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하는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추진위원회(www.kimsungsuk.or.kr)'가 지난 10일 종로구 부암동 126-8 으로 이전 한중 기념사업회 추진을 위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운암(雲巖) 김성숙(金星淑)선생(1898∼1969)은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신 분으로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 소재 봉선사에서 비밀리에 독립문서를 만들어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전국 각지로 다니며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이후 1923년 유학생으로 북경에 건너가 조선의열단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중국전역의 한국청년들을 모아 '재 중국조선청년총연맹'을 조직하여 북경 광둥 등지를 다니며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지난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전선연맹'을 해체하고 임시정부와 통합하면서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취임하였다.운암 김성숙 선생은 해방 후 좌우합작을 주장하며 혁신계 정치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승려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운암 김성숙 선생은 5.16후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른다.
운암의 일생은 젊어서는 항일무장투쟁으로 일관하였고, 해방 후에는 좌우 합작을 위한 반 이승만 정권 운동과 통일운동을 펼쳤고, 5.16 이후에는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노선을 걸었다.
한 평생을 자신보다 남을 돌보던 선생이 말년에 가난하게 지내는 것을 안 지인들은 11평짜리 방 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선생이 지내시던 곳을 이은상(李殷相)이 "피우정(避雨亭)"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운암 김성숙 선생의 정신을 받들어 기념사업회는 ▲운암김성숙기념사업관 건립 ▲독립 유공자 자녀 장학사업 ▲독립운동 유적지 발굴 및 공원 조성사업 ▲독립유공자 빈민 지원 사업 등을 국가보훈처와 조계종총무원 및 각 기업체 등과 연계하여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중국측 사업회는 운암 김성숙 선생이 중국인 부인(두군혜 여사)사이에 둔 세아들인, 두젠(杜健-음악가), 두감(杜甘-전 북경대교수),두롄(杜連-중국국가발전개혁위원회 정보센터 부주임)이 맡아 한국측과 연계하여 각종 지원사업을 할 예정이다.
특히 중국 세 형제중 막내인 '두롄(Du Lin)'씨는 중국의 산업현대화 프로젝트의 핵심부서인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 산하 '국가정보센터(State Information Center) 부주임(副主任)'을 맡고 있는 중국내 최고위층 핵심 경제관료로 국내기업들 사이에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 해외거주 한국인 2세로서는 세계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사인 셈이다. 두젠씨 두간씨도 중국에서 저명한 문화예술계 인사로,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큰 아들인 두젠 씨의 큰사위는 북경 인민일보 문화 주임기자로 재직하고 있어 양국간의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중국 고위층과 연계하여 우리나라 불교와 중국,북한불교의 행사교류를 추진할 예정으로 있다.
한편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추진 위원장에 채영석 전의원을 선임하고 민윤식,동아일보 김학준 사장 등을 중심으로 각 팀별 전문 인력을 구성하여 적극적인 대국민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다.전직 대통령인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고문으로 추대하여 박차를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채영석 위원장은 "진정 국민과 함께하는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가 되기 위하여 한층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실제적인 사업들을 순차적으로 추진해 가겠다"며 "운암선생의 세 자녀들이 중국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하는 점을 들어 중국과의 연계도 깊이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념사업회는 운암 김성숙 선생과 관련된 자료나 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사업회는 전화 (02)391-9100(대), 팩스(02)391-5600. 담당 관리팀 김신선(02)391-1100(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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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국무위원중 유일한 승려(봉선사 출신)인 운암 김성숙 재단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채영석)가 오는 6일 오후 6시30분 조계사 대웅전 앞마 ©민성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