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산다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쓰메 소세키, 현암사, 2013.
“나는 고양이다. 이름이 아직 없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유명한 첫문장이다. 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의 처녀작이다. 1905년에 단편으로 냈는데 세간의 반응이 좋아 연재하게 된다. 2017년 기준으로 112년 된 작품이다. <변신> 카프카는 인간이 벌레가 된 이상 그 다음부터는 인간이 변신하는 것은 <변신>의 오마주로 볼 수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가 인간의 세상을 풍자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동물들이 인간을 조롱하는 것은 이젠 더 이상 쓰지 못한다. 화자가 고양이라는 점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저자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00년 일본 문부성 제1회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간 영국에서 유학을 한다.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를 전공하고 돌아와 자연주의와 거리를 두고 인생을 관조하는 작품들을 발표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처녀작이지만 소세키를 인기작가로 만들어준 연재소설이다.
화자인 ‘나’는 페르시아고양이다. 고양이를 화자로 내세움으로 당대의 지식계층을 유쾌하게 희화화한다. 주인이름은 규사미이다. 분메이 중학교 담임으로 자식은 돈코, 슨코, 막내딸을 두었다. 고양이는 어슬렁거리며 주인 규사미의 행동을 관조한다. “나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는데, 그럴수록 그들이 제멋대로 군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p.21)고 말한다. 다른 고양이들도 인간들을 무시한다. 건넛집 흰둥이도 인간만큼 인정머리가 없는 족속도 없다고 투덜거린다. 인간들은 고양이들이 자신을 얼마나 조롱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보는 고양이들은 인간들이 애처로울뿐이다.
“원래 인간이라는 족속은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여 다들 우쭐거리며 거만하게 군다. 인간보다 좀 더 강한 자가 나와 혹독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거만하게 굴지 모른다.”(p.25)
주인집 사랑방에는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락거린다. 소설의 모든 에피소드는 이곳 사랑방에서 고양이가 엿듣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메이테이, 스즈키라는 친구도 자주 와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하다 간다.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광산부에 근무하는 다타라 산페이는 주인에게 참마를 선물한다. 미즈시마 간게쓰는 박사논문 준비중에 있으며 계속 유리알을 연구실에서 깎는 작업을 한다. 부에몬 군은 연애편지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곤역을 치른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생활은 너무나 납득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지 않는 물건임에도 소유권을 행사하는 인간들이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드넓은 대지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 말뚝을 세워 누구누구의 소유지로 구획하는 것은, 마치 창공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나의 하늘, 저기는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 매매한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30세제곱미터로 나눠어 팔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p.187)
고양이의 논리이지만 이치로 따지면 맞는 말이다. 인간들이 땅에 관한 소유욕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 영토를 확장하려 꿈꾸는지 보면 말이다. 누군가를 평가할 때 거리두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인간이 인간군상을 평가하는 것보다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들을 보면 너무나 우스운 모습들이 폭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뒷맛은 씁쓸해질지 모른다. 정확하고 예리한 눈으로 발자국 소리없이 어슬렁거리며 인간들을 살피고 조롱하는 저 고양이의 말들이 인간의 폐부를 들춰주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자신을 포함한 자기 본위의 이기주의와 위선적 교양주의에 물든 지식인 군상을, 더 나아가 어러석음과 뻔뻔함을 드러내는 사회전체를 풍자한다.(...)이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압권은 풍자와 해학에 있을테지만 그 뒤에 그늘로 드리워진 연민과 비애도 취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꺽거린 작가 자신에 대한 연민과 비애일 것이다”-장석주-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 유학 후 위장병을 앓으며 우울과 혼란을 겪는다. 동물들은 혼란스럽지 않다. 이들의 삶은 괴리가 없다.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동물을 보며 작가는 자신의 괴리를 포착하지 않았을까.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가 되어 인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양이 눈으로 인간의 가식을 문학 안에 끌고 온 그의 탁월함이 지금까지도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다.
<서평-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