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옷
산다고 다 사는 게 아니고 죽는다
다 죽는 건 아니네. 꽃이 져야 씨가 여물듯
죽어야 사는 게 이름 없는 풀꽃만은
아니네. 카투사 덤 아닌 덤으로 받은
아니 녹는 눈깔사탕 한 알 입에 악물고
무지개 풍선에 실리어 바람 찬 월가
빌딩숲을 날다 거침없이 바람 잔 0시
모니터를 횅하니 가로지르는 바람
없는 길 잘 든 너섬 술 고픈
골목길로 베레모에 입마개를 눈귀 까지
뒤집어쓰고 카키바지 주머니에 양손
권총을 찔러 넣은 채 살아서 죽은
맨발의 개미귀신들 귀가는 아득히
아리수를 건너는데 아직도
매듭 엉킨 빌딩 문은 하릴없이
옴시롱감시롱 열렸다 닫히고
무지개 풍선이
고속지하철 환풍구에 걸리니
삼백억 발 심장이 거푸 폭발해도
거믄 태양의 뒤켠에서 모니터로
꽃뱀이 죈 똬리를 죄어 잔뜩
풀 먹인 카키 옷을 껴입고
바람 잦은 바람은 갈대에
갈대는 기대어 비바람 눈보라에도
갈대는 갈대를 보듬고 복사꽃 볼로
젖어 사는 너섬 무릎과 무릎으로
흐르는 널 바큇살에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이 부르트는데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이름 없는
풀꽃의 높푸른 말씀 걸
월가 빌딩숲 불 꺼진 바람벽은
숨 막히게 간절히 침묵하네
추억에 대한 예의
홀로 걷기 좋은 계절
하릴없이 빈손으로
잊혀진 시골 찾아서
가슴속에 길을 내네
깊푸른 주름길을
굽이굽이 감돌아
길이 아득히 흐르네
지워진 시골길이
가슴에 돌팍을 쟁이네
앙가슴을 쓸어내리며
높푸른 하늘강에
길이 길을 여네
생각을 벗어던지고
길 가다 길이 되네
탓
개구리가 고갤 깊이 옴츠렸다.
멀리 뛰려는 이유
너 땜만은 아니네
매미가 떼거지로 땔 잊고
온몸으로 자지러짐도
너 땜만은 아니네
빌딩숲 의자가 하릴없이
입 벌린 채 코 고는 까닭도
네 탓만은 아니네.
바다의 눈썹이 하얗게 센 건
바다의 눈썹이 하얗게 센 건
아라뱃길 때문만은 아니네
비바리의 시름으로 고은
보리순간재미애국만도
걸어다니는 섬다리로
섬이 숨 막히는 까닭만도 아니네
뭍이 서릿발 세우는 그믐밤
갈꽃은 찬별에 베이고
미리내 칼바람은 무시로
바다의 눈썹을 대구 후리는데
꿈마다 무지개 타고 하늘바달 나는
날 어느 섬에 부려야 할까
강문에 들다
하늘은 낮고 바다가 높아도
하늘은 바다를 탐한 적 없고
바다도 하늘을 탐한 적 없네.
장승백이 싸락눈이
그믐 달빛을 자르고
진또배긴 마파람을 베무는데,
욜그랑살그랑
소리 없는 소리가
닫힌 귀에
“작은 생각이 큰 세상을 열고
나를 바꿔야 세상을 바꿔”
어둠을 뚫고
햇귀가 선뜩
강문을 열어젖히네.
혜유미
비가 바다를 적시고
바다숲이 비에 젖네
찻잔은 빗소리에
이슥히 식어만 가고
빗소리는 단풍 들어
예그린도 낙엽에 젖네
앙가슴에 낙엽이 지네
냉가슴을 쓸어내리네
낙엽은 소리 없는 징
혜유미 혜윰을 울리네
툇마루 턱 괴고 애오라지
누인 나비눈썹 그윽이
바다 너머 풀꽃이랑마을
한가을 밤 다소니 혜네
카페 게시글
우리 사는 이야기
《대한민국 현대 대표 서정시 문학상》 수상
시인정연국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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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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