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들의 죽음만이 필요하다
증 언 자 : 김재철(남)
생년월일 :1960(당시 나이 20세)
직 업 : 재수생
조사일시 : 1988. 8
5월 18일 오후 3시쯤 지산동파출소가 시민들에 의해 쑥밭이 된 것을 보고 집으로 오는데, 중앙여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 1명이 치마에 돌을 싸서 들고 농장다리를 지나 지산동파출소를 향해 가고 있었다. 또 농장다리 부근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10여 명 정도가 전경차를 전복시키려고 여러 번 시도하는 것을 본 후 동명아파트 뒤에 위치한 집으로 들어왔다. 전경차 주변엔 방독면과 헬멧 등이 바닥에 어지럽게 내팽개쳐져 있었다. 집에 들렀다가 금남로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5,6시쯤 시위군중과 공수부대간에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다가 페퍼포그차가 최루탄을 퍼붓고 그와 동시에 공수대원이 쫓아오자, 시위군중들은 골목과 건물 안으로 흩어졌다. 그러는 도중 가족회관 앞 유한양행 부근에서 도망가던 학생 1명이 공수부대에게 붙잡혔다. 공수부대원 4,5명이 달려들어 붙잡힌 학생의 머리를 곤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쳐 쓰러뜨린 후 군화발로 머리,어깨,얼굴,배,다리 등 온몸을 감자 으깨듯 으깨버렸다. 학생은 죽은 것처럼 완전히 쭉 뻗었다. 군용트럭이 다가왔다. 그들은 양손과 양발을 하나씩 들고 트럭 위로 던졌다. 트럭은 법원 쪽으로 유유히 지나갔다. 나는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너무 무서워 집으로 왔다. 19일은 학원(대성학원)에 나갔으나 휴강이었다. 어제 저녁때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아 바로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오후 3,4시쯤 집 앞에 나와 있는데 아주머니한 분이 사람이 죽었다며 울면서 농장다리 쪽으로 걸어 을라갔다.
그 당시 사람들은 2,3명만 모여도 공수부대의 잔인함과 시내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했다. 따라서 시내상황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집 밖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으며 매스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20일 7시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청년들이 골목마다 다니면서 각목,삽,괭이 등 무엇이든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가지고 모이라고 외쳤다. 나도 가로수를 지탱하기 위해 세워둔 각목을 아저씨들과 함께 빼어들고 노동청 쪽으로 나왔다. 도청 쪽으로 더 가고 싶었지만 최루탄가스가 너무 독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저씨,아줌마,학생,꼬마 등 모두들 손엔 각목과 삽을 쥐고 도청쪽을 향해 서 있었다. 그들은 공수부대의 잔인한 행동과 시민들의 대응 광주시내 곳곳의 상황에 대해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노동청 건물이 불에 타고 있는지,시민군이 끌고 간 차가 불타고 있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노동청 쪽에서 불길이 검은 연기와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불,최루탄,연기 등이 범벅이 되어 마치 전쟁터 같았다. 11시경 장성에 계신 부모님께 광주상황을 전화로 알려 드렸는데,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하니까 불통이었다. 집 앞에서는 아주머니가 "전기 나갔다. 두꺼비집을 내려라" 하고 외쳤다. 11시 이후엔 전기도,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다. 다만 시내통화는 가능했다. 11시 30분쯤 총소리가 들리자 주위 사람들이 사람이 죽었다고도 하고 공포탄이라고도 했다. 5월 20일 어제 공수부대들이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을 가택수색까지 해서 잡아갔다는 말을 듣고 장성으로 피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 시외버스공용터미털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만난 내 나이 또래의 2명으로부터 "시외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길에서 공수부대를 잘못 만나면 무조건 두들겨맞고 끌려간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시위대들이 아무 차나 보이는 대로 탈취해서 불을 붙여 공수부대 쪽으로 밀어 붙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1일 절에 가려고 준비한 음식(주로 떡이었다)을 동네 아줌마들은 시민군 차에 넣어주기도 하고 도로 주변에 모여 이야기하던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기도 했다. 특히 시장아줌마들이 시위차량에 주먹밥, 음료수 등을 적극적으로 주었다고 들었다. 도청 쪽으로 나가보니 전일빌딩 셔터에 여러 가지 대자보가 걸려 있고, 시민들은 군데군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시민군이 탄 차량이 몽등이로차체를 두들기며 노래와 구호를 외치면서 지나갔다. 21일 이후 외곽지역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특히 새벽 3,4시경에 들리는 총소리는 사람을 미치게 했다. 시민군이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주민들이 그들의 차에다 넣어주는 음식물,도청 스피커에서 시체확인하라는 소리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24일엔 비가 내렸는데,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상무관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우산을 쓰고 기다렸다가 분향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7일 새벽 1시경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려왔다. "시민 여러분, 공수부대가 시내로 들어옵니다. 무기를 가지고 도청으로 모입시다." 하지만 밖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총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직도 분노에 치를 떨고 있다. 5·18이 발생하게 한 주동자를 찾아내어 처벌해야 한다. 그 처벌방법은 죽이는 것 뿐이다. 오직 그들의 죽음만이 필요하다‥‥(조사 · 정리 한수정) [5.18연구소]
첫댓글 자료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