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유옹 송창재
버리기는 조금 아깝고
기를 쓰면서 사용하기에는 덜컥 걸리고,
아쉬울 때는
그렇게나 모질게도 써 오던 것을 쓰레기 통에 쳐 넣을 수도 없고…
물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말하는 것이다.
그 동안에도
덜거덕 거리기는 했지만 적당히 쓸만 했는데
이제는 고치지 않고는 헐거로와서
효용성이 떨어져
제 가치를 발휘하기가 힘들다.
서실 형님들이 건강검진 들을 받으러 가신다.
연말이 다가오니
건강보험 공단에서는
빨리와서 검진을 받으라고 성화이다.
의료보험으로 사회적 간접비용을 절약해야 한다면서
생명의 존귀함을 강조한다.
지당하고 고귀한 말씀이시다.
우리나라
참 친절하고 좋은 나라이다.
오래 쓴 조립 컴퓨터가 가끔 부팅이 안된다.
그런데 전혀 안되는 것이 아니라 느린 것이었다.
그것은 안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이 부실하다는 뜻이다.
그래픽카드를 갈아 끼웠다.
사운드 카드도, 아예 cpu도, 키보드도.
예전에는 제법 좋았었는데…
검진을 마치고 온 형들은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으면 의기양양하여 마치 3차대전을 치루고 온
대장군같고,
위에 염증이 좀 있는데 지켜보게 두어 달 있다가 오라든지
대장에 용종이 있으니 떼어 내자고 한다든지 하면,
이제 전투력도 없고 힘들어 귀가해야 할 노병들은
언제 불리어 갈런지 벌써부터 지레 죽는다.
나는 여지껏 한번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살아 오면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서약서에 싸인하고 수술대 위에 남들보다 더 많이 누워 보았고
그 기분이 어떤지는 그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바로 느낄 수있다.
스케쥴이 늘어져서
하루 꼬박 공복으로 안정제와 마취제를 맞았을 때의 공중부양의 느낌까지도!
그렇게 여러번 고쳐 사용했는데
이제는 고치기 보다는 아예 부품 교환하자고 할텐데,
견적내어 미리 스트레스를 받느니 바꿀 필요없이 그냥 쓰기로 한 것이다.
형들은
인위적 수명 연장술을 거부하기로 한
내 지론도 모르고 검진 안 받느냐고 묻는데…
물론 그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글쎄, 나보다 열 살은 더 먹은 영감들이 지레 죽을 상들이니
아무리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초고령 국가가 되었다지만 굳이 꼭 고칠 곳을 점검하여
속 끓이다가 가는 것보다는 편히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수선이 불가능하면 폐기처분을 하고 새 것으로 교체를 해야겠지만
용도에 따른 유효기간이 다 되었으면 그만 분리수거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저 바람에 곱게 風化풍화되기 만을 바란다.
형들이 어디를 바꾸든 나 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
나보고 참 무심한 놈이라고들 한다.
나는 미리 수선을 떨면서 부품 교환하러 이 가게, 저 가게마다 기웃거리며 주인 아저씨의 솜씨를 가늠하는 것은 이제는 싫다.
그저 곱게, 가볍게 風化 잘 되어
소박한 한 송이의 風花가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욕심이 대단한 것일까?
그런데
이 글을 치과병원 대기실에서 쓰고 있으니
이건 뭘까?
바람風을 많이 맞은 이齒가 풍화風化되기 시작했으니!
풍화風花는 이제 한낮 개꿈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