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충정은 만고토록 강상을 부축하리니(精忠萬古扶綱常)
조 충익공 태채 천장 만사〔趙忠翼公 泰采 遷葬輓〕
································································· 병산 이관명 선생
나는 하늘에 호소하고 싶은데 하늘은 막막하고 / 我欲籲天天漠漠
나는 땅에게 묻고 싶은데 땅은 망망하나니 / 我欲叩地地茫茫
하늘과 땅 사이에 한 기운이 행하는데 / 天地中間一氣行
수많은 작용의 핵심 누가 주장하는가 / 紛紛機紐誰主張
예로부터 변란 생길 즈음을 살펴보면 / 試看自古禍變際
하늘이 꼭 나라를 위해 어진 신하 낳는다네 / 天必爲國生忠良
기운 나라 부축하고 세우기는 한 선비로 족해서 / 扶傾定難一士足
한 손으로 오히려 대들보 떠받들 수 있는데 / 隻手猶可擎棟樑
어찌하여 네 현인이 한 시대에 함께 나왔건만 / 如何四賢竝一時
가슴 치고 피눈물 닦으며 헛되이 방황하게 했는가 / 推胸抆血空彷徨
등려의 오 개월 동안 명령 끊어지고 / 滕廬五月命戒絶
주침하던 많은 나날에 임금의 약 맛보았지 / 周寢多時君藥嘗
뜬구름 참담하게 대궐 가리고 / 浮雲慘憺蔽紫闥
온갖 괴이한 일 한낮에도 다투어 일어났으니 / 百怪晝行爭跳踉
성호와 사서 어찌 말할 수 있으랴 / 城狐社鼠豈足道
두서 명의 원흉들이 의정부를 점거했네 / 數三元兇據巖廊
사악한 계획으로 자취 감춰 아는 이 없었는데 / 邪竇潛蹊秘莫識
입으로 천서 물고 손으로 왕의 법도 잡았기에 / 口啣天書手王章
엄혹한 유배길 사방의 가시밭으로 나가 / 嚴程四出荊棘路
장기 낀 바다 동과 남으로 삼성과 상성 같았지 / 瘴海東南隔參商
호시탐탐 엿보다가 갑작스레 번쩍이더니 / 耽耽虎視閃倐忽
뜨거운 불길이 한밤중에 곤강을 태워 / 烈火中宵燒崑岡
구름도 시름하고 귀신도 곡하여 일월이 흐려지자 / 雲愁鬼哭日月昏
바른 기운이 하늘로 치솟아 만길의 길이였지 / 正氣騰空萬丈長
고륜에 가슴 가득한 분노가 실렸으니 / 尻輪載得滿腔憤
오색구름이 향안 곁으로 돌아가 아뢰었지 / 五雲歸奏香案傍
너울너울 옥절 차고 세상 밖을 노닐면서 / 聯翩玉節跨汗漫
속세를 돌아보며 고향을 애달파할 테지만 / 睠顧塵寰悲舊鄕
대궐에서 어느 날 저녁에 보책이 전해지니 / 金宮一夕寶冊傳
함지에서 씻고 나온 해님이 막 빛을 발했지 / 洗出咸池初日光
크나큰 은혜의 물결이 구천에 닿아 / 浩蕩恩波徹九地
선조의 장로들은 눈물 줄줄 흘렸는데 / 先朝長老涕滂滂
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가 썩은 그물에 제압되고 / 呑舟巨魚掣朽網
연못에 가득한 미꾸라지 도리어 양양해졌구려 / 鰍鱔滿池還洋洋
춘추의 대의가 날로 어두워지더니 / 春秋大義日晦盲
동방의 예의도 쓸어낸 듯 사라졌기에 / 禮義東方埽地亡
당년에 나라 근심하던 뜻 상상해 보면 / 尙想當年憂國志
오늘에 이르도록 저승에서 슬퍼하리라 / 至今夜臺應悲傷
이 마음 빛나고 빛나 쇠와 돌도 뚫고 / 此心皎皎貫金石
순결한 충정은 만고토록 강상을 부축하리니 / 精忠萬古扶綱常
무덤가에서 푸른 옥이 된 통한 다 풀지 못했지만 / 荒原不盡化碧恨
연진으로 옮겨 가 한 쌍의 칼로 묻히게 되었구려 / 移向延津雙劍藏
인간 세상에 불구대천의 치욕 나만 홀로 안았기에 / 人間獨抱戴天羞
강한에 피눈물 뿌리며 늘 애를 태우나니 嗟哉後死無窮痛
이 말 가져다가 내 동생에게 알려 주었으면 / 寄語欲報吾季方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2권 / 시(詩)>
[주-1] 조 충익공(趙忠翼公) :
조태채(趙泰采, 1660~1722)로,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조태구(趙泰耉)의 종제(從弟)이며, 조태억(趙泰億)의 종형(從兄)이다.
[주-2] 네 현인 :
1721년(경종1) 연잉군(延礽君)을 세제(世弟)로 책봉하는 문제로 일어난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사사(賜死) 또는 참수형을 받은 노론 4대신 이이명(李頤命)ㆍ김창집(金昌集)ㆍ이건명(李健命)ㆍ조태채(趙泰采)를 가리킨다.
[주-3] 등려(滕廬)의 …… 끊어지고 :
전국 시대 등(滕)나라 문공(文公)은 아버지 정공(定公)이 죽자, 5개월 동안 여막에 거처하면서 정사(政事)에 대한 계명(戒命)이 없이 상례(喪禮)에 극진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주-4] 주침(周寢)하던 …… 맛보았지 :
주침은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부친 왕계(王季)에게서 나온 고사이다. 문왕이 하루 세 번 왕계에게 문안을 드렸는데, 첫닭이 울면 의복을 입고 침문(寢門) 밖에 이르러 내수(內豎)에게 “오늘은 안부(安否)가 어떠하신가?” 묻고, 내수가 “편안하십니다.”라고 답하면 문왕이 그제야 기뻐하였다. 《禮記 文王世子》 조태채가 당시 판중추부사로 있으면서 시약청(侍藥廳)에서 입진(入診)하여 숙종의 병을 살핀 일을 말하는데, 《병산집》 권14 〈우의정조공묘지명(右議政趙公墓誌銘)〉에 “간절한 정성으로 약을 맛보다가 숙종이 승하하자 애통해하였다〔誠切嘗藥, 痛纏遺弓.〕”라고 하였다.
[주-5] 성호(城狐)와 사서(社鼠) :
사람들이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는 사직단과 성곽 밑에 굴을 파고 지내는 쥐와 여우라는 뜻으로, 국가 권력의 비호 아래 온갖 장난을 치고 농간을 부리는 간사한 소인배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6] 사악한 계획 :
유두(幽竇)는 은밀한 구멍이라는 뜻으로, 사악한 계획을 가리킨다.
[주-7] 입으로 …… 잡았기에 :
주(周)나라 때 봉황이 천서(天書)를 입에 물고 문왕(文王)의 도읍지로 날아와 노닐었으므로 무왕(武王)이 봉서(鳳書)의 기(紀)를 받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藝文類聚 卷99 鳳凰》 경종이 즉위한 후 조태채는 정언 이정소(李廷熽)의 〈건저상소(建儲上疏)〉를 채택하여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판중추부사 이이명(李頤命), 좌의정 이건명(李健命), 호조 판서 민진원(閔鎭遠) 등과 함께 1721년(경종1) 연잉군(延礽君)의 세제책봉을 건의하여 실현시켰다. 《屛山集 卷14 右議政趙公墓誌銘》
[주-8] 엄혹한 …… 나가 :
1721년에 김일경(金一鏡)이 노론 사대신을 축출하라고 올린 상소문이 채택되어 조태채가 진도로 위리안치된 일을 가리킨다. 《屛山集 卷14 右議政趙公墓誌銘》
[주-9] 삼성(參星)과 상성(商星) :
삼성은 동쪽 하늘에, 상성은 서쪽 하늘에 있는 데다가 각각 뜨고 지는 시각이 달라 영원히 서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흔히 멀리 떨어져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다. 《春秋左氏傳 昭公元年》
[주-10] 곤강(崑岡)을 태워 :
선인과 악인이 모두 참혹한 병화(兵禍)를 당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곤강은 곤륜산(崑崙山)으로, 《서경》 〈윤정(胤征)〉에 “곤강에 불길이 번지니 옥석이 모두 탄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는 1722년 조태채가 사사(賜死)된 일을 가리킨다. 《屛山集 卷14 右議政趙公墓誌銘》
[주-11] 구름도 …… 길이였지 :
조태채가 사사되던 날 바람과 우레가 하늘에서 내려치고 무지개가 지붕 뒤쪽에 일어나더니, 장사 지낼 때에도 무지개가 나타나는 이변이 있었다고 한다. 《屛山集 卷14 右議政趙公墓誌銘》
[주-12] 고륜(尻輪) :
고륜신마(尻輪神馬)의 준말로,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조물주가 나의 꽁무니를 점점 변화시켜 수레바퀴로 만들고, 나의 정신을 말로 변화시킨다면, 내가 이를 이용하여 타고 다닐 것이니, 어찌 다시 수레가 필요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주-13] 향안(香案) :
대궐 안의 향로나 촛대 옆에 놓아두는 책상으로, 임금을 모시는 시종신(侍從臣)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주-14] 옥절(玉節) :
옥으로 만든 부절(符節)로, 고대에 천자(天子)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 지닌 일종의 신표(信標)이다.
[주-15] 세상 밖을 노닐면서 :
한만(汗漫)은 광활한 세계에서 한가하게 노닒을 뜻한다. 노오(盧敖)가 북해(北海)에서 노닐다 한 선비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내가 구해(九垓) 밖에서 한만과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내가 오래 머무를 수 없다.”라고 하였다. 《淮南子 道應訓》
[주-16] 대궐에서 …… 전해지니 :
금궁(金宮)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으로, 대궐을 가리킨다. 보책(寶冊)은 본래 임금이 내린 책서(冊書)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영조(英祖)의 즉위를 가리킨다.
[주-17] 함지(咸池) :
해가 목욕을 한다는 곳이다. 《회남자(淮南子)》 권3 천문훈(天文訓)에 “해가 양곡에서 나와 함지에서 목욕한다.”라고 하였다.
[주-18] 크나큰 …… 닿아 :
구지(九地)는 구천과 같은 말이다. 1724년 영조(英祖)가 즉위하여, 조태채의 관작을 회복시키고 제사를 지내 주도록 명하면서, ‘충익(忠翼)’이라는 시호를 내린 일을 가리킨다.
[주-19] 저승 :
야대(夜臺)는 장야대(長夜臺)의 약칭으로, 무덤이나 저승을 가리킨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3년조에 무덤 속을 뜻하는 ‘둔석(窀穸)’에 대한 두예(杜預)의 주(註)에 “둔(窀)은 후(厚) 자와 같고 석(穸)은 야(夜) 자와 같으니, 후야(厚夜)는 장야(長夜)와 같다.”라고 하였다.
[주-20] 푸른 옥이 된 :
화벽(化碧)은 선혈이 푸른 옥으로 변했다는 말로, 충신지사(忠臣之士)를 칭송하는 뜻이다. 주(周)나라 장홍(萇弘)이 경왕(敬王)에게 충간(忠諫)을 하다가 왕이 들어주지 않자 자살하였는데, 그 피가 3년 만에 푸른 옥으로 변하여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莊子 外物》
[주-21] 연진(延津)으로 …… 되었구려 :
진(晉)나라 장화(張華)와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라는 두 보검을 각각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죽자 두 보검이 저절로 연평진(延平津) 속으로 날아 들어가 두 마리 용으로 변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이 때문에 연진검합(延津劍合) 또는 연진지합(延津之合)이라고 하면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이나 부부의 합장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조태채와 부인 청송 심씨(靑松沈氏)를 합장했다는 뜻이다.
[주-22] 인간 세상에 ···· 안았기에 : 노론사대신은 신임사화때 모두 참화를 입어 돌아갔는데 자신은 그때 죽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있음을 말한다.
[주-23] 내 동생 :
이관명의 아우인 한포재 이건명(李健命)을 가리키는데, 그 또한 노론사대신 중 한분으로 1722년(경종2) 신임사화 때 참수형을 받고 죽었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황교은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