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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단희아빠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우리 모두 야물딱진 구두쇠가 됩시다!
옛날 충주 땅에 이씨 성을 가진 한 부자가 살았는데 그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지방(紙榜)을 새로 쓰지 않고 한 번 쓴 것을 기름에 절인 뒤 해마다 그것을 되풀이해서 사용하곤 했다. 이처럼 종이 한 장이라도 아끼고자 했던 이 부자를 가리켜 세상 사람들은 ‘자린고비’라고 놀렸다.
한자말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고(考)라 하고 어머니를 비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고비’는 지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충주 결인 고비’란 말도 자린고비와 유래가 같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린고비의 ‘자린’이나 결인 고비의 ‘결인’은 ‘절인’이 되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고약하고 인색한 마음을 한자어로 자린이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린고비의 어원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린’이 맞든 ‘절인’이 맞든 이 말의 유래나 어원에 대해서는 여기서 시비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요즘 세상에 이런 자린고비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자린고비를 흔히 ‘구두쇠’라 하는데 이 고유어는 한자말 수전노(守錢奴)나 인색한(吝嗇漢)과는 의미상 차이가 있는 듯하다. 몰리에르의 희곡 ‘수전노’에서 보듯 이 말은, 지나치게 재물을 아끼는 나머지 욕심으로 인해 체면이나 도리까지 저버린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고유어 구두쇠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말은 구두가 닳지 않도록 밑창에 쇠를 박고 다닌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구두쇠는 ‘굳은 쇠’로 분석되며 ‘쇠’는 돌쇠나 마당쇠처럼 사람 이름에 자주 붙는 인칭 접미어이다. ‘굳다’란 말은 단순히 딱딱해진다는 뜻만은 아니다. ‘돈이 굳다’라고 하면 헤프게 없어지지 않고 제 것으로 남는다는 뜻이요 ‘뜻이 굳다’라고 하면 한 번 먹은 마음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의지력이 강함을 의미한다.
속담에 ‘굳은 땅에 물이 괸다’는 멋진 말이 있다. 함부로 돈을 낭비하지 않고 아껴 쓰는 사람이 재산을 모으게 된다는 뜻이다. 벽쇠, 벽보 또는 구두배기라고도 불리는 구두쇠란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수전노라는 한자말에 대응하는 우리말이 있다면 그것은 ‘다랍다’나 ‘밭다’가 될 것이다. “다랍다 단돈 천 원밖에 안 줘?” “그 사람은 참 재물에 밭은 인간이야.”라 하면 지나칠 정도로 인색하여 이미 인간미를 잃어버린 사람을 지칭한다.
‘굳다’는 ‘곧다’와 뿌리를 같이하는 만큼 굳은 사람은 정신이 올바른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구두쇠란 말 속에는 열심히 돈은 벌더라도 수전노와 같이 돈의 노예는 되지 말고, 돈을 아끼더라도 인색한처럼 인간미를 잃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이 말을 만든 조상들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듯하다.
구두쇠는 이와 유사한 또다른 고유어, 곧 꽁생원이나 좀팽이, 또는 깍쟁이라는 말과는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 영역이 다르다. 오히려 비슷한 말이 있다면 짠돌이나 짠지가 아닐까. 짠돌이가 남자만을 지칭한다면 이와 짝되는 여자는 짠순이가 되겠으나 짠순이보다는 또순이가 더 어울린다.
인천에 사는 청년이라 해서 짠돌이가 아닐 것이며 함경도에서 월남한 아가씨라 해서 또순이가 아닐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짠돌이나 또순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짠돌이나 또순이는 결코 나쁜 의미로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오히려 대견스럽고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명명되었다는 점은 국어 사전에 당당히 등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입증된다.
최근 우리의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누구나 입만 벌리면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 위기다라고 하면서 여전히 사치 풍조나 과소비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속에서도 모 재벌의 대표는 해외 여행 중에 자신의 속옷은 호텔에서 손수 빨아 입는다고 들었다. 또한 모 자동차 회사 대표의 부인은 자사 제품 중 가장 작은 차종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오늘날의 거품 속에서도 알뜰함과 살뜰함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픈 큰 손(大手)의 행태를 보고 놀라워했다. 이제 우리 손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작더라도 그 손끝은 맵고 야물어야 한다. 바탕이 단단하고 굳은 사람을 ‘야물다’라고 하니 지금 이 시대는 야물다 못해 야물딱찐 사람을 요구한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아니라 구두쇠 정신이 미덕인 시대인 것이다.
구두쇠란 말 속에는 열심히 돈은 벌더라도 수전노와 같이 돈의 노예는 되지 말라는 조상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듯하다.
올 한 해 심명의 불길을 당겨 보자
얼마 전 대학에서 대형 컴퓨터를 설치하고 그 가동에 앞서 고사(告祀)를 지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현대 과학 문명의 상징인 최첨단 기계 앞에 놓인 돼지머리와 고사떡, 이건 참 묘한 대조가 아닐 수 없다. 귀신이나 자연물을 섬기던 전통적 샤머니즘이 현대 물질 문명 속에서도 그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본다.
지금도 이사나 먼 길을 떠날 때는 반드시 ‘손 없는’ 길일(吉日)을 택하고자 한다. ‘손’이란 날수에 따라 네 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는 귀신의 이름이다. 대개 음력 9일과 10일(19, 20, 29, 30일도 마찬가지다)에는 이 악귀가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이때만은 그 해악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떡해 먹을 집안’이란 욕설이 있다. 고사에는 떡이 필수적인데 집안에 우환이 겹쳐 고사라도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시골에는 마을 지킴이(靈物)로서의 당산나무와 성황당이 있고, 집안에는 터주와 조상신을 모시는 가정도 있다. 지금도 붉은 색 내의를 즐겨 입는 할머니들이 있다. 붉은 색은 불을 상징하기에 귀신이 가장 두려워하여 옛날 신부는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입는 옷도 그랬다. 팔로 침입하는 귀신은 소매의 빨간 끝동으로, 젖가슴으로 들어오는 놈은 빨간 깃이, 뒤로 접근하는 놈은 머리의 붉은 댕기가, 앞으로는 빨간 옷고름이 잡신의 근접을 막았던 것이다.
예전에는 가족 중 누군가 병이 들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으레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런 굿판을 일러 ‘푸닥거리’라고 하는데 이는 질병이나 재앙의 근원이 되는, ‘살을 푼다’는 뜻에서 쓰이는 말이다. 한풀이, 원풀이 심지어는 심심풀이에서 보듯 우리 조상들은 이 살(煞)도 풀어 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푸념’이란 말도 여기서 생겼다. 푸념이란 본래 굿판에서 무당이 신의 뜻이라 해서 정성 들이는 사람에게 꾸지람하는 말을 일컫던 것인데 지금은 그저 길게 늘어놓는 불평 불만의 의미로 쓰인다.
무당이란 말도 巫堂이라는 한자말로 알고 있으나 이는 ‘묻다(問)’에서 파생된 우리말이다. 점쟁이를 가리켜 지금도 ‘무꾸리’(중세어로는 ‘묻그리’)라 부르는 곳이 있다. 자신의 운세를 무당에게 묻고 무당은 다시 자신을 의탁한 신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면 무당이란 존재는 사람과 신과의 사이를 언어로 연결시켜 주는 중개자에 다름 아니다. 만주어로 소리(音)를 ‘무단’이라 하고, 처음 무당이 되는 신호를 일러 “말문이 터졌다(열렸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무당이 행하는 굿의 본래말은 ‘구시’로서 복이나 행운을 뜻한다. 굿이란 말의 본뜻을 어떤 분은 일본어 ‘구스리’와 관련지어 약(藥)이라 하고, 또 불을 얻는 방법과 농사법을 일러 준 고시(高矢)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고시에서 연유한 것이 ‘고수레’, 곧 들에서 음식을 먹거나 무당이 푸닥거리를 할 때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 떼서 던지며 외치는 소리(고시네-고시레-고수레)가 바로 그것이다.
굿을 할 때마다 늘 정해 놓고 불러다 쓰는 무당을 일러 단골 혹은 당골이라 부른다. 단골집이니 단골손님이니 하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인데, 호남 지방에서는 특히 세습무(世襲巫)를 일컫기도 한다.
무당은 특별한 사람만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기분이 좋아 흥이 나면 ‘신난다’고 하는데, 이 말이 바로 누구나 무당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곧 신이 날 때 그 신이 내리기만 하면 절로 무당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처럼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무당은 장구 소리만 나도 춤춘다”는 속담이 있듯이 ‘巫’라는 한자는 양 소매를 늘이고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본 뜬 글자이다. 우리의 삶은 춤과 노래로 자신의 신명을 청하고 스스로 그 신명을 풀어 냄으로써 그 영역을 확충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예로부터 우리의 지도자들은 모두 뛰어난 무당이었다. 단군(檀君) 할아버지부터 무당을 뜻하는 ‘당굴’의 한자 표기이며, 신라 시대 차차웅(次次雄)을 비롯한 왕칭어가 대개 최고의 무당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굿판은 예전같이 신명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선무당이나 반풍수가 너무 많아 그럴까? 그저 뭇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그야말로 푸닥거리로 전락한 느낌도 없지 않다. 놀고먹으며 사치하는 데는 신을 내지만 열심히 일하는 데는 그리 신명을 내지 않는 듯하다. 필자를 비롯해 우리 모두, 금년 한 해 다시 한 번 신명의 불길을 당겨 보자.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자.
설날, 수릿날, 한가윗날, 아치설 아으 동동다리
"8월 보름은 아으 嘉俳날이건만 님을 뫼셔 녀곤 오늘날 가배샷다. 아으 動動다리"
8월 보름은 한가윗날이지만 아아, 님을 모시고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오늘이 참 한가위다울 텐데…. 대충 이런 정도로 해석되는, 고려 시대의 동동이란 제목의 달거리 노래이다.
이 고유의 명절을 두고 각종 달력을 위시해서 신문, 방송 등 언론 매체들은 한결같이 '추석'이라 부르고 있다. 가을 저녁, 곧 秋夕이란 한자말이 한가위란 고유어보다 더 유래가 깊고 운치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추석 곧 한가위가 우리 고유의 명절인 만큼 명칭 역시 고유어로 불러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動動에 적힌 嘉俳란 말은 우리말 '가배'(원형은 '갑')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갑'은 가운데(中)로서 한가위란 한(正) 가운데를 뜻한다. 한가운데란 어디의 한가운데를 가리킬까?
가을이라 하면 예로부터 삼추라 하여 음력 7월과 8월, 그리고 9월의 석달이 해당된다. 그 석달의 한가운데가 15일, 곧 보름이 되는 것이다. 한가위를 따로 중추절이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가위라면 우선 맑은 가을의 둥근 보름달을 떠올린다. 둥근 보름달 아래 둥글레 둘러앉은 가족 친지와 이웃들, 풍요와 화합을 나타내는 이 둥근 원형이 한가위의 상징처럼 보인다 달떡이라고도 불리는 송편이 보름달을 닮아 둥글고, 한가위 음식의 별미로 쓰이는 토란이나 송이도 둥글기는 매한가지다.
동네 여인들은 한 방에 둘러앉아 두레 길쌈을 하면서 돌림 노래를 즐긴다. 남정네들의 씨름판이나 꽤지나칭칭나네의 놀이판도 역시 둥글다.
그뿐만 아니다. 밤에 둥근 보름달이 둥두렷이 떠오를 때 여인들은 둥글게 둥글게 수레바퀴처럼 "감고 또 감으며 감감술레처럼 감아라." 이런 외침이 줄어서 '감감술레'가 되고, 그 노래가 오늘의 강강술레로 자리잡았다. '억센 호랑이가 물을 건너온다.'는 强虎水越來란 해석은 한자말에 갖다 붙인 억측에 불과하다.
마땅히 고유어로 불러 주어야 할 명절 이름에 수릿날도 포함된다. 또다시 動動에서 수릿날 부분을 찾아보자.
"5월 5일에 아으 수릿날 아침 藥은 즈믄 혈 長存하실 藥이라 받잡나이다.
아으 動動다리"
5월 5일 수릿날 아침에 드리는 약은 천년 만년 장수할 약으로 알고 바칩니다 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장수 약은 값비싼 보약이 아니라 입에 쓴 쑥과 익모초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5월이 되면 닥쳐올 여름 더위와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쑥과 익모초를 뜯어 이를 떡이나 인주를 만들어 약으로 먹었다. 여인들은 이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 쑥과 익모초와 창포. 어느 것이나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모두 건강을 고려한 지혜의 소산이었다.
머리 꼭대기를 정수리라 한다. 수릿날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 쬐기 시작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말로 단고, 단양, 또는 중오절, 천중절이라 함도 그런 이유에서다.
태양열이 하늘 정수리에서 내려 쬐기에 일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하다고 한다.
이런 날 정오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습속은 바로 이런 의미를 살린 것이다. 게다가 창포는 비듬 제거 약의 원료가 된다고 하니 어떤 고급 샴푸의 효능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고유 명칭을 잘 간직하고 있는 명절은 단연 설날과 대보름이다. 설은 살과 마찬가지로 '서리'혹은 '사리'가 줄어진 말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또한 설을 쇠다. 날이 새다. 새롭다의 쇠. 새 등도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설이란 명칭이 살아있는 만큼 음력 11월의 동짓날도 '작은 설'이니 '아치설'이란 고유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찹쌀 새알심을 넣어 팥죽을 쑤어 먹는 동지는 단순히 24절기의 한자식 명칭에 불과하다. 정초의 큰 설을 맞기 전 작은 설이기에 까치설이 아닌 아치설인 것이다.
이제 부모님이 자식들을 찾아 상경하고, 고향 대신 해외나 유원지에서 한가위 보름달을 맞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그 풍습은 변한다 해도, 그러나 그 고유 명칭만은 영원히 간직하도록 해야겠다.
장땡을 잡든, 피바가지를 쓰든 망고 땡이다
우리 민족처럼 놀이를 즐기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전국 곳곳이 다 노래방이요, 국민적 오락이라는 '고스톱'을 못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노는 일처럼 좋은 것은 없다.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않게 즐겁게 노는(쉬는)일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놀아도 노래나 놀이에 그쳐야지 '놀고 먹고' '놀아날' 정도로 이것이 지속되고 확대되면 곤란하다. 더구나 놀이를 업으로 삼는 '노름'에 이르면 더욱 곤란하다. 놀이방과 노름방, 놀이꾼과 노름꾼, 놀이판과 노름판은 분명 구분되어야 할 것이나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이 둘이 혼용되는 경우가 있다.
돈이나 재물을 걸고 하는 노름에도 시대에 따라 유행이 있다. 예전에는 골패나 주사위, 또는 마작이나 투전 놀이를 즐겼지만 지금은 점차 카드로 옮겨 왔다. 우리 나라의 카드라면 꽃 그림이 그려진 화투장인데, 이것도 '나이롱 뻥'(뽕)에서 '섰다'로, 다시 '짓고 땡'에서 '고스톱'으로 변모하여 지금은 바야흐로 고스톱 시대를 맞고 있다.
'뻥'이나 '뽕'은 거짓이나 비밀을 뜻하는 말이다. '뻥이야'하면 비밀이 거짓말을 가리키고, '뽕이 나다"하면 비밀이 탄로난다는 뜻이다. 이런 '뽕'이나 '섰다' 또는 '짓고 땡'은 그런대로 재미있는 우리말을 살린 이름이다.
그러나 고스톱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고스톱'은 영어식 표현이며 '고도리'는 새 다섯 마리를 뜻하는 일본식 이름이다. 여기서도 외국어 선호 사상이 작용한 것인지? 노름용어 중에서도'땡과 대조되는 '황'이나 '따라지' 또는'살'이나 '바가지'가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닌가 한다.
땡(혹은 "땅")은 땡땡구리의 준말로 본래 같다는 뜻의 한자 '동(同)에서 나온 말이다. 곧 두 패가 같은 것이 나왔을 때 '땡 잡았다'고 하고, 그 끗수의 크기에 따라 삥땅에서 장땡까지 이어진다.
땡 다음으로 족보와 함께 끗수 아홉의 '가보'를 거쳐 그 유명한 '따라지'에 이르게 된다. 끗수가 하나인 따라지는 참으로 한심한 숫자이자 따분한 신세이다. 3.8 따라지, 따라지 산조, 따라지 신세 등 그야말로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 하는 많은 용어를 탄생시키고 있다.
끗수가 제로인 망통은 따라지보다 더 절망적이다. 망통을 예전에는 '황'이라 했는데, 황이란 짝이 맞지 않은 골패짝을 말한다. '황잡다', '황그리다'는 '말짱 황이다!'와 같이 큰 낭패를 보거나 아무 것도 손에 넣을 수 없는 허무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말이다.
노름판에서의 '살'은 그 판에 거는 일정액의 몫에다 덧태우는 돈을 일컫는다. 이를 두고 '살을 댄다' 또는 '살을 지른다'고 하는데, 여기에 제삼자가 끼어들어 곱절이나 많은 살을 대는, 곧 '곱살을 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일에 공연히 끼여드는 사람을 일러 '꼽싸리 낀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러 '꼽싸리꾼'이라 부르는 경우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고스톱판에서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상대에게 '바가지'나 이중 삼중의 벌점을 매기는 따불, 따따불…을 씌우는 데 있다. '바가지(박) 쓰다'는 옛날 개화기 이후 크게 유행했던 십인계란 노름에서 나온 말이다. 말하자면 1에서 10까지 적은 바가지를 엎어 놓고 각자 돈을 걸게 했는데 이 중 맞추지 못한 것은 주인이 먹는 그런 놀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가지 중에서도 가장 아픈 바가지가 피바가지(피박)일 게다. 이는 남들이 알곡을 거둘 때 자신은 껍데기에 불과한 피(돌피)도 제대로 거두지 못한 데 대한 벌칙인 셈이다. 고스톱 용어 중 이런 바가지(박)나 됫박, 트다, 싸다 등은 우리말이어서 그런대로 괜찮으나 반면 나가레, 쇼당, 고도리, 따불 등은 한 번쯤 제고해 볼 만한 용어가 아닌가?
우리말 '놀다'의 '놀'에는 단순히 '쉰다'는 뜻 외에 어떤 일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일에 집착하고 몰입한다는 뜻도 아울러 가졌다. 곧 멋, 흥, 신명, 열과도 통하는 말로써 놀 때도 흥겹고 신명나게 논다는 뜻이다. 우리가 윷놀이할 때도 '놀았다'고 하고, 무당이 굿할 때도 한판 놀았다고 말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명연주자의 몸짓이나 노래를 열창하는 명가수의 표정은 바로 굿할 때 신들린 무당의 모습 그대로이다. 따라서 잘 놀 수 있는 민족은 어떤 일이든 열성으로 집착할 수 있는 그런 민족이다.
그러나 유희로서의 놀이는 단지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이 놀이가 노름으로 이어질 때는 그야말로 피바가지를 쓰거나 피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주부들이 노름 용어에 대해 필자보다 더 아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
삼신 할머니는 노여움을 푸소서!
"앉아서 천리 보고 서서 만리 보는 삼신 할머니, 제발 섭섭한 일 있더라도 무릎 밑에 접어 두고 이 어린 것 치들고 받들어서 먹고 자고 먹고 놀고 오로지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하소서. 입을 복과 먹을 복을 갖춰 주시고, 짧은 명은 길게, 긴 명은 쟁반위에 서리서리 얹어 주시고, 명일랑은 돈방삭을 닮고 복일랑은 석숭을 닮게 점지하여 주소서."
필자가 어린 시절 아시볼 때(동생을 맞을 때), 할머니께서는 방 한가운데 삼신메를 차려 놓고 두 손바닥을 소리나게 싹싹 비비면서 이와 같은 풀이를 하셨다.
예로부터 아기를 낳을 때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하여 출산을 주재하는 신인 삼신 할머니께 정중한 제를 올렸다. 곧, 산모가 해산 기미를 보이면 정화수와 쌀밥, 그리고 한 그릇 또는 세 그릇의 미역국을 올린 삼신상을 차리는데 대개 산모가 며느리일 때는 안방 윗목에 , 친정에 해산하러 오는 딸일 경우엔 방문 가에 상을 차렸다.
삼신상은 해산 후 3일날. 첫 이렛날, 두이렛날, 삼칠일이라는 세 이렛날, 또는 일곱 이렛날까지 차리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이가 탈없이 자라도록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삼산 할머니에 대한 정성은 이로써 끝나지 않고 아이가 자라 일곱 살이 되어 칠성신에게 인계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는 아이의 성장은 물론 산모의 잉태와 순산, 그리고 이후 젖이 부족하여 '젖비는' 일에서 개암든다'고 하는 산후 후더침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오로지 삼신 할머니의 손에 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생명의 탄생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잉태를 흔히 '몸가지다',또는 '아기선다'고 말한다. 아이가 들어선 산모는 곧 입덧이라는 첫 관문을 거치고, 배가 둥덩산 같은 배재기에 이르면 바로 아기가 뱃 속에서 놀기 시작하는 자위뜸을 느끼게 된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 정점을 이르는 것이 출산의 고통일 것이다.
막달에 이르러 아이가 비릊는 과정에서 문잡아 산문이 열리고 이윽고 핏덩이의 귀가 빠지는 순간은 그야말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다고 말한다.
고고성을 환상의 소리라 일컫는 것도 산모나 아기에게 생고를 뛰어넘는 환희의 울부짖음이기 때문이다.
삼신할머니는 인간의 생명과 생산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추앙된다. 삼신의 삼은 살다라는 고유어에서 나온 말로써 사람이나 삶, 또는 숨과도 그 뿌리를 같이한다. 할머니는 한 어머니의 준말로 조모를 뜻하며, 이는 생산의 여신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어에 불과하다.
고유어 삼신이라는 말을 두고 때로 삼복 도는 친복과 연결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본래 삼복이란 옛날 옛적 우리나라를 세웠다는 세 신, 곧 환인, 환웅, 환검(단군)을 가르킨다. 하나님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곰처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 신화를 토대로 하여 삼신할머니를 국가의 탄생인 국조 신화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특히 '삼신의 손' 이란 말에서 우리 한민족은 이 세 신의 자손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의식은 후일 아이를 낳는 다는 모성적 의미가 확대되고 무속 신화와 민속 신앙으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삼신 할머니가 생명의 탄생을 점지하는 신령으로 변신하여 추앙받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젊은 엄마들은 이런 삼신 할머니의 존재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입덧이 나면 상냥한 남편들이 재빨리 해결해 주고, 몸에 이상이 있으면 전적으로 병원에 몸을 맡긴다. 젖이 부족해도 젖비는 일이 없고, 출산 일은 물론 심지어 아들, 딸이 성별도 골라가며 낳을 수 있다. 그러니 고유 권한을 빼앗긴 삼신 할머니가 노할 수밖에.
현대인들이 금줄에 무엇을 다는지 몰라도 좋다. 옛날 그 까다로운 출산 풍속들, 예컨대 산부는 상주나 상가를 다녀온 사람, 또는 짐승을 잡는 것을 본 사람과의 대면을 금하며, 집안에 빨래를 널지 않으며, 질 그릇은 다루지 않고, 고기를 굽거나 먹지 않는 등의 금기 사항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
다만 태아의 성 감별이나 임신 중절 따위의 삼신 할머니의 고유 영역만은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근 산아 제한 정책마저 철폐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또한 태아의 성 감별도 엄격히 규제한다고 하니 이런 조처로 삼신 할머니의 노여움이 다소 풀릴지 모르겠다.
찧고 까불고 팽개치고 헹가래치고
현재를 산업화 사회 또는 정보화 사회라 일컫지만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농경 생활에서 이들 용어가 우리의 일상어에 스며들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식물에 열매를 맺게 하는 일, 이 농사일을 고유어로 '여름짓다'라고 하며, 이 일에 종사는 농부를 '여름지슬(을)아비'라 불렀다.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짓다'는'맺다'와 통하는 말이다. 열매도 맺고, 사랑도 맺고 하던 일도 끝맺는다. 또한 '짓다'라는 말처럼 소중한 말도 없을 듯하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집도 짓고, 옷도 짓고, 밥도 짓는다. 그야말로 창조의 근원인 셈이다.
옛말에서는 '짓'(作)과 집(家)은 같은 어형으로 쓰였다. 부부의 고유어 지아비와 지어미는 이 짓(집)이 아비·어미에 접두한 것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곧 남편이나 아내가 모두 농사일에 전념한다는 뜻이리라.
농작물을 가꾸는 일만이 농사일이 아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 역시 같은 개념으로 보았으니 이를 일러 자식 농사라 했다. '가르치다'란 말도 농경 문화에서 파생된 말이다 교육이란 바로 심전(心田)의 밭을 갈고(耕 또는 磨)가축을 치듯(育) 정성을 필요로 한다.
이를 테면 거칠고 메마른 마음의 밭을 갈고 여기에 북을 돋우고 물과 거름을 주어 가꾸는 일이 바로 가르치는 일이 아닌가. 사람을 가르쳐 일깨우고 힘과 용기를 준다는 '북돋우다'란 말도 농경문화의 산물이다.
"북'은 초목의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을 지칭한다. 북을 돋운다고 하면 농작물의 밑동에 흙을 긁어 보아주어 영양분이 잘 공급되도록 하며 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막아준다는 뜻이다. 한자어 재배의 배에 해당하는 말이다.
자연에 순응해야 하는 농사는 계절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 호칭을 농사일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봄은 돋아나는 새싹을 본다는 뜻에서, 가을은 그 열매를 거두어들인다는 뜻에서, 그리고 겨울은 조용히 집안에 계시면서 다가오는 봄을 대비하는 의미라는 해석이 그럴듯한 설득력을 갖는다.
가을에 추수하는 일을 '가실한다'고 했다. 가실(슬)에서 필수적인 작업은 거워들인 곡식을 방아나 절구에 넣어 찧어야 하고, 또 이를 키에 담아 까불어야 한다. '찧고 까분다'는 말이 지금은 경솔하게 군다는 뜻으로 별로 좋지 않게 쓰이지만 그 본뜻은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팽개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하던 일을 중도에서 포기한다는 '팽개치다'는 본래 팡개질에서 나온 말이다. '팡개'는 곡식이 여물 무렵 새를 쫓는 데 쓰이는 대토막을 이른다. 그 토막의 한끝을 네 갈래로 쪼개어 작은 막대를 물러동였다. 이것을 흙에 꽂으면 그 틈새로 돌멩이나 흙덩이가 끼이게 되었는데 이렇게 박힌 흙덩이를 팡개를 휘두름으로 해서 새를 쫓게 되는 것이다.
가르치고 팡개치는 일과 함께 평미리친다는 용어도 있다. '평미레'란 됫박이나 말에 곡식을 담고 그 위를 평평하게 미는 데 쓰이는 방망이 모양의 기구로서 지금은 '평미리친다'고 하면 모든 일을 평등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최근 운동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헹가래치'는 일도 역시 농사일에서 비롯된 말이다. 시합에서 이겼을 때 참가한 선수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려 헹가래침으로써 기세를 올리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농사일에서 가래로 흙을 파기 전에 빈 가래로 손을 맞춰 보는, 일종의 예행연습을 헹가래질이라고 한다. 사람을 들어올릴 때도 들어 올리는 사람의 호흡이 중요한 만큼 이 헹가래질에 있어서도 이런 호흡과 힘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말하자면 앞으로 쭉 미끄러져 나갔던 가래를 회수할 때도 줄은 지속적으로 팽팽하게 켕겨줘야하기 때문이다. 헹가래치는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가끔 이런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람을 하늘 높이 던져 놓고 들어 올린 사람들이 일시에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면 어쩔까하고.
몰론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아무튼 헹가래질을 보면서 우리 사회 생활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며, 부정한 일은 과감히 팡개쳐야 하고, 또 모든 이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평미레쳐야한다.
뿐말 아니라 우리 사회는 분명 헹가래칠 일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을 것 같다. 다만 우리가 합심하여 들어 올린 지도자가 졸지에 추락하지 않도록 그 자리에 서서 지속적으로 북돋아주는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
여벌의 존재 뜻하는 '며느리' '새아가'나 '에미'라 부르자
아들의 아내를 일컬어 자부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며느리'라 부른다. 시부모가 며느리를 다정스런 목소리로 "이애, 며늘아가!"라고 불렀다면 얼핏 보아 매우 좋은 호칭으로 들린다.
그러나 곰곰이 며느리란 말의 본뜻과 그 용례를 따져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것같다.
옛날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하던 어느 며느리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몰래 밥풀을 훔쳐먹었다. 이 사실을 안 시어머니는 음식을 훔쳐먹었다는 죄목을 들어 그 며느리를 혹독하게 다스린다.
며느리는 모진 매를 맞으면서 "제가 먹은 것은 음식이 아니고 이런 밥풀이에요."하며 미처 삼키지 않은 밥풀을 혀끝에 내보이며 죽었다. 이렇게 죽은 며느리는 밥풀나물로 환생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혼이 부끄러워 몰래 깊은 산 속에서만 핀다고 한다. 소위 '며느리밥풀'아라고 일컫는 꽃이름에 얽힌 사연으로, 이 구전설화는 부녀자들 사이에 전해지는 참으로 슬픈 얘기다.
지금은 며느리밥풀도 새며느리밥풀, 수염며느리밥풀, 애기며느리밥풀 등으로 그 종류가 나뉜다. 이처럼 꽃이나 풀이름에 유난히 자주 동원되는 며느리는 밥풀뿐만이 아니라 주머니나 발톱도 동원되어 '며느리주머니'나 '며느리발톱'이란 풀도 있고, 심지어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며느리밑씻개'란 고약스런 이름도 있다.
식물 명에만 며느리가 있는 게 아니다. 쥐며느리란 동물도 있고, 날마다 앓는 학질을 일컫는 며느리고금이란 병명도 있다. 또 쳇불을 메는 데 쓰이는 두 개의 좁은 테를 며느리바퀴라 하고, 집을 짓는 데 쓰이는 며느리서까래라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며느리란 말이 어떤 뜻을 가졌길래 이처럼 여러 낱말에 덧붙여 쓰이는가. 앞서 예를 든 며느리서까래란 용어를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옛날 어떤 목수가 대궐을 건축하면서 마름개질을 잘못하여 서까래를 너무 짧게 자르고 말았다. 걸어 놓고 보니 건물이 제대로 설 수가 없는지라 목수는 집에 돌아와 끙끙 앓게 되었다.
그런 사정을 안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이런 제안을 내어 놓는다.
"아버님,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모난 서끼래를 잇달아 걸고 집모양을 내느라 일부러 멋을 부렸다고 말씀드리면 될 것입니다. "
목수의 며느리는 과연 현명했다. 큰벌을 받을 것으로만 알았던 목수는 오히려 임금님으로부터 큰 상금과 함께 명장인이라는 호칭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이로부터 본서까래에 덧붙이는 작은 것을 '며느리서까래'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며느리란 말의 어원인 마늘, 미늘, 또는 비늘은 본래 '하늘의 주된 것에 덧붙어 기생한다.'는 뜻을 가졌다. 따라서 며늘아이, 곧 며느리는 따지고 보면 내 아이(아들)에 덧붙어 기생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이를테면 조카며느리는 조카의 딸린 지어미란 뜻에 지나지 않는다.
소나 조류에 있어 며느리발톱이란 게 있다. 소의 발톱 중 평소 땅을 딛는 데 소용되는 것은 앞의 둘 뿐이요. 뒤쪽에 있는 두 개는 그저 여벌로 달려 있다. 이처럼 유사시나 쓰일 뿐 퇴화하여 쓸모 없게 된 발톱을 일컬어 며느리발톱이라 하는데, 이를 통해 보면 며느리란 말의 본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한 가정에서 며느리는 숙명적으로 미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시어머니나 시누이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며느리가 아이 낳는 것은 보아도 딸의 경우는 차마 못 본다고 했다. 또한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는 속담도 있다.
뿐만 아니라 며느리 시앗은 열도 귀엽고, 자기 시앗은 하나도 밉다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속담도 있다. 여기서 '시앗'은 첩을 가리키는 말인데 아들의 첩은 많을수록 좋고 남편의 첩은 하나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얘기다.
고유어 며느리에 해당하는 한자 '婦'자도 의미가 고약하기는 매한가지다. 婦는 '여자 여(女)'자에 '비 추(?)'자가 합친 글자로서 말하자면 여자가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형상이다. 아내를 뜻하는 처도 같은 구조의 글자로 그저 집안에서 청소나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분명히 말해서 남편과 함께 주부도 한 가정의 중심 기둥이지 며느리서까래처럼 덧붙인 여벌의 존재는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남녀평등을 위해서도 '며늘아가'란 호칭에서 '며늘'이란 말을 빼벼려야 한다.
갓 시집왔을 때는 '새아가'라고 하고, 손자가 생긴 이후로는 '어멈'이나 '에미, 어미' 라 부르면 족할 것이다. 婦의 본래 우리말이 '지어미'나 '아내'인 만큼 이들 호칭이 며느리를 대신해야 마땅하다.
어화둥둥 금자동아, 얼싸둥둥 은자동아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다. '태어나다'란 말은 모체의 태로부터 세상에 나왔다는 뜻이다. 태어난 날을 달리 표현하여 '귀빠진 날'이라고도 한다. 태어날 때 태아의 귀가 보이면 다 나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인간의 정확한 출생 시간은 바로 귀가 빠진 그 순간이 될 것이다.
태어난 날에 대해 그 이전인 '코 생긴 날'이라는 말도 있다. 생겨난 날, 곧 모체에서 처음 형체가 만들어진 때를 일컫는데, 흔히 말하는 비조란 용어가 시조와 동일하게 쓰이고 있음은 이런 이유에서다.
태어난 날을 좀더 멋지게 표현하고 고고지성이라고 한다. 고고성이란 세상에 나오면서 맨 처음 응애 하는 울음 소리를 말하는데, 이를 두고 생리학에서는 인간 호흡의 개통식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말한다면 이 울음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최초의 존재행위로서 모레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는 해방의 함성이라 주장하고 싶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 곧 갓난쟁이는 모든 행위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고유어로 '배냇짓'이란 용어를 쓰는데, 이를테면 갓난애가 자면서 방실 웃거나 눈이나 코, 입 등을 찡긋거리는 행위를 이름이다.
여기서 '배내'란 말은 '배 안에 있을 때부터'란 뜻이다. 배내옷, 배냇니, 배냇머리, 배냇병신 등이 그런 예인데, 특히 재밌는 것은 태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싸는 배내똥이란 말이다.
사람이 죽을 때 싸는 똥도 배내똥이란 용어로 쓰인다. 말이 같을 뿐 아니라 그 똥의 성분조차 거의 같다고 하니 세상만사가 시작과 끝, 곧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본능에 가까운 갓난애의 배냇짓은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두 입술을 털며 투투 하고 소리를 내는 투레질, 입으로 마치 풀무처럼 바람을 불어 대는 풀무질,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죄암 또는 쥐엄질,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을 싸 대는 쉬야질, 또는 잠들기 전이나 깬 후에 보리는 잠투세 등이 모두 그런 행위에 속한다.
얼뚱아기란 말이 있다. 둥둥 얼러 주고 싶은 재롱스러운 아기를 두고 하는 말인데, 아무리 밉둥피우는 놈이라도 모든 아기는 그들 부모에게는 이쁘둥이일 수 밖에 없다. 만세라도 부르듯 두 팔을 벌리고 새근새근 나비잠을 잘 때가 그렇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당싯거릴 때도 그렇다.
또 배를 바닥에 문짓문짓하면서 기어가는 배밀이를 할 때도, 겨다가 아우타느라고 먹을 것만 찾는 밥빼기도, 공연히 트집을 잡아 아망거릴 때도 모든 어버이들에게 자식은 그저 귀여움의 대상일 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부모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얼러 댄다. 가동질이란 거 있다. 아이의 겨드랑이를 치켜들고 올렸다 내렸다 하면 아이는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부라질이나 시장질도 이와 비슷하다. 아이를 곧추 세워 좌우 양편으로 흔들며 두 다리를 번갈아 오르내리게 하는 것이 부라질이요, 두 손을 잡고 앞뒤로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이 시장질이다.
아이 역시 도담도담 잘 자라 옴포동이 같이 포동포동 살이 오르게 되면 부모는 더욱 자식 키우는 재미를 느낀다. 젖먹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을 '밞다.'라고 한다. 뒤뚱뒤뚱 어설프게 떼놓는 걸음발도 앙증스러워서 '조작가리다.', '자칫거리다', 또는 '아칫거리다'라는 매우 재미있는 표현을 쓴다.
이맘때쯤이면 아이는 손뼉을 치는 짝자꿍에서 도리도리 도리질이나 곤지곤지 잼잼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이쁜 짓을 다 연출한다. 부모는 다시 아이를 손위에 곤두곤두 곤두세우기도 하고, 또 따로따로 제 혼자 따로서기를 시키기도 한다.
아이가 똥싸개라도 좋고 똘똘이가 아니어도 좋다. 모든 부모에게 그의 자식은 그저 어화둥둥 금자동이며 얼싸둥둥 은자동이일 뿐이니까.
아이가 쫄래동이어서 자주 찡얼거리며 보챌 때 이를 위협하여 달래는 말을 '곽쥐'라고, 어쩔 수 없이 한 대 쥐어 박는 일을 '먼지떨음'이라 부른다. 어린놈에게 어디 때릴 데가 있겠는가. 그저 엄포나 놓을 양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준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점은 자식이 귀여운 나머지 너무 오냐오냐 하며 키우면 그만 응석받이가 될 우려도 있다. 만져서는 곤란한 더러운 것은 '지지요'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은 '에비다라고 분명히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옛 어버이들은 매우 현명했다. 아이들이 으레 치러야 할 역질 따위를 일러 '제 구실'이라 부른 것이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을 이겨내야 사람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식이 귀하고 사랑스러울수록 그가 올바로 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부모들은 '사랑의 매'를 아끼지 말아야 겠다.
아얌과 배꼽티
귀엽게 보이려고 일부러 교태를 부리는 일을 이러 '아양'이라 한다. 억지로 지어 보이는 짓이라 아양을 떤다. 아양을 부린다 아양을 피운다라고 표현하며,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꼬리를 친다.'는 말과도 동의어로 쓰인다. 때로 남자에게도 이 말을 쓸 수도 있으나, 그러나 아양이란 본래 여성 고유의 것이었다.
아양은 '아얌'에서 나온 말이다. 아얌이란 옛날 여인들이 겨울 나들이 할 때 추위를 막기 위해 머리에 쓰던 것으로, 위는 튀었으나 좌우에 털을 붙이고 뒤에는 '아얌드림'이라 하여 비단으로 만든 댕기를 길게 늘였다.
옛 여인들의 의상에서 아얌은 일종의 호사에 속한다. 특히 현란한 비단의 아얌드림은 걸을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기 때문에 주위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간혹 바람기 있는 여성이라면 이 아얌드림은 더욱 심하게 출렁거렸으리라. 동물은 상대를 호리기 위해 꼬리를 친 대신 여성은 이 아얌을 흔듬으로 해서 뭇 남성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아얌은 순수한 우리말처럼 보이지만 '액엄'이란 한자말이 변한 것이다. 이마를 가린다는 뜻인데 옛날 내외하던 시절 여인들은 얼굴을 내놓지 않기위해 이를 쓰고 다녔다. 액엄과 비슷한 것으로 귀를 가린다는 뜻의 '이엄'이란 것도 있었다. 이는 남성들이 관복을 입을 때 사모 밑에 쓰는, 모피로 만든 일종의 방한구였다.
얼굴을 가린 채 아양을 떤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처럼 옛 여인의 교태는 은밀한 것이었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신체의 어느 부분이라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수치로 알았을까? 화류계 여인이라도 반드시 버선을 신음으로 해서 발을 내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한복을 입은 여인아라도 버선신은 모습은 보기 어렵다. 서양식 버선(옛말로는 '보션'), 곧 양말로 대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방님이 오실 때 버선발로 맞던 그 모습이나, 버선코의 그 날렵한 선, 또는 버선볼을 좁게 만든 외씨버선의 그 멋을 맛보기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효도버선'이란 말도 들어 본지 오래다. 효도버선이란 시집간 딸이 첫 친정나들이 할 때 문중 어른께 바치던 예물을 말한다. 이 버선에는 짝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켤레마다 가운데 실을 떠서 묶는데, 오래 사시라는 뜻에서 80이란 숫자를 붉은 실로 새겼다. 시댁에 돌아올 때도 같은 선물을 하는데 이때 웃어른들은 "효도봤다."라는 인사말로 치하한 데서 효도버선이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도 중동의 회교권 여인들은 '차도르'라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다. 신체를 가리는 것으로 말하면 한국 여인도 결코 중동에 뒤지지 않는다. 차도르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의 '장옷'이나 '너울'일 것이다.
장옷은 나들이할 때 걸치던 의상으로 두루마기를 소매 옷고름까지 그대로 달아서 머리끝에서부터 뒤집어 쓰던 것이라 그 모습이 마치 남극의 펭귄을 연상케 한다. 너울 역시 온몸을 덮는 검정 주머니 같은 것으로 주로 안주인을 모시는 하녀들이 썼던 옷이다.
이밖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썼던 볼끼, 남바위, 풍채, 만선두리, 조바위, 츤의, 가리마, 쓰개수건 등은 그 이름조차 잊은 지 오래다. 겉옷이 그러한데 고쟁이, 단속곳, 말기, 다리속곳 등 속옷의 부끄러운 이름에 이르면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말기'란 가슴을 동여매던 브래지어에 해당하고, '다리속곳'이란 서답이나 개짐과 같이 일종의 생리대를 지칭한다. 외국어로 대신해서 부끄러움을 없애자는 심산인지 '속속곳'혹은 서양식 속잠방이를 팬티 또는 팬츠로, 치마 속아니 바지 위에 덧입는 단속곳은 슈미즈로 부른다. 이밖에 거들, 코르셋, 스타킹 등도 모두 우리의 고쟁이에 해당하는 내의들이다.
앞서 말한 내의류를 일컬어 우리말로는 속곳 또는 속것으로 불렀다. 속곳도 속속곳과 단속곳으로 나뉘는데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고쟁이는 꼬장주 또는 꼬장바지라 불리던 것으로 이 역시 외래어의 위세에 눌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새롭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외래어에 비해 속곳 또는 고쟁이라고 하면 왠지 꼬장꼬장 때라도 묻어 있거나 무슨 고약한 냄새라도 나는지 모르겠다. 지난 여름 젊은 여성들은 배꼽까지 드러낸 채 백주 대로를 활보했다. 그러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겼던,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배꼽까지 내보인 행동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고유어와 함께 그 옛날 '모시적삼 안섶 안에'의 그 은근한 맛과 멋을 이젠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된 것일까.
박고 호고 누비고 공그르는 그 감칠맛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조침문을 배우면서 그곳에 쓰인 잡다한 바느질 용어를 외우느라고 무척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깁고, 박고, 호고, 누비고, 공그르고, 시치고, 감치고, 뜨고, 사뜨고, 휘갑치고.... 언뜻 보기엔 그저 꿰매는 일 한 가지 같지만 정확히 말하면 모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바느질하시는 어머니께 바늘에 실을 꿰어 드린 경험밖에 없는 나로서는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그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조침문뿐만 아니라 규중칠우쟁론기와 같은 옛 안방 여인들의 글에서 받은 느낌도 마찬가지. 그 지극히 섬세한 표현법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지만 그러나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두고 공연히 침소봉대한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말 어휘를 정리하면서 이들 용어가 고유어의 순수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안방 장롱속에 고이 간직해 온 가보를 대하는 기분이랄까. 우리말의 순수성은 다름 아닌 여성에 의해서 보존 계승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바느질 용어뿐만이 아니다. 의식주 생활에서 의와 식의 주체가 여성이었음은 우리말 보존의 차원에서도 지극히 다행한 일이다. 앞서(지난호) 식용어의 주류가 고유어였음을 살핀 바 있다.
익히다, 끓이다, 삶다, 달이다, 고다, 찌다, 데우다, 데치다, 졸이다, 굽다, 볶다, 지지다, 튀기다, 부치다, 저미다, 무치다, 절이다, 버무리다, 덖다 등의 조리용어가 모두 우리말이며 여기서 파생한 명사가 그대로 고유 음식명으로 쓰이고 있다.
바느질 용어도 결코 여기에 뒤지지 않는다. 앞서 예로 든 동사 이외에도 땀, 솔기, 반짇고리, 마름질, 매듭, 뜨개질, 시접, 박이옷, 누비이불, 가름솔, 곱솔, 쌈솔, 뒤옹솔 등도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의 보고라 할 만하다.
흔히 가장 작은 사물로 비유되는 바늘, 그 바늘이 하는 바느질이란 일은 곧 꿰매는 일, 다시 말하면 이어 주고 맺어 주는 일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아픈 상처를 꿰매어 주고 사람과 사람을 맺어 주고 하는 일이 바로 예로부터 여성의 몫이 아니던가.
옷고름이나 넥타이만 매는 게 아니다. 언약을 맺고 사랑을 맺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끈을 이어 주고 맺어 주는 것이다. 맺는 일이란 분명 인간 삶의 출발점이자 열매를 맺는 일처럼 그 귀착점이 된다. 일의 마지막 단속, 곧 마무리는 `마무르다'에서 나온 말이다. 옷을 입을 때 끈을 매고 여미고 하는 뒷단속을 `매무시'라고 하고, 그것의 나중 모양새를 일러 `매무새'라고 한다. 따라서 마무르다, 매다, 맺다, 매무새, 맵시 등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맵자하다'는 말도 있다. 모양이 꼭 째여 아름답고 멋지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멋진 우리말인가.
바느질이란 곧 꿰매고 깁는 직업이니 앞서 예로 든 용어들은 모두 꿰매는 일의 기술적인 종류에 불과하다. 촘촘히 꿰맬때는 박음질이요, 성기게 꿰맬 때는 홈질이다. 또한 맞대어 듬성듬성 홀 경우는 시침질이요, 그 사이에 솜을 넣어 죽죽 줄이 지게 박을 경우는 누빈다고 한다.
이밖에 실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기술적으로 공그르기할 수도 있고, 또 사뜨기나 휘갑치기도 할 수 있다. 두 헝겁의 가장자리를 맞대고 감아 꿰매는 기술을 감친다고 한다. 이 말은 바느질 기술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감칠맛이라 하여 늘 잊혀지지 않고 마음 속에 감돈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걸 보면 이것이 바로 우리말의 감칠맛이라 하겠다.
어디 그뿐인가. 사진도 박고 책도 박아 펴낸다. 다시는 윗말이 없도록 휘갑을 치기도 하고, 부족한 원고 내용을 기울 수도 있다. 누비는 일도 누비옷이나 이불만 누비는 게 아니다. 밤거리의 뒷골목에서부터 온 천지사방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닐 수도 있다. 옛날 거문고의 명수 백결 선생도 그랬지만 이 시대의 도승 성철 스님도 누더기나 다름없는 누비옷을 입고 평생을 사셨다. 그러나 아무도 이분들의 모습을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국인의 생활 문화의 특징을 `깁는 문화'라고 했다. 깁는 것도 아무렇게나 기워 입는 실용적인 땜질이 아니라 고도의 미학적인 경지까지 승화시킨 그런 바느질 문화라는 것이다.
이제 바느질하는 여인의 모습도, 다듬질의 그 규칙적인 음률도 사라지려고 한다. 바느질은 없어진다 해도 그 감칠맛 나는 바느질 용어만은 그대로 간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