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기나긴 세월 동안
'자신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라는 조건화 속에서 살아왔다.
세상의 문화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세상의 문화들은 모두 '자신을 발전시켜라.'라는 모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들로 인해 그대의 마음은 걱정으로 물든다.
걱정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문화가 요구하는
자신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 상태에서 온다.
문화가 요구하는 것을 '해야만' 할 때 마음은 걱정할 수밖에 없다.
성취해야만 할 대상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어떻게 느긋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의 마음은 계속 미래를 동경하기 때문에
삶을 전체적으로 사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욕망의 본질상 불가능하다.
그대는 바라던 것이 오면
당장 다른 것을 꿈꾸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항상 보다 나은 것을 꿈꾼다.
그래서 걱정과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산다.
오랜 세월 인류는 이렇게 살아왔다.
아주 드물게 이런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이 생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붓다라 하고 그리스도라 한다.
깨달은 사람은 사회가 만든 함정에서 빠져나온 사람이요,
그 어리석음을 인식한 사람이다.
그대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에게 '발전'이라는 현상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우리 사회에 발전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대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그대가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을 멈출 때 삶이 그대를 발전시킨다.
그런 이완과 받아들임 속에서 삶이 그대를 어루만지며
생명이 안에서 흘러나온다.
원망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을 때 그대는 꽃피어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아마 이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교육과 문화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대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아무도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어른들이 그대의 마음에 사회의 프로그램을 심어놓았다.
부모와 사제, 정치가, 교사 등이 프로그램을 주입했다.
그들이 프로그램을 주입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계속 자신을 발전시켜라.'라는 것이 그것이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녀라.
절대로 쉬지 마라. 죽을 때까지 일만 하라.
나의 가르침은 간단하다.
'삶을 연기하지 마라.
내일을 기다리지 마라.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오늘 삶을 살라!'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