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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이야기】초롱꽃 | ||||||||||||
글·이효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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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더워진다. 우리 집 뜰도 초록빛으로 가득해졌다. 여름 꽃이 서로 다투어 피기 시작한다. 노랑, 주황 각색의 나리와 달맞이꽃, 두메양귀비, 초롱꽃. 설란…. 그중에 담 밑에 다소곳이 핀 초롱꽃 한 포기가 눈 안에 들어온다. 흰 꽃에 연한 연둣빛이 서린 초롱의 모습이 고결해 보인다. 여름 하늬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이 나를 부르고 있다.
어떤 마을에 성을 지키며 시간 맞춰 종을 치는 종지기가 살고 있었다. 이 종지기는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싸움터에 나갔다가 부상을 당해 돌아와서 종지기를 하는 착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은 물론, 성문 닫는 시간도 알려주어 시계보다 더 정확한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성주가 죽고 다른 성주가 오게 됐다. 그 성주는 사람들이 자기 말보다 종지기가 치는 종소리에 신뢰를 갖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매우 싫었기 때문에 종지기를 그만두라고 명령했다. 마지막 종을 치던 날 종지기는 종각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종처럼 생긴 꽃이 피어났다. 이를 본 사람들은 종지기가 꽃으로 태어났다고 해 종처럼 생긴 이 꽃을 초롱꽃이라 불렀다 한다. 초롱꽃은 꽃이 핀 후 원줄기는 다 삭아 없어지지만 땅속줄기로 많은 싹들을 번식한다. 그 것은 겨울을 보내고 새봄이 되면 1년 동안 개화주로 자란다. 겨울에도 속잎은 조금남아서 땅에 달라붙어 눈보라의 시련을 이겨낸다. 그 다음해 초롱은 아주 예쁜 꽃을 피워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밝은 웃음을 나눠준다. 흰 초롱을 보면 우리민족의 숨결이 가득 담긴 것 같다. 한편으론 은은한 초롱꽃의 모습엔 외로운 여인의 애절한 기다림이 배어나는 것 같다. 마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는 옥희 어머니처럼…. 한편으로는 하얀 세모시를 입은 여염집 아낙과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남편은, 근무하던 야영장에서 초롱꽃을 산채해 두포기를 가져왔다. 몇 년 동안 집에서 가꾸다 보니 긴 담 밑을 가득 채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분양을 할 계획을 세웠다. 청에 근무하며 유치원 방문 때 무엇인가 선생님께 나눠 드리고 싶었다. 관내 유치원을 방문할 때마다 교사들에게 초롱꽃 묘를 나누어 주었다. 꽃봉오리가 있는 꽃을 선물로 가지고 갔다. 선생님들의 입가엔 가득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듬해 초여름, 어느 유치원을 방문할 때 현관입구에 내가 기르던 초롱꽃의 모습과 같은 초롱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연둣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흰빛에 가까운 초롱꽃이었다. 그곳에 계시던 분이 전근을 가셨는데 그 것을 잘 관리하라고 하시며 떠나셨다 하신다. 내가 초롱꽃을 좋아하는 것은 꽃이 진 자리에도 새순이 돋아나 꽃이 피고 진 꽃을 잘라주면 가을까지 쉼 없이 피고 진다. 우리민족의 얼이 숨쉬는듯 해 은근한 멋이 서린 그 꽃을 좋아한다. 지금은 분주한 세월 속에 변해버린 우리들의 모습이 아쉬울 뿐이다. 청초롱, 자주초롱, 섬초롱, 금강초롱, 초롱꽃. | ||||||||||||
첫댓글 이효순선생님. 조용한 미소를 생각하면서 좋은글 읽었습니다. 초롱꽃의 전설도 참 재미있어요. 감사합니다
밋밋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롱꽃의 예쁜 모습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