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일오두막 소망탑.
[지리산 오두막 한 채를 꿈꾸다](13)
목통마을의 제일 끝집, 계곡과 가까운 양지바른 곳에 500평의 드넓은 부지를 지닌 오두막! 나는 그 집에서 살면서 지리산 생활을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매일 아침 아기자기한 목통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며 청정한 지리산 공기를 한껏 들이켜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을 주체 못 할 듯했답니다.
하지만, 500평의 부지를 나 혼자 가지기에는 너무 넓지가 않은가? 목통마을 주변의 지리산 전체가 정원이고 후원인데 굳이 그 넓은 터를 독점할 필요는 없을 듯했습니다. 선배의 집을 '나의 오두막'이 아니라 '우리들의 산'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모두의 산장'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 당시 '우리들의 산'은 내가 '산악회 아닌 산악회'의 독특한 형태로 이끌면서 매월 160쪽 안쪽의 <우리들의 산> 책자를 3,000~5,000부씩 펴내 무료로 배포, 화제가 되고 있었지요. 나는 나 개인의 오두막을 갖기보다 '우리들의 산' 가족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동의 '지리산 전진기지(?)'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나의 이 뜻은 '우리들의 산'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우리들의 산 지리산 오두막' 마련을 위한 모금 공고가 책자에 실리자 성금이 속속 답지했답니다. 그런 가운데 가까운 한 친구가 당장 나더러 함께 목통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이는 목통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500만 원을 줄 테니, 코 묻은 돈 모두 돌려주라! 2만원, 3만원 내놓고 나중에 이런저런 간섭을 하면 골치 아프잖냐!"
"그 집 네가 살 테냐?"
"아니, 내가 사서 기증할 테니, 이 사실만 끝까지 비밀로 해주게!"
얼씨구, 이게 웬 떡이냐!? 친구는 당장 계약금을 걸라며 차 안에서 대뜸 300만 원을 건네주더군요.
[지리산 오두막 한 채를 꿈꾸다](14)
'주택매매 계약서!' 목통마을에 닿자마자 나는 300만 원을 선배에게 계약금으로 건네주고 주택매매 계약서를 작성했답니다. 잔금 200만 원이라 쓰고 도장을 찍고 나니 선배의 집 드넓은 뜰이 눈부시게 빛나 보이더군요. 저기는 텐트 사이트, 저기는 원두막, 또 저기는 야외 무쇠솥 걸 자리…!
선배는 잔금을 치르면 집을 바로 인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 우리도 이제 지리산에 오두막 한 채를 갖게 되는구나!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수줍고 아련하게 자리했던 그 꿈이 이처럼 빨리 현실로 다가올 줄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어쨌든 나는 선배와, 또 친구와 굳게 악수를 나눴지요.
하지만 나에게 온통 기쁨만 충만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산으로 되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요. 당장 산악단체의 지리산 전진기지를 할 수 있도록 집을 보수하고 마당과 뜰을 정비하는 일, 그 무엇보다 관리인을 두는 일이 큰 문제가 되더군요.
빈집으로 버려두면 금세 폐가처럼 되는 것이 집의 속성입니다. 또한 언제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관리인이 상주해야 하고, 집도 대대적으로 고쳐짓거나 새로운 건물을 세워야 될 것 같았지요. 막상 관리인을 두는 한 가지 문제를 놓고 보아도 급료 등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어요.
나는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간단하고 좋은 방법은 내가 아주 이 목통마을로 옮겨와서 사는 것이었지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러보아도 당장 직장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 형편이 못 되는 것이 나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