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사, 남경필·주호영·김혜성 의원 등 정계 인사도 대거 참석했다.
"불 들어가요. 스님 나오세요" 묘엄 스님 다비식 엄수
묘엄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염불이 봉녕사에 메아리치는 가운데 거화(擧火) 신호가 떨어지자 스님들이 새끼줄로 만든 방망이에 불을 붙이며 "불 들어가요. 스님 나오세요"를 외쳤다.
외침과 함께 참나무와 새끼줄, 솔가지 등을 덮어 연꽃 모양으로 만든 다비대에는 연기가 치솟았다.
6일 오후 1시 수원 봉녕사 일주문 내에 마련된 다비장에서는 묘엄 스님(妙嚴·80)의 다비식이 엄수됐다.
봉녕사 다비장을 빽빽히 메운 2000여 명의 사부대중들은 스님의 육신이 한줌 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스님이 불생불멸한 법신(法身)이 돼 영원토록 중생을 제도해줄 것을 기원했다.
묘엄 스님의 다비는 이튿날인 7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문도들은 스님의 정골(頂骨)을 수습해 봉녕사에 봉안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묘엄 스님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봉녕사 우화궁 앞에서 3000여 명의 승려와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스님의 극랑왕생을 비는 타종을 시작으로 삼귀의, 조계종 어장 원명스님의 영결법요, 행장(약력)소개, 영결사, 조사 순으로 진행됐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묘엄 명사의 가장 큰 족적은 비구니 승가를 세우신 것"이라며 "수행과 교육으로 불회상을 장엄하신 이 시대의 '대애도 고타미(大愛道 瞿曇彌·부처님의 이모이며 최초의 출가 비구니)'"라고 추모했다.
종단의 원로들도 조사를 통해 묘엄 스님의 유덕을 기렸고 김문수 경기도지사,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 이철규 경기경찰청장 등 정관계 인사들도 영결식장을 찾아 꽃을 올리며 스님의 열반을 애도했다.
1시간 30여 분에 걸친 영결식이 끝나고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장에서 500m 가량 떨어진 일주문 내 다비장으로 운구됐다.
스님의 법호를 적은 명정을 필두로 해 스님의 영정과 위패, 만장 등을 앞세운 운구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길을 가득 메웠으며, 스님과 신도들은 합장과 독경으로 묘엄 스님의 마지막 이승길에 동행했다.
지난 2일 오전 세수 80세, 법랍 67세로 봉녕사에서 입적한 묘엄스님은 한국불교 비구니계의 큰 어른으로 조계종 종정을 지낸 청담(靑潭·1902~1971) 스님의 친딸이며,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다.
출가 후 경봉, 운허, 동산스님 등 전설적 고승들에게 배운 묘엄 스님은 동학사 승가대학 최초의 비구니 강사,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 2007년 10월에는 조계종 사상 처음으로 비구니 최고 지위인 명사(明師) 법계를 받았다.
묘엄 스님은 제자들에게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라는 유훈(遺勳)을 남겼다.
묘엄스님
청담스님이,
정화운동을 할 때에....유일한 약점이 하나 있었다.
비구의 입장에서 대처와 상대하는 상황에서..이 약점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것이....출가한 이후에 딸을 하나 가젔다는 것이었다.
즉...청정한 승려이면서 파계를 하여 속가의 부인과 잠자리를 가져서 고명딸을 하나둔 것이었다.
그러나...청담스님의 입장에서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출가후 어쩌다 집에 들렀는데....늙은 노모가 대를 이을 아들 하나를 꼭 낳아 달라고 애걸하길레 효도를 다하기 위하여 마지못해 잠자리를 가진 탓이다.
이 파계탓에..스님은 이후 십년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맨발로 다녔다.
이렇게 생긴 딸이 있으니..
그 호적등본을 떼어들고 다니며...대처승들은 여봐란듯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청담스님을 흉보기에 바빴다.
아들도 아닌 딸 때문에 곤혹스러워진 것이었다.
이렇게 얻은 딸...청담스님의 딸을...보다못한 성철스님은 그녀로 하여금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서 얻은 법명이..묘엄이다.
이후 묘엄스님은 성철스님의 유일한 비구니제자가 되어 성철스님에게서 선을,대종장이셨던 운허스님에게서 교를,자운스님에게서 율을 배웠다.
이렇게 하여...
묘엄스님은 당대의 가장 빼어난 스님들로 부터 선.교.율을 모두 배웠다.
여기에 더하여..속가의 아버지로....청담스님을 두었다.
즉..가장 빼어난 아버지에,가장 빼어난 스승을 모두 가젔다.
이리보면...
묘엄스님은...참으로 행복한 여인이었다.
참으로 복이 많은 비구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