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숲의 산중처사
전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두륜산에 자리한 고찰인 대흥사 입구에는 고목의 동백나무가 많아 그 나무 밑에 들어가면 한참을 걸어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백설이 분분한 눈 속에 동백나무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소식처럼, 다가오는 희망의 봄소식을 미리 알려주는 듯 붉은 동백꽃을 무수히 피워갔다. 동백꽃이 좋아서 찾는 선남선녀는 아름다운 동백꽃을 보면서 행복해하고, 사랑의 약속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동백나무 숲 속에서 찌그러진 초막에서 사랑하는 아내 순녀(順女)와 어린 남매와 함께 살고 있는 난장이 사내 칠성이는 눈 속의 붉은 동백꽃은 자신의 울음을 재촉하는 슬픔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칠성이는 마음이 괴롭고 슬플 때면 홀로 동백 숲속에서 흥보가를 부르면서 자신을 달랜다고 했다. 그는 흥보가를 전부 외우는 재주는 없다. 홍보의 행운을 갖다주는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주는 대목을 연속적으로 노래할 뿐이었다.왜 그노래만을 연속적으로 부를까? 어떤 행운을 원하는 마음은 아닐까? 독자여러분, 상상해보시라. 동백 숲 속에서 슬픔 많은 난장이 사내의 흥보가를 부르는 모습과 소리를…. 그것은 괴로운 숙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절규인지 모른다.
내가 처음 칠성이를 우연히 만난 때는 80년 초 어느 봄날 오후였다. 당시 나는 오랜 방랑에 지쳐 대흥사의 표충사 옆에 있는 건물 ‘대광명전(大光明殿)’의 요사채 가운데 구석진 방을 얻어서 걸망을 풀고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대흥사 사하촌 거리를 지날 무렵이었다. 사하촌은 대흥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관광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 주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때마침 상춘객들로 붐비었다. 그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뵈는 중년 사내와 네 명과 중년 여자 두 명이 길옆 주점 앞에 내놓은 평상 위에 술상을 펴고서는 술잔을 들면서 낭자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곤색양복의 사내가 초라한 난장이 사내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곤색양복의 사내는 일행을 대표하여 흥보가를 부르도록 강요했다. 이봐, 칠성이, 자네가 잘하는 흥보가 한 곡조를 뽑아 보란 말이야! 자네의 노래를 안주삼아 여기 있는 사람 모두 한 잔 할 테니까.” 칠성이는 상고머리에 낡고 헤어진 옷을 입었고, 웬지 앞 이빨이 위아래 뭉텅 빠져 있었다. (훗날 들으니 누구에게 부당히 매를 맞아서라고 한다.) 그는 작은 체구에 손발이 크게 보였고, 마디 굵은 손은 험한 노동으로 상처투성이였다. 칠성이는 두 손을 배에 마주 모우고 겁먹은 얼굴로 송구스러운 표정을 애써 짓고 허리숙여 머리를 조아리면서 애소 했다. “지가 노래는 잘 못 부르는 구먼유.” “뭐? 임마, 네가 흥보가를 흥얼거린다는 것은 해남읍에서도 알 사람은 알고 있어. 왜 우리 한테는 안 부르겠다는 말이지?” “사실 지는 흥보가를 배우지도 못허고, 놀러오신 분들이 허시는 것을 보고 귀동냥 해서 들은 것이라서….” “허, 이 새끼가 좋은 말로 청하니까 말을 안 듣는구먼. 여보게들, 이 녀석이 지금 우리를 무시하고 있어. 이런 무식한 종자는 주먹맛을 보여줘야 돼. 그러면 고분고분 해 지거든.” 곤색양복의 사내가 버럭 화를 내며 주먹으로 칠성이의 안면을 사정없이 구타했다. 칠성이는 저항과 비명도 없이서서 맞고 있었다. 급기야 칠성이는 코피를 줄줄 흘렸다. 칠성이는 손으로 코피를 훔치면서 울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 지가 노래를 부르겠어유."곤색양복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매를 맞아야 말을 듣는구먼. 어서 해!" 칠성이는 코피묻은 얼굴로 젖은 눈을 들어 먼 하늘에 못 박고서는 울먹이는 비창한 음색으로 ‘흥보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숫제 통곡소리 같았다. 사내들과 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왁자하니 웃고 떠들면서 기분좋게 슬잔을 권하고 들이켰다.
나는 지나가다가 비극의 광경을 목도하고 수도승으로서 도저히 간과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의분심에 술 마시는 남녀들을 꾸짖었다. “똑같은 인간들끼리 이 무슨 돼먹지 못한 수작이오! 인과응보가 두렵지 않소?!” 나는 칠성이의 노래를 제지하고 손을 잡고 나왔다. 이때 곤색양복의 사내가 눈알을 부라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중놈이 절에서 염불이나 하고 있을 일이지, 왜 나서? 개 같은 놈 같으니! 너도 혼 좀 나볼래?” 곤색양복의 사내가 술병을 들어 치려고 술병을 집어들고 일어나 덤볐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 사내를 술상으로 밀어버렸다. 와장창! 술상이 엎어지고 술안주와 국물 등이 엎어지며 남녀는 모두 얼굴과 옷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여자는 처음 입은 옷이 국물로 버렸다고 찢어질 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저 못된 중 잡아라.” 남녀가 분통이 나서 팔을 걷고 나섰다. 나는 그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거 보시오. 내가 인과응보가 무섭다고 하지 않았소?” 나는 칠성이의 손을 잡고 대낮에도 컴컴한 동백 숲속으로 뛰었다.
동백 숲에 있는 작은 바위에 앉아 가쁜 숨을 쉬는데 칠성이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합장하여 머리를 조아리더니 내 등 뒤에 무엇을 발견하고서는 몹씨 부끄러운 얼굴이 되었다. 후다닥 코피를 손과 손등으로 닦았다. 돌아보니 가난한 시골여자들이 흔히 입는 빛 바랜 하늘색 한복을 입은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컴컴한 동백 숲속에 유령처럼 서서 넋나간 듯 칠성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칠성이는 위엄을 가장하여 큰 소리로 꾸짖듯 그녀를 향해 말했다. “뭘 보냐? 집에 가지 않고!” 의아해 하는 나에게 칠성이는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지 마누라 구먼유.” 그녀는 남편과는 달리 보통 키에 균형이 잡힌 몸매, 큰 눈에 슬퍼 보이는 눈, 상큼한 콧날, 예뻐 보이는 도툼한 입술, 비교적 잘생긴 편에 드는 여자였다.
그녀는 교양미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슬프고 허탈해 보였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어울리지 않는 부부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녀는 남편의 말을 듣고서는 나를 힐끗 보는 듯 하더니 칠성이를 향해 몹시 창피하다는 듯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이고는 도망치듯 황황히 그곳을 떠나갔다. 나는 두 부부를 보면서 수호지의 난장이 사내 무대와 미인 마누라인 반금련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남편에게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위에 앉은 나에게 칠성이는 내 앞에 두 손을 맞잡고 황송한 듯 몸을 비틀고는 서서 공손하게 물었다. “법철스님, 명당은 존재할까유?" "명당은 존재하지요. 그러나, 명당보다 전생에 복을 지어놓아야 합니다. 한데, 명당은 왜?"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는 논이 2백마지기가 넘는 시골부자였대유." "그 많은 재산이 어디로 갔오?" "할아버지는 지관들의 말에 심취하여 당대에 발복하는 명당을 찾기 위해 조상들 무덤을 파헤쳐 1년에 한 번씩이다 싶게 이장을 해댔대유." "편히 쉬어야 할 망자들이 괴로웠구먼. 다, 부질없는 탐욕 탓이요. 그래 이장해서 좋은 일이 있었오?" "대통령, 장관, 장군, 국회의원, 판,검사,재벌이 당대에 나온다는 명당에다 조상의 유해를 모셨지만...할아버지는 재산만 탕진하고 홧병으로 돌아가셨지유." "과욕이 화를 부른거유." "아버지마저 명당을 찾아 조상묘를 파헤치다가 결국 재산을 말아먹고, 저같은 난장이 외아들을 낳았답니다. 아버지는 홧병에 연일 술을 마시다가 돌아가셨지유. "........!" "그런데, 어떻게 예쁜 아내와 인연을 맺었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바닷가 어촌마을의 딸많은 가난한 집에 우리 집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논 5마지기를 주고 사와서 저와 결혼을 시켰지유."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요." "마누라는 지가 난장이라는 것이 창피 하대유." "하지만, 마누라는 저같은 난장이가 아닌 남매를 낳아주었지유. 고맙지유. 저는 대흥사를 포함해서 사하촌의 청소부 일을 해서 겨우 목구녘에 풀칠을 하고 살아유.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어 괴롭고 슬플 때면 가끔씩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유. 무엇 때문에 영면하시는 조상의 무덤을 파헤쳐 이 과보를 받을까유? 법철스님, 제가 받는 고통에는 모두 무덤 탓인가유, 아니면 전생의 또다른 업보인가유? ” "전생에 지은 정업 탓이지요. 그러나, 희망을 가지세요. 아들이 장성하면 휼륭하게 될 것이니까요." 칠성이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스님이 보시기에 지 아들이 큰 인물이 될까유? 아들 녀석은 육사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라는데, 장군이 되면, 알겄슈? 혁명을 해서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될지? 지가 대통령의 애비가 될 지유? 히히히히." "그런 꿈은 접으셔야 합니다." 칠성이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거듭거듭 말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등 뒤에서 칠성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 지 마누라가유. 관광객 남자들을 찾아가 공술을 얻어 마사러 다니는데, 바람이 안날까유? 나를 버리지는 않겄어유? 스님은 도인이니까, 미래를 환히 아시잖어유?" 나는 칠성이에게 빙긋이 웃어 보이고 말없이 동백 숲을 떠났다.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내가 쉬고 있는 대광명전에 젊은 승려들이 밤이면 나를 찾아왔다. 젊은 승려들은 대흥사에서 출가하여 행자생활을 한 후 수계식을 마치고 승려가 되고 나서는 불당과 도량청소나 동원되어 일하며 하루 세 끼를 소화할 뿐 승려가 배워 익혀야 할 삼장(경·율·논)을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학문을 권장했다. "배우는 것도 때가 있는 것이지. 자네들이 출가위승할 때, 절에서 밥만 얻어먹으며 노동만 할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곳에서는 아무도 불교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승려들의 종합 교육장으로는 합천 해인사가 명문이네. 결심을 하고, 해인사를 찾아 불교를 체계적으로 배우게." 나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절집 식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해인사가 승려교육장으로써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추천하면서 그들의 향학열에 불을 지폈다. 밤이면 젊은 승려들은 대흥사이외의 사찰과 불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자 나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대흥사의 종무소 소임자 승려들은 젊은 승려들이 밤이면 나를 찾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승려라는 수계직분만을 주고 하루 세 끼 공양만으로 만족하게 하면서 무임금의 일꾼으로 부려먹으려는 젊은 승려들이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밤이면 젊은 승려들에게 대흥사에 강원이 들어서는 운동을 벌여야 하고, 강원에서 여러분은 당연히 불교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들은 동감했다.
초가을 어느 날, 나는 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사하촌을 지나는데 칠성이가 보였다. 그는 때묻은 큰 운동모자를 머리에 쓰고, 팔뚝에 ‘자연보호’라는 하얀 바탕에 검은 파란글씨가 적힌 완장을 두르고 리어카를 끌면서 부지런히 사하촌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나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는 깜짝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그는 연방 서툰 합장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더니 갑자기 두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지 마누라가 도망을 쳤구먼유. 석달 째가 되어가는구먼유.지 마누라를 찾아주세유."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알아냈구먼유. 지 마누라를 데려간 남자는 키가 크고, 힘도 좋아 황소같더구먼유.주먹이 내 대갈통만큼 큰데 그 주먹으로 한 방 맞으면 지같은 것은 즉사할 것이구먼유." 그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자식을 버리고 도망 가다니 독한 년이지유? 우리 집으로 좀 가셔유. 얘기좀 해유." 나는 그를 동정하면서 그의 안내로 찌그러진 초가집을 찾았다. 그의 낡은 집 마당의 여기저기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 가운데 재활용의 쓰레기들이 산적해 있었다. 그는 나를 그의 방안으로 이끌었다.어두컴컴한 좁은 방안은 천정과 벽지들이 마분지로 발라져 있고 그나마 오래되고 그을음이 잔뜩 끼어 어둡고 불결해 보였다. 방안에는 새까맣게 때에 절은 무명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고, 그 위에서 대 여섯 살짜리의 남자 애와 서 너 살의 여자애가 천진난만하게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방 위쪽 벽에는 하얀 상자 모양을 한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조상의 신위가 모셔져 있었다. 당대 발복의 명당을 찾기위해 조상의 묘를 마구 파헤치며 가정의 경제를 파산시킨 조상들의 신위를 정중하게 모셔 놓고 있었다. 칠성이는 그 조상 신위앞에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과 일과가 끝나는 저녘에는 청수그릇에 물을 올리고 절을 세 번씩 한다고 소개했다. "워쩌겠슈. 저를 낳아주신 조상인디. 잘 모셔야 하지 않겄어유?"
칠성이는 나를 방안에 두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오는데, 손에는 서슬이 퍼런 조선 낫을 들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그는 눈에 불을 켠듯 무섭게 눈을 하고서는 조선 낫을 잡아들고 낫으로 대상을 향해 팍 찍어 버리는 흉내를 내면서 나에게 유언처럼 이렇게 말했다. “법철스님! 지는 아이들을 버리고 간 그년과 그년을 데리고 사는 놈을 찾아 낫으로다가 팍, 찍어 죽여 불랍니다! 지는 분한 마음에 매일 틈만 나면 낫을 숯돌에다 갈고 있어요! 제길, 그 녀석이 제아무리 힘이 황소 같은 놈이로서니 낫으로 팍 찍으면 끝나지 별 수 있겄서유? 저희 아이들 좀 부탁합니다. 절에 데려가 상좌를 삼든지 하시고. 지는 년놈을 꼭 쥑여 버릴 랍니다! 내일부터 년놈을 찾아 나서겠어요.” 난장이 사내는 눈에 불을 켜고 낫을 들고 허공을 향해 마구 찍어대는 연습을 하면서 분한 울음을 터뜨리었다. 아이들도 덩달아 울음을 터뜨리었다. 나는 칠성이에게서 낫을 빼앗아 방바닥에 놓고 강조하여 말했다. "어떠한 경우에서든 살인을 해서는 안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불행해집니다. 아시겠어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분해서 못살겄어유!" 칠성이는 다시 낫을 낫을 집어들었다.그는 마치 칼춤을 추듯 낫을 들고 미친듯이 춤을 덩실덩실 추어댔다. 험악한 얼굴이 되어 낫으로 대상을 마구 찍어대는 흉내를 내었다. 만류를 해도 그는 미친듯이 괴성을 지르며 낫춤을 추어대었다. 나는 멀리서 저녘 예불을 알리는 쇠북소리가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사흘이나 칠성이의 집을 방문했으나 그는 부재했다. 컴컴한 방안에 아이들만이 숨죽여 울고 있었다. 나는 절에서 불공이나 제사 후에 남은 떡과 과일을 싸서 갖다 주면서 아이들을 달랬다. 칠성이는 어디로 갔을까? 정말 낫으로 살인을 하고 말 것인가. 나는 부처님께 칠성이가 무사하고 죄를 짓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닷새째가 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산사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루에 좌선자세로 앉아 추녀끝의 낙숫물소리를 들으면서 칠성이를 걱정하던 나는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멀리서 요란스럽게 경찰차의 경보음이 들려 오더니 경보음은 대광명전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 대문이 왈칵 열리면서 칠성이가 온몸에 비를 흠벅 맞고서 미친듯이 내게로 달려 들어왔다. 그의 옷은 피칠갑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핏물이 흐르는 낫이 들려 있었다. 나는 칠성이의 모습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탄식을 토했다. "아아,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칠성이는 숨가쁘게 말했다. “스님, 저 좀 숨겨주세유. 제발, 어서유…!” 나는 칠성이를 숨기기 위해 그의 손을 잡았다. 그 때 빗속의 마당에는 무장경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경찰은 낫을 들고 저항하는 칠성이를 향해 탕! 공포탄을 쏘았다. 우르르 꽝! 뇌성과 번개가 번쩍였다.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사위는 어두워졌고 비는 거세어질 뿐이었다.
나는 비속으로 뛰어 칠성이의 집으로 달려갔다. 어두운 하늘아래 쏟아지는 비속의 동백 숲은 귀기조차 느껴졌다. 칠성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는 새까만 남포등의 석유심지에 불을 밝히우고 신위에 향을 피우고 신위아래서 무릎꿇고 고개 숙여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반가워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지는 서슬이 퍼런 낫을 가슴에 품고 마누라가 사는 곳을 찾았지요. 고것이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지 마누라가 아니고 높은 분 사모님인줄 착각했다니까요.(그는 놀란 듯 두눈을 둥그렇게 떠 보였다.)" 나는 묵묵히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를 건네 볼 뿐이었다. 칠성이는 말을 이었다. "확 변해 버렸드먼요. 돈 많은 염전하는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쌀밥, 고기 국만 먹고산다고 하대요. 살이 허옇게 토실토실 쪘구, 도망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몰라 볼 정도였어요. 지는 우선 고년을 낫으로 팍 찍어 죽여 버리고, 그 다음 황소 같은 놈을 죽여야 한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지요. 옷자락속에 숨겨둔 낫을 빼들었지요.고 나쁜년을 팍 찍어 버리려는데,…” 그 때 그녀가 두 손으로 배를 보호하듯 하면서 앙칼지게 외쳤다. "야, 병신같은 놈아, 애밴 여자를 죽일 것이여?" 칠성이는 낫을 쳐들엇다가 내리며 마누라를 보았다. 칠성이의 눈에 아내의 불러오는 배가 보였다. 칠성이는 마누라에게 사납게 물었다. “너, 뱃속에 든 아이가 누구의 아이냐? 그것만 빨리 말해!” 그러자 마누라는 비웃는 웃음을 짓더니 화를 벌컥 내어 대답했다. “이 병신아, 애기 아빠인 쥔 양반이 오면 너는 맞아 죽는다! 빨리 꺼져!” 라고 앙칼지게 소리쳤다.칠성이는 다시 낫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칠성이는 비분한 마음으로 단호히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집으로 돌아가자! 다 용서해줄께." 마누라는 사납게 대꾸했다. "이 병신아, 이제는 너한테 절대 안가.니가 나한테 어떻게 해주었냐? 거지생활이었잖아!니가나에게 쌀밥에다 고깃국을 배부르게 먹여준 적이 있었냐? 있다면 말해 보아!" "......!" "나는 더이상 거지같은 생활은 하지 않겠어.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내인생은 쌀밥에다 고기국이야, 알겠어?" 그녀는 게거품을 물듯이 화를 내며 다시 말했다. "이 병신아, 쥔 양반이 오시기 전에 빨리 도망이나 가! 어서!" 칠성이는 쌀밥에다 고깃국 타령을 해대는 마누라의 말을 듣고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 "그래, 니말이 맞다. 너는 지지리도 고생만 했지. 내가 너를 진짜 사랑한다면, 네가 찾은 행복을 망쳐서는 안되겄지. 외출했다는 황소 같은 놈을 만나 죽이면 안되는거야.암." "그래, 너도 인간이라면, 내가 찾은 행운을 망쳐서는 안돼! 어서, 가!" "그래 알았다. 가겠어. 니가 낳아준 아이들을 혼자 잘 키울께." 칠성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허무하게 마누라에게 등을 보이고 떠나오고 말았다. 저간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칠성이가 갑자기 굉장한 기밀을 누설하는 것처럼 남이 들을세라 불안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피더니 내 귓가에 입을 바짝 들이대고 귀속 말을 하려 들었다.
그의 입에서는 생애를 통하여 칫솔이라고는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듯한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황치에서 푹 썩는 냄새가 나의 코를 찔러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나는 내심 그 냄새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인욕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법철스님, 믿고 고백하건대, 지 마누라는 분명, 황소같은 놈의 애를 임신한 것 같았어유. 히히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그만 썩은 냄새를 풍기는 칠성이의 얼굴을 귓가에서 썩 밀어내 버렸다. "아니, 뭐가 좋아서 웃음이 나옵니까?" 하마터면 바보같은 작자라고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
칠성이는 차라리 나를 나무라는 듯한 눈길로 쓱 보더니 또 썩은 냄새를 풍기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모르시는 말씀이구먼유. 아, 지 마누라가 그놈 아들만 하나 쑥 뽑아 놔봐유? 여생을 쌀밥과 고기 국으로 대우받고 안 살겠어유?" ".......!" "어떤 사람은 지 보구 년놈을 경찰서에다 고소하면 혼도 내주고 돈도 뜯을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마누라를 고생시켜서야 되나유? 죄받을 일이지요." "......." "사실은 지가 마누라를 지극히 사랑했어유. 선녀같이 예쁜 여자가 저같이 돈없고 못생기고 무식한 난장이를 서방으로 하여 금쪽같은 자식을 낳아준 것만 해도 한없이 고맙지유. 안그래유? ”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지는 앞으로 두 새끼나 잘 키울 생각이구먼유. 조상님께 마누라가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드리면서 살래유." 나는 슬픈 얼굴이 되어 말했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지는 죽을 때 까지 잊지 않을 거구먼유." 칠성이의 눈에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울면서 절규하듯이 말했다. "지 자식놈은 꼭 육군사관학교엘 보내야겄어유. 저의 꿈을 아시쥬? 지는 높은 사람 애비가 될꺼구먼유. 조상님들이 도와주실거 구먼유.” 나는 할말을 잊고 거세게 흐느끼는 칠성이의 등을 두두리며 오직 자녀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칠성이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바보? 나약…? 그러나, 칠성이의 사랑은 어떤 사람도 감히 행할 수 없을 것 같은 희생적이요, 아름다운 사랑이며, 어쩌면 수도승들이 말하는 자비와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그친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 산사로 향하는데 어떤 느낌에 돌아서서 칠성이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초라한 난장이 사내가 등을 돌린 채 동백나무를 부여안고 심하게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내 귀에는 울음 섞인 흥보가 노래 소리가 무심한 동백 숲을 휘돌아 하늘로 승천하고 있었다.
나는 밤새워 부처님께 애소 했다. “부처님,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제 뜻대로 살아 보지 못하고 정업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가 가슴에 한만 가득히 안고 속절없이 죽어갑니다. 부처님이시여, 중생의 정업을 소멸시킬 수는 없는 지요….” 이틀 후, 나를 눈에 가시로 보던 종무소측에서 나의 처소에 단전(斷電)했다. 밤늦게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총무를 찾아가 전기값을 줄터이니 단전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총무는 비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법철스님이 미워서, 우리가 단전을 할 리가 있겠어? 전선이 오래되어 고장을 일으켰을 게야. 전기공사를 전면적으로 해야겠네. 아다시피 사중경제가 안 좋은 것 아시지? 빠른 공사를 못하게 될거야."
나는 쓸쓸히 웃고 묵묵히 걸망을 챙겨 대흥사를 이별했다. 걸망을 메고 대흥사를 떠나는 버스에 오를 때, 칠성이는 내가 왜 떠나는지도 모르고 자기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라고 아이처럼 울며 붙잡았다.
세월은 무심한 강물처럼 흐르는데, 상기도 나의 귀에는 동백숲과 산중처사인 칠성이의 흥보가 소리는 숙명의 한으로 들려오고 있다. 아아, 동백숲 산중처사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흥보가속에 제비가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주듯이, 동백숲의 산중처사에게 행운이 오기를 나는 지금도 부처님께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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