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국립극장 내 이탤리언 레스토랑. 팝핀현준·박애리 부부 인터뷰는 평일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이루어졌다. 국립극장 창극단 소속인 박애리의 스케줄에 맞춰서다. 다소 여유 있게 등장한 팝핀현준, 그리고 일터에서 잠깐 나와 손님을 맞는 박애리 부부는 익히 알려진 대로 극과 극의 비주얼이다. 노란 머리, 빨간 뿔테 선글라스, 튀는 컬러로 스타일링한 남자와 블랙 의상을 입고 정갈한 헤어스타일로 앉아 있는 여자. 음식이 나왔고,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 있는 발사믹 식초와 오일, 우리 둘의 관계 같아요. 두 개를 따로 먹으면 각각의 맛이 있는데, 섞이면 최고의 궁합이 나오잖아요. 색도 정반대인데, 희한하게 맛있어요.”(웃음)
식전 빵을 소스에 찍어먹던 팝핀현준이 술술 이야기를 시작한다. 박애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국악과 힙합의 만남으로 화제를 뿌린 부부는 이렇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또 어우러지면서 그들만의 개성을 그려가고 있다.
둘이라서 보여줄 수 있는 무대
결혼부터 화제가 되었던 부부. 이들이 최근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프로그램으로 또다시 화제를 낳고 있다. 문주란, 현철 등 트로트 가수들 편에 출연해서 부부의 무대를 만들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명창 박애리의 소리와 춤꾼 팝핀현준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한마디로 ‘판타스틱’이었다.
“많은 무대가 있었지만, <불후의 명곡>은 둘이라서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서 좋아요. 매주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이 재미있어요.”
팝핀현준이 유쾌하고 통통 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찬가지로 유쾌하고 통통 튀는, 하지만 남편과 함께 있으면 상대적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밖에 없는 박애리가 덧붙인다.
“저는 긴장이죠. 보통 다운로드로 다시보기를 하는데, 그 다운로드하는 시간 동안 성적표를 기다리는 심정이에요. 이미 끝낸 무대지만 방송 카메라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퍼포먼스 느낌이 굉장히 달라지거든요. 손발이 오그라들어요!”(웃음)
이번 주 부부는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이라는 곡으로 무대를 만들고, 우승을 했다. 우승을 하고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유가 있다. 소리만 하던 박애리가 남편의 영역인 춤을 함께해서다. 여태 클럽 한 번 가보지 못한 조신한 그녀에게 춤은 굉장한 무리였다.
“만나는 분들마다 ‘애리야, 춤 잘 봤다’ 하고 인사를 하시는데.(웃음) 제가 한국무용은 좀 해요. 그런데 현준 씨가 가르쳐준 춤은….”
아내의 말을 듣던 팝핀현준이 잽싸게 덧붙인다. “누나 클럽 안 가길 잘했어요. 클럽 가면, 클럽이 개그콘서트가 됩니다!”
첫눈에 반했다. 저 여자가 진짜야!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첫눈에 반했다. 3년 전 국립극장에서 기획한 <뛰다 튀다 타다>라는 퍼포먼스 공연에 함께 출연한 것이 이들의 첫 인연.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팝핀현준의 눈에 제대로 불꽃이 튀었다. 이상형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더란다.
“매니저에게 저도 모르게 ‘저 여자가 진짜야’ 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진짜 제가 바라던 이상형이었어요 누나는.”(웃음)
영문을 모르던 여자는 당황했다. ‘춤을 추는 청년’ 정도로만 생각하던 동생이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오자 어리둥절했다.
“굉장히 앳돼 보이는 친구가 다가오니까.(웃음) 워낙에 선생님들이랑만 살아서, 이렇게 어린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그땐 호칭도 ‘현준동생’이었어요. 그리고 현준 씨 주변에는 워낙 예쁜 여자들이 많으니까 절 특별하게 생각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하지만 진심은 통하고 운명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 둘은 이내 서로를 알아봤고, 3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결혼식을 올렸다.
“현준 씨는 살아온 과정이 저와 많이 달랐어요. 그런데 그게 싫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봇물 터지듯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이 사람이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나보다, 싶더라고요. 재미있었던 건 친정에 처음 인사를 시킬 때였어요. 아버지 생신 때 처음 현준 씨를 데리고 가는데, 저와 너무 다르니까 긴장이 되는 거예요. 현준 씨도 마찬가지고요. 다행히 아버지가 정말 착한 청년이라며 시원하게 오케이해주셨어요.”
개성 강한 부부답게 결혼식은 국립극장에서 공연과 함께했다. 자신들의 러브스토리를 기획해서 노래와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하객과 공연 관람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룬 이들의 결혼식은 과연 개성 있는 두 사람과 꼭 어울리는 이벤트였다.
살아 있는 예술가 남편
알려진 대로 박애리는 국악계의 이효리로 불리던 존재다. ‘오나라 송’ 으로 유명한 대장금 ost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대통령 훈장도 받은, 국악계에서는 알아주는 실력파. 그런 그녀가 남편과 결혼한 이후 입장이 제대로 달라졌다. ‘팝핀현준의 아내’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내심 서운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가진 예술적인 잠재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또 인정한다.
“저도 나름대로 예술을 하는데,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죠. 그런데 남편의 예술가적 성향을 인정해요. 오히려 제가 잘 지켜주고 싶고요. 국악계에 계시는 선생님들도 현준 씨를 제대로 지켜본 후에는 천재다, 애리야 니가 잘 챙겨야 한다, 하시며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알려진 대로 팝핀현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춤꾼이다. 본디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인지 팝핀현준은 춤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림, 악기 등 혼자서 척척 해내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너는 피카소보다 천재야!” 하면서 추켜세워준다.
“레슨을 받은 적은 없어요.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다가 매직으로 그리기도 하고, 화선지에 먹으로 그려볼까? 해서 그리기도 하고요. 어느 날은 잠이 안 온다고, ‘심야불몽’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명랑수렵도를 그린 거예요. 보고 그린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상상한 걸 그리는 거예요. 그럴 때 이 사람의 눈매가 그렇게 날카로울 수 없어요.”
어느 날은 갑자기 우쿠렐레를 쳐보고 싶다고 집으로 사들고 오더란다. 코드를 몇 개 공부하고선 낯선 노래가 나오면 그 음에 맞춰서 이내 연주를 한다. 스스로도 “우와 신기하다!”라는 말의 연발. 옆에 있는 박애리는 언제나 열띤 호응을 해준다.
“신기한 게, 현준 씨는 무언가를 배우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우쿠렐레도 몇 번 뚝딱거리더니 자기 공연에 그걸 접목하고서야 끝을 내요. 현준 씨의 일상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어요. 소리 하나만 평생 해도 힘든데, 대단해요.”
“우리는 진짜 서로 잘 만난 것 같아.”
부부가 평소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우리처럼 잘 지내는 부부도 드문 것 같아. 우린 참 잘 만난 것 같아.” 등의 이야기다. 이런 멘트는 으레 주변 사람들이 먼저 해주기 마련인데, 이들은 스스로 말하고 둘이서 좋아죽는다. 진짜 닭살이다.
“어제 현준 씨에게 문자가 왔어요. 연습하고 있을 시간이거든요. ‘누나는 정말 착한 사람이야,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그럼 제가 답장을 보내죠. ‘맞아, 난 착한 사람이야. 우리 현준이도 참 착한 사람이야. 우린 참 잘 만났어.’ 이렇게요.”
상처를 많이 받으면서 성장한 팝핀현준은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박애리는 가끔 ‘도대체 날 뭘 믿고 이렇게까지 사랑해주나’ 하는 고마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
“현준 씨는 돈에 대한 욕심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수입은 저에게 줘요. 통장에 잔고가 많으면 불안하다면서요. 집, 차 등 모든 명의도 제 이름으로 되어 있어요. 가끔 농담 삼아 ‘내가 악덕 사장 같아’ 라고 하는데, 절 믿어준다는 것이 고맙죠. 전 무조건 저축만 해요.”
어느 날 휴대전화에 팝핀현준의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통장잔고가 2천원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서 입금해준 적도 있을 정도로 돈에는 무신경한 남편이다.
“통장에 돈이 많이 있으면 불안해요. 그래서 어느 정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누나한테 보내요. 여자는 밖에 나가서 돈이 없어도 안 되고 옷이 초라해도 안 되지만, 남자는 괜찮은 것 같아요. 안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괜찮아요. 전 괜찮은데 누나는 좋은 차를 탔으면 좋겠고, 돈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돈에는 관심 없는 남편이지만 아내를 위한 이벤트는 그 누구 못지않게 잘 챙겨준다.
“첫 결혼기념일에 깜짝 놀랐어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잘 안 보니까 ‘그러마’ 하고 나갔죠. 극장에 가면서 ‘누나, 극장 내가 빌렸다?’ 이러기에 “그래 사람 없으면 우리가 빌린 거지~” 하고 별 생각 없이 갔어요. 그런데 진짜 빌린 거예요! 영화가 나오는데, 현준 씨가 직접 만든 영화였어요. 축하멘트 나오고, 우리 스토리 나오고,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이러니 팝핀현준의 머릿속이 항상 바쁠 수밖에 없다. 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자는 날이 부지기수란다.
예술로 잘 자라고 있는 딸 예술이
이 부부가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이 있으니, 방송 <불후의 명곡>도 아니고 공연 <그와 그녀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둘의 외모를 꼭 빼닮은 딸, 예술이다. 예술이 이야기가 나오니 부부의 눈에서 하트가 쏟아진다.
“세 살이에요. 아직 24개월은 안 됐는데. 너~무 귀여워요.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부모의 끼를 제대로 물려받은 예술이는 엄마, 아빠를 친구처럼 친근하게 잘 대하는 예쁜 딸이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래요. 진짜 예뻐요. 아빠라서 아빠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이름이 아빠인가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완전 친구 같은 아빠예요. 좋아하는 순위가 할머니가 1순위, 2순위가 엄마, 3순위가 아줌마, 4순위가 아빠랑 삼촌.(웃음) 그런데 삼촌이 좋은 게 있으면 거기로 가요. 제가 ‘아빤데’ 그러면 ‘오오?’ 이러면서 막 귀여운 표정 짓고요.”
소리하는 엄마의 끼를 물려받았는지, 감탄사도 좋다.
“우와~를 얼마나 잘하는지, 집 밖에 나가면 ‘나무야 안뇽~ 구름아 안뇽~ 파도야 안뇽~’ 막 이래요. 정말 귀여워요. 제가 이야기를 길게 만들어서 해주는 편이거든요. 같이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요.”
이 부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또 서로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을 즐기면서. 춤이라는 분야는 나이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팝핀현준은 그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 이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후배들을 위해 제대로 된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한다. 실용무용학과 교수로 활동하는 것도, 팝핀현준컴퍼니를 통해 후배 양성에 힘쓰는 것도 좀 더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고 싶은 꿈이 있어서다.
“현준 씨는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더 많은 세상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현준 씨를 보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시간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요. 존경할 수 있는 모습과 한없이 안아주고 싶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현준 씨는.”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영혼이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아내. 예술가들은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팝핀현준·박애리 부부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보니 그 말은 정답이 아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