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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함평에 다시 모였고, 우리 꿈도 함평에서
온누리로 예악(禮樂)의 문화날개로 날아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장자 호접몽蝴蝶夢이 단가 '호남가'에서 '영남가'로
'관동팔경가'로 충청도의 '중원가'로 서도의 '관서가'까지 나래를 펴고
날아가며 노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호남가' 첫 구절이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고향을 보랴하고'
이렇게 시작된다. 우린 이 가사를 지었다는 정조때 四家詩人 '이서구'거나
조선 후기 신재효거나, 그들이 호남가에 어떤 나비꿈을 심고자 했는가?
상상하며 함평천지咸平天地로 들어가 보자.
☱
☶
온누리가 모두 평화롭기 바라는 발원이 '함평咸平'에 들어있다.
함평천지에서 늙은 몸이란, 다른 말로 '온 세상이 다 감동하여 평화롭기를 바라는 땅'
함평에서 살고자 했다는 뜻과 같다. 위에 괘상을 보자. 주역 하경 31번째가
'택산함괘'(澤山咸卦)이다. 여기서 '함'이란 말은 '감동'과 같은 뜻임을 새겨두자.
주역 택산함괘에 말하기를 '
天地感而萬物化生, 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觀其所感, 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하늘 땅이 서로 감동해서 만물이 낳고 변화한다/
성인이 사람 마음에 감동해서 일깨우니 천하가 화평해진다/
어디에 감동하는가를 보라/ 그리하면 천지 만물의 실정이 드러나 보이리라/
함평은 감동으로 화평한 땅이다. 주역 건괘(乾卦)에 온누리가 감동하여 평안함을
'만국함녕'(萬國咸寧) 이라 했다. 우리 땅 이름이 범상하게 되는대로 지어진게
아니란 걸 호남가를 통해 느껴보자는 소리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여기서 그가 꼭 함평땅에서 늙었노라 단정짓지 않아도 좋다.
'그 감동으로 온누리가 다 화평한 땅에서 살고지고 하다 늙은 몸'이래도 좋고
'언젠가 감동으로 온누리가 다 평화로운 땅 함평에서 늙고 싶다'해도 괜찮을게다.
이래서 호남가는 사실 '함평천지'로 끝을 내 버린 거 아닌가?
'감동함으로 온누리가 다 평화로운 그 낙원에 멋지게 살고지고 늙고지고'
이게 호남가의 발원 아닌가?
이런 문화로 아름답고 예술로 신명나서 온누리가 다 감동하게 할 아동방 함평에서
'광주 고향을 찾아 보자'며 호남 일주를 나섰다는 것이다. 이서구의 고향이 광주였던가?
그는 포천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 제주 어선 빌려타고
해남으로 건너갈제' 노래한다. 왜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 노래했을까?
광주에 우리 고향의 빛이 있다는 걸 말한 건 아닐까?
시대사를 보자. 가까이는 '민주화의 빛나는 횃불'이 광주에서 타 올랐다.
그래서 광주는 '민주화의 고향' 이기도 하다. 그 뿐인가? 일제 때는 광주 학생사건
근원지로 '항일의 빛'을 터뜨렸으니, 광주는 '항일의 고향'이기도 하다. 조금 더
올라가 보자. 광주에서 호남의병들이 일어났으니. '구국의 고향'이기도 하잖은가?
광주에 김덕령 사당과 김유신 사당이 있으니 '구국의 고향'뿐인가 '통일의 염원'을
안고 있는 고장 아닌가? 감동있는 만국평화의 땅, 그 향기로운 뜻에 나비들이 모이는
함평에서 '풀뿌리정신' 고향이요. 항일의 고향이요. '구국의 고향'이며 '통일염원'이
깃든 그래서 만국이 다 무등산의 더 없이 평등한 세상을 구현했으면 하는 '평등의 고향'
이었기에 <광주 고향> 아닌가 그 소리다.
이처럼 '호남가'에 시대의 정신과 향기로운 나비꿈을 불어 넣구서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 선조들이 '호남가'에 누벼 넣은 나비꿈을 다시 만날 수 있고 그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로 날개짓 할 수 있는 지명발복(地名發福) 염원이 살아 있다는 걸 길게 이야기 해
무엇하랴 싶다. 그래서 <장흥 長興>땅에선 길게 부흥 시켜야 할 것이 <예악>이라 한 말도
장차에 우리 대한민국이 문화대국으로 가야할 길에 등대불 켜 준 소리 아닌가?
장흥을 보라. 다만 장흥땅만 보지 말구, 예악을 길게 부흥시켜야 할 문화를 보라.
예악이 무엇인가? 오경 중 <예기>(禮記) <악기>(樂記)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樂者, 天地之和也. 禮者, 天地之序也. 和故百物皆化. 序, 故羣物皆別. 樂由天作, 禮以地制, 過制則亂, 過作則暴. 明於天地, 然後能興禮樂也.
음악이란 무엇인가? 천지간 어울림 화평함을 소리로 본뜨고자 함이다.
예절이란 무엇인가? 하늘 땅이 순서를 따름을 행실로 본받고자 함이다.
이런 화평한 어울림과 순순한 질서에 만물이 낳고 살아 그 나름 문화를 이룸이며
각각의 사물들이 그 본디모습과 개성으로 나뉘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의 어울림을 모은 음악은 자연이 지어 준 것이고
그러하여 격식과 절차란 사람의 땅에서 제도와 관습으로 이뤄지게 됐다.
지나친 제도로 다스림은 혼란을 부를 것이요. 넘치고 천박해지면 마구잡이로
노래하며 속된 감정을 다 드러낼 것이다. 천지간에 명명백백 투명하게
자연과 백성의 마음을 잡아 발전 시켜가야 예악이 절로 부흥해 지리라.
단가 '호남가'에 알알이 박혀 있는 선조들의 인문정신과 역사의식, 애향심까지
천착을 하다 보면 '호남가' 주석 책이 나와야 할 정도의 문화적 핵심 코드들을
담고 있다. 이렇게 받아 들이는 게 어떠할까?
'호남가' 에는 장차에 우리가 꽃 피워야 할 문화 대한민국 향기로운 합창이
고스란히 모아져 있다고..... 보자. 함평에 그 향기로운 녹색생명 정신에 나비들이
모여들고 있듯이 우리 조상님들은 <모두가 감동하여 평화로운 땅>
'함평천지 늙은 몸이' 되고자 했구, 가깝게는 '민주화의 고향'이고 멀리는
호남의병들 <항일의 고향>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 <구국의 고향>
광주 장열사 김유신 '통일의 고향'을 다시 찾아 보자는 호남가 정신 속에는
한량없는 우리 조상님들의 발원과 복 받은 지명찬가를 엿볼 수 있노란 이야기다.
그리하여 다스리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삼태육경(三太六經)의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의 진안군(鎭安郡)이라.
삼정승 육판서, 요즘의 삼부요인과 장관들 국회의원들이여.
순천에 가걸랑 인심이 천심이라 천심을 따르는 걸 다시 볼 일이요.
지방관 시장 군수들이여. 진안에 갔을 때는 참으로 내 고장 평안케 하는 소임이 뭔지
돌아보란 소리다. 진안이 왜 鎭安인가? 예전엔 '마이산'이 <서다산>이라 해서
한양을 향해 활을 겨누는 형국이라 무학이 비보책을 써서 달래야 했던 고장이기도했다.
지역에서 혁명과 반역을 획책하는 자들이 마이산 활 시위를 한양으로 당길까봐
이성계가 마이산 신령을 달래고자 내려왔을 정도로 센 형국을 지닌 고장이다.
그 이후 마이산으로 개명됐지만, 그래서 고을 이름에 지역 안녕을 위해 눌러줘야 할
鎭자를 넣은 속뜻도 새김질 하려 들면 이야기 거리 많은 고장이다. 이갑용 처사가
마이산에 눌러 쌓은 돌탑이 왜 마이산이어야 했는가도 새김질 하면 흥미로운 일이다.
걱정할거 없다. 마이산 활을 한껏 남방 왜놈을 향해 당기고 있으면 든든한 일 아닌가?
나비는 향기로운 곳으로 날아든다. 함평에 나비가 저리 많이 날아드니
만국함녕萬國咸寧!! 태평시대를 '함평'에서부터 꿈꾸고 일어서면 되는 일 아닌가?
다시 주역 <택산함괘> 감동으로 화평한 세상 쪽에 눈길 돌려 본다.
황진이는 노래했다.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임의 정이요/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 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이 가사가 육자배기로 오면 '내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다' 넘어간다.
함평천지에서 왜 황진이와 '내정은 청산이요' 타령인가?
아까 말한 <택산함괘> (澤山咸卦)에 이 감동이 있다. 위로 연못이고 아래로
땅과 산이다. 그럼 무엇이 적셔 흐르겠는가? 물의 감동이 생명으로 흐른다.
근데 황진이는 탄식한다. 내가 그 자리에 늘상 산이었노라. 그리고 당신은
산밑으로 감돌아 흘러가는 떠난물이었다니. 해서 떠 흘러간 물이 잠시 적신 사랑의
감동을 추억하노라...... 여기서 거역한 사랑의 아픈 감동이 발생한다.
그래서 '내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다'가 처연한 감동으로 가슴을
적시는거 아니겠는가? 진정 보다 오래 누릴 수 있는 감동은 산위에 큰
호수를 안고 선 그 택산함괘 감동이라는 역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다시 함평이다. 그곳에 택지 물들이 땅에 고여 화평한 기운을 펴니
그 향기로운 생명살림 뜻에 감동한 나비들이 함평으로 모이는 거 아닌가 말이다.
그런 세상이면 낙원이 아닌가? 나비들이 모여서 춤추는 땅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호남가는 '함평천지'로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으라는 갈망으로 자리한다.
그로써 호남가의 나비꿈은 아름다운 시작이요 결말 아닌가?
내가 십수년 전에 나비란 작품을 네편 써서 KBS '국악한마당'에 알린 적 있다.
잠시 내가 부르고자 했던 '나비'로 가름할까 한다.
나비
(연작 시리즈 중 4편 국악가요곡)
김병준 작시 유은선 작곡 안숙선 노래
바람잔 봄날이면 창문을 열어주오
나 그대 나비되어 꿈결처럼 날아가리
어느 먼 길을 떠나시거든
꽃 한 송이 두고 가오
밤이면 꿈으로 낮이면 나비되어
나는 언제나 그대 한 생각
낙엽진 가을이면 단풍숲을 불러주오
나 그대 나비되어 꿈결처럼 날아가리
행여 길을 잃었거드면 국화뜨락 거니시오
밤이면 꿈으로 낮이면 나비되어
나는 언제나 그대 한 생각
유은선 국악창작곡 2집 음반 중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단가 호남가 풀이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단가 호남가 사설을 몇구절
풀어 보도록 할까요?
희은 판소리 하기 전에 목 풀이로 부른다는 단가 잖아요.
근데 한자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싶던데요?
종구 단가 호남가는 지역 이름을 쭈욱 나열하면서
멋들어지게 우리네 소망을 엮어나간 가사거든요. 여기보세요.
희은 단가 호남가 앞 구절이군요. (낭송)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 제주 어선 빌려타고 해남으로 건너갈제
흥양에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 있고,
종구 이게 호남가 앞부분 가사인데요. 자 시작을 힘차게
‘함평천지 늙은 몸이~~’ 이렇게 하고 있죠. 근데 왜 호남가
시작에 ‘함평부터 먼저 나오느냐?’ 오늘 이 부분만 짚어볼까요?
희은 함평 고을 하나만 가지고도 풀어보자는 말씀이죠. 호남의 그
많은 고장 중에 함평이 왜 맨 처음 등장했을까. 그걸 풀어보자.
종구 호남가의 결론이 시작에 있다는겁니다. ‘온누리 모두 다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소망한다!’ 이게 호남가 시작이고 결론이란
말이죠. 함평 할 때 함자가 모두 다 함께 그런 뜻이거든요.
여기 ‘함’자가 들어간 멋진 세상을 말한 주역 건괘 이 구절보세요
희은 (낭송) 하늘 땅, 건곤의 길 중에 건의 도가 생명으로 변화해서
각각 성품과 할 일을 바르게하고, 두루 크게 화홥을 이뤄서 이에
이롭고도 곧을 것이니 이런 하늘의 도가 만물 가운데 으뜸이라
만국이 다 함께 안녕할 길이 여기에 있다.
종구 주역의 말씀이라 크고 상징하는 뜻이 깊은데요. 함평의
함자를 돋보이게 쓴 주역 건괘 한구절이죠. 만국이 다
안녕할 길이 건괘에 있다는 뜻인데. 여기에 <만국 함녕>
이란 말로 마무리 하고 있죠. 다 함께 온누리가 그런 뜻으로요.
희은 함자가 가진 빛나는 뜻을 그렇게 끌어 오셨다면 함평 할 때
평자는 어디서 끌어 왔을까요?
종구 함평이라고 했을 때 ‘함’자를 이왕 주역으로 말 했으니,
주역 64괘 중에 31번째 괘가 바로 ‘택산 함 괘’이거든요.
연못이 산을 감구 교감하며 사랑하는 모습 상상해 보세요.
희은 건괘에 함평의 함자가 나오고, 택산함괘 란 괘 이름도 있군요.
종구 함괘가 지닌 소중한 뜻은 교감입니다. 서로 느끼고 깊이
스며드는 교감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호남가에
왜 ‘함평천지’ 가 먼저 나와야 했는지 짐작이 가잖습니까
희은 온누리가 다 함께 우리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교감케 할
소망을 안고 있는 고장이 함평 아니냐 그런 뜻인가요?
종구 그렇게 봐야 복이 들어오죠. ‘함평’의 평자는 보통 고를 평자.
평평하다. 곧다. 다스리다 그런 평으로 쓰고 있잖아요.
희은 평화 할 때 쓰는 평자가 그 고를 평자잖아요.
‘함평’에 그 평자가 들어가 있다는 말씀이죠?
종구 바로 택산함괘에 평 이란 글자가 또 나옵니다.
‘성인은 사람 사람 마음과 교감해서 마침내 천하를 화평게 한다’
(성독조) 성인 감 인심이 천하 화평이라 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희은 호남가 함평이란 두 글자에 담긴 뜻도 깊은거군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호남가’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춘향가 이별가와 여구곡(驪駒曲)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사설여행 차례죠?
종구 춘향가 이별가하고 여구곡을 돌아볼까 합니다.
희은 남원 오리정이 춘향이랑 이도령 이별하던 자리였잖아요.
그 이별가하고, 여구곡이 서로 상관이 있대는건가요?
종구 춘향가 이별가 중에 방자가 징징 울어대는 이도령 춘향보면서
‘아, 말은 가자고 발굽을 치는데 무슨 이별을 이렇게 뼈가 녹게
하시오. 이별이란게 너 잘 있거라 나 잘가마 그럼 되는거지?’ .
희은 맞아요. 그대목. 춘향이랑 이도령이 그냥 서로 붙들고 시간을
끄니깐 보다 못한 방자가 미운 소리 했잖아요.
종구 그 대목에서 방자는 사실 전통적인 이별의식을 깨버린겁니다.
희은 전통적인 이별 스타일이 있었나요? 그걸 방자가 깼다니요?
종구 예전 사람들은 이별하기 아쉬워서 ‘여구곡’을 불렀죠. 손님쪽
하인이 밖에서 말을하구 ‘망아지 안장 채비 끝났소이다’
그럼 주인이 안에서 ‘잠깐 이 양반 못가게 해야겠네 망아지
붙들어라’ 하면서 이별을 늦췄거든요. 그걸 ‘여구곡’이라했죠.
희은 떠나야 하는 쪽에서는 ‘망아지 안장 준비했소 어서 가십시다!’
이때 전송해야 할 주인은 ‘거 망아지 붙들어 매라’ 그런거군요.
종구 이별을 늦추고 싶어 실랑이 하며 부른 노래를 ‘여구곡’이라
했었죠. 원래 중국 ‘한서 왕식전’에 나오는 이야기니
2천여년 전부터 생긴 일이구요.
희은 그걸 후대 사람들이 본따서 이별을 늦추고자 노래 한 걸
‘여구곡’이라 했군요. 우리 선대 여구곡 감상할 수 있을까요
종구 여기 조선 중기 잘난 삼형제로 소문났던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이
오랜만에 만났다 헤어지면서 남긴 농암 김창협 여구곡 보세요.
희은 (낭송) 잿마루 기러기 대열 끊겨 슬픈데/ 강물결에 이별의 한을
던져보네/ 갈라네 잠깐만 더 여구곡 부르나니/ 헤어진 다음
멀리 잉어 뱃속에 편지써 전하도록 해보세나/
종구 좌의정 김상헌의 증손자요.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이었던
그 잘난 삼형제가 만나서 이별하기 아쉬워 남긴 여구곡이죠.
희은 여구곡 부르면서 이별하자. 잉어 뱃속에 편지 써 전하련다 이건?
종구 예전에 천리나 먼 그리운 사람 보고 싶어 강에다 편지를
써 띄웠더니, 훗날 잉어 뱃속에서 그 편지 받아 봤더란 고사가
전하거든요.
희은 그럼 ‘떠나야지. 아니 조금만 더 있다’ 그런 여구곡을
방자가 이별가에서 깨버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종구 (방자톤) 아 이별이란게 너 잘 있거라 나 잘간다 그럼 됐제 뭔놈의
이별을 그라고 뼈가 녹게 헌단말이요 어서 가자니깐요?
희은 정말 이별의 정을 확 깨는 방자의 된소리였군요.
종구 춘향과 이도령은 여구곡 식으로 이별을 늦추는데, 방자는 그걸 깨서
빨리 갈 사람가고 남을 사람 남자. 그래서 유쾌한 반전이 생긴거구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이별가와 여구곡’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박세당과 이덕무의 강추위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박세당과 이덕무의
강추위 사설을 돌아볼까 합니다.
희은 어제 오늘 강추위가 몰아친 날씨인데요. 박세당과
이덕무 시절에도 이런 강추위는 있었겠지요.
종구 조선 중기와 후기에 살았던 두 사람의 학자가
그 당시 파고 든 강추위 한파를 어찌 받아 들였는지
돌아볼까 합니다. 우선 실학자인 청장관 이덕무 글을 볼까요?
희은 청장관 이덕무가 영처시고에 쓴 ‘추운날 한창려 시운에 답해
짓다‘라는 글이군요.
(낭송) 하룻밤새 강추위에 바람에다 눈까지
이불 끌어 당겨봤자 쇳덩이 같이 차갑고
오그라 붙는게 염치를 차릴 겨를 없구나
콩콩 뛰던 아이들도 얼어 붙은 듯
팔짱 꼭 끼고서 점잖해 졌구나.
종구 이덕무 시절의 강추위 한파 몇 장면이 떠오르죠.
이불을 끌어 당겨봐야 쇳덩이처럼 차더라. 추워도
콩콩 뛰어 놀던 아이들도 얼었는지 팔짱끼고 점잖해 졌더라.
희은 이불이 쇳덩이 같더란 말에 그 당시 한파를 짐작하겠네요.
그 다음 구절엔 솜도 꺾어지더란 말이 나오는데 이건
어떤 상황을 말하는건가요?
종구 이덕무는 ‘절 면’이라는 말로 솜 이불도 얼어서
꺾어지더란 말을 했거든요. 그 시절 이불도 꽁꽁
얼어서 꺾어질 정도였더란거죠. 방이 또 얼마나 추웠으면
땔감이 얼마나 부족했으면 솜이불이 얼어 꺾어졌겠어요.
다음 글은 조선 후기 학자 박세당이 기록한 강추위 글이죠.
희은 (낭송) 서민들 추위를 막을 따뜻한 옷이 부족하고
굶주림을 구제할 쌀독마저 비었는데/ 거기다 유식한 자랑이라니
공자왈 맹자왈 소리만 텅 빈배를 버티고 있구랴.
종구 백성들은 강추위에 떨고 굶어 죽어가는데, 글께나 읽었답시고
유식자랑이나 하는 사람들
박세당 자신도 그런 부류 아니겠느냐 돌아보면서
오직 텅 비어있는 배를 공자왈 맹자왈 소리로 버티더라.
한마디로 추워서 사람들 얼어 죽고 굶어 죽는데 공자왈
맹자왈이 무슨 소용이냐?
희은 박세당이 말한 이 구절은 또 무슨 뜻일까요?
(낭송) 내려다보니 달팽이의 양쪽 뿔에서 / 下顧蝸兩角
요란스레 서로 다투는구나 / 擾擾自相撞
종구 그 당시 사람들 당파 싸움이나 하고 머리 쑥쑥 내밀어
싸움질 하는 꼴이 꼭 달팽이 양쪽 뿔이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꼴과 같더란 거죠. ‘와우각상’이란 고사를 빌려온거구요
희은 날은 강추위 한파로 백성들 얼어 죽고 굶어 죽는데
달팽이 뿔이 싸우는 꼴로 사는 사대부들을 나무란 글이군요.
종구 솜이불, 솜바지 얼어 쩍쩍 갈라진 세상도 살아온 그 백성의 나라에
지금 강추위 어떻게들 넘기고 계신지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 ’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어사의 청총마와 목은 이색 어사에 비는 글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여행인가요?
종구 박희은씨, 우선 춘향가 중 제일 후련한 대목을 꼽자면?
희은 묻지마세요. (힘차게) 암행어사 출도여~~~
종구 언제 들어도 후련한 ‘암행어사 출도여~~’ 자 그런데
청마를 탄 어사 이야기 잠시 돌아볼까요?
희은 청마를 탄 어사가 있었다구요. 올해 청말띠라는데
올해 탄생한 아이들이 암행어사 기운 받는거 아닌가요?
종구 암은 그럼요. 자 청마를 탄 어사 이야기 볼까요?
‘푸른 말갈기를 휘날리면서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
지체높은 고관들도 한번 쳐다보더니 이리 저리 도망가 숨기
바쁩니다. <청총마 어사다!> 소리에 이리저리 피하고 봅니다. ’
희은 언제 때 이야긴데요. 청마탄 그 사람이 누군데, 왜들 그렇게
도망가 숨었을까요?
종구 중국 후한 시대 시어사 환전이란 사람이 있었는데요.
얼마나 법대로 엄하고 무섭게 철퇴를 가했던지
청마를 탄 시어사가 나타났다 싶으면 그냥 모두 숨었거든요.
희은 아무리 시어사라구 하지만 당시 세도께나 부리던 권세가들이
청마탄 환전을 봤을 때 콧웃음 쳤던건 아니구요?
종구 당대에 힘께나 쓴다는 세도가도 시어사 환전에게 걸렸다
싶으면 그 부정부패 다 파헤쳐서 철퇴를 가했거든요.
그러니 청마 탄 시어사다! 하면 죄다 후닥닥 숨었더란겁니다.
희은 그 푸른 갈기 청마가 얼마나 신났을까요? 우리 고려나
조선시대 그런 청마를 탄 어사또들은요?
종구 있었죠. 청마, 또는 청총마라구도하죠. 그 청마어사 이야기가
전하는데, 고려말 목은 이색이 청마 탄 어사에게 사정했던
이야기도 전하거든요.
희은 목은 이색이 뭘 잘못했기에 어사에게 사정을 했을까요?
종구 시골에서 행세께나 하던 사람이 고려 서울인 개성에 와서
말을 탄 채로 개성 궁궐 앞을 지나가다 어사또에게 체포됐죠.
희은(사극톤)모두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시오! 그 하마의 예를 무시했군요
종구 그렇죠. 말타구 개성 궁궐 앞을 지나다 어사에게 잡힌 시골
사람이. 목은 이색을 붙잡고 사정합니다. 그 사정을 들은
목은 이색이 어사또에게 글 한수 지어 줬죠. 여기 보세요.
희은 (낭송)궁궐인지도 모르고/ 청마 탄 어사또도 몰라보고/ 바보아닌가
어사또, 이제 알구 천번 만번 손을 비비니/ 그냥 좋은 말로
타일러 보냄이 어떠겠소?
종구 고려에도 청마를 탄 어사또가 있었다는 걸 알겠죠. 물론
그 어사또 따끔하게 훈계해서 훈방조치 했을테구요. 자 힘있는
자에게 저승사자 같고, 백성에게 관대했던 청마탄 어사또.
희은 오며가며 보신 분 있으면 연락 좀 주세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어사와 청마’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동래 동백정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동래 동백정 고사를
찾아 볼까 합니다.
희은 머잖아 흰 눈속에 피는 동백꽃을 곧 보게 될텐데요.
동래 동백정이라면 예전엔 부산 동래 쪽에 유명했나보죠.
종구 예전엔 동래 동백정 동백도 유명했다구 합니다.
여기서 잠깐 동백이란 이름이 맞지 않다고 했던
고려 문신 이규보 ‘동백화’ 한구절부터 볼까요?
희은 이규보는 동백이 어째서 걸맞지 않은 이름이라 했을까요?
(낭송)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松柏無嬌顔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도다 所貴耐寒耳
이 구절은 우선 소나무 잣나무 송백에 대한 거군요.
종구 사람들이 송백을 귀하게 여긴 까닭은 꽃이 없지만
추위를 견디면서 푸른 기상을 잃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렇다면 동백을 봐라. 그건데요. 다음 구절 보세요.
희은(낭송) 여기 이쁜꽃 피는 나무가 있잖은가? 此木有好花
눈속에서도 절로 꽃을 피우는 저 동백 亦能開雪裏
곰곰이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낫더라 細思勝於栢
겨울 잣나무, 동백이란 이름이 잘못된거 아닌가? 冬栢名非是
종구 바로 그겁니다. 동백이라고 할 때 잣나무 백자를
가져와서 겨울 잣나무란 동백으로 부른 건 잘못됐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동백을 ‘산다화’라구 부르기도 했죠.
희은 산다화라면 어떤 뜻을 가진 건가요?
종구 뫼산자에 차 다자, 꽃화자를 썼으니, 산차꽃이라는 뜻으로
부르기도 했었죠. 선비들이 ‘산다화’ 예찬 노래도 꽤 남겼구요.
희은 그래도 우리에겐 동백꽃으로 남게 됐잖아요. 근데 아까 말씀한
동래 동백정 이야기는 어떤 고사인가요?
종구 조선 성종 때 문신인 청파 이육이 남긴 ‘청파극담’에 보면
고려말 조선 초 인물인 이원이란 사람이 영남 안찰사로
나가 부산과 동래 쪽 민정을 살피고 있을 때 하루는 조용히
동래 동백정을 찾았던겁니다.
희은 행정을 감사하고 민정을 사찰했던 안찰사 나리가 혼자서
동백정을 나갔다니 왜요?
종구 괜히 안찰사 모시는 잔치를 한다. 향응 잔치판 여는 걸 싫어해
조용히 혼자 나가서 보니 동백꽃이 좋거든요. 그래서 혼자
휘파람 부는데, 마을 사람들이 한사람 두사람 음식을 장만해
한 사람 두 사람 탁주를 권하고 안주를 권하더라죠.
희은 민폐를 안 끼치려구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동백정에서 모이게
됐군요. 그 술이며 안주 먹고 마셨던가요?
종구 설마 이 사람들이 내가 안찰사 인줄 알고 이런건 아니겠지.
하고 조촐하게 차린 그 술상을 받으며 동백꽃 구경했는데
알고보니 지방 현감 원님 사또들이 조용히 사람들 시켜서
간소하게 나마 그리 접대를 그리 했더란겁니다.
희은 민폐를 걱정해 잔치를 꺼렸는데, 결국 지역 주민들하고
간소하게 나마 술잔 나누며 자리하고 이야기 하게 됐군요.
종구 동백꽃 흥에 겨워 주민이 주는 탁주 한잔 정도는 기꺼이
마셨던 이야기죠. 자 머잖아 동백이 필텐데, 흐드러진
잔치판만 난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맘으로 동백을 기다립니다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동래 동백정’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윤선도와 연홍(燕鴻)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조선 중기 문신이고 시조작가인
윤선도와 연홍의 고사를 돌아볼까 합니다.
희은 고산 윤선도 하니깐 어부사시사도 생각나거든요.
근데 윤선도와 연홍의 고사는 어떤 이야긴가요?
종구 윤선도에게 아주 딱한 누님이 한분 있었는데요. 고질병을
안고서 시집살이도 하고 시댁 부모봉양도 했는데 결국
쓰러져 눕고 말았죠. 이때 고산 윤선도가 누님을 데리러 갔죠.
희은 그 당시 관습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일단 출가외인이고, 남의 가문에 아내요. 어머니잖아요.
종구 고산 윤선도가 윤생원에게 주는 글에 보면, 이 집도 사정이
딱하다. 아파 누운 누님을 나 밖에 모실 사람이 없지 않느냐?
여러분들이 내 뜻을 받아 들여 주길 부탁 드린다. 하면서
우린 그동안 연홍과 같은 처지로 살아 왔지만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말을 하거든요.
희은 거기서 ‘연홍과 같은 처지로 살았다’ 연홍이란 말이 나왔군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설정 뜻을 가진 말 아닌가 싶은데요.
종구 맞습니다. 이걸 한번 상상해 보세요. 제비와 기러기가 함께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강산에서 말이죠.
희은 제비는 여름철새고, 기러기는 겨울 철새이니깐 서로
만나기 어려운 사이 아닐까요?
종구 그거죠. 서로 만나기 어려운 인간관계. 그걸 제비연자와
기러기 홍자를 써서 ‘연홍’과 같은 관계라 했던겁니다.
고산 윤선도의 누님 집안과 애시당초 제비와 기러기 사이처럼
먼 사이였지만 이제 누님을 살려야 하니 이렇게들 만났다.
마침내 제비와 기러기가 한 자리에 만난 셈이다. 그런 말이죠.
희은 병들어 쓰러진 누님을 이 동생이 모시겠노라 나섰던
윤선도의 또 다른 면모가 느껴집니다.
종구 윤선도가 이 연홍이란 말을 이웃사촌 딱한 사정 알릴때도
썼거든요. 여기 ‘윤어사 형언에게 답하다’ 몇구절 보세요.
희은 이번엔 윤선도가 어사또 윤형언에게 답한 글이군요.
(낭송) 우리가 서로 연홍처럼 떨어져 살아 회포를 풀기 어려웠는데
장흥땅 임정이란 사람은 재종간인데. 자기집 노비가 좌수영에
있는걸 찾아 오는데 좌수영 무리가 스무명이나 떼거리로 몰려와
고갯마루에서 몽둥이질을 하고 다시 뺏어갔다니 이런 무리가
세도가를 믿고 이 행패이니 어사또가 바로 잡지 않으면 누가하릿까
종구 임정이란 사람이 도망간 노비를 좌수영에서 찾아 오는데
고갯마루에 기다리던 좌수영패거리에게 몽둥이로 맞고 노비도
다시 뺏겻다 이 억울한 사건을 어사또가 풀어 달라. 우리
그동안 제비나 기러기처럼 만나지 못하고 지냈는데 이 일만은
꼭 해결을 봐서 억울한 재종형제 원을 풀고 싶다.
희은 윤선도가 유배시절이지만 이렇게 주변에 억울한 일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사연도 있었군요.
종구 우리 시대, 제비나 기러기, 연홍과 같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
끝까지 서로 무관심해선 안될 사람들, 다시 돌아보고 손잡았으면합니다
여 ‘고전기행 사설여행’ ‘윤선도와 연홍’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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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아계 이산해 동해일출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임진왜란 이후
동해변 울진 평해쪽으로 귀양살이 떠난 아계 이산해를 잠시
만나볼까요?
희은 아계 이산해가 동해 울진 평해 쪽으로 귀양살이 떠난
사연부터 궁금한데요?
종구 임진왜란 발발할 당시 영의정 벼슬에 있었으니
국난을 대비하지 못한 책임도 컷고, 당파 싸움 때
서인이다 북인이다 그 북인을 이끌던 지도자였거든요.
희은 전란 중에도 귀양살이 보냈을 정도면 이런 저런 책임질 일이
많았다는 뜻 아닌가요?
종구 왜적침략 대비도 못하고, 일본왜구떼 한양에 오자 바로
한양 버리자하고. 한양은 불타고, 나라 어지럽힌 죄를
한몸에 떠 안게 됐으니 강원도 울진 평해쪽으로 귀양떠난거죠.
희은 그럼 오늘 소개할 아계 이산해 어록은 그 귀양살이 떠난
시점에 남긴 기록들인가요?
종구 그 경황에 양양 낙산사에서 하룻밤 잤는데 스님이 깨워
일출을 보자고 하더랍니다.
희은 나라는 왜적떼 소굴이 됐고, 임금은 북으로 피난갔고
자신은 귀양살이로 동해변으로 쫓겨났는데 일출구경이라니요?
종구 그러니 그 일출을 보는 아계 이산해 심경이 오죽했겠습니까.
여기 그 한가닥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몇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황혼에 들어간 낙산사/ 절간이라 죽순에 나물밥 먹고
겨우 잠들었나 싶었더니 새벽에 일출을 보란다/
바다로 뜨는 해에 안개낀 숲속 이 몰골이라니/
천지가 어찌 이리 쓸쓸한고, 명사십리 백사장
해당화 향기도 외롭더구나.
종구 귀양가는 길에 양양 낙산사에서 봤던 일출. 해가 아무리
밝게 떠 오른들 안개 자욱한 자기 발치의 땅이 외롭더란거죠.
명사십리 해당화 향기까지 외롭더란 말도 사무치잖아요.
희은 전란에 휩싸인 조선 천지가 다 안개로 뿌연 모습처럼
보였더란 말 같기두 한데요.
종구 그럼요. 그 지경에 본 일출장관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해가 제 아무리 밝게 떠 오른들 조선 천지가 다 안개속으로
천지사방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됐으니 말이죠.
그야말로 때늦은 후회와 탄식이 엿보이고 있죠. 다음구절볼까요
희은 (낭송) 고생고생 고개넘어 율령도 넘고/ 험한길 나와 평지다 싶더니
울진이라 독송정에 말 안장 겨우 풀고/ 머리 잠깐 들었더니
천정에 부닥친 아픔이라니/
종구 아계 이산해가 귀양길에 울진 독송정 천정에 머리 떵 부딪친
아픔은 뭐였을까요?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지 못해서 마침내
천장에게 뺨 맞듯이 뒷머리 맞은 팔자 됐다는거 아닐까요?
희은 후회없이 살기 얼마나 어려운지, 때로는 천장에게 뒷통수
맞어야 할 시절도 있더란 아계 이산해 아픈 귀양길 노래군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아계 이산해 동해일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어버이 섬기는 마음 풍수지정風樹之情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여행 차례죠?
종구 옛 사람들은 어버이를 여윈 슬픔을 말할 때
‘풍수지정’이라고 하거나 ‘풍수지탄’이란 말을 썼거든요.
희은 어버이 여윈 슬픔, 자식이라면 그 심정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이죠. 근데 오늘 왜 어버이 여윈 슬픈 사연을
돌아보려구 하시나요?
종구 어제 우리들 슬프게 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어버이
두분을 숨지게 하고 자신도 같이 떠난 사건 말입니다.
희은 군대 간 아이돌 스타네 집안이라서 더나 놀래고
가슴 아파하구 있죠. 그런 슬픔을 ‘풍수지탄’이라고 하나요?
종구 풍수의 아픔이라고도 했구요. 세상을 뜬 어버이를
늘상 생각하고 추모하는 마음도 풍수지정이라고 했었죠.
희은 그럼 풍수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겠죠.
종구 춘추 시대 공자가 길을 가는데 고어란 사람이 슬피 울고
있었죠. 공자님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잘 모시고 싶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 뜬 부모님 생각에 울고있습니다
희은 아 그 고사에서 바람 풍자와 나무 수자를 결합시켜서
‘풍수’의 슬픔이라 했군요.
종구 한시외전에 나오는 일화인데요. 대대로 어버이를 여윈 슬픔을
말할 때 자주 입에 올렸던 말입니다. (성독조) ♬부 수욕 정이
풍부지요/ 자욕 양이 친 부대라
[夫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희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으려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이
어버이를 봉양해 드리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어버이 은혜 갚지도 못하고 모시지도 못하고
여윈 슬픔은 달라질 게 없잖아요.
종구 조선 중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가 ‘풍수루’를
지어서 어버이 섬기지 못한 슬픔을 노래했었죠. 보세요.
희은 (낭송) 고향에 돌아오니 쑥대밭 됐구나/ 석양놀 지는 해포 다리서
눈물 적시니/ 어버이 은혜는 저 하늘 봄비 같은걸
불효에 뿌린 눈물로 파도에 물결을 보태노라/
백년인들 씻으랴 이 사무치는 풍수의 한을
황천에 간들 사라지랴 불효자 이내 한을......
종구 어버이 잘 섬기지 못하고 세상 뜨신 걸 두고 두고
탄식하고 아파하는 이 ‘풍수지탄’ 풍수의 정을 엿보게 하는
구절인데요. 요즘 병들고 말 못한 그 어버이에게 차마 못할
불효 막심한 일들 자주 보고 들어야하는 이도 또한 슬픔이죠
희은 백년토록 울어도 씻을 수 없더란. 풍수의 슬픔을 다시 또 돌아보게
하는 요즘 아닌가 싶습니다. 어버이 사랑 변함없어야 할텐데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풍수지탄’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화수회(花樹會)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오늘은 ‘화수회’ 고사를 돌아볼까요?
희은 ‘화수회’, 어떤 모임을 가진 단체 같은데요?
종구 그렇죠. 지금도 ‘무슨회’다 ‘아무개회다’ 서로 같은 뜻을
모임체가 많은데요. ‘화수회’ 하면 집안 친척들끼리
한달에 한번이거나 사계절마다 한번 모이는 것이었죠.
희은 ‘화수회’ 보니깐, 꽃 화자에 나무 수자를 썼군요.
이걸 바로 풀면, 꽃나무 모임이란 건데 그게 어떻게
집안 친척들 모임이란 건가요?
종구 ‘화수회’ 뿌리를 찾아가면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잠삼과 위씨
집안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요. 잠삼이 장안을 갔을 때
원외랑 벼슬을 하는 위씨 집안 친족들이 꽃나무 아래서
모임을 갖고 술 마시고 노래도 하면서 참 보기 좋더랍니다.
그 모습을 시인 잠삼이 ‘위원외가 화수가’를 지어 찬양했거든요
희은 ‘화수회’란 뿌리가 그런 사연을 갖고 있었군요. 당나라의
대표적 시인인 잠삼을 통해서 친족간에 만나서 화기애애한
정겹고 단합된 위씨 가문 모습이 알려진 셈이구요.
종구 친족들이 몇 달걸러. 계절별로 꽃나무 아래서 모임을 갖는걸
‘화수회’라 이름했던거죠. 여기 조선 중기 문신 농암 김창협이
‘형제간 만나고 헤어질 때’ 부른 노래 한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예전 동산에 남아 있던 꽃나무들은/
봄이오고 또 봄이가는 오랜세월 적막도 하였으리라/
김창협이 형제들과 모였다 헤어지면서 남긴 노래인데
옛 동산의 꽃나무들 봄날이면 적막했을 것이란 말은요?
종구 봄이면 친족들이 그 꽃나무 아래서 ‘화수회’를 가졌다면
그 꽃나무들이 적적했겠느냐?
희은 아, 꽤 오랜세월 친족들이 모여서 ‘화수회’ 그걸 못했더란
말이군요.
종구 그럴수 밖에요. 서로 사는 곳이 멀거나. 근무지가 다르면
봄날 꽃나무 아래서 모이는 ‘화수회’ 참석하기 힘들었겠죠.
여기 송나라 때 성리학자 정이천이 말한 화수회 잠깐볼까요?
희은(인용구) 정자가 말하기를 ‘무릇 사람들 집안 가법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친족을 합쳐야 한다. 옛사람에게는 화수회(花樹會)가
있었는데, 당나라 때 위씨 집 안의 그 종회법을 취할 만하다.
종구 면재황씨의 화수회 이야길 보면요. 정월달 10일과 음력 6월20일
두차례 친족들 모이는 화수회를 했는데. 각각 술 한병과 안주감
을 싸들고 봄에는 굴. 조개, 여름에는 여지를 가지고 모여
꽃나무 아래서 화기 애애한 ‘화수회’를 했다.
희은 친족들이 모이는 ‘화수회’ 전통이 요즘은 무슨 사촌회다. 그런
형제간들 모임으로 바뀌어서 이어가고 있는거 아닌가요?
종구 봄날 꽃나무 아래서 친족들 모여 서로 정겹게 놀았던 화수회.
이게 요즘은 그저 ‘애경사용’ 모임으로 바뀐거 아닌가 싶구요.
희은 ‘고전의 샘터’ ‘화수회’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저는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해 한손에 마우스들고 끌어 당겨가며 읽었지만
작가 선생님은 이 글을 만들고 다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담배가 꼬실라졌을까요?
글을 읽는 제 눈은 즐거웠지만 글을 쓰는 작가님을 생각하니 마음은 오소리굴입니다
함평천지 한마디 하려다 보니 글이 길어지더군요. 수다떨기 좋아하니 이 모양이지요.
다른 주제도 한마디씩 하고 싶었는데, 휴일 오후를 '호남가' 이야기로 넘기고 있더군요.
국악 만만하게 보지 말라구 <페이스북>에도 올려 놓고 가르침 구하는 중입니다.
호남가 남은 이야기들 천천히 다시 복기해볼까 합니다. 우리거 조금은 더 알고 들어가자는건데
말이 자꾸 길어지더군요. 성원해 주신데 감사 드립니다. 일깨워 주시는 글 기다리고 있을께요.
감동함으로 온누리가 다 평화로운?그 낙원에 멋지게 살고지고 늙고지고'
선생님~
참으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함괘는 산위에 연못이 있는 형국과 같다고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납니다
주역으로 풀었을때
함괘가 나오면
예술방면으로 길하다고 하였던것 같아요~
귀동냥 눈동냥 했던 내용이
올라오니 더욱 재밌게 읽었어요
아~~
호남가 풀이를 이렇듯 자세히 해주시니
애정이 절로절로 생깁니다~~~^
예전에 꽤 이름있는 교수님이 '함평천지'를 <한평천지>로 가르쳐서 그 제자들이
저에게 덤빈 적이 있었죠. 지명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간단한 흐름을 무시하고
'내게 땅 한평만 있어도 넉넉하다'는 둥 기이한 말놀음을 해서 내가 KBS시절부터 방송을 통해
몇번이고 이런 뜻을 거듭 밝혔던 적이 있습니다. 정조가 아꼈던 초계문신 이서구의 눈으로 봐야 만
세계관과 국가이념 예악문화며 정치관 자연관 민초들의 소망등이 드러나게 돼 있죠. 그래서
함평천지에서 시작해 그 한구절로 끝냈다는 역설로 말해 본 거랍니다. 주역 함괘에 그런 뜻이
고스란이 담겨 있는 셈이죠. 함괘는 예술방면의 인성 뿐 아니라 사랑의 지극한 테크닉까지
@김병준 설파하고 있는 괘상이기도 합니다. 엄지발가락에서 시작한 사랑의 감응은 허벅지로
배로 뺨으로까지 올라가는 절묘한 감응 사이클을 일러주고 있기도 하죠. 그래서
주역 64괘상 중 가장 실체적인 감동의 원리를 설파한 괘상이기도 하구요. 그런 사랑의
충만함이 온누리에 메아리 칠 때 감동으로 화평한 세상이 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공감해 준 산골여우님 반걸음 더 다가선 느낌으로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