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번호 33번 원소인 비소는 비상(砒霜)을 구성하는 원소이다.
비상은 삼산화 비소로, 예로부터 동서양 모두에서 사람을 독살하는 데 자주 사용된 독성이 아주 큰 물질이다.
임금이 죄인에게 내린 사약(賜藥)에도 비상이 들어간 것으로 여겨진다.
가끔은 왕을 비롯한 지배층을 독살하는 데 사용되었으므로,
비소는 ‘독약의 왕’ 또는 ‘왕의 독약’ 이라고도 불렸다.
비소는 원소 자체로보다는 황화물 상태로 여러 광물에 포함되어 있으며,
생물 생활권에도 비교적 높은 농도로 들어있어 세계적으로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소이다.
중세 독일 광부들은 코발트와 니켈 광석을 은 광석과 구리 광석으로 잘못 알고
이들을 제련하던 과정에서 광석에 함께 들어있었던 비소에 노출되어 중독되고 죽기까지 하였다.
코발트의 어원이 도깨비 또는 악귀, 그리고 니켈의 어원이 악마 또는 귀신인 것은 이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처럼 비소와 비소 화합물이 독성이 매우 강하기는 하나 낮은 용량의 비상은
오래 전부터 암 등의 질병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되었다.
또한 최초의 화학요법제인 살바르산(salvarsan)은 유기 비소화합물로,
사회적으로 아주 심각했던 성병인 매독 치료 특효약으로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비소 화합물들이 목재 방부제, 제초제, 살충제, 사료 첨가제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자동차용 납 축전지의 납 전극에도 약간의 비소가 첨가되었다.
최근에는 비소가 n-형 반도체의 도판트(dopant)로, 그리고 비소화 갈륨(GaAs) 화합물 반도체에 중요하게 사용된다.
이처럼 독성이 크면서 다양한 용도를 가진 비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원자번호 33번, 비소
비소(砒素, Arsenic)는 원자번호 33번의 원소로, 원소기호는 As이다.
주기율표에서 질소(N), 인(P), 안티모니(Sb), 비스무트(Bi)와 함께
15족(5A족)에 속하는 질소 족 원소로, 금속과 비금속의 중간 성질을 띠는 준금속이다.
회색, 노란색, 검정색의 3가지 비소 동소체가 있는데, 회색 비소(α-비소)가 가장 흔하고 주로 사용된다.
비소는 고대부터 동서양 모두에 알려져 있었으며, 강한 독성 때문에 사람들을 독살하는데 사용되기도 한 반면,
암 등을 치료하는 의약품이나 안료로도 사용되었다.
이때 사용된 비소의 형태는 원소 자체가 아니라,
주로 황화물 상태의 천연 광물과 이를 가공하여 얻은 삼산화 비소(비상, As2O3 또는 As4O6)였다.
원소 상태의 비소는 1250년에 마그누스에 의해 처음 분리된 것으로 여겨진다. | |
원자 번호 33번, 비소. <출처: gettyimages> |
비소의 원소 정보. |
비소는 천연에서 원소 상태로 발견되기도 하나,
보통은 황, 철, 은, 코발트, 니켈 등 다른 원소와의 화합물로 존재한다.
지각에서의 존재 비는 약 1.8 ppm (0.00018%)로, 대략 51번째로 풍부한 원소로 여겨지며,
생명체가 살고 있는 생물 생활권에서는 12번째로 풍부한 원소로 추정된다.
주요 비소 광물은 계관석(鷄冠石, realgar: As4S4), 웅황(雄黃. orpiment: As2S3: 석웅황이라고도 함),
황비철광(黃砒鐵鑛, arsenopyrite 또는 mispickel: FeSAs) 등이다.
비소는 주로 구리를 제련할 때 부산물로 얻으나, 황비철광에서 직접 얻기도 한다.
원소 상태로 생산되는 양은 많지 않고, 주로 As2O3 형태로 생산되어 사용된다.
비소 동소체 중 안정한 상태인 회색 비소(α-As)는 잘 부서지며, 쉽게 승화되어 As4 형태의 비소 기체가 된다.
1기압에서 승화온도는 615oC이고, 녹는점은 38.6기압에서 816oC이다.
열 및 전기 전도도가 비교적 크고, 화학적으로는 양쪽성을 보인다.
습기가 없는 공기에서는 안정하나, 습기가 있으면 표면이 산화되어 황동색을 띠고 오래 두면 검게 된다.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승화되고, 산소와 반응하여 마늘 냄새가 나고 독성이 큰 As2O3를 생성한다.
물, 비산화성 산, 알칼리와는 잘 반응하지 않으나, 질산이나 진한 황산과는 반응하고, 용융 NaOH와도 반응한다.
금속 비소는 주로 납과의 합금을 만들어 자동차용 납축전지, 땜납, 베어링 합금 등에 사용된다.
비소는 또한 반도체 산업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n-형 반도체의 도판트로, 그리고 GaAs 화합물 반도체 제조에 사용된다.
여러 비소 화합물들이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 살서제, 목재 방부제 등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미국 등에서는 양계 농장에서 성장 촉진과 기생충을 죽이는 목적으로 비소 화합물이 사료에 첨가되기도 하였다.
삼산화 비소는 독살 이외에도, 수백 년간 암 치료와 마른버짐(건선, 乾癬) 치료에 사용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하였다.
매독과 아프리카 수면 병 치료제로 사용된 살바르산은 최초의 화학요법제로 의약품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비소 화합물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비소와 대부분의 비소 화합물들은 체내에서 여러 효소들의 작용을 저해하고 대사 과정을 교란시키는 물질로,
독성이 크고 심각한 환경 오염의 요인이 되므로, 점차 다른 화학 물질들로 대체되었다.
천연으로 존재하거나 사람이 사용하는 비소 화합물들은 식품, 토양, 지하수의 비소 오염 원인이 되고,
때로는 비소 중독을 유발해 사람이 죽기도 한다.
반면에, 일부 박테리아는 비소 화합물을 대사 물질로 사용할 수 있음이 발견되었고,
어떤 미생물에서는 DNA와 ATP를 구성하는 인(P)의 일부가 비소로 대체될 수 있음도 발견되었다. | |
비소의 역사
여러 고전 한의학서들에 웅황(황화 비소, As2S3)의 약리적
효능이 언급되어 있고, 웅황을 상약(上藥, 좋은 약)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오래 전부터 비소가 들어있는 광물로부터
비상이라 불린 삼산화 비소를 얻고, 이를 질병 치료와
독극물로 사용하는 방법이 알려져 있었다.
서양에서도 비소 황화물과 산화물에 대한 기록이 고대때부터 전해진다. 기원전 4세기경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계관석(As4S4)으로 여겨지는 비소 광물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1세기경에 로마의 대 폴로니우스(Pliny the Great)와 고대 그리스 의사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는 웅황으로 여겨지는 노란색 안료인 황석(auripigmentum)에 대해
기술하였다.
3세기경에 활동한 연금술사 조시모스(Zosimos)는 계관석을 구워 ‘비소의 구름’(As2O3)을 얻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란색 안료 분말로 사용된 웅황을 ‘arsenikon’이라 불렀는데, 이 말이 라틴어에서는 아르세니큠(arsenicum), 고대 불어에서는 ‘arsenic’이 되었고,
이것에서 비소의 영어 원소명 ‘arsenic’이 유래되었다.
11세기에는 비소 화합물들을 이들의 색에 ‘비소(arsenic)’를 붙여, 흰색 비소(white arsenic: As2O3), 노란색 비소(yellow arsenic: As2S3), 붉은색 비소(red arsenic: As4S4)로
구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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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년에 원소 상태 비소를 처음 분리한 것으로 알려진
마그누스. 교황청은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고,
‘과학의 박사’로 호칭되었다. | |
원소 상태의 비소는 1250년에 독일의 연금술사이자 주교였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193-1280)가
As2S3을 비누와 함께 가열하여 처음 분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뒤에 성인으로 시성되어 성 대 알베르투스(St. Albert the Great)라고 불렸으며, ‘과학의 박사’로 호칭되기도 하였다.
비소를 얻는 방법을 보다 분명하게 처음 보고한 사람은 독일 약학자 쉬뢰더(Johann Schroeder, 1600~1664)로,
그는 1649년에 비소 산화물을 숯과 함께 가열하여 비소를 얻는 방법을 발표하였다.
1760년에는 카데 드 가시쿠르(Louis Claude Cadet de Gassicourt, 1731~1799)가
As2O3를 아세트산 포타슘(CH3COOK)과 반응시켜 최초의 유기-비소 화합물인
카코딜(carcodyl: (CH3)2As-As(CH3)2)을 얻었는데, 이를 카데의 발연액(Cadet’s fuming liquid)이라 불렀다.
As2O3는 약 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암 치료를 비롯한 여러 질병 치료에 사용되었으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여자들은 피부를 더 창백하게 만들어 밭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As2O3을 탄산칼슘, 식초와 섞어 먹기도 하고, 얼굴 피부가 좋게 보이도록 As2O3을 얼굴에 문지르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여러 비소 화합물들이 목재 방부제, 살충제, 살균제, 의약품 등으로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특히 1910년 즈음에는 살바르산과 이를 개량한 네오살바르산이 발견되어 매독의 특효약으로 쓰였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비소의 새로운 사용처가 발굴되었다.
즉, 비소는 n-형 반도체 제조를 위한 도판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 이후에는 GaAs 화합물 반도체가 개발되어 발광 다이오드(LED), 다이오드 레이저, 트랜지스터, 광전지 등에
사용되면서 이제는 첨단 전자산업에서 꼭 필요한 원소가 되었다. | |
물리적 성질: 동소체와 동위원소
비소 결정. <출처: (CC)Rob Lavinsky at Wikipedia.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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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는 금속과 비금속의 중간 성질을 가지는 준금속 원소로, 회색, 노란색, 검정색의 3가지 동소체가 있다. 회색 비소는 ‘금속’ 비소 또는 알파-비소(α-As)라고도 하는데, 약간의 금속 광택을 띠고 삼방정계(rhombohedral)로 층 구조를 가지며 실온에서 가장 안정한 동소체이다. 비소의 물리-화학적 성질은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회색의 α-As 동소체의 성질로 나타낸다. 노란색 비소는 왁스처럼 부드럽고, 흰색 인(P)처럼 정사면체 구조를 갖는 사합체 As4로 이루어져 있으며, 휘발성이 크고, 밀도(1.97g/cm3)가 낮으며, 아주 독성이 크다. 비소 증기(As4)를 급히 냉각시키면 얻어지는데, 불안정하여 빛에 의해 회색의 α-As로 전환된다. 검정색 비소는 붉은 인과 비슷하며, 수소화비소(AsH3)의 열분해로 얻을 수 있다.
비소(회색 비소, α-As)는 실온 부근에서의 밀도가 5.727g/cm3이고, 열을 잘 통하며(열 전도도: 50.2 W∙m-1∙K-1), 전기 전도도는 은(Ag)의 약 40%(전기 비저항 333 nΩ∙m)로 상당한 금속성을 보인다. 또한 쉽게 As4 증기로 승화되며, 승화온도는 615oC이다. 대기압에서 가열하면 녹지 않고 승화해서 바로 기체가 되나, 38.6기압에서는 816oC에서 녹으며 녹을 때 부피가 약 10% 증가한다. | |
동위원소
천연 상태에서는 안정한 동위원소인 75As(100%)로만 존재하는데,
질량수가 60~92인 여러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합성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안정한 것은 73As (반감기 80.3 일)이다.
질량수가 75보다 작은 동위원소들은 β+ 붕괴를 하고 저마늄(Ge) 동위원소가 되는 반면,
보다 무거운 것들은 주로 β- 붕괴를 하고 셀레늄(Se) 동위원소가 된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실제로 활용한 예는 별로 없으나,
최근에 74As(반감기 17.78일)를 사용하면 양전자 단층촬영(PET)에 의한 암 조직 검출에서
124I를 사용할 때에 비해 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 |
화학적 성질
비소는 33개의 전자를 갖고 있으며, 바닥 상태 전자배치는 1s22s22p63s23p63d104s24p3 ([Ar]3d104s24p3)이다.
화합물에서 As는 보통 +3과 -3의 산화수를 갖는다.
그러나 플루오린(F)과의 화합물(AsF5)이나 비산(H3AsO4)에서처럼 +5의 산화상태를 갖는 화합물들도 자주 관찰된다.
비소는 건조한 공기에서는 안정하나, 습기가 있으면 표면이
산화되어 처음에는 황동색을 띠고 오래 두면 검게 된다.
승화된 비소 증기는 공기 중에서 청백색 불꽃을 내며 쉽게
타서 As2O3가 되며 마늘과 같은 독특한 냄새를 낸다.
물, 비산화성 산, 알칼리와는 잘 반응하지 않으나, 뜨거운 진한 질산(HNO3)에서는 H3AsO4(As의 산화수 +5)가 되며
묽은 질산에서는 아비산(H3AsO3, As의 산화수 +3)이 된다.
진한 황산(H2SO4)에서는 As2O3를 생성하며, 용융 NaOH와 반응하면 수소 기체를 내면서 아비산 소듐(Na3AsO3)이 된다.
할로겐, 황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비금속 원소와 반응하여
산화수가 +3인 공유결합 화합물들을 만들며, 여러 금속과는
산화수가 -3인 비소화물(예로, 알칼리 금속의 경우 M3As)을 만든다.
2As + 6NaOH → 2Na3AsO3 + 3H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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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의 바닥 상태 전자 배치.
<출처: (CC)Pumbaa at Wikipedia.org> | |
비소의 생산
비소는 주로 구리 생산의 부산물로 얻어진다.
광석을 제련할 때, 함께 들어있던 비소 화합물은 삼산화 비소(As2O3: 녹는점 312.2oC, 끓는점 465oC)로 전환되어
연진(그을음)으로 회수된다.
회수된 As2O3는 정제 후 As2O3 상태로 그대로 사용하거나,
숯과 함께 가열하여 원소상태 As로 만들어 사용한다. As2S3로부터의 전환 과정의 화학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2As2S3 + 9O2 → 2As2O3 + 6SO2 2As2O3 + 3C → 4As + 3CO2
비소는 FeAs2나 FeSAs의 야금에서도 얻을 수 있는데, 공기를 차단하고 이들 광석을 650~700oC로 가열하면 비소는 증기로 나오고 이를 응축시키면 비소가 얻어진다. 이를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As2O3 증기가 얻어진다.
FeSAs → FeS + As
비소는 원소 상태로보다는 주로 As2O3 상태로 생산된다.
비소의 독성과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오염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소 광물의 채굴과 사용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As2O3로 환산한 전세계 연간 생산량은 54,400 톤(2009년 기준)인데,
중국(25,000톤), 칠레(11,000톤), 모로코(8,920톤), 페루(4,850톤)가 주요 생산국이다.
현재 비소는 가급적이면 다른 원소로 대체되므로, 수요가 정체되어 있거나 약간 감소하고 있다.
구리와 납 광석에서 확보할 수 있는 양이 약 1,100만 톤으로 추정되어 자원의 고갈 염려는 거의 없다. | |
비소와 비소화합물의 이용
비소는 거의 대부분 화합물로 사용되고, 원소 상태로 사용되는 양은 적다.
원소 상태의 비소는 주로 납과의 합금에 쓰이며, 구리 합금에도 약간 사용된다.
비소를 납/안티모니(Pb/Sb) 합금에 0.75%까지 가하면 강도와 주조성이 향상되는데,
이들은 자동차용 축전지, 베어링 합금 등으로 사용된다.
비소가 2%까지 들어간 납 합금은 산탄과 탄알로 사용되었으며,
자동차용 땜납(조성: 92% Pb, 5% Sb, 2.5% Sn, 0.5% As)에도 비소가 들어간다.
구리-아연 합금인 황동에서 아연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량의 비소를 첨가하기도 하는데,
이런 황동은 보통 물과 계속 접촉되는 부분에 사용한다.
원소 상태 비소의 또 다른 사용처는 전자산업이다.
13족 원소인 알루미늄(Al), 갈륨(Ga), 인듐(In)과 III-V족 화합물 반도체를 만드는데,
이들 반도체는 발광 다이오드(LED), 다이오드 레이저, 트랜지스터, 태양전지, 집적회로 등에 사용된다.
또 규소(Si)나 저마늄(Ge)에 첨가하여 n-형 반도체를 얻는 데도 사용한다.
비소 화합물들은 목재 방부제,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살서제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되고 있다.
예로, 크로뮴, 비소, 구리염을 섞어서 만든 CCA(chromated copper arsenate; Tanalith)는
1900년대 중반부터 목재를 방부 처리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으나,
유럽연합(EU)과 미국은 2004년부터 이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비산 수소납(PbHAsO4)은 20세기 초반부터 1960년 대 중반까지 농업용 살충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나,
미국은 1988년 8월에 공식적으로 이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근래에는 보다 독성이 덜한 유기-비소화물인 메틸 비산 소듐(CH3HAsO3Na 및 CH3AsO3Na2)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 화합물은 살균제와 제초제로 골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농약 중의 하나이다. | |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납 축전지에
납-안티모니-비소 합금이 사용되었다. |
비소화 갈륨(GaAs)은 반도체, 발광 다이오드(LED),
집적 회로 등에 요긴하게 사용된다. |
일부 비소 화합물은 최근까지도 특히 미국에서 질병 예방과 성장 촉진을 위해 동물 사료 첨가제로 사용되었다.
한 예가 록사손(Roxarsone)으로, 주로 양계장에서 기생충을 방제하고 체중 증가를 촉진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2011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약품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여러 비소 화합물들이 의약품으로도 사용되어 왔는데, 대표적 예가 삼산화 비소(비상, As2O3)이다.
As2O3는 동서양 모두에서 수백 년 동안 암 등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As2O3를 중탄산 포타슘(KHCO3) 수용액에 녹인 파울러 용액(Fowler’s solution)은
마른버짐, 말라리아, 무도증, 매독 등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0년에 As2O3를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하였다.
의약품으로 사용된 또 다른 유명한 비소 화합물은 살바르산 또는 606으로 불린 아르스페나민(Arsphenamine)이다.
살바르산은 ‘화학요법’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에를리히(Paul Ehrlish, 1854~1915)에 의해
1909년에 발견된 최초의 화학요법제로, 이듬해부터 매독 특효약으로 사용되었다.
1912년에는 보다 독성이 적고 물에 잘 녹는 네오살바르산(naosalvarsan)으로 대체되어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들 약품은 화합물을 체계적으로 유도체화시켜
특정 질병에 특효를 갖는 특정 화합물을 찾아낸 연구결과의 산물로, 근대 제약화학의 효시가 된다.
이 약품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처방된 약품이었으나,
후에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로 대체되었다. | |
삼산화 비소(왼쪽)와 삼산화 비소를 함유한 백혈병 치료제(오른쪽, 출처: Natco).
비상이라 불리는 삼산화 비소는 질병 치료에도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급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되었다.
여러 비소 화합물들이 화학무기로도 개발되었다.
이의 한 예가 피부에 물집과 염증을 일으키고 폐를 손상시키는 독가스인 루이사이트(lewisite: ClCH=CHAsCl2)인데,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독가스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개발되었으나 실제 사용된 적은 없고
미국에서 2만 톤을 비축하였으나 1950년대 전량 폐기되었다.
또 다른 예가 월남전에서 고엽제의 일종으로 사용된 카코딜산(cacodylic acid: (CH3)2AsO2H)과 이의 염이다. | |
네오살바르산 (매독 치료제). |
메틸 비산 소듐 (농약). |
록사손 (양계용 사료 첨가제). |
아르세노베타인 (해산물에 들어있는
비소화합물). |
비소 화합물의 제법과 특성
여러 비소 화합물들의 다양한 용도가 앞의 ‘비소와 비소화합물의 이용’에서 소개되었다.
이 항에서는 앞서 언급된 화합물들의 제법과 특성에 대한 추가적 정보와 중요한 몇 가지 화합물들을 더 소개한다. | |
삼산화 비소(As2O3)
비소 화합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말로 비상,
그리고 서양에서는 흰색 비소(white arsenic)로 알려진 삼산화 비소(As2O3)이다.
이 화합물은 비소를 공기 중에서 태우거나, AsCl3를 가수분해시키거나, 비소 광물을 공기 중에서 구우면 얻어진다.
800oC 이상의 기체 상태를 제외하고는 As4O6의 이합체로 존재하며, 녹는점은 312.2oC이고 끓는점 465oC이다.
As2O3는 양쪽성 물질로, 물에 녹아 약산인 아비산(arsenous acid: H3AsO3)이 된다.
HCl에 녹이면 AsCl3가 되며, 오존(O3), 과산화수소(H2O2),
혹은 질산과 반응하면 오산화 비소(As2O5) 또는 비산(arsenic acid: H3AsO4)이 된다.
As2O5는 비산의 무수물로, 비소가 들어있는 살충제, 제초제, 금속 접착제의 주된 구성 성분이다.
As2O3는 여러 비소 화합물을 합성하는 출발 물질, 목재 방부제, 유리 및 법랑 탈색제 등으로 사용된다.
또한 As2O3는 낮은 복용량으로 여러 질병의 치료제로 사용되며,
티오레독신 환원효소(thioredoxin reductase)에 작용하여 자기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약제로도 유망시 된다. | |
비산과 아비산 염
비산(H3AsO4)은 보통 As2O3를 질산과 반응시켜 얻으며, 약산이다.
목재 방부제, 범용 살충제, 유리나 금속의 마감 처리제, 여러 비소 화합물의 합성 시약 등으로 사용된다.
As2O3 + 2HNO3 + 3H2O → 2H3AsO4∙½H2O + N2O3
비산을 다른 금속 화합물과 반응시키면, 해당 금속의 비산염이 얻어진다.
예로, 농업용 살충제로 많이 사용된 비산 수소납(PbHAsO4)은 질산 납과 비산의 반응에서 얻으며,
토양 살균과 제초제로 사용되는 비산 칼슘(Ca3(AsO4)2)은 Na2HAsO4와 CaCl2와의 반응으로 얻는다.
Pb(NO3)2 + H3AsO4 → PbHAsO4 + 2HNO3 3CaCl2 + 2Na2HAsO4 → Ca3(AsO4)2 + 4NaCl + 2HCl
아비산의 구리염은 안료로 사용되었다.
파리스 그린(Paris Green) 또는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이라 불린
아세토아비산 구리 (copper acetoarsenite: Cu4(As2O6)2(CH3COO)2)는
아세트산 구리와 As2O3의 반응으로 얻는데, 한때 살충제와 그림 물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아비산 수소구리(CuHAsO3)도 한때 녹색안료로 쓰였다. | |
파리스 그린이라 불린 아세토아비산 구리는
한때 살충제와 그림 물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출처: (CC)Chris goulet at Wikipedia.org> |
마시 시험법을 수행하기 위한 기구.
비소 독극물로 희생된 사람의 생체시료를 아연과 묽은 황산으로 처리하면 비소화합물이 AsH3로 전환되고, 이 기체를
유리관에 모아 높은 온도로 가열해서 분해시키면 가열된
유리 위에 비소가 퇴적되는 것으로 비소의 존재를 알아낸다. |
삼수소화 비소(AsH3)
아르신(arsine)이라고 불리는 AsH3는 독성이 큰 인화성 기체(녹는점 -116.3oC, 끓는점 -87.5oC)이다.
금속 비소화물을 가수분해시키거나, 비소 화합물을 산성 용액에서 금속으로 환원시키는 방법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보통은 AsCl3를 LiAlH4등의 환원제로 환원시켜 얻는다.
반도체 산업에서 As 도핑용으로, 그리고 군사용 독가스로 사용된다.
한편, AsH3는 비소 독극물을 검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중간체로, 범죄수사에서 잘 알려진 물질이다.
마시 시험법(Marsh test)이라 불리는 비소 검출법은
비소 독극물로 희생된 사람의 생체시료를 아연과 묽은 황산으로 처리하면 비소화합물이 AsH3로 전환되고,
이 기체를 유리관에 모아 높은 온도로 가열해서 분해시키면 가열된 유리 위에 비소가 퇴적되는 것으로
비소의 존재를 알아낸다.
이 방법은 20세기 초반까지도 범죄수사에 많이 이용되었으나,
근래에는 원자 분광법이나 X-선 형광법 등의 보다 세련된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다. | |
유기-비소 화합물
As-C 결합을 갖는 다양한 유기-비소 화합물들이 합성되고 사용되었다.
이들은 보통 As2O3를 출발 물질로 하여 합성되는데,
예로 As2O3를 RMgX (R은 알킬) 또는 R3Al과 반응시키면 R3As가 얻어진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많은 유기-비소 화합물들이 농약, 의약품, 화학무기 등으로 사용되었다. | |
비소의 독성과 생물학적 작용
비소와 대부분의 비소 화합물들은 동물들에 강한 독성을 보이고, 일부는 발암 물질이다.
As2O3는 의약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1급 발암 물질이며, 쥐에 대한 치사량은 체중 1kg 당 14.6mg이다.
비소는 적은 복용량으로는 메스꺼움, 구토, 설사를 일으키고,
많이 복용하면 심장 박동 이상, 혈관 손상, 심한 통증을 일으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비소가 들어있는 공기를 장기간 들이마시면 폐암에 걸릴 수 있으며,
비소로 오염된 물이나 식품을 장기간 섭취하면 방광암, 피부암, 간암, 신장암, 폐암 등에 걸릴 수 있다. | |
일부 해산물에는 아르세노베타인이라는 비소화합물이 들어
있으나, 양과 독성이 적어 크게 건강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출처:gettyimag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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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일부 박테리아들은 비산염을 아비산염으로
환원시키면서 생체 내 연료를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아비산염을 이용하여 생체 내 연료를 태우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 아비산염을
사용하여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가 발견되었으며,
DNA와 ATP를 구성하는 인(P)의 일부를 비소로 대체할 수
있는 미생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한편, 양치 식물의 일종인 사다리봉의 꼬리(Chinese brake fern, 학명 Pteris vittata)가 토양에 있는 비소를 농축시키는
것이 발견되어, 이를 이용한 비소 오염 제거가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일부 바다 물고기와 해초가 물속에 녹아있는
아비산염을 메틸화시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들에는 아르세노베타인(arsenobetaine: (CH3)3As+CH2COO-)이 들어 있는데, 이 비소 화합물은 비교적 독성이 적고 또 양도 적어 이들 해산물을 섭취해도 건강에는 거의 위험이 없다고 여겨진다. | |
20세기 후반에 방글라데시, 인도 등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서 비소 중독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의 주된 요인이 지하수의 비소 오염이며, 이 비소 오염은 자연생태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마시는 물의 비소 농도 상한선을 0.01mg/L로 권장하고 있는데,
물 속의 비소는 산화와 여과 과정을 거쳐 철 산화물과 함께 침전시킴으로써 제거될 수 있다.
자연생태적인 비소 오염 외에, 농약, 목재 방부제, 물감, 사료 첨가제 등으로 쓰인 비소 화합물들이
비소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또 구리나 납과 같은 광석의 제련 과정에서도
As2O3가 배출되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대체가 가능한 경우는 비소 화합물의 사용이 대부분 금지되었다.
그러나 비소는 다시 첨단 전자 공학의 필수 재료가 되고 있으며,
독극물인 As2O3가 여러 질병의 치료제로 사용되거나 치료제를 합성하는 원료 물질로 이용되고 있다.
비소를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하고, 이것의 부작용을 줄일까를 고민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인류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해결하여야 할 과제로 여겨진다. | |
- 수치로 보는 비소
비소의 원자번호는 33이고 표준원자량은 74.922 g/mol이다. 원자의 바닥 상태 전자배치는 1s22s22p63s23p63d104s24p3 ([Ar]3d104s24p3)이며, 화합물에서 주된 상태 상태는 +5, +3, -3 이나, +2와 +1의 산화상태를 갖는 화합물들도 있다. 지각에서의 존재 비는 약 1.8 ppm (0.00018%)로 대략 51번째로 풍부한 원소이다. 2009년 기준 전 세계 생산량(As2O3 기준)은 54,400톤이고, 중국이 이의 약 46%인 25,000톤을 생산한다. 회색, 노란색, 검정색의 3가지 동소체가 있으며, 회색 비소(α-비소)가 가장 흔해서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이 동소체를 나타낸다. 1기압에서 승화점은 615oC, 38.6기압에서의 녹는점은 816oC, 20oC에서 밀도는 5.727g/cm3, 그리고 증발열은 31.9kJ/mol이다. 열 전도율은 50.2 W∙m-1∙K-1이고, 전기 비저항은 333 nΩ∙m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온화 에너지는 각각 947, 1798, 2735 kJ/mol이고, 폴링의 전기 음성도는 2.18이다. 원자 반경은 119 pm이고, As3+ 이온(6 배위체)의 반경은 58 pm, As5+ 이온의 반경은 46 pm이다. 천연 상태에서는 75As의 한가지 동위원소로만 존재한다.
- 글 박준우 / 이화여대 명예교수(화학)
-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템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오랫동안 이화여대에서 화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 저서로 [인간과 사회와 함께한 과학기술 발전의 발자취]와
- [아나스타스가 들려주는 녹색화학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 [젊은 과학도에 드리는 조언] 등이 있다.
발행일 201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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