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26년 갑자(1444,정통 9) 7월8일 (을묘)
임금이 우찬성 황보인(皇甫仁)과, 도승지 이승손(李承孫) 등에게 이르기를,
“몽고 색목인(蒙古色目人)은 원나라의 외척인 까닭에 모든 벼슬의 제수(除授)와 대우에 있어서 모두 다 특이(特異)하게 우대하였던 것이다. 한(漢) 나라의 고조(高祖)는 풍패(豊沛)에 대하여 광무제(光武帝)는 남양(南陽)에 대하여 혹은 탕목읍(湯沐邑)으로 이름하였고 혹은 고인(故人)으로 일컬었으니, 두 임금이 풍패와 남양을 우대함이 다른 나라보다도 특이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함길도(咸吉道)는 조종(祖宗)이 왕업(王業)을 일으킨 땅으로 나라의 기초를 정한 초기에 조종께서 일찍이 그곳 사졸(士卒)의 무용(武勇)함을 칭찬하였으며, 나도 그 도(道)의 사람들에게 벼슬을 제수할 때에는 특히 자품(資品)의 순서를 뛰어 올리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상의 분부하심이 진실로 타당합니다.”
고 하였다.
芝峯類說卷二 諸國部 北虜
元史稱色目人者。蓋謂蒙古外諸番夷人也。按小說云佛語阿修羅。卽今四夷諸色目是也。
(원사에서 칭하는 색목인이란것은 다 몽고 외제번의 오랑캐이다. 소설을 살펴보건데 불교에서의 아수라는 곧 지금의 사이 제번의 색목인이 이것이다.)
지봉유설에서 말하는 색목인의 정체는 몽고와 그리고 서융인들 이었던 것입니다. 위의 세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몽고색목인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몽고인의 정체는 색목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연행기사 문견잡기(聞見雜記) [잡기(雜記)]
몽고인은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다만 낙타의 고기를 먹을 뿐이고 또 개와 한그릇에 먹는다. 강한(强悍)하고 추악(醜惡)하기가 이와 같기 때문에 청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천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꾸짖고 욕할 때, 그를 몽고 사람에게 비교하면 반드시 불끈 성을 내고 큰 욕이라고 하니, 몽고인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중략)
대비달자(大鼻韃子)는 곧 아라사[鄂羅斯]인데, 몽고(蒙古)의 별종(別種)으로 나라가 사막(沙漠) 바깥 지극히 먼 땅에 있다. 그들은 키가 크고 몸이 건장(健壯)하여 상모가 극히 흉한(凶悍) 영악(獰惡)하다. 눈은 푸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코가 주먹같이 높고 붉은 수염이 텁수룩하게 났다. 그리고 모두 몇 사람을 합한 것같이 힘이 세다. 사람이 있어도 오줌을 누며 부녀자를 피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데 입으로 연기를 뿜지 않고 코로 내보낸다. 모두 코가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대비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청인들은 극히 두려워하여 방수(防守)하기를 극히 엄하게 한다. 출입할 때에는 갑군(甲軍)이 반드시 따라다니나 오히려 제재하지 못한다.
위의 기록 연행기사 문견잡기(聞見雜記)의 기록을 보면 몽고인은 청나라 사람과 다른 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나라 사람과 대조적으로 아주 다른 사항인 푸른눈과 붉은 수염(원문:眼碧髥紫)의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몽고인은 백인(白人) 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몽고족에서 갈라져 나온 러시아인은 당연히 백인 입니다. 오늘날의 몽고족=황인종은 철저하게 왜곡된 학설 입니다.
이러한 백인들의 나라와 접해있던 조선은 과연 황인종들만의 국가였을까요?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청장관전서 제66권 입연기 상(入燕記上) 정조(正祖) 2년 3월
19일(기묘) 바람이 불었다. 아침에는 추웠다. 30리를 가 장단(長湍)에서 점심을 먹고 45리를 더 가 개성부(開城府)에서 유숙했다................
○ 재선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이 묵는 여관에 갔더니 진사(進士) 정식(鄭湜)도 자리에 있었다. 서장관이 갑자기 한 연구(聯句)를 읊기를,
“누가 눈동자가 푸른 신선이라고 자칭하는가[誰自稱綠瞳之仙子] 누가 눈동자가 푸른 …… 라고 하지 않겠는가.[孰不曰碧眼之 …… ]”
하고서, 이어 나에게 묻기를, “지(之) 자, 밑에 무슨 글자를 붙여야 선자(仙子)와 대(對)가 되겠는가?”
했다. 내 뜻에는 재선의 눈동자가 녹색(綠色)인 것을 조롱하는 것이라 여겨 대답하기를,
“호아(胡兒) 두 글자가 매우 합당하겠습니다.” 하니, 재선이,
“호승(胡僧)으로 고치지요.” 했다. 서장관이,
“재선은 호승으로 하자 했고 정 진사(鄭進士)는 호추(胡雛)로 고치자 한다.” 했다. 그래서 눈여겨보니 정 진사도 녹안(綠眼)이었다. 아마도 정 진사가 먼저 녹동선자(綠瞳仙子)라고 칭했던 것 같다. 호(胡)는 조롱한 말이다.
위의 글은 서장관이 어느 한 시의 연구(聯句)에서 "푸른 눈동자의 신선"과 댓구를 이룰 말이 어느것이 좋은가? 하며 물으면서 "벽안의 **"에서 "**"에 어떤 글이 들어가야 좋겠는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벽안(碧眼)이라는 말의 의미는 푸른 눈동자로서 고문에서 서역에서 온 승려를 지칭할때 흔히 벽안의 호승(胡僧)이란 말로 즉 푸른 눈동자의 오랑캐 승려라는 의미로 불립니다.
즉 서역인에 대한 호칭이며 서역=백인에 대한 호칭 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벽안은 곧 서역=백인의 의미이므로 푸른 눈동자의 신선과 댓구를 이루는 푸른 눈동자의 호아(胡兒) 즉 오랑캐 아이,라 말했으며
재선이란 사람은 호승이라 하자했고,정진사는 호추로 고치자 했습니다. 그런데 정진사는 먼저 녹동선자(綠瞳仙子)라 했었다고 합니다. 위의 글을 상세히 읽어보면 정진사라는 사람은 녹안,벽안은 서역인=백인을 의미하는것을
알기에 또 자신이 녹색의 푸른눈을 가진 사람으로 되도록 자신을 폄하하는 글을 피하기 위해 "녹동선자(綠瞳仙子)"라 했었던 것입니다. 위의 글로 알수 있는 사실은 녹안=벽안의 눈을 가진 사람이 조선에서 진사를 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은 황인종 만의 국가로 볼수 없습니다. 곧 조선은 여러인종이 뒤섞인 사회이며 나라였다고 생각됩니다.
첫댓글 코큰 타타르 사람이란 러시아 사람과 몽고 사람으로 압축이 되네요. 그들이 색목인이고요. 그들이 또한 조선의 력사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군요.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