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떠난 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나는 대학 선생님을 연락하고 뵙는다.
캐나다에 살러온 후에는
미국 방문 중에 토론토에 오시기도 했고
내가 버팔로로 넘어가서 뵙기도 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선생님을 뵈니까
예전에 하지 못했던 대화들을
많이 나누게 마련.
주로 내가 선생님께 질문을 드린다.
이를테면 이른 거.
"선생님, 1987년 4월에 고대 교수들이
호헌철폐하라고 시국선언했잖아요.
그때 서명하셨는데, 무섭지 않으셨어요?"
80년대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1985년 고대에서 처음으로 나왔고,
전두환의 4.13호헌에 대한 시국선언 또한
고대 교수들이 가장 먼저 했었다.
그때 그들은 참 용감했다.
우리 선생님은,
그냥 뵙기에는 그렇게 용감해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서명을 하셨을지
나는 세월이 흘러도 의아했었다.
내가 여쭤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선생님은 1985년에 안식년을 맞아
파리에 체류중이셨다.
그해 여름 미문화원점거 사건에
이어 삼민투사건이 터졌고, 구속자 명단에
같은 과 친구 김훤주가 들어 있었다.
"특파원들이 와서 자꾸 김선주라고 하면서
우리 과 학생이 잡혀갔다고 하더라.
내가 아는 김선주는 여학생이고
그럴 아이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보니
김훤주의 (한자) 훤을 선으로 읽었더라고.
내 지도학생인데 돌봐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했지."
선생님이 파리 체류 중에 고대 교수들의
1차 시국선언문이 나와 선생님은
거기에 서명하지 못하셨다.
대신 가을 학기에 학교로 돌아오신 선생님은
나를 앞세우고 훤주의 공판을 찾아다니셨다.
그때는 몰랐으나 나중에 안 사실.
우리만 판사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쓴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붓글씨로 두루마리 탄원서를 써서
보냈다고 처음으로 밝히셨다.
선생님은 붓글씨를 참 잘 쓰셨다.
1987년 2차 시국선언문에 서명하실 때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
"서명을 할 때 펜을 쥔 손이 벌벌 떨리더라.
이름이 공개되고 신문에도 나가는 거잖아.
감옥에서 고생하는 제자들도 있는데,
서명하라고 종이 들고온 국문과 선생을
도저히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더라고."
떨리지 않으면 이상한 시절.
바로 그해 1월 안기부가 박종철을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가서
고문치사시킨 일이 있었으니까.
서명을 한 그날, 선생님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너무 무서워서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대학교수라고 예외로 하지
않은 폭압정권이었다.
이런 시절이었다. 경향신문 사진.
며칠이 지나도 다행히 이상한 일은 없었다.
곧이어 서울대에서 교수 시국선언문이
나온 이후에야 선생님은 마음을
좀 놓으셨다고 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도 항의할 엄두도
내지 못할 때 지식인들이 앞장 서는 것.
전두환 폭압정권에 맞서
박종철 고문치사에 대해 항의하고,
호헌조처를 철폐하라고
용감하게 나서는 것. 그래서
억눌리고 비뚫어진 것을 일으키고
바로 펴는 것.
그해 6월항쟁의 도화선은, 이렇게
벌벌 떨어가며 서명을 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었다.
바보들아,
너희가 시국선언문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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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아, 네들이 시국선언을 알아?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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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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