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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방송대 국문과 국어연구 원문보기 글쓴이: 박우진
<제가 남긴 댓글부터 보시고 그 전에 아래 33번 글(아, 젊음은 오래~)부터 보십시오.>
8월 1일 참 무거운 마음으로 떠났던 4박5일의 짧은 여행. 그때 만났던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의 두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 성과란 게 작은 음악파일 몇 개이지만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 다시 이곳에서 만났던 아이들 두 달 동안 아주 길지만 행복한 강을 건넌 느낌이다.
'2008 동북아시아 평화희망학교 우리학교 독서문화캠프' 내가 참여했던 행사의 제목이다. 우리 학교의 조남철 교수님께서 이사로 계시고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인연도 있는 동북아평화연대란 곳에서 주최한 행사인데, 이 동북아평화연대는 중국, 러시아 연해주, 일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문화 교류, 정착 지원, 장학 사업 등을 하는 단체이다. 이번 행사는 중국 동북삼성 전역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 학교 아이들을 모아 진행하는 독서문화캠프였는데 나는 이 단체에 있는 선배의 소개로 교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독서지도가 아니라 수업 과정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갖가지 글감, 이야깃감으로 노래를 만드는 일.
행사 참여 기간 중 꼬인 일정들, 해결하고 가야 할 일들, 공항에 가기 직전까지 다른 일을 하다가 허겁지겁 기타만 챙겨들고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가겠다고 했지만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곡은 잘 만들어질지, 아이들 분위기는 어떨지, 수업을 꼭 해야할지 난감한 마음만큼 일상의 압박 또한 커서 정말 억지로 끌려가는 심정으로 중국 하얼빈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60여 명의 아이들이 중국 각지에서 인솔교사와 함께 참여하였다. 이튿날 캠프장소인 하얼빈의 만방중학교에서 드디어 개회식과 함께 다섯 개의 반으로 나뉘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약간은 낯선 환경과 독서선생님들과 구체적인 약속이 없어 개회식을 한 강당에 홀로 남아 아이들이 수업할 교재 중 시집 한 권을 꺼내 뒤적이다 시 하나에 곡을 붙이며 다가올 수업의 부담감을 달래보려 했지만 그리 성공한 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표현력이나 자기 주장이 한국 아이들에 비하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선생님의 말씀에 조용히 따라왔고 무얼 하든지 기다릴 줄 아는 순박한 아이들이었다. 처음 들어간 중학생반에서 읽은 책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과 힘들게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동화 '아이떼이떼까이'였다. 이미 고교 입시의 중압감에 눌린 중학생 아이들은 무척이나 수줍어하고 무언갈 남 앞에서 말하기 어려워하는 자신들이 스스로도 안타까웠던지, 뭔가 반응을 요구하는 반선생님의 채근에 겨우겨우 한마디씩 이야기했다. 반선생님도 아이들의 반응 없음에 지치셨는지 내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노래도 불러주고 즐겁게 해주려 노력했는데 나 역시 그리 신통치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만은 참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반응을 하고 참여를 하는 것이라라.
이 반은 먼저 읽은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 내용으로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겨우겨우 입을 연 아이들의 한두 마디, 선생님의 정리, 후렴엔 내가 '아이떼이떼까이'라는 말(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주문)을 붙여서 가사가 완성된다. 그리고 오후 수업 끝. 저녁 후 전체놀이 시간에 옆방에서 잠깐 노래의 도입을 만들다가 아이들과 채 친해지기 전이라 레이크레이션에도 함께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가는 3일 동안 노래를 만들어 연습시키고 마지막 날 발표까지 힘들 것 같은 생각. 숙소로 돌아와 마저 곡을 완성하고 잠이 든다. 떠나오던 순간의 무겁고 힘든 마음보다 어떻게 진행하고 어떤 노래를 만들지 기대와 긴장으로.
다음날 오전 일정은 필드워크 즉 야외활동이었다. 참, 이곳은 하얼빈,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던 곳이기도 하고 일본군의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가 있는 곳. 야외활동도 바로 731부대. 이후 하얼빈의 명소 두 곳(오래된 성당과 쇼핑타운)까지 들러 2시에 학교로 도착한다. 어차피 아이들도 다 이곳에 있으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 따라다니는 수밖에. 그나마 어제 수업한 중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친해지려 애썼다. 그래도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에 응해준 쑥스러운 아이들과 어쩌면 더 쑥스러웠을 노래 선생님.
오후에 학교로 돌아와 중학반 아이들에게 어제 만든 노래를 잠깐 가르쳐주었다. 첫 곡이 다행이 잘 나와 아이들도 반응이 좋았고 노래를 곧잘 따라했다. 약간 붙은 자신감과 함께 다음은 5학년 아이들이 주로 있는 소학3반 차례. 이 반은 아이들에게 자유주제로 받아놓은 시가 있었다. 그 중에 마치 노래의 옷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시 두 편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아 시간아'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 사는 아이가 보고 싶은 엄마와 늙지 말길 바라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 '나의 빨간 엑스들' 시험지 틀린 문제에 빨간 X표시를 보면서 그 느낌을 재밌게 표현한 시. 아,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시의 아이들이 쌍둥이란다. 고등학생만한 큰 덩치로 자신들의 시가 뽑힌 것에 신기해하고 어색해했다. 곧바로 옆자리에서 노래를 만드는데, 다급한 심정을 이 뇌도 느꼈는지 주저없이 콩나물을 생산해 내는 중. 두 곡을 30분만에 만들고 악보를 정리하고 1층에서 복사해 오고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가르치기까지. 헉헉. 재밌게 따라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아, 이 반엔 음의 통제에 좀 자유로운 아이들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도. 이제 두 반밖에 안 했는데 이틀 일과가 끝났다. 다른 반 선생님들과 어떤 내용으로 노래를 만들지 상의하였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캠프 3일째는 소학1반에서 시작하였다. 이 반은 3학년들 중심의 가장 어린 반. 아마존 여행에 관한 책을 읽고 아마존을 광고하는 내용의 그림과 글을 색도화지에 예쁘게 꾸미고 있었다. 아마존을 홍보하는 시엠송 분위기를 생각하였다. 저학년이라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쉽지 않았는데 책에 나오는 여러 동물들과 전설 속 동물들을 배치하여 가사를 만들고 노래도 차례차례 완성했다. 참, 이 반엔 심양시에서 온 김미경이란 아이. 어제 저녁 후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자기 노래 좀 들어봐 달라던 아이. 장윤정, 원더걸스,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춤과 함께 멋지게 부르던 아이. 노래자랑에서 상도 탔단다. 노래를 꽤나 잘했다. 이 반 노래의 중간 부분은 이 아이의 솔로를 염두해 두고 만들었다. 솔로를 맡긴 기대답게 열심히 따라 연습하였고 다른 아이들도 나머지 부분을 재밌게 따라 불렀다. 제목은 '아마존으로 오세요'
다음은 소학 4반. 6학년 아이들. 소학 4반은 참 분위기가 좋았다. 이 반은 한국어에 서툰 러시아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는데 다른 어떤 반보다 더 친하고 다정해 보였다. '우리 반의 모습'이란 주제로 쓴 따끈따끈한 시가 손에 전달되었다. 서먹서먹하다가 친해지는 과정, 헤어짐이 아쉽고 서운한 감정들을 담은 12명 아이들의 소중한 시였다. 어느 한 아이의 시라도 빠뜨릴 수 없어서 12명 아이들의 모든 구절들을 모자이크 하듯이 조금씩 모아 가사를 만들어갔다. 아이들은 옆에서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뭐지, 뭔가 부족한 느낌. 그렇게 헤어짐을 다들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나자는 내용은 어느 아이의 시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들아, 왜 다시 만나잔 내용이 없니? 보고 싶지 않겠어?' 아이들의 답이 돌아왔다. '다시 못 만나잖아요.' 아! '다시 못 만나잖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뭐라 할 말을 잃었다.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온 게 난생 처음이라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기회는 다시 없을 걸 잘 아는 아이들. 만나고 싶어도 다시 만날 수 없을 거 같아 차마 시에 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의 동의를 구했다. '우리 언젠간 다시 만날 거란 희망을 가지고 살자. 앞으로 너희들이 크면 얼마든지 기회가 생길 거야. 다시 만나자란 말 가사에 넣을게' 이윽고 노래를 다 만든 다음 아이들에게 불러주었다. '우리 반은 예쁜 무지개' 제목 역시 아이들의 시에서 나왔다. 노래가 끝나고, 아~~, 난 감격하고 말았다. 아이들의 표정, 눈망울, 무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 따뜻한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이 반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기뻐하니 더없이 행복해졌다.
이 반의 러시아 친구 두 명 보바와 베니가 하루 먼저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점심 후 송별회를 가졌다. 모든 학생들이 다 모이고 지금까지 노래를 만든 반은 송별의 인사 겸 연습 겸 노래를 불러주었다. 마지막 소학 4반 아이들 차례. 아이들이 보바와 베니를 위해 준비한 노래이기도 했다. 노래 가사는 미리 인솔 선생님이 통역을 해주었다. 노래 마지막 부분인 '다음번에 우리 다음에 새싹 돋아 다시 만나요'을 부를 때 사이에 '보봐, 베니'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아이들.
송별회가 끝나고 오후 3시. 5시 저녁 시간까지 두 시간. 드디어 마지막 한 반이 남았다. 이 반은 무려 16명. 이 반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말을 선생님께 듣고 그걸 노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모이고 하나하나씩 이름을 적어가면서 꿈이 뭔지 각자 물어보고 대화하였다. 동화작가, 피아니스트, 화가, 운동선수, 선생님, 교수, 한국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꿈을 잃어가는 한국의 아이들에 비해 꿈에 대해 솔직하고 절실하고 구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꿈에 대해 노래를 만들겠다니까 신나게 만들어달란다. '너희들 춤도 출 수 있어?' '네' '그럼 신나고 춤도 출 수 있게 만들어줄게.' 아이들을 저녁 식사 후 다시 모이게 하고 남아서 곡을 만들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자신들의 꿈을 스스로 말하게 하자. 16명이니 4명씩 그리하여 이 반 노래 '우리 꿈'은 4절로 탄생하였고 약간의 동작과 춤을 출 자리를 약속하며 연습하였다.
드디어 모든 노래가 다 완성되었다. 그러나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내일 오전 발표회. 마이크 쓰는 것. 서는 위치, 동선 어느 것 하나 정한 게 없었다. 강당 기계실에 있는 마이크와 선들을 모조리 꺼내서 작동이 되는 것들을 설치했다. 모두 4개. 4개라도 되니 다행이다. 이제 리허설을 해야 한다. 저녁에 혼자라도 남아서 아이들과 연습하고 가려고 했더니 선생님들 자봉단 모두 시내에서 회식이 있어 개별행동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이들과 내일 아침 일찍 만나기로 하고 그날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날, 아침 7시반 학교로 와서 아이들을 맞이하였다. 무대에 서는 순서, 마이크 잡는 아이들, 등장, 퇴장, 마이크 집고 놓는 요령 등등 하나하나 숙지를 시키며 진행을 했다. 아이들은 정말 진행에 잘 따라주고 말도 잘 듣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집중하여 듣고 따라했다. 짧은 시간에 열 번도 채 못 불러봤을 노래들을 벌써 외우는 아이들도 많았다. 드디어 발표회. 독서수업 결과물 전시와 함께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맨 먼저 귀여운 소학 1반 아이들의 '아마존으로 오세요.', 그리고 소학 2반의 '시간아, 시간아'와 '나의 빨간 엑스들' 다음은 16명의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 소학 2반의 '우리 꿈', 그리고 중학반 아이들의 '아이 떼이떼 까이', 마지막 곡이기에 마땅한 소학 6반 아이들의 '우리 반은 예쁜 무지개'까지 너무도 예쁘고 대견하게 잘 해주었다. 물론 약속한 춤 동작을 쭈삣쭈삣 눈치만 보다가 못 한 소학2반이 아쉬웠지만 연습시간 부족이었지 아이들 잘못은 아니었다.
정말 정말 무사히 잘 끝났다. 이 모든 게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들의 소망과 이야기들이 곡을 제때에 잘 나오게 한 것이다. 페막식 후 학교 앞 마당에서 이별을 준비하였다. 소학 4반 6학년 아이들은 자기 반 선생님과 눈물의 인사를 나눈다. 나도 이 반 아이들이 제일 예뻤고 정이 많이 갔다. 내게 '선생님 노래 잘 배웠습니다.' 하고 인사했던 아이도, 다시 못 만날 걸 알면서도 내게 '선생님 내년에 또 오세요' 하고 실언하고 만 아이도 6학년 아이였다. 보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와 적응하는 데 예상했던 대로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반을 배정받지 않아 또 숙소가 아이들과 달라서 아이들과 덜 친해진 게 무척 아쉬웠는데 일상에 복귀하면서 생각해 보니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엊그제 한국의 아이들과 녹음을 마쳤다. 신림동 어느 공부방 아이들이었다. 어린이 노래패 아이들의 매끈하고 낭낭한 목소리를 빌렸다면 쉽게 끝났을 테고 결과물도 훨씬 좋았을지 모른다. 훈련도 안 돼 있고, 녹음도 처음이고, 말도 잘 안 듣고, 연습도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들과 5번의 연습을 같이 하면서, 노래를 잘 부르게 하겠다는 마음은 애초에 포기했다. 그저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이었기를 바란다. 이 곡들을 부르고 녹음한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중국에서 만난 아이들과 가는 실만큼의 무엇이라도 이어졌으면... 과연 내가 그런 마음을 서울의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곧 중국에 있는 아이들이 다운받을 수 있게 이 파일들도 어느 곳에 올려질 것이다. 아이들은 모른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들을 수 있게 만들어졌는지. 나 스스로 한 약속이었으니... 아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그때의 기억을 아이들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까? 하얼빈에서의 짧은 4일의 시간, 그리고 서울에서의 50여일의 시간 동안 나는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녹음 파일이 남았으니 꿈은 아닌가 보다. 아니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캠프 기간에 노래를 만들어 들려주었을 때 한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보자기에서 토끼를 만들어내는 마술을 본 후의 표정처럼 환하게 웃는 그 아이의 표정과 그 표정을 만든 얼굴 속의 그 눈망울. 그 아이의 눈은 분명히 동주의 눈이었다. 내게 동시를 들려주며 해맑게 웃던 동네 오빠, 바로 동주의 눈이었다. 정말 난 꿈을 꾸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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