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오부친 영전을 나서며. 되돌아본다. 너와의 10년 뒤안길을.

[90/홍광호]

보고싶던 진오를 이렇게 만나고 나오는 내 뒷모습.
그래도 난 나쁜 놈이다.
밤새고 가야지하고 갔건만 친구들 다 나간다고 씩씩하게 함께 나와버리는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아버지의 주검앞에서도 당황치않고 친구를 대할 수 있는 넉넉한 진오의 웃음에 아차~하며 나를 되돌아본다.
과연 진오를 얼마나 알고 또한 넘겨짚어 왔었나...
진오는 1990년 처음알아 갈수록 친해진 친구중 하나다.
군대가기전까지 진오집에 매우 자주 가는 편이었다.
물론 제정신으로 들어가기는 상당히 어려웠지만.
몇가지 기억나는 일들이 스친다.

한가지 얘기.
서면주변에서 여느때처럼 몇이 모여 술을 마시다 그만 통금시간이 지나버렸다.
우리들은 똑같이 돈이 몇푼없어 내가 살던 태종대까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수없이 우리둘은 진오집인 당감동 산꼴짝까지 걸어걸어 가기로 했다.
가다보니 술이고팠다. 매우 춥던 시절이라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갔지. 거기서 사온술은 싸구려 포도주대병이었는데 1분도 안되어 공중전화박스안에서 완샷을 해버리고는 머리가 빙빙돌았다. 물론 자연의 이치로 아까운 음식들이 서로다퉈 역류하고 있었지.
우웩우웩...
그리고는 1킬로를 넘는 오르막길을 기어서 기어서 넘어왔다.
그날저녁은 아무일 없이 진오방에서 흘러간 옛음악에 추억을 곱씹으며 거진 밤을 샜지.

두가지얘기.
그후 며칠이 지났을까. 아마도 지금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는 91후배 호진이와 모씨로 기억나는데 진오집앞에서 술이 많이 되어 뒹굴어서(아마 미끌어졌지) 코가 깨졌다며 너스래를 떨었다. 물론 호진이가 아니고 진오가 깨졌지.
집앞길이 워낙 험악한데다 어두웠으니...
그날 진오집에서 밤을 새고 아침이 왔다. 분명 진오집은 신문구독을 않하는데 한 다섯가지 새신문이 있는거다.
왜그런가 하고 물었더니 진오아버지께서 아파트경비일을 하시는데 퇴근길에 경비실 신문을 고스란히 싹쓸이해 오신다고했다. 정말 좋으신 아버지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가지얘기.
진오는 그때도 절대 슬픈 표정을 지어보인 적이 없던 친구였는데 군대가기 보름전쯤 되었을까.
여느때처럼 둘은 또 술을 마시고 진오집엘 갔다.
아니 그런데 평소 못듣던 백판음악을 켜놓고는 펑펑우는 것이었다.
진오의 그런 모습은 10년을 넘게 봐온 나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면서 하는말
"이세상에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잠시 비껴가는 얘기라고 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비어오는 슬픈 얘기였다.
여제껏 진오에게 참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네가지얘기.
이번에 진오가 나랑 술이 엄청 되어서 우리집엘 갔다.
우리집이 섬나라 태종대였기 때문에 왠만하면 우리집 가기가 쉽지않았다.
진오와 나는 둘다 기타도 좋아하고 노래도, 술도 좋아했기에 그때 우리집 기타를 들고 계속걸어 걸어 해양대앞에 까지 갔다.
방파제를 가로 지르며 쭈~욱 안으로 들어가다가 옆 방파제에 기대어 본다.
열심히 노래를 불렀을 꺼다. 너무도 많은 노래가 우리 가슴에 파고든다.
내사랑 내곁에, 매일매일 기다려, 추억만들기, 행진, 머리에 꽃을...
들국화, 김현식, 해바라기, 봄여름가을겨울, 시나위...
그렇게 좋던 분위기가 갑자기 개그콘서트가 돼 버렸다.
소변본다고 움찔 하던 진오가 그만 방파제 돌무덤 밑으로 빠져버린 것이었다.
다행히 얼마 안 깊었지만 그 광경은 불쌍하거나 위험하다기보다는 너무도 기가 막힌 패러디라고나 할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잘못말 했다가는 내가 아주 나쁜 놈이 되버리기 십상이라 거의 얘기 않하고 살았을 정도였다.
근데 이 얘길 영안실앞 식당에서 오늘 진오가 내게 얘기해 주었다. 망각의 세월을 거슬러 그 추억이 비집고 오고 있었다.

다섯가지얘기
둘은 술만 마시고나면 다음날 꼭 집앞 목욕탕엘 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지만 손님이 하나 더 있었다.
임승일(일명 꼬치라고 불리웠는데 왜그렇게 불렀는지는 그때까진 몰랐다)
슬며시 옷깃을 내리고 우리는 욕탕으로 뛰어들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욕탕안에서 서로를 마주대하는 기분은 상쾌함 반, 몽롱함 반이다.
진오는 의외로 허릿살과 다릿살이 많다.
난 그에 비해 엄청 호리호리, 아니 야위었었지.
근데 승일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쬐끄만하고 작고 야윈 친구였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뜨거움을 참다가 서서히 일어나는데.
아뿔싸~
승일이는 그날이후 더욱 어깨를 펴고 다닌다.
그이유는 <나두 잘 몰라~!>

***요기서 잠시 쉬어가는 코너(진오와 나와 군대이야기)***
진오 군대갈때 강원도 춘성 보충대 안에까지 따라가 되돌아나온 유일한 친구가 나였다.
물론 진오형인 서호형과 둘이서였지만...
그후 정확히 2주일뒤 똑같은 장소로 난 입대했었다.
진오는 22사단, 나는 12사단. 둘다 강원도 산골짝.
바로 옆사단이였다.
누가봐도 둘다 비리비리한게 방위갈 모습이었지만 집안형편이 별로 안좋던 우리둘은 수많은 키다리방위와 면제를 제치고 쓸쓸히 군입대를 할 수 밖에...없었지. 흑흑.
우리 신방과 남성동지들의 군편력은 여기서 논의할 사항은 아니지. 죄송...
입대후 1년반쯤 지났을까. 상병중에도 중짜쯤 된 난, 별안간 진오에게 전화를 하고싶어 통신반 전화를 들고 짹을 돌렸다.
근데 이게 왠일이람.
군대 전화한번 쓰려면 대구 육본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감도(전화소리)는 또 어떤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들을수없는 소리였다.
내가 무전병이었기 때문에 사실 왠만한 소리에 민감했지만. 너무나 황당했던 진오와의 웃을수없는 군대전화통화가 기억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20대의 중반에 다시만난 우리는 예전과는 또다른 감흥이 느껴졌다.
진오는 진오대로 나는 나대로.
진오는 소리누리에 폭 빠져 나는 방송연구회인 VOR에 폭 빠져. 하지만 서로가 가끔 따라주던 소주잔은 더없이 의미심장했고 우리는 말이 별로 없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지.

하지만 4학년이 되면서 진오는 변하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른 술버릇으로,
예전과는 다른 얼굴과 말과 가슴으로,
진오는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내가 진오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운좋게 취직했고.
진오는 혼자서 외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었다.
사실 4학년 졸업할때 까지 진오는 끝까지 음악과 함께할것이라 맹세했었다.
답답할 정도로 세상물정을 물리치려하고 있었다.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웠던 내맘.
내가 장가가던 98년봄. 그날이후로 진오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살아왔건만.
신사모란 방을 알게되며 진오를 찾아보려고 무심코 글을 올렸는데.
가슴아픈 비보를 접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영전에 들어섰지만.
진오의 얼굴은 내가 예상했던 얼굴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다행이다.
그간 진오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다고 한다.
물론 현재 공무원생활을 하고있는 서호형의 영향도 컸으리라 보여지지만.
직장이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오는 그 직장을 준비하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진오가 마음 잘 추스리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힘내라 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