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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회주의 정부가 민주주의 방식의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해 대대적인 휴양 개념의 푸꾸옥((Phú Quốc) 이라는 여행지를 개발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알쏭달쏭 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인민의 평등한 공익 배분의 세상을 원칙으로 하면서 국제적인 돈놓고 돈 먹기 식의 투기성이 짙은 개발사업을 벌인다는 것이 말이다. 합법을 가장한 온갖 불법이 횡행하고 뒷돈이 오고 가며 개발과 허가 사이에 정치 권력의 힘이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고, 결론적으로 거기에서 얻어지는 부(재화)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하는 문제 말이다. 사회주의의 핵심은 인민이지만 이 무모하고도 무차별적인 오로지 투기성 시장 논리에 놀아나는 개발사업의 어디에도 인민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푸꾸옥을 발리나 푸켓 못지않은 여행지로 잘 만들어서 널리 알려지기만 하면 곧 한국과 중국의 돈다발을 손에 든 여행자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 올 것이다’라는 희망이 그들에게는 거의 확신으로 자리 잡았으리라.
이런 국가적 프로젝트를 실현하려면 적어도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비용을 들여서 완성을 시키면, 언제쯤부터 이익을 발생시켜 언제쯤엔 최대 어느 정도의 이익이 남게 될 것이다’ 라는 정도의 프로그램이 완성되어야 한다. 비용 충당은 자기자본과 해외 차관의 비율이 얼마이며 최장 언제쯤 빚을 모두 갚겠다는 계획까지 말이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예상대로 맞아들어가는 경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이익으로 ‘제 몇 차 베트남 5개년 개발 계획’에 몇 % 정도의 자금 조달이 가능해지고, 몇 %의 실업률을 낮출 수 있게 되며 GNP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지 까지 말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민주적 자본주의 방식이다.
공산당 이라는 일당이 국가의 사활을 주도하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서는 사뭇 그 방식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오직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생각과 결정이면 그 과정이나 계획이 언제든지 생략되고 수정되고 일방적인 진행이 언제든 가능해지는 것이다.
베트남 사회주의 최고 지도부는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계획적인 청사진으로 옮기진 못했다. 그랬음에도 지도부는 푸꾸옥 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냥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밀어붙였다는 표현이 맞겠다.
여기에 더하여 기가막힌 타이밍에 베트남과 중국 지도부의 밀착과 담합이 더욱 크게 영향을 끼쳤다.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 정부는 중국의 미래 국운을 걸고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가히 혁명적인 국가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를 하나의 띠와 하나의 도로망으로 연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 야심찬 계획의 숨겨진 최종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지구 방위군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을 넘어서 최고의 패권 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이다. 팍스 차이나(Pax China)를 목표로 세워진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바로 일대일로 사업이다. 미국을 넘어서기 위해서 먼저 끌어들여야 하는 세력들은 다분히 미국에 우호적인 서구의 백인 국가들과는 전혀 다르게 동떨어진 동남아의 개발도상국들과 아프리카와 남미의 저개발 국가들이다. 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과 자금과 기술이다. 중국은 이들에게 무한정의 선심을 쓰기 시작했다. 식량과 자원을 지원하고 기술자를 파견했으며 개발 도상국들에게 엄청난 차관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 보내주는 돈과 나중에 되갚는 돈을 중국의 원화로 가능하게 했다. 세계 기준 통화를 달러에서 원화로 바꾸려는 원대한 계획을 시도한 것이다. 강대국의 세력균형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역사 이래로 별로 친하지 않다. 베트남인들에게 중국은 미국보다도 더 미운 심한 애증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베트남 역사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의 식민지배였거나 이에 항거하는 독립투쟁의 역사였기 때문이다.(한중의 관계라기 보담은 오히려 한일의 관계라 보면 되겠다)
하지만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의 침략기간에 베트남이 의지해야만 했고, 국부인 호지명이 망명을 하기도 하고 보호와 지원을 받기도 했으며, 적지 않게 베트남 독립에 힘을 써준 것 또한 중국이었기에, 적어도 호지명에 의한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산당으로서는 자주권 확보를 전제로 중국의 영향력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중국의 야심찬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두 나라가 바로 북한과 베트남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 기대어 있는 약소국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늘 아슬하슬하게 묘기를 연출하고 있기에 중국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베트남을 연결시켜야 베트남을 통해 동남아 여러 국가로 진출을 할 수 있다.
중국이 통 크게 베트남에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간절하게 기다렸던 베트남 이었기에 덥썩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거기에서 양랑일권(两廊一圈) 채택되었다. 두 개의 각기 다른 경제회랑을 하나의 경제영역에 둔다는 말이다. 달리 해석하면 중국엔 중국 방식의 경제 정책이 있고, 베트남엔 베트남 방식의 경제 정책이 있지만, 두 나라 상호 간에는 이를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인식하고 언제나 함께 더불어 논의하고 발전시킨다는 더없이 아름답고 이상적인 합의라고 해야 하겠다. 이 세상에 둘밖에 없는 보검을 두 나라가 각각 나누어 쥐고 언제나 합의하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한다고 맹세하였는데, 칼을 손에 든 한 나라가 장성한 28세 청년이었고 다른 나라가 아직 미성년자인 7세 소년이라면 그 보검은 아무런 쓸데가 없어지는 것이다. 베트남과 중국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인류에 미래를 죄지우지 할 수도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라는 거창한 계획과 베트남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양랑일권의 약속아래 베트남 지도층이 꿈꾸는 푸꾸옥 개발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보였을 것이다.
중국 자본 참여와 투자는 실로 엄청난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뒤질세라 곧이어 대한민국의 투자와 건설업체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더 많은 동남아의 거대 자본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껏 베트남 사회주의 지도층이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실로 엄청나게 놀라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이었지만 여기서 멈출수는 없었다. 하여 결국엔 설계도가 없는 난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그야말로 마구잡이식 건설일변도로 무작정 내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개발 프로젝트를 지휘할 지휘부도 없고 계산기를 두드려 볼 운영진도 없는 상태에서 섬 전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난개발에 따른 법령도 미흡했고 허가 원칙들도 모두 무시되었다. 제도적 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급기야 12층 높이로 건설된 매머드급 초대형 리조트 건물 한 쪽이 기울어 무너지기 직전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공사는 계속 강행되었다. 보고가 올라가고 고발이 이루어졌고 공사중단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실로 어처구니 없게도 그 고발을 당해야 할 대상과 강제로 공사중단을 시켜야 할 대상이 서류상의 어디에도 없었다. 12층 초대형 높이의 거대한 리조트 자체가 무허가 불법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법을 집행은 해야하겠는데 집행을 당해야 하는 대상이 없는 것이다. 그냥 아무 책임도 없는 거대한 건물 덩어리만 쓰러져가면서 덜렁 남아있는 꼴이었다. 허겁지겁 베트남 정부는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푸꾸옥 섬 전체의 곳곳에서 그런 무허가 리조트 공사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커질대로 커져버린 무허가 개발사업일지라도 이미 그 규모가 커질대로 커져 버렸고, 이제와선 국가도 감히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이르고 말았으니 결국 양성화시켜줄 것이 아니냐는 배짱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인류 근현대사의 부정할 수 없는 명제 중에 ‘우파는 분열로 망하고 좌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속성이 여전히 유효한 마당에, 이미 사회주의 초고위층에게 손(?)을 써서 불법 건축을 정상적인 세금을 낸 합법 건축으로 허가를 받아내는 경우가 실제로 푸꾸옥에 속속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비록 무허가 건축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합법적 허가를 받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푸꾸옥을 마구 파헤치고 있는 모든 투자자들의 가슴에 거의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 정부 소속의 부정부패 방지 특별 감찰단이 푸꾸옥에 투입되었다. 무소불위의 저승사자들인 것이다.
일거에 수많은 개발자와 투자자들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공사는 중단이 되었다. 더하여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인허가 증명서를 받아오는 사람들도 비일비재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으니..... 도대체 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북쪽의 빈 그룹이 차지한 영역이야 처음부터 국가차원에서 허락이 승인된 개발권이다.
남쪽의 썬 월드 그룹이 시작한 선셋 타운 일대와 혼똔섬 개발 지역도 선 허가를 받은 개발권이다.
그 외에는 해외 투자 자본에 의해서 소나시 지역의 대형 리조트 사업 일부가 허가를 전제로 개발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푸꾸옥 섬의 빈펄랜드 훨씬 북쪽에서부터 남쪽 썬월드 인근까지, 아니면 푸꾸옥 섬 전체를 해안을 끼고 한 바퀴를 돌아보라. 온전하게 난개발 전의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있는 해안이 거의 없다. 섬 전체의 해안서 따라 빼꼭히 건물은 완공되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오래 방치되어 썩었거나, 짓다가 중단되었거나, 기초 공사만 마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버려진 흉측한 건축물 잔해들로 온 섬이 가득하다. 최고급 리조트들로 채워진 소나시 지역을 드나드는 길목 마다에도 그런 흉물스런 유령도시의 잔해들이 사방에 빼꼭하다. 실로 내막을 알고나면 참혹한 풍경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 오게 될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영역을 떠나서 이것을 범죄의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푸꾸옥은 빈펄지역과 선셋지역과 소나시 리조트 지역 일부와 현지인들이 사는 중심지 쯔엉동 지역을 제외하면 해안선 가득 섬 전체가 부서지고 무너진 흉측한 건물들로 가득한 유령도시이자 우범지대 모습이 어디를 가나 펼쳐져 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절망가득한 곳이 바로 푸꾸옥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이렇게 방치된 건물들을 재생시킬 의도를 가지거나 투자할 사람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지금 당장 섬의 곳곳에는 새로운 건축 공사가 다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것들이 다시 모두 쓰여질 날이....... 과연 있을까?
어떻게 현실 세계에 이런 세상이 가능하단 말인가? 사람이 없는 유령 도시에 들개들이 서식하며 가끔 여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허나 어쩌겠는가?
우리 가족의 푸꾸옥 여행은 또 어김없이 새날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푸꾸옥의 실상이야 그러하다고 치고 어떻게든 이번 여행을 즐겁고 무사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 내 입장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출국하기 전부터 모두가 기대해온 호핑투어(Hopping tour)가 예정에 있는 날이다.
떠나오기 전에 한국의 여행사들을 통해 투어 상품을 모두 검색해 보았었지만, 최종적으로 나는 이를 모두 거부했다고 해야 하겠다. 그 이유는 차차 꼭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이기에 차후에 다시 꺼내기로 하고....... 일단은 조카에게 부탁해 현지 여행사를 현지에서 직접 택했다.
아침 산책을 하고 싼팜에 들러 코코아 커피와 반미로 아침을 해결하고...... 이제는 아침 산책 시간이 되면 우리 가족들 모두가 시간 차를 두고 싼팜 카페로 저절로 몰려들게 되었다. 가족 모닝커피 타임이라고나 할까?
이번 여행의 최고 우선 방침은 90세를 넘기신 고령의 목사님이 힘들거나 피곤하시지 않게 그리고 안전하게 잘 모시고 다니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평소대로 우리끼리 여행이었다면 아침 산책에서 시작해 해가 지면 귀가할 정도로 바쁜 일정으로 쏘다니겠지만,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결코 우리가 아닌 것이다.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호핑 투어에 대해서 거듭거듭 재설명을 드렸다. 혹 무리가 되실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흔쾌히 ‘걱정하지 말고 앞장 서시게’하신다. 내키지 않으시면 그냥 배 위에서 바닷바람 쏘이며 휴식을 취하신다고 걱정 말라고만 하신다.
‘그럼 뱃놀이?’헐!!! 그것도 썩 괜찮겠다 싶어서 예정대로 밀고 나갔다.
아침 이른 시간에 여행사에서 보내준 미니버스를 타고 집결지로 향했는데, 아뿔싸...... 집결지라는 곳이 겨우 우리 아지트 카페 길 건너편 도로변에 기다리고 있는 대형 버스였다. 헐. 이거야말로 과도한 친절이지..... 진즉이 알았다면 이 정도 거리는 기꺼이 걸어 나왔을 것을.......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푸꾸옥의 중부 쯔엉동에서 버스에 올라보니 이미 완전 외국인들로 가득하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소나시 지역에서 한국인 젊은 남녀가 마지막으로 탔다. 버스는 다시 남쪽으로 달렸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멈춰선 곳은 푸꾸옥 섬의 최남단인 안토이 항구(An Thới port)다. 우리나라에 비교한다면 초라해 보일 정도지만 그래도 엄연한 베트남의 최남단 국제무역항이다. 더군다나 항구의 절반 정도는 해군시설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진해 정도로 보아도 무방하지 싶다.
우리나라 여행자 블로그를 보면 주로 중부의 쯔엉동 항구(Duong Dong Port)에서 출발하는 기사를 많이 보았는데, 우리가 선택한 여행사 버스가 안토이 항구로 향하는 것을 알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이 사실이다. 쯔엉동 항구는 푸꾸옥의 서해안 중심에 속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군산 정도라 할까? 푸꾸옥도 우리나라처럼 서해안 바다는 탁하고 깨끗하기가 덜하다. 쯔엉동에서 출발해 서해를 벗어나려면 항해 시간이 제법 걸릴것이 당연해 보인다. 반면 안토이 항구는 우리나라로 치면 포항쯤에 해당한다고 할까? 거기에서 더 동쪽 바다로 호핑투어를 떠난다. 수심도 확보되고 시야도 확보되고 물고기도 많다.
나 역시도 우리가 선택한 여행사 프로그램이 안토이 항구에서 동해로 나가는 줄은 모르고 했다. 다만, 생활하수처리 문제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푸꾸옥의 사정상, 주민의 대다수가 주로 거주하는 서해안의 바다 상태가 어떨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우려가 되고도 남는다. 가장 여행자가 많이 몰리는 쯔엉동 앞바다를 벗어난다고 하니 일단 마음이 놓여지는 것을 금치 못하겠다.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해서 고른 (푸꾸옥 호핑투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뭐 별거 아니다 라는 말이다. 해볼만 한 경험이었다가 느낌 소감이라할까?
오전 9시 반에 여행사에서 호텔로 데리러 온다. 집결지로 가서 큰 버스에 갈아타고 이동하면서 신청자들을 좀 더 태운다. 여행사 버스는 만원으로 가득 채워졌다. 푸꾸옥 섬 최남단의 국제항구이자 해군 기지와 붙어있는 안토이 항구(Cảng An Thới)에서 보트에 올라타고 동쪽 바다로 약 40분 정도를 나간다. 안토이 항구는 선셋타운에서 혼똔섬으로 출발하는 케이블카 매표소의 언덕 너머에 있는 현지인들 어시장 마을이기도 하다. 보트는 썬월드 그룹이 건설한 혼똔섬 리조트단지를 지나 한참을 더 깊은 바다로 나간다. 드넓은 바다에 올망졸망 앙증맞게 놓여있는 예쁜 섬들 사이의 바위섬 가까이에서 닺을 내리고 여행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힌 후에 바다에 들어가도록 해준다. 쉽게 표현해서 알아서 노세요 하면서 방목해 준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의 첫 정박지의 바다는 깊었고 탁했으며 고기가 별로 없었다. 그냥 물놀이가 전부였다고 할까? 50분쯤 지나서 보트가 다시 이동을 한다. 경치가 더 빼어나고 수심이 얕고 고기가 무척이나 많은 좀 더 예쁘고 아늑한 바위섬 근처로 말이다. 고무미끄럼을 타고 바다에 풍덩 빠질 수도 있다. 태리할머니는 이곳에서 스노쿨링을 제대로 즐겼다. 초짜에서 어느 정도 마스터 수준으로 제대로 터득한 것 같다. 할망구가 스노쿨링에 목숨을 건 이유는 당연히 따로 있다. 크리스마스 지나 병아리들과 나짱 여행을 하는 스케줄에도 호핑투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병아리 두 마리를 데리고 스노쿨링을 해야하겠는데, 할아버지가 카메라 담당을 해야 하는 만큼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즐겨야 하는 사명이 할머니에게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젠 애들 데리고도 자신 있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 할망구 암튼 병아리들이라면 그야말로 ‘목숨을 건다. 걸어.’못 말린다니까?
어떤 여행사 프로그램엔 이쯤에서 낚시를 진행하기도 한단다. 열대어와 오징어가 잡히기도 한다고 했다.
선상에서 개별적으로 주문한 해산물(조개류) 음식이 나와서 잠시 쉬면서 먹어보는데..... 다들 괜찮다는데 내겐 실망이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좀 지 나면 아래층 선실에서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본래는 큰 기대를 안했었은데 생각과 다르게 아주 푸짐하고 멋지고 맛있는 썩 훌륭한 점심식사였다. 대부분이 외국인인 상황에서 한 대만인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이 늙은 총각(?)이 개별적으로 많은 음식을 따로 준비해 와서 합석을 한 처지였다. 그런데 그 준비해 온 음식의 양도 꽤나 푸짐했고 맛 또한 기가 막혔다. 대충 허름한 간식이 절대 아니었다. 덕분에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아주 거창한 만찬이 되었다고 하겠다. 감사 인사도 전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마칠 때 아쉬움 가득한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낯선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 하나를 또 오늘 실감하게 되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다가 보트가 다시 이동을 한다.
해변 휴양시설이 어느 정도 잘 갖추어진 정박 시설까지 갖추어진 작은 섬의 예쁜 해변에 여행개들을 내려 놓는다. 섬에는 음식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쥬스나 콜라를 주문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의 중간쯤 시설이 군데군데 있다. 해변엔 파라솔과 비치 체어들도 놓여 있다. 작고 앙증맞은 열대 해변이 호핑투어에 참가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얕은 바닷물에 뛰어들어 수영도 즐기고, 제트 스키나 바나나 보트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수상 액티비티도 개별적으로 즐길 수 있다.
이 섬에서의 휴식 시간이 끝나면 이제 (푸꾸옥 호핑투어) 프로그램은 모두 마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여행객을 태운 보트는 안토이 항구로 돌아가 다시 버스에 갈아타고 여행객들이 아침에 출발했던 출발지나 호텔까지 되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행사마다 팁 제도가 다 달랐는데, 이날 우리가 선택했던 여행사는 별도의 팁에 대한 요구가 전혀 없었다. 그냥 모든 진행이 심플하고 매끄러웠다. 더없이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다.(호핑투어를 비롯한 한국인 운영 여행사와 상품에대한 이야기는 뒤에 한 번 쯤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에 호핑투어를 계획하면서 내가 가장 기대를 한 것이 바로 이 섬에서의 자유 휴식시간이었다.
많은 여행 블로거들이 이 섬에서의 짧은 휴식시간동안 예쁜사진을 많이들 찍어서 여러곳에 올리기 때문이다. 섬의 자연환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사진찍기 좋은 뷰 포인트를 여럿 만들어 놓았다고 전해 들었던 것이다.
‘그래. 이번에 마음먹고 다시 한 번 더 사진첩을 만들어 보자.’
여행을 하면서 아주 열심히 사진을 찍는 편이다. 거의 대부분이 마눌님 뒤를 쫓아다니며 죽어라 찍어대는 사진들이지만 말이다. 그동안 사진첩을 세 권을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을 했다. 네 번째 권을 만들려고 편집을 하다가 그만........ 이래 바쁘고 저런 이유로 마냥 미루어놓고 있는 처지였던 것이다. 분량으로 치면 네 번째 권은 한참 전에 만들어 졌어야만 했다. 그런 상황이니 이번에 사진을 제대로 찍어서 이번 겨울에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내친김에 다섯 권까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처럼 제대로 화보 사진을 찍기로 작정을 하기는 했는데....... 크리스마스 지나서 우리 병아리들과 여행을 마치고 나면...... 아무래도 화보집이 다섯 권이 아니라 여섯 권은 되어야 할 것 같은 이 예감은 뭐지?
내 서재의 벽면은 온통 챠밍여사의 여행 갤러리로 가득 찼는데 언제부터인지 병아리들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연말 여행이 끝나면 모든 사진이 바뀌지 않을까? 갤러리의 주인공도 마눌님에서 병아리들로 바뀌지 않을까?
헐!!!! 할머니가 병아리들을 질투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이번에 거실까지 갤러리를 넓혀야 하나? 거실은 마눌님 고유 영역인데?
<챠밍 시니어 모델님. 준비 되셨나요?>
챠밍여사는 언제부터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지 못하겠지만 국내용(domestic)이 아니라 국제용(International)으로 변한 듯 느껴진다. 어디가 되었든지 낯선 외국의 비행장에 내리면 벌써 표정이 달라지고 생기가 돌면서 환하게 웃기 시작한다. 그랬으니 지난 일 년 동안 ‘아! 인천 공항이 그립다.’‘우리 프라하 언제가?’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프랑스 여행을 파업과 추위로 망친 것은 아니지만 고생스럽게 다녀온지가 채 아직 만 일 년이 되지 않았지만, 예정대로였다면 봄이나 여름쯤에 짧은 여행을 했어야만 했던 것은 아닌지....... 대신 병아리들과 캠핑을 열심히 다니긴 다녔는데....... 아무래도 세리할망구 마음속에 여행이란 일단 비행기를 타고 낯선 장소와 환경에서 시작하는 호기심 가득한 일탈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같다.
우리 둘만의 자유로운 여행을 늘 말해오더니,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병아리들이 침투해 들기 시작했다. ‘병아리들이 프라하 야경을 보면 얼마나 예뻐할까?’‘병아리들 데리고 빨간 이딸로 기차를 타고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베네치아를 보여주면 애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아니 참된 여행은 우리 둘이서 그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완전 자유여행이 최고라면서 왜 자꾸 꼬리표처럼 병아리들 이야기를 끌고 다니냐고?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여? 그럼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면서 똑 쏘아 댄다. ‘돈부터 많이 벌어 놔. 병아리들이 언제 할아버지 스페인 가고 싶어요 할지 모르니까?’‘파리가 아니고? 나는 무조건 태리 데리고 이탈리아 일주부터 해야 한다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돈 모아 놓으라고?’ 늘 이런 식이다.
아!!!! 그때가 좋았지.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열심히 찍어왔던 사진첩을 들여다 보면 가장 눈길이 많이 가는 것이 포루투갈 스페인 여행 사진들이다. 챠밍여사의 환갑기념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가장 활기찼고 표정이 밝았고 추억이 많이 남은 여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속에서 그런 느낌들이 그대로 배어나온다. 내 마눌님이지만 그때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이 할망구를 환갑이라고 보겠는가?’ 싶었을 정도였다. 챠밍여사의 여행 사진빨 전성기가 아마도 그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생각되기로 그 정도면 나름 무척이나 곱고 예쁜 할머니가 아닌가? 손녀 태리가 핸디폰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할머니’라고 새겨 넣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랬던 이미지가 그 다음 여행이었던 베트남의 바나힐까지는 어느 정도 유지되었던 듯 보인다. 그런 다음부터 지나칠 정도로 바쁘고 힘들게 살아왔고, 집안에 적지 않게 우여곡절도 있었고, 아프기도 했고 하면서 얼굴에 주름도 부쩍 늘어갔고 표정도 굳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헐! 이 사람이 나보다 먼저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미안함과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건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비행기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푸꾸옥에 도착하고 나니 그동안의 우려와 걱정이 썰물처럼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역시 울마눌은 국제용인가 보다. 얼핏 과거의 스페인 여행때 모습까지 엿보이니 말이다. 시간을 되돌린 모습이다.
헐! 한 달만 지나면 내게 경로 우대증이 발부되고, 일 년 지나면 똑같은 처지가 될 할망구가 맞나?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간 거여? 시방! 태리할망구 만세!!!!!
어쩌다저쩌다 대충 급조한 이번 가족여행이었지만, 이것이 챠밍여사에겐 제대로 보약처방이 되었구나?
다음번 태리 세리와의 여행때는 훨씬 더 좋은 모습으로 되돌아 가지 않겠어? 혹 알어? 남들이 아들과 있으면 누나라고 할지?
그럼 나와의 관계는? 오호라 불륜?
헐!!!!!!
<푸꾸옥 한국 여행사 예약시스템 유감>
그동안 제법 해외여행을 다닌 편이지만 그 와중에 여행사 신세를 진 기억이 거의 없다. 그냥 여행 전체에 관한 모든 것을 내 스스로 직접 해결해 나가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터키에서 조지아를 거쳐 아르메니아를 버스와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걸어서 국경을 통과하기도 했고, 태국 방콕에서 카지노 버스를 타고 이동해 캄보디아 국경을 걸어서 통과해 다시 택시를 흥정해 타고 시엠립(앙코르 왓)으로 이동했고, 장거리 국제 버스픞 타고 다시 베트남 호치민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모두 샐프로 해결하며 다녔다. 여행사를 이용한 기억은 조지아에서 우풀리스치케나 데이빗 가레자를 여행할 때, 정상적인 교통수단이 없는 여행지였기에 부득이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했던 것과 방콕 여행시 여기저기 사방에 흩어져 있는 여행지를 쉽게 한꺼번에 방문하기 위하여 여행사 반나절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이 거의 전부라 하겠다.
그러했음에도 이번 여행은 고령의 어른을 모시고 가는 가족여행이라서 여행사 안내 시스템을 이용해 보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안전하다 싶어서 떠나기 전에 현지에 나가 있는 한국 여행사를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여행자들이 한국인 여행사를 찾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해 보인다.
일단 언어가 자유롭게 소통된다는 것이 최고 이유일 것이다. 다음으론 같은 동포에게서 기대되는 신뢰와 안전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유럽 여행에서 한인 민박을 찾는 이유도 거의 똑같다. 한국말로 현지의 여러 가지 정보 습득까지 가능하다는 잇점에 사람에 따라서는 좀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부러 한식을 찾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대신 보편 타당한 선에서의 비슷한 수준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해 보기에 좀 비싸다. 나 같은 완전 자유 여행자의 입장에선 많이 비싸다고 느껴진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어로 편하게 소통되고 여러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한식을 접할 수 있다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거나 낯선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과감하게 부딪혀 보겠다는 용기만 있으면, 그 비용을 가지고 훨씬 매리트가 있는 고급스런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만큼 가격 차이가 나더라는 말이다.
여행이란 낯선 것을 낯설지 않고 익숙하게끔 만들어가는 용기있는 행동이다. 이따금씩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힐 때도 있다. 스페인에서 병원을 가야 했을 때와 아르메니아의 한 시골에서 환전을 하러 갔는데 동양인을 처음 본다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모두가 슬라브어(러시아어)와 아르메니아어를 쓸 뿐 영어를 흉내라도 내는 사람이 전혀 없었을 때였다. 당시에는 와이파이도 원활하지 못했고 언어 번역기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환전을 마치고 나왔었다. 또는 외국인과 동행을 하며 낯선 언어로 소통을 겨우 하는 중에, 각자의 직업에 따른 매카니즘적인 전문 용어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극복하기 불가능한 어려운 과정은 결코 아닌것이다.
푸꾸옥 여행에서 북쪽의 빈펄랜드나 남쪽의 혼똔섬 썬월드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고 바다로 나가는 호핑투어까지 두 번 정도는 여행사 프로그램 도움을 받아야만 하겠기에 한국인 여행사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던 것이다.
한 곳을 선택하고 예약 시스템에 들어갔다.
한국인 전용 가이드가 따라붙고 점심에 한국 신라면까지 제공된다고 하는데, 나름 여러 가지로 다양한 가격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지 외국인 여행사 상품에 비해서는 아주 약간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의사를 전제로 팁에 대한 내용도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싶어 예약 단계에 들어갔다.
그런데 도대체 이건 뭐야? 이건 이해가 되지 않잖아?
다시 들여다 보고 확일해 볼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문제가 드러났다.
이건 결코 정당한 상거래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다른 한국인 여행사 사이트를 모두 들어가 보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똑 같다. 한국인 여행사가 진행하는 모든 상품이 똑같은 조건으로 판매 운영되고 있다. 이건 아니다. 마치 (애국심 팔이)를 하고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호핑투어 1인이 계약을 하려면 --- 계약금 1만원 + 투어비 30달러(예를 든 비용)를 지불해야만 한다.
호핑투어 7인이 계약을 하려면 --- 계약금 7만원 + 투어비 210달러를 지불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외국인 여행사의 경우 투어비용이 비슷한 수준의 30 달러거나 그보다 약간 싸다. 그럼 이 과정에서 굳이 한국 돈으로 별도의 결제를 받는 듯한 계약금 인당 1만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자동차를 사거나 기차표를 사거나 아파트를 포함한 모든 상품을 구입함에 있어서 계약금 이라는 것은 실제의 상품 가격에 포함되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더하여 한 가족이 단체 여행을 간다면 계약금은 계약 당사자 한 명만 내는 것이지 사람 수에 비례하는 계약금은 필요없다. 이를 전제로 본다면 별도 비용처럼 한국돈으로 받는 인당 1만 원은 그야말로 삥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게 정당하려면 한국인 여행사 프로그램이 현지인 여행사 프로그램 보다 훨씬 비싸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현지인은 30달러인데 한국 여행사는 37달러 이상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이런 내용을 한국인 여행사 담당자에게 문의 하자...... ‘동남아에 진출해 있는 거의 모든 여행사들이 같은 방법으로 운영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미 정착된 하나의 관행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예약을 해놓고 펑크를 내시는 여행자가 워낙 많다보니 부득이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답변을 받았다. 나의 지적을 이해했다는 말이다.
‘어정쩡한 말장난 대신 어떤 방법으로든 정당한 개정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외국 여행사는 30달러를 하지만 한국인 가이드와 음식 일부를 제공하는 만큼 저희는 35달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라고 하던가, 일방적 캔슬이 많았다면 차라리 계약금을 30달러로 올리고 대신 프로그램이 정상 진행되었을 때 총 비용에 계약금을 반듯이 반영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겠는가‘라고 추가 당부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 후로 다른 대답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지에서 현지인이 운영하는 호핑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아무런 불편도 장애도 느낄 수 없었던 좋은 경험으로 말이다. 신라면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외국인 가이드로 인한 언어소통의 장애 또한 전혀 없었다. 우리가족 모두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 1회 분량에 허용된 사진 용량을 초과하여 부득이 다음 이야기로 나누어야만 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