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은행마을 신경섭 가옥
- 보령시 문화재 관리팀: 041-930-4072
여름의 푸름, 아름다웠던 가을을 뒤로한 채
고즈넉한 겨울 풍경이 아름다운 은행마을이다.
한산한 시골마을, 지나는 이도 별로 없는 시골마을이지만,
따스한 햇살이 좋아 한 바퀴 둘러본다.
신경섭 가옥 조선 후기 건축이다.
개인주택이지만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오늘은 은행마을 이야기와 신경섭 가옥을 둘러보자.
장현 마을 (지금은 은행마을) 뒤산은 산새가 뛰어나고 골이 깊어
많은 짐승들이 살았다. 특히 까마귀가 많이 살고 있어서 사람들은 이산을
까마귀산 (오서산)이라고 했다.
이 산 아래 동쪽 작은 못 옆에 마을을 지키는 누런 구렁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구렁이는 용이 되기를 빌면서 천 년 동안 하루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
드디어 천 년이 되던 날 구렁이는 황룡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물줄기를 휘감으며 하늘로 올라갔다.
멀리서 까마귀들이 이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몇 년 후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던 까마귀 들은 어디선가 노란 은행 알을
발견하고는 용이 물고 있던 여의주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기들이 살고 있던 이곳으로 물고 와서 정성껏 키웠다.
이때부터 장현 마을에 은행나무가 서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있지는 않고 , 문화재관리청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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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 산행을 마치고 근처에 있다는 [청라은행마을]을 찾아 가기로 했다. 이곳에 [신경섭가옥]
이 있고 그곳이 은행마을축제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청라은행마을은 지난해부터 축제를
해서 올해가 2회째다. 이번 26~27일에 청라은행축제가 있다. 그러니 우린 미리 가는 것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은행생산의 10%를 차지 한다고 하고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마을 곳곳에 3000여 그루가
있다고 해서 가기 싫어하는 옆지기,먼저 대천항 약속이 있어서 이곳의 반응은 별로였는데 그래도 가
고 싶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이런 기회에 가야지 언제 또 오겠는가.마침 이곳을 가고 있는데 옆지기
회사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오서산 산행을 마쳤는지 물으며 자신들은 오서산 산행을 하고 휴양림
쪽으로 하산해서 [청라은행축제]를 다녀왔었다는 이야기를 한다.지난해인가보다. 그러니 옆지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우리 지금 그곳에 가는 길이다.' 내가 가자고 하면 긴가민가하는데 남이 이야기
하면 귀가 솔깃하다. 그렇게 하여 기분 좋게 가는 길.청라마을로 들어서며 [신경섭가옥] 표지판을
지나치면 안되고 바로 그곳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바로 앞에 보인다. 200m 거리에 있다.
거위가 시끄럽게 낯선이를 경계한다..
떨어진 은행알이 그대로...
두엄냄새.. 은행냄새..가옥 앞에 축사가 있어 또 그 냄새...시골냄새가 강하다
이 문에는 빗장이 걸려 있어 비석이 있던 곳으로 들어가 사랑채와 정원 구경..안채는 다른 문으로.
조선후기 가옥이라는데 인물에 대한 자세한 것도 모르겠고 가옥은 안채가 一자형에 사랑채가 'ㄴ'
형이라 합해서 'ㄷ'자형의 구조인데 무척이나 대지가 넓다. 사랑채 앞에 뜰은 그야말로 운동장처럼
넓은데 가옥이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니고 안사는 것도 아닌 상태로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길고양이들에게 자리를 내 주었는지 고양이들의 흔적이 있고 오래전 살림을 살았던
흔적을 치우면 좀더 보기에 편안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세월을 이기는 장사없다. 그만큼 사람의 손
때가 얼마나 중요한지. 좀더 세세한 관리가 필요한 가옥이다.
청라은행마을에 처음 심어진 은행나무로 바로 가옥 대문 옆에 있다.. 수령이 500년이 되었다고.
은행나무는 '공손수'라고 했다. 현대에 심으면 손자대에 열매를 거두는 나무다. 백여년된 나무들이
대부분이니 지금은 그야말로 결실을 거두는,은행으로 마을을 알리는 결과를 얻고 있는데 은행이
너무 흔해서일까 밟히는것이 모두 은행알이다. 그동안 떨어져 켜켜이 쌓인 은행알이 그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그리고 또 현재의 은행알이 노랗게 떨어져 내려 세월의 그 깊이를 말해준다.
은행잎은 아직 물들지 않아 아쉽다. 좀더 노랗게 물들으면 가옥과 함께 멋진 풍경을 자아낼 듯
하다. 축제가 바로 임박했는데 마을에도 사람이 없고 관광객도 없이 옆지기와 둘이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둘러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가을이면
생각이 나고 앞으로 한두번은 더 와봐야할 듯 하다.
바로 앞에 개울이 흐르고 있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더욱 운치가 있을 듯.
나무들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듯 모두가 대단하다
중앙 대문이 잠겨 있어 이곳으로 들어가 사랑채와 뜰을 구경..
사랑채 벽..누마루 밑에 벽이 이쁘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지키는 길냥이들..
사랑채 앞?.. 앞인듯 뒤인 듯...
사랑채는 누마루를 높이 올려 놓기도 했지만 뒷마루가 해가 잘 들어 여름에는 정원을 바라보면
정말 시원할 듯.큰 뜰이 앞에 있어 무엇보다 사랑채가 더 없이 멋진 곳이 아니었을까.
사랑채는 사방으로 툇마루가 있고 안해에서 이곳으로 연결되는 곳에 '모정문'이라는 문이 있다.
이 문은 최근에 해달은 듯 한데 그래도 한옥에서는 어느 한 공간 버리지 않고 요긴하게 그 쓰임에
맞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옆지기가 앞쪽에 차를 주차하며 둘러 보았는데 안채에 들어가는 대문이 열려 있다며 안채를
보려면 그곳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사랑채와 정원을 구경하고 안채를 보기 위하여 다시
정원에서 나와 담장을 끼고 돌아 가보니 안채의 대문이 있고 그 옆 쪽에 행랑채로 통하는 문인지
쪽문이 또 하나 있다.
이곳은 은행나무둘레길..이라 하여 길을 따라 한바퀴 돌 수 있는 마을길이 있나보다.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
일자형 안채
일자형 안채 앞으로 우물과 'ㄴ'자형 사랑채가 있다.
대문 옆으로 행랑채와 곳간...
사랑채와 안채는 한 공간에 있는 듯 하면서도 독립된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사랑채
관리가 잘 되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가옥이다. 조선시대에는 분명 대단한 집이었을
텐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여기저기 부족한 점이 많다. 물을 쓰는 시설도 그렇고 난방도 그렇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누군가 살아준다면 집이 더 빛날 곳인데 21세기에 조선시대의 가옥에서 사는 일이란
힘들다. 그것을 알면서도 왠지 더 역사를 지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 것은 무얼까?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으니 누군가는 지켜 주었으면 하면서도 그것이 '나'는 제외하게 되는 것이 현실인 듯
하다. 과거와 현재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이곳에서 축제가 있다니 좀더 정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물론 축제 장소는 이곳이 아니어도 점점 입소문에 의해 [청라은행마을]을 찾는 일들이 많은 듯
한데 누군가는 나서서 관리가 되어야 앞으로 더 오래도록 미래의 누군가의 발길이 머물 듯 하다.
여기저기 길고양이들..가옥 앞..
고택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숙제다.어떻게 관리를 해서 후대에 역사를 물려 주느냐는 우리손에
달려 있는데 무관심 속에 방치되듯 하는 곳들이 많다. 물론 유지 보수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일듯
한데 지켜야 할 것은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 본다.신경섭 가옥만 그냥 잠깐 둘러보듯 보았는데
얼마전에 다녀온 예산 대술의 [수당 이남규고택]과 비교가 된다. 그곳은 비교적 관리가 깨끗하게 되고
후손이 머무르고 있어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듯 보여 괜히 뿌듯하고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 신경섭 가옥은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움이 남는다. 축제로 인해 앞으로는 더 관리가 잘 되길 바래본다.
*제2회 청라은행축제: 2013년 10월26일~10월 27일
*소재지: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688
*특징: 조선 후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집이다.
사랑채 중간에 마루를 두어서 대청으로 사용하였고, 나무의 결과 단청의 색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대문채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며, 신석붕의 효자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