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100원의 행복/이태호
소주병 20개, 맥주병 9개, 금액으로 환산하면 3,170원이다.
이른 아침 배낭을 메고 10,000보 코스로 향한다. 집에서부터 연인바위를 거쳐 선착장 빨강 등대까지의 거리는 왕복 약 8천步다.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은 만리호텔 쓰레기 수거 장, 그다음으로는 피노키오 커피숍이다. 어떤 날은 빈병이 많아 아내의 배낭까지 채울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빈병을 내려놓고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간다. 유류극복 전시실 앞을 통과하면 곧바로 건너편 연인바위와 마주한다. 바다에 뿌리를 내린 바위는 조석수에 따라 약간씩 풍광의 변화가 있다. 해무에 잠긴 날은 또 다른 모습이다. 잠시 서서 변함없이 부둥켜안고 사랑을 표현하는 연인바위를 바라본다. 슬쩍, 아내의 눈치를 살피면서 속으로 다짐한다. 그래, 여생이나마 저 바위를 닮아야겠다.
해변 길 재료는 폭신하다. 관광객의 발목보호를 위한 태안군의 배려다. 그 때문에 딱딱한 아스팔트보다 걷기에 편안하다. 곁에는 해당화가 만발하여 향기 또한 그윽하다. 파도소리는 또 어떤가. 각기 다른 음보(音步)로 머리까지 맑게 정화시켜 준다.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린다.
만리포노래비까지 공식쓰레기 수거함은 10개다. 물론 분리수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코미디다. 그나마 지정한 곳에 얌전하게 버린 것은 차라리 고맙다. 아내와 나는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물론 냄새가 고약하다. 분리수거를 안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 안에 행복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소주병이 보이면 얼마나 반가운지, 주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쩌다 맥주병을 발견하면 가슴까지 뛴다. 30원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척도에는 정답이 없다.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100원짜리 소주병과 130원짜리 맥주병을 분리한다. 한 달 동안 모으면 4만 원이(400개) 넘을 때도 있다. 아내와 나는, 빈병들을 샤워시킨 다음,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녀석들이 아프리카어린이의 질병 치료에 일조하기 때문이다.
달그락, 달그락 병들도 웃는다.
첫댓글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수필문학이 추구하는 인정과 사랑, 베풂의 미덕이 담겨 있어
더욱 값진 옥고입니다.
행복하신 모습이 그려집니다.
쓰레기, 빈병줍기로 사회공헌 중이시군요. 병은 무거워 더욱 힘이 드시겠어요. 선한 의지, 실천력 본받고 싶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100원의 행복은 건강에 좋고, 환경 보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두 분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푸른 파도 만리포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떠 오릅니다.
박경원 원로가수의 만리포 사랑 노래도 정겹게 들려옵니다.
이 선생님 잘 계시지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