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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바위에서 능선에 오르기 전에 만나는 너럭바위 전망대. 이곳에 서면 달음산을 비롯한 부산·양산 지역 산들과 동해 바다가 보인다. |
- 제2 공영주차장~1봉~2봉~주봉
- 총길이 15㎞ 6시간 산행 코
- 집채만한 바위에 두 개의 굴 운치
- 너럭바위에선 동해바다도 보여
- 전망대 서면 천성산·문수산 등
- 양산·울산의 명산이 파노라마로
- 장안사길로 하산 출발지서 마감
'나뭇잎들에도 저세상이 있는 걸까'. 최근 울주군과 양산시에 걸쳐 있는 대운산(大雲山)을 오르내리며 했던 상상이다. 골짜기, 능선, 비탈을 가릴 것 없이 산 전체에 온통 낙엽이 사태를 이루고 있었다. 많이 쌓인 곳은 무릎까지 푹푹 빠질 정도였다. 그냥 낙엽 옷을 입었다거나 낙엽 이불을 덮었다는 정도의 표현으로는 성에 차지 않고 낙엽 바다, 그것도 망망대해에 풍덩 빠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사정이 이러니 '나뭇잎 저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많은 낙엽이 모여 있을 리가 없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도 이해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낙엽 밟는 소리를 형용하려 해도 딱 떨어지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다. 슥, 삭, 스윽, 사악, 스슥, 스즈즉, 바사삭, 바지직, 부스슥, 부지직…. 온갖 의성어를 동원해 봤지만 "이거다" 하고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물론 밟는 강도와 걷는 속도에 따라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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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굴 두 개가 뚫려 있는 굴바위. |
눈 밟는 소리와 한 번 비교해 보자. '뽀드득'. 어감이 지닌 생기 때문일까. 이 의성어에는 별 이의가 제기될 것 같지 않다. 반면 낙엽 밟는 소리에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느껴진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 옷자락 소리를 낸다'.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1858~1915)이 자신의 시 '낙엽'에서 의성어를 쓰지 않고 상징적 수사를 동원한 것은 그래서일까.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아니면 인생의 가을을 떠올릴 때 드는 처연함 때문일까. 구르몽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고도 했다. 어쨌든 낙엽은 몇 음절의 의성어로는 그 존재감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낙엽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낙엽 사태'를 만난 대운산을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쯤 가 볼 만하다고 여겨서다. 대운산은 '동국여지승람'에 '부처님 진리의 빛처럼 밝다'는 뜻이 담긴 '불광산(佛光山)'으로 기록돼 있다. 이름이 대운산으로 바뀐 시기와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운산에는 100㏊에 달하는 광대한 굴참나무 숲도 있다. 나무 둘레가 20㎝ 넘고, 키도 평균 15m에 달하는 명품 숲이다. 굴참나무는 가구와 참숯 등의 재료로 쓰이며 열매는 도토리묵, 껍질은 벽지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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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빠질 정도로 쌓인 낙엽. |
산행은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의 대운산 제2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해 1봉(585m)과 2봉(668m), 주봉(742m)을 차례로 오른 뒤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15㎞, 소요시간은 6시간가량이다. 1봉에 오를 때까지 갈림길이 많은 데다 길이 낙엽에 덮여 식별하기 힘든 곳이 적지 않으니 반드시 국제신문 리본을 확인해야 한다.
제2공영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5분쯤 가다 오른쪽 운화리 성지 진입로로 접어들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20분가량의 거리에서 만나는 갈림길 4곳에서 모두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이어 10분가량 구간의 갈림길 2곳에서는 죄다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여기서 5분쯤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뒤 10분가량 후 다시 왼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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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정상의 야생 고양이들. |
10분쯤 후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른 자드락길을 오르기 시작한 뒤 20분가량 거리에서 만나는 갈림길 2곳에서 연달아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굴바위에 이른다. 집채만한 바위에 크고 작은 두 개의 굴이 자연적으로 형성돼 있다. 누군가 수도처로 사용했을 법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타다 남은 양초 토막, 향로, 돗자리 따위의 무속 도구들이 지저분하게 늘려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굴바위에서 오른쪽으로 가다 5분쯤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5분쯤 걸으면 너럭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달음산과 그 너머 동해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20분가량 더 가면 봉우리에 올라선다. 10분쯤 후 대운산 1봉에 닿는다. 20분가량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5분쯤 후 2봉에 이른다. 2봉 전망대에 서면 왼쪽부터 천성산 정족산 남암산 문수산 꼬장산 등 양산·울산 지역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2봉과 정상 사이에는 내원암, 대운산자연농원, 상대봉(철쭉군락지), 대운산3주차장, 용당·휴양림, 서창(헬기장) 등 6개의 갈림길이 있다. 이들 갈림길에서 모두 능선길을 따라 곧장 가면 1시간가량 후 정상에 도달한다.
하산길에는 장안사 쪽으로 길을 잡는다. 30분가량 후 나오는 사거리에서 7시 방향의 박치골 쪽으로 간다. 50분쯤 후 만보농장 입구에 이르고, 큰길을 따라 1시간가량 걸으면 출발지로 돌아온다.
# 떠나기 전에
◇ 척판암, 중국 운제사 승려 구한데서 유래
- 승려 1000명 원효 가르침 받아
- 성인된 후 바위로 변해 천성산 대운산 등산 후 시간이 나면 가까운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장안사(長安寺)와 부속 암자인 척판암(擲板庵)을 한 번 둘러볼 만하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해 쌍계사라 부르다가 809년 장안사로 개명했다. 경내에는 대웅전(부산기념물 제37호),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과 부처님의 진신사리 7과를 모신 3층 석탑이 있다.
장안사 입구에는 5기의 부도가 있고 법당 앞에는 가지들이 엉켜 올라가는 모습을 한 높이 2.5m의 단풍나무가 서 있다.
척판암은 관련 전설이 흥미롭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따르면 원효(元曉)대사가 대운산 자락에 암자를 짓고 수도했는데, 어느 날 중국 장안성을 투시했더니 1000여 명의 승려가 예불을 드리고 있던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 대웅전이 대들보가 썩어 무너지고 있었다. 즉시 대사는 옆에 있던 소반에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救衆)'이라는 여덟 자를 적어 하늘 높이 던졌다. 그 소반은 운제사 대웅전 앞뜰 위에서 윙윙거리며 공중에 맴돌았다.
예불을 마친 승려들은 이 신기한 광경을 구경하려고 모두가 대웅전 앞뜰로 나왔다. 이때 굉음과 함께 대웅전이 폭삭 무너지고 공중을 맴돌던 소반도 땅에 떨어졌다. 놀란 승려들이 땅에 떨어진 소반에 적힌 글자를 보고는 자기들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원효대사임을 알게 되었다. '척판'이란 암자 이름은 이 전설에서 나왔다.
운제사 승려 1000여 명은 곧바로 길을 떠나 양산 천성산(千聖山) 석굴에서 수도하던 원효 대사를 만났다. 이들은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모두 성인이 되었는데, 이들이 열반한 뒤 육신은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천성'이란 지명은 여기서 유래했다.
# 교통편
- 무궁화호 열차 남창역서 하차
- 상대마을 시내버스 갈아타야
부산 부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남창역에 내린 뒤 상대행 시내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부전역에서 남창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6시 56분, 8시 13분, 10시 4분, 10시 21분, 10시 42분에 있다. 남창역에서 이번 산행의 출발지인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상대마을로 가는 버스는 오전 7시 35분, 9시 10분, 10시 30분, 11시 30분에 있으며, 오후에 남창역으로 나가는 버스는 7시까지 매 시간마다 다닌다.
문의=스포츠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