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이 갖추어야 할 Membership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수십년전만 해도 산행의 조직이나 운영에 있어서 선후배 사이는 물론 연령에 따른 상하가 구별되어 명령과 추종의 관계가 엄격했었다.
대체로 보아 다른 스포츠나 조직과는 달리 군대는 물론 선원조직 그리고 산행을 위한 파티, 즉 대원구성에 있어서 그 지휘.지도체계는 너무나 뚜렷한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명백한 까닭이 있다.
다른 스포츠나 오락, 레저, 놀이를 위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도 그 조직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갖가지 규제나 규정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생명을 거는 것과 같은 극한적인 상황을 예상한 내용들은 아니다. 그러기에 그저 적당히 한들 능률이나 성과의 여부는 다르겠지만 그 자체가 결코 목숨을 거는 것과 같은 큰 위험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쟁을 위한 군대조직이나, 산더미 같은 높은 파고를 무릅쓰고 대양을 헤쳐 항해를 계속하기 위한 선박의 승무원조직은 그렇지 않다. 전시의 군대는 언제 적의 침투와 기습에 직면할 것인지 예상도 불가능하며, 해상의 선원들은 언제 암초에 부딪치거나 파도에 휩싸일 것인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 높은 산에 오르는 산악인의 안전도 예외일 수는 없다. 만년설에 쌓여 있는 높은 산악지대는 물론 낮은 산이라 할지라도 험한 절벽에서 실족이라도 하면 그만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된다.
산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치명적 조난사고는 반드시 태산준령에서만 돌발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근교에 있는 낮은 산에서만 하더라도 군데군데에 귀중한 산악동지의 목숨을 앗아간 묘석이 발견되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며 그들의 명복을 빌게 된다. 그만큼 산행은 기후의 급변을 예측하지 못했거나 길을 잘못 들거나 암벽에 잘못 매달리게 되면 언제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는 위험 앞에 노출케 된다.
그렇듯 산행은 위험과 목숨을 건 운동이기에 옛날부터 그 조직이나 지휘체계에 있어서 군대나 선원조직처럼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오늘날에는 편리할 뿐 아니라 안전성을 배려한 좋은 등산장비가 개발되고 있고, 산길이 안전하게 개척되어 있기 때문에 지난날의 등산에 비해 위험도는 훨씬 줄어들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처럼 등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20, 30년 전만 해도 선배나 리더의 지시는 군대에서의 상하관계 못지 않게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선배가 후배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또한 간절한 것이었으며,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그야말로 살신성인하는 훌륭한 선배도 있었고 리더도 있었다.
매사에 있어 그렇지만 즐거운 산행과 등산을 하기 위해서는 산행의 구성원이 우선 좋고 서로의 마음이 맞아야 한다. 대체로 보아 등산조직은 한번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등산조직이 이루어지면 수년 또는 수십년 동안 지속되는 친목단체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동안 산행을 함께 하는 山友클럽이 되기도 한다.
도시 근교의 한나절 산행이라면 모르지만, 많은 경우 1박2일 또는 2박3일의 산행도 있고, 외국의 산을 원정하는 경우에는 1주일 이상 한달 남짓 걸리는 긴 산행도 있다. 같은 밥을 먹고 한 방에서 잠을 자면서 문자 그대로 희노애락을 함께 하게 되면 집단이 곧 산악파티이다.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면서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침식을 함께 하는 山友들의 모임은 바로 군대에 있어서 전우의 관계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구성원들은 우선 스스로 맡은 직분과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식량, 의료, 기록, 보급 및 수송, 장비, 기상, 보도 등 맡은 바 분임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협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으로 산사람 스스로가 인격과 교양을 갖추어야 하며 겸허해야 하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인간성을 간직해야 한다.
등산가 윈슬로프 영은 “참다운 등산가는 산에 오르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며 산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사색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등산가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정말로 산에 대한 깊은 사랑과 함께 산을 사색하고 산을 아끼고 보호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뜻과 행동을 함께 하게 되면 거기에서 진짜로 즐겁고 의미 있는 산행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등산의 일행이 되는 경우 등산 자체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등산의 안전관리 문제이다. 특히 겨울철 적설기 등산이나 해외에 원정등산을 할 경우 대원들의 안전을 관리, 유지하는 것은 가장 우선된 과제이고 책임이라 할 수 있다.
몇 사람이 함께 등산을 하는 경우 거기서는 인간관계의 조화가 필요하다. 리더와 대원간의 엄정한 지휘체계는 물론 상의하달과 하의상달의 和氣에 찬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대원 상호간의 횡적유대와 화목과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각자가 자기책임을 다하게 되면 산행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질 것이며 운행 그 자체도 순조로워질 것이다.
그 어떤 조직에도 선도자나 지휘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유독 산악조직에 있어서는 그 같은 리더의 존재는 절대적이며 그가 하는 역할과 기능은 조직 자체의 존재와 기능을 좌우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유능한 리더의 리더십에 의해 산행의 안전과 성패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암벽등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깍아 세운 듯한 바위 위에 한 가닥의 자일에 매달려 암벽의 정점에 올라야 하는 경우 아래를 내려다보면 백 길 발 밑이 아찔해 질 따름이다.
발 하나 잘못 딛고 손끝 하나 잘못 잡으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그때 자일의 선두에 서 있는 리더와 맨 끝에서 방향지시하는 라스트, 즉 서브 리더가 기술과 경험이 풍부하고 침착하고 노련하면 자일 파티는 우선 마음이 놓이고 든든해진다. 왜냐하면 우선 리더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명 리더의 존재가치는 평상시엔 잘 이해되지 않는 수가 있다. 그러나 정말로 위기상황에 놓여지거나 중대한 선택과 결단이 필요한 다급한 초미의 순간 바로 리더의 현명한 판단과 지도가 요청케 되고 발휘케 된다.
훌륭한 리더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훌륭한 구성원, 즉 멤버가 뒤따르게 된다. 그런 뜻에서 리더십과 membership 또는 participationship은 표리의 관계에 있으며, 그것이 일체화 될 때 조직은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며 위기관리는 물론 목적을 성공적으로 성취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등산에서의 리더는 다른 스포츠경기에서의 감독이나 코치 그리고 주장의 역할과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해야 한다. 그 점에서 산악리더는 산에 관한 모든 지식은 몰론 산행의 기술과 경험이 풍부해야만 한다.
일반 사회에서처럼 산에서는 나이가 많은 선배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재력있는 사람이 그대로 리더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리더의 선정은 바로 멤버들의 현명하고도 공정한 판단에 의해 추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등산에서는 리더 없는 산행이 일반적이다. 리더가 있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상징적인 리더이다. 오늘날 우리의 등산인구가 이같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리더 없이 그런대로 큰 사고가 빈발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우리의 산악이 낮을 뿐 아니라 유순하다는데 기인했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암벽등반이나 겨울 설산등산에서는 리더의 선정 그 자체에 신중과 책임이 수반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위의 같은 시각과 안목에서 우리의 산행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리더의 기본 속성을 몇 가지로 요약하여 정리해 보기로 한다.
첫째. 산악리더는 산에 대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풍부한 경험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미 앞에서도 지적한바 그대로이지만, 그는 스스로 치밀하고도 섬세한 관찰력을 간직해야 한다. 오르고자 하는 산의 전체적 지형은 물론 그 날의 기상, 대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 그리고 진행계획의 짜임새에 이르기까지 깊이 생각하고 꾸며 나가야 한다. 계획과 운행이 잘 조절되고 조화를 이뤄야 산행은 유쾌하고 보람있게 이루어 질 수 있다.
똑같은 산을 오르는 경우에도 그 날의 멤버들의 수나 그들 개개인의 경험과 체력 그리고 오르고자 하는 산의 지형이나 산세 그리고 기상조건 등에 따라 다양하게 산행을 진행시킬 수 있다. 산은 하나이지만 다양한 산행의 과정에서 무한한 변화를 체감케 할 수 있다.
같은 산이라 할지라도 왕복등산, 횡단등산, 종주등산, 집중등산, 극점 또는 극지등산, 등 다양하다. 그 경우 종합적 판단과 선택은 리더에 의해 최종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둘째. 리더와 멤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소통되어야 한다. 산악조직이 다른 집단구성과 달리 엄격한 리더십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리더 스스로가 편견이나 독단 또는 전횡을 해도 좋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일단 현명한 최종결정에 이르기까지는 리더 스스로가 멤버의 의견개진을 자유롭게 개방하여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산악리더라고 해서 산에 관해 모든 면에서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악리더 는 상대적으로 산에 관한 경험과 기술 및 지식이 많다는 것이며 동시에 산을 통해 풍부하고 유연한 인격과 다정다감한 인간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산악멤버와 구별되어질 따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산악리더는 유능한 조직자가 되어야 한다. 대원 각자가 갖고 있는 체력, 개성, 능력을 잘 조화시켜 전체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자발적 협력을 유도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게 될 때 각자는 맡은 바 책임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며 팀웍도 잘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실 리더십 여하에 따라 멤버들의 용기와 투지는 물론 모든 잠재력까지 효과적으로 동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산악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한다. 명령이나 하고 지시나 하면서 군림하는 식의 자세나 태도를 취하게 되면 대원들은 결코 거기에 심복하지 않고 그를 존경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리더의 리더십은 하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동의와 합의에 의해 밑에서부터 상향적으로 조성케 되는 것이 순리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곤란과 위험에 직면했을 경우 리더는 그것을 선두에서 돌파할 용기와 자신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절대로 저돌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리더가 무모하게 앞장서서 난관을 돌파하려는 것까지는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더 스스로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고를 입어 리더십의 발휘가 불가능해 질 경우 그 등산 파티 전체는 지도자를 잃은 오합지졸이 되어 오히려 더 큰 위기와 위험을 맞게 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리더는 경직되기보다는 언제나 유연해야 한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리더는 모름지기 자연에 대한 사랑과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오늘날 등산과 산악운동에 있어서 가장 집약된 문제점은 바로 산림파괴와 자연훼손 문제이다. 등산객들이 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보호의 차원을 떠나서 바로 인류에 대한 높고 깊은 사랑과 직결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산악리더들은 산에 대한 깊은 철학과 함께 무궁한 인류공동에 대한 사랑을 깊이 간직한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산악리더 스스로가 그 같은 높은 자각과 함께 그것을 실천하게 될 때 일파만파로 모든 산악인이나 등산객들의 가슴속에 자연보호에 대한 사랑이 파고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
첫댓글 참 좋은글을 접하였습니다... 어렴풋 알고있던 얘기를 체계적으로 접하게 되었군요, 우리 산악회 김용관대장님께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