지만, 파생된 뜻은 일체만법 진실불허의 체상 혹은 진실의 이법. 불변의 이. 진여. 법성 등이다. 이는 불타께서 깨달으신 내용이다. 그 뜻은 곧 본연의 진실이다. 일여. 실성. 실제. 진성. 열반. 무위. 무상 등은 모두 실상의 다른 이름이다. 실상은 일체 상대상相을 뛰어넘고, 일체언어의 효용을 뛰어넘는다. 왜냐하면 일체 언어는 모두 상대성性이고, 실상은 곧 절대적인 진리이다.
(실상의 본체를 해석할 때 없음...공에 치우쳐서 처음 학불하는 사람이 단멸공斷滅空으로 오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실상의 체성은 유有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며, 유 그대로의 공으로 한 법도 세우지 않고, 공 그대로의 유로 만법이 모두 드러나며, 사구四句를 여위고 백비百非를 끊나니, 반야가 말끔히 사라진 후에도 원교사문四門중에 공문과 유문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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