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오랜 가뭄 끝에 겨우 때맞춰 파종한 무가 제법 굵어졌다. 아쉬운 대로 중간중간 한두 개씩 뽑아 먹어도 될 만큼 자란 것. 아직 완전히 수확하기까지는 20여 일 더 있어야 있어야 하지만 무 겉잎은 그때그때 떼어내 무청 시래기를 만들고 있다. 시래기는 무를 수확한 다음 무청 부분을 잘라내 말리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무를 키워 보면 파종 6~7주 정도부터는 무청이 우거지면서 바깥잎은 땅바닥에 드러눕는 걸 볼 수 있다. 그렇게 드러누운 채로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마르거나 썩어버린다. 결국 무를 수확할 때 보면 쓸 만한 무청은 기껏해야 열 개 남짓한 줄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라지는 무청을 활용하여 시래기를 만드는 건 어떨까?
▲ 파종한 지 두 달 된 김장무. 파종 6주차부터 땅바닥에 드러눕는 겉잎을 떼어내 시래기를 만들고 있다.
무청 줄기가 땅바닥에 드러눕는다는 건 자신의 역할, 곧 광합성을 통한 양분 생산을 다했다는 뜻이다. 모든 식물의 잎줄기는 광합성을 통해 식물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녹말 등)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존재 이유다. 흔히들 식물의 동화작용이라고 부르는 과정으로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이 필수인데 식물의 잎줄기는 이를 태양으로부터 빛에너지 형태로 흡수하여 해결한다. 반면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호흡과 같은 이화작용이 필수적인데 이는 내부로부터의 에너지 공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두 과정의 플러스 마이너스가 양의 상태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성립하지만 음의 상태로 되면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법이다. 이즈음 한창 단풍으로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결과다. 무의 잎줄기가 땅바닥에 드러눕는다는 것도 이 동화작용과 이화작용이라는 두 과정의 합이 곧 마이너스 상태로 변할 것이라는 걸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무 겉잎은 무의 생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흙속의 세균 등에 의해 각종 병충해에 노출될 위험마저 높아지니 가급적이면 제거해 주는 게 좋다. 상업적인 재배에서야 힘들겠지만 소규모 텃밭 재배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불어 이렇게 제거하는 잎줄기를 이용해서 무청 시래기를 만들면 이삼십 포기의 무만 키우더라도 일 년 먹을 시래기를 만들고도 남는다.
▲ 무 바깥잎을 떼어내 하루이틀 숨을 죽인 다음 줄에 엮어 처마 밑에 매달아 말린다
이맘때면 내 텃밭에 남아 있는 무는 오십여 포기 남짓하다. 파종할 때는 제법 넉넉하게 파종하는데 필요할 때마다 솎아내 먹다 보면 매번 이 정도만 남는 것 같다. 이 오십여 포기의 무를 가지고 2~3주 전부터 무청 시래기를 만들고 있다. 무 잎줄기 자라는 걸 들여다보면 처음엔 연두빛으로 자라다 어느 시점부터는 차츰 녹색이 짙어지고 마침내는 새로 돋아나는 잎들에 밀려 땅바닥에 드러눕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 드러눕는 잎줄기를 하나하나 떼어내 말리면 아주 깨끗하고 튼실한 무청 시래기를 만들 수 있다. 직접 해 보면 무 잎줄기가 아주 쉽게 떨어져 나오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원래부터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자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떨어져 나온 부분의 모습도 아주 자연스럽다. 떼어낸 줄기는 하루 이틀 숨을 죽인 다음 줄에 엮어 처마 밑에 매달아 두면 자연스럽게 마른다. 각종 세균에 덜 노출되었기 때문에 수확한 뒤 머리를 잘라내 말리는 것보다 훨씬 더 때깔도 곱고 푸른 빛을 띈다. 파종 6주차부터 무를 수확하기까지 일주일 한 번씩 너댓 번이면 끝나는 일이니 주말 농장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