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박술, 이학수(74) 어르신 삼척시 정상동[봉황천]
▒▒ 삼척전통주 이야기·11
호박술, 이학수(74) 님
삼척시 정상동[봉황천]
삼척시 오십천로 496, 삼척병원 옆에 있는 '울릉도호박집'은 노란 빛깔의 달달한 호박동동주로 유명하다. 그래 다시 한번 그 맛을 즐기면서 주인 이학수 여사의 '울릉도호박술'을 빚어 온 생애 이야기도 듣고 싶어 저녁담에 지인 세 사람과 함께 찾았다. 주문한 호박동동주와 모듬생선찜이 나오길 기다리며 차려 온 밑반찬을 맛보았다. 이학수 여사의 명품 손맛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 중 물엿과 와사비로 무쳐낸 '가오리무침'은 별미 중 별미였다. 한참 후 호박동동주와 모듬생선찜이 나왔다.'호박동동주'는 '호박술'로 불리기도 하는데, 살얼음이 동동 뜬 슬러시 같은 형태로 손님 상에 올려졌다. 평소 막걸리 보다는 소주를 즐겨 마시는 B는 막걸리를 즐기지 않지만 시음해 보고 '와~ 맛이 좋다!'고 감탄을 한다.
호박동동주는 술 맛이 강하지 않고 달콤한 맛이 인상적이다. 이학수 여사가 전수 받은 전수자는 한의사를 하던 시아버지에게서 였다. 호박동동주는 의외로 자료가 멥쌀이 아니다. 주 재료는 보리쌀과 옥수수와 지장쌀이다. 늙은 호박만이 아니라 도라지, 감초, 인삼, 솔잎 등 여러가지 한약재를 넣어 발효 시킨 약주 같은 느낌의 막걸리이다. 한약방을 하던 시할아버지가 아니면 탄생할 수 없었던 삼척의 '울릉도호박집'의 '호박동동주'이다.
탄산이 많이 느껴지지 않아 목넘김이 부드럽고, 마신 후 트림이 나지 않아 깔끔하여 좋았다.
삼척에서 왜 울릉도호박동동주를 제조하고 왜 울릉도호박집이라고 상호를 붙혔을까? 뭍에서 바다를 건너 울릉도로 가는 배편이 아니고, 울릉도 도동항 도동약수공원 부근도 아니고,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호박막걸리를 제대로 만드는 집이 아니고, 강원도 삼척시 오십천로 오십천 강변 가까히 삼척병원 부근 '울릉도호박집'간판을 달았을까?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가리라.
샛노란 빛깔의 호박막걸리로 일반 막걸리에 비해 감칠맛과 달짝지근한 맛이 감돌아 좋고, 거기에 노하우가 담긴 양념장으로 조린 생선찜과 곁들여 나오는 반찬들이 맛깔스럽다. 모듬생선찜은 또 어떤가, 그 술에 그 안주라 했던가, 생선 모듬찜에는 장치, 도루묵, 가자미가 들어가는데, 기름기 많은 생선을 산패되지 않게 잘 말려서 맛있는 양념장을 넣고 쪄낸 별미다. 생선을 한 번 말리고 쪄내어서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니 금상첨화, 술맛에 취하면 안되는데...
생선은 말라가지고 찜 하는거죠? 하여튼 생선이 맛이 좋다. 그리고 양념도 잘해야되고 육수도 잘 때려 갖다 넣어야 하고, 요새 손님들과 옛날 손님과는 틀려요. 이학수 여사님, 막걸리 한 잔 하실래요? 아이구 내가 술을 못마셔서요. 이 술에 약초, 요번에 산도라지 40만원어치 샀어요. 산에서 캤는게 아니고, 산에서 재배한 것이야요. 산에 심은 것이면 산도라지이지요.산도라지를 넣어서 먹으면 맛이 참 좋아요. 집도라지는 암만 넣어도 맛이없어요. 그런데 약초는 술을 담글 떄 같이 넣어가지고 담그는거야요? 아니래요. 왜냐면 감주 때릴 때 넣잖소. 원래 시댁이 노곡 어디예요? 칠재골, 월산에서 난대기 쪽이야요, 난대기는 금계리이고요. 거기서 시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했어요.
이학수 여사는 시집을 몇 살에 왔어요? 스물 넘어 시집왔지요. 시집을 와가지고 호박술 배운거죠?
예 시집을 와가지고 시할아버지가 전수해 주셨어요. 시할아버지 연세는요? 꽤 있었어요, 내가 시집 올 때 우리 시할아버지가 환갑을 넘었는데요. 이걸 잘 배웠어, 월급쟁이보다 나아요. 내가 그래서 우리 아들보고 여기와서 장사 좀 하라 했는데... 후계자가 있어요? 배우려는 사람들은 몇 있지요. 우리 집에 도라지 술이, 옛날 할아버지가 해주던 술이 지금도 있어 30~40년 다 됐는데. 또 더덕술이요, 이런걸 세개 주더라고요. 할아버지가 니 밭에 가서 괭이가 있을거니 그 파댕겨봐라 더덕이 큰 게 나올기다 하여 캐니 세개 나왔는데,그걸감주로 대려서 막걸리를 담궈서, 할아버지가 내 애비도 한 잔 먹고, 니도 한 잔 먹어라 했어요. 그걸 아직까지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어요.그런디 말이요, 그거 암만 막아 놔둬요 싹 날라 가고야 요만치 밖에 없어. 술은 오래 있으니 날아가요.
그전에는 내가 요 위에서 대포집 했잖소?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했기 때문에 이 한약이 들어가는거야 안그랬으면 한약 넣을 생각 못하지. 그때 곰치 요즘엔 곰치 비싸니까 그때 곰치를 말려서 찜하니 맛이 좋은거야. 곰치생선 막 싸가지고 말루니까, 냉동 안하니까 맛이 있는거지, 한약 간장을 넣어서 약이야 잘 팔렸고, 그때 곰치 말린것은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없어 못 팔았사요.
지금도 하루에 관광차를 한 대씩 받으라고 그러는데 안받아요. 개인들 받는게 더 나아요. 소소하게 받는게 그래도 뭐 괜찮은데 뭐 관광차단체로 해봐야 괜히 신경써요,그 래 관광차 손님은 안 받아요. 쏠비치삼척 -대명콘도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살아요. 그 사람들 진짜 고맙다고 해야해요.
이학수 여사님 시할아버지 한테 한약 막걸리 담는 걸 배울 적에 어떻게 어떤 말을 들으면서 배웠어요? 시범을 보였어요. 할아버지가 옛날 동네 이웃사람들에게 술을 많이 대접 더라고요.가만히 보니까는 촌에는 술을 많이했잖아요. 옛날에 무슨 쌀이 있어요, 오로지 지장쌀 가지고 하더라고. 지장쌀이 많았잖소. 엄마가 갔다주는 기장쌀을 가지고 술을 하니까 향이 맛있더라고요. 꼬드밥 쪄 가지고요. 우리 할아버지가 보니까예 뭐 오천원 받아가지고는 남는게 없잖소. "야야 애미야 내가 술을 요 와가지고 열흘 동안 가르쳐줄 테니까 니가 보고 해라." 그래가지고는 열흘 동안 우리집에서 시할아버지로부터 약술 막걸리를 배웠어요. 어디서 장사할때요? 다리 위쪽에서 장사할적에요, 그때도 울릉도 집이였어요?
아니요 그냥 대포집이었지요. 열흘 가르쳐 주시더니 할아버지가 "야야 애미야 나는 왜 어씨어씨 추웠다 내가 내병을 못버티겠구나" " 애미야 술을 마저 가르쳐주고 가야하는데 이래가지고 되겠나" 이러더라고. 그래서 시할아버지 큰 딸, 왕고모가 빚는법을 마무리해 줬어요. 처음에는 누룩을 넣어도 약하더라고 그러디만 이제는 40년이잖아요. 그게 40년이 되니까 연구도하고 이것도 하나의 공부야.나중에 공부안하면 안돼. 내가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해야지 남이 열 사람의 입을 한 사람이 맞춰줄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시할아버지가 한약을 했기 때문에 한약을 넣을 수 있었다. 그렇지요.
우리 농산물 그게 되니까, 호박에다가 보리에다가 도라지에다가 내가 다 거뒀잖소. 그러니까 이제는 이 자루가 쌀은 안들어가고 , 쌀 들어가면 우리 걸려요. 보리만 들어 간거에요? 보리 질금, 우리 강냉이도 많이 내잖소. 보리 질금에 모강냉이 질금을 내서 가루로 내여서 만드네요? 예,호박 하나 삶아 가지고 넣고 짜야해요. 그러고는 이제 보리 질금하고 이제 또 강냉이를 싹 내가고, 강냉이 가루를 많이 내요. 그런데다가 또 도라지, 오가피, 홍삼 한약재료를 넣어요. 강냉이는 많이 들어가요? 강냉이는 일년에도 한 서너 가마니 하고, 썩 많이해요.
그러면 보리 질금하고 강냉이의 비율은 어떻게 돼요? 그러니까 반반씩 넣지요. 반반씩 넣으면요 보리 질금만 넣으면 맑고 맑아요. 그리고 강냉이 넣으면 탁탁하고, 호박은 삶아 가지고 다 걸러 넣지요. 그런데 그 누룩은 안동서 오잖아요, 아 여긴 누룩은 안만들고 ... 오대일. 지금 늙은 할매들 밭에 일도 안하는데, 하하하 밭에 밀을 안가는데... 어디요 안동쪽에서 밀을 가라요. 우린 밀이 없어, 예 없어요. 그런데 중국 밀가지고 하면요 약해요, 그러면은 이제 쉽게 말하면 보리하고 옥수수하고의 5:5 비율로 한 말 이다. 한 말인데 누룩은? 누룩은 삼십말 쳐넣치요, 아 그러니까 보리하고 그게 한 말이면은 다섯 되면은 누룩은 몇 되를 넣어요? 그러니까 삼십말치 넣어야 한다니까, 삼십 말이면 몇 되냐 하면, 두말 반 밖에 안돼요. 아 그런데 이제 내가 술 담글 때 마다 술하고 누룩하고 비율 있잖아. 그거 누룩 많이 넣어야 해요. 쉽게 말하면 쌀이 보리쌀이 그게 질금이 다섯대면은 그거 안넣어도 여기서 지장쌀 들어가요. 지장쌀을 넣어 그게 다섯 되면은 누룩은 몇 되 들어간다는 얘기야?
서른되요, 서른되, 말 안되지 서른되는 누룩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다는 얘기에요? 뭘 또 많치만은 누룩이 많이 들어가야해. 아니 보리쌀 그게 다섯 되에 세 되가 들어가면 몰라도, 서른 되가 들어간다는 얘기는 서른되 들어가요, 엄마 놀워라.
누룩이 많이 들어 가야해요. 그러니까 많이... 건지지요. 그게 푹 삭아 가지고는요 그 놔두면 푹 삭아지고 보름만에 건지지요. 건져 가지고는 한 수수시게 돼요. 서른 되라는게 삼십 되라는 얘기 아니에요?
포대는 한 포대 밖에 안돼, 음 그렇구나 음음 뭐 많은 줄 알겠다. 와 대단하다. 그러니까예 트림이 안나고 속이 굳지 않고, 아침 자고 일어나면 머리 안아프고, 속편하고, 조금 얼굴이 술이 그것도 한약이 들어 가니까, 한약도 넣지만은 누룩이래요. 그러니까 그렇네.
그리고 지금 탁주하는 집들은 탁주 하는 거는요, 이 찌꺼기 거 뭔가는 안들어가요. 할줄도 모르고, 그 설탕은 여기 안들어가잖아요. 설탕 들어가면 머리 아프지 뭐 그래서 말이요, 그런데 너무 달거든 그게, 그래서 달구나 누룩이 많이 들어가고 누룩도 단데다가, 그렇지 또 호박 들어가지요 도라지도 달아요 맞잖아요. 달아요 감초도 넣는 다매요. 감초도 좀 넣지요.
이학수 여사는 피부도 곱고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50대 아줌마로 보였다. 왜 울릉도 호박술이라 했고 왜 울릉도 집이라고 간판을 붙였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그게 왜 울릉도냐 하면은 손님들 물으면 우리 할아버지 고향이다 이래삐래요. 그런데 내가 시청에 가서 간판 등록을 해야하는데, 부근에 울릉도다방 있더라고요. 우리 시동서가 형수요 무슨 울릉도다방이 있어요, 형수요 울릉도호박술로 합시다 그게 그래 우연하게 시의 간판 등록을 하면서 생겼네요. 우리 시동서가 울릉도호박술이라 합시다. 그래서 얻었어요.
호박술에 상표가 없으니 밖았에서 일어나는 일에 통제를 할 수 없고, 현상의 값으로는 적자이니 6천원 올려 받으면 잘 했다 하는 사람들과 또 젊은 사람들은 씩씩거리고, 골이 아픕니다. 그래서 재고로 있는 누룩을 다 쓰면 장사를 접으려니, 40여 년 노하우와 울릉도호박술의 명성이 아깝고, 그래서 아들하고 사위가 직장 놓으면 땅이 있으니 허가를 내가지고 정식으로 울릉도호박술 막걸리 공장을 지으려 합니다. 전통 막걸리를 빚는 인간문화재가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좋은 결실이 있길 바랍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선물로 호박술이 많이 나가요. 올해 아주 많이 나갔어요. 그러고는 여름에는 대박 털렸고, 여름에는 택배도 많이 나가요. 오늘도 많이 나갔잖아요. 택배를 보낼 때는 그러면 어떻게 보내요? 호박술을 냉동 시켜요,얼음을 바짝 얼어요. 그렇지 얼음은 가는 사이에 집에 그 가가지고 살살 얼어둔게 맛이 있었대요. 가는 동안 어느 정도 녹아서 먹을 때는 살얼음이 뜨는 정도니까, 충분하니까요. 우리집에서 먹는 것도 살얼음이 뜨짢아요. 딱 술을 우리집에서 직접 봐요, 깨끗하잖아요.
아 여름에는 삼척에 관광 온 사람들이 와서 많이 사가구나, 여기 울릉도호박집에 와서 한약이 들어간 호박술을 먹고, 또 이웃에 선물용으로 사가지고 가는구나. 호박 막걸리에 딱 궁합이 맞는 엄청나게 맛있는 생선찜이 있으니 금상첨화이지요. 생선찜이 육만원인가 그렇지요? 뭣이 육만원이야, 오만원이야요.
그때 돈으로 집 한 채에 사백칠십만원에서 오백오십만원 할 때에 곰치를 말려서 팔았사요.그때 뭔가 생기는 재미가 있어 머리 돌아가는게 완전 틀렷어요. 그래서 곰치를 해가지고요, 한 사백만원에서 오백만원 물건을 했어요. 옛날에 는 집값이 없어서요,그때는 택배도 안되고 서울가는 버스도 없었어요. 서울 가는 길은 기차로 가는거요. 그걸 ,곰치 말린것 가가지고 청량리역에 딱 내려가지고 우리 친구들 오라해가지고 동대문시장에 가서 팔았사요. 열마리 쪄 가지고 통에다 넣어가지고는 시장에 펴 놓으면, 뭐해 아이구 이거 뭐뭐 대구 포라 하더라고 대구포 보다 더 맛 좋은 곰치포를 사람들이 못 알아 보았어요, 그때 시식을 시켰지요. 칠만원에서 육만원에팔았아요, 세번만 갔다 오면요 집 두 채사요. 내 여기서 집 몇채 산지알아요? 여섯채 있었어요. 그때 돈으로 오백오십 사백칠십만원에 오십평인데 백평이고 그렇게 했어요. 집은 건물보고 안사잖소. 그래 내한테 와서 집좀 팔으라고. 그러면 또 일억씩 달라고.그렇게 잘했는데, 그 때 그 길로 빠져야하는데 이 길로 왔잖소.
그런 장사 아무사람이 하는게 아니란 말이다. 그 곰치 세상에 처음으로 장사한 사람이 이학수 나잖아요. 그때는 사실 곰치를 말릴 생각을 못했어요. 못했어 그냥 끓여먹는 그뿐이지. 그러니까 내가 곰치 장사 할 때 어떤 날에는 물량이 부족하면요, 바닷집에 전화해가지고 "있어?" 하니까 "있대!" 한 오십마리 될거래요. 그래서 내가 한마리에 오천원씩 주니까, 그래노니 장사꾼은 장사꾼이요, 참 많이 말려서 줬다니까예. 삼천원 오백오십온 하던게 그거 많이 입찰을 봐가지고 내가 요게 백마리 씩 나도 장사 되니까 그런 날도 그거가지고 파는거요. 그 서울 사람들 뭐라하는지 알아요. 언제 또 올라와요? 얘 또 말려가지고 올라올게요. 걱정하지 마쇼, 하튼 뛰는놈 위에 나는놈이야~. 이학수 여사님은 젊어서 미인일 때 날씬했지요, 남자들도 많이 따랐겠어요, 그런데 처녀때는 또 한가닥 했거든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