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도 세자(思悼世子)가 참화를 당한 뒤 왕세손에 책봉되었다가, 신변의 위협 속에서 즉위한 정조는 영조의 뜻을 이어 탕평책을 실시하려 하였다. 그것은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고, 강화된 왕권의 기반 위에서 나름대로의 정치를 펴고자 하는 것이었으니, 이에 남인 시파를 중용하고 진보적 지식인 및 서얼 계층을 기용하여 자신의 정치 세력으로 삼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규장각을 설치하여 정책 자문 기구로 삼고, 수원성을 새로이 수축하여 자신의 세력 근거지로 삼는 한편, 이 곳에 친위군 성격의 장용영을 설치하여 붕당들의 세력 기반이었던 기존의 군영에 대항하여 자신의 군사적 기반을 구축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측근이었던 채제공(蔡濟恭)을 수원 유수로 삼아 장용영 도제조로서 지휘권을 가지도록 하였다. 지휘관으로는 대장, 영장 등이 있었고, 군병의 총 수는 1만 2천여 명이었다. 장용영은 나중 순조 2년(1802) 총리영(總理營)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