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악산 표충사(載岳山表忠寺)/ 경남 기념물 제17호, 전통사찰
-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654년(무열왕 원년)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죽림사(竹林寺)라 하였다.
(예전에 세웠고 아직 있는 안내문에는 654년 진덕여왕 8년에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적어 놓고 있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고 이 해에 무열왕이 등극하였다.)
829년 인도 승려 황면(黃面)선사가 다섯 색깔 구름을 본 뒤 삼층석탑을 세우고 석가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신라 흥덕왕이 나병으로 고생, 이 절에서 신령한 샘물을 마시고 나병이 치료되었다. 영정사(靈井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표충사(表忠祠)는 밀양시 영축산(밀양시 무안면)에 있는 백하암(白霞庵)에 있었다.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나라에서 사원(祠院)을 세우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병자호란 이후 백하암 승려들이 흩어지고 폐허가 되었다.
1714년(숙종 40)에 밀양 군수 김창석(金昌錫)이 사명대사의 충훈을 알고 지방 유지와 승려 등과 사우를 다시 세울 것을 의논.
군수는 관찰사 조태억(趙泰億)에게 보고, 조정에 계(啓)를 올려 나라에서 제수(祭需)를 내릴 것을 청하였다.
사당을 다시 세워 사명당과 스승인 서산대사,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싸움에서 전사한 기허당(騎虛堂)의 영정을 봉안.
태허당 남붕(南鵬)이 크게 중창하고자 1738년(영조 14)에 사명대사의 행적(行蹟)을 임금에게 올렸다.
임금이 교지를 내려 경상도 관찰사에게 중수하도록 하였다.
남붕이 총책임을 맡고, 연초(演初)·취안(翠眼)·최심(最心)·상현(尙玄) 등이 도왔다.
향례(享禮)를 지낼 때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 많았다.
1838년(헌종 4) 사명대사의 8세손인 천유(天有)가 조정에 보고, 부사 심의복(沈宜復)의 도움으로 1839년에 영정사로 옮겼다.
표충사(表忠寺)는 표충사에서 이름을 따 왔다.
(표충사 안내문, 인터넷 검색 등을 참조하여 사적을 적음.)
표충사 상가주차장에 차를 둔다. 오랜만에 표충사에 왔다.
다리를 건너면서 본 천황산과 재약산.
밀양시는 천황산이 널리 알려졌다고 산 이름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일본인은 박수를 보내겠지.
영화 봉오동전투, 마지막 장면을 천황산에서 직었다. 이젠 사자봉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천황이라니.....!!!
솔숲이 참 좋다.
성황당(서낭당)
예전에 없던 일주문이다. 매표소이다. 문화재 관람료는 3,000원, 주차료도 3,000원일까?
이 매표소가 생기기 전에는 주차장은 무료였던 것 같았다.
주차장 한 편에 서 있는 비석, 송운대사영당비, 송운대사는 법명은 유정이며 법호는 사명당, 송운, 종봉 등이다.
대원암(大願庵), 표충사 산내 암자. 몇 년 전에 왔을 때 건축 중이었던 암자이다.
원통암(圓通庵). 조선 숙종 40년(1714)에 약봉(藥峰)이 창건.
철종 9년(1858)에 비구니 찬인(讚仁)이 중건, 일제강점기인 1930년 비구니 부성(富盛)이 거듭 중건하였다.
표충사 대원암 조왕도 / 경남 문화재자료
조왕은 부엌 신이다. 사찰 공양간에 걸어 놓는다. 내원암에서 조성, 대원암으로 옮겼다.
삼성각
표충사 대원암 칠성도 / 경남 문화재자료
필봉이다.
일주문, 재악산표충사이다. 재약산이 아니고 재악산이다. 수미봉을 뜻한다.
천황산은 사자봉으로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산 전체는 재악산으로 표기하는 게 좋겠다.
영사각(永思閣), 영원히 생각하겠다는 뜻, 이 절과 관련한 인물들의 비가 있다.
태허당 남붕 영세불망비, 양산군수~........
이것도 성황당일까? 수충루 앞에 있다.
수충루
유물관(호국박물관). 문이 잠겨 있다. 오늘 행사가 있어 잠궜다고 하지만 늘 잠겨 있는 것 같다.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국보,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보물,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국가 민속문화재,
표충사 고승 진영 및 감로도/경남 유형문화재 등 볼만한 문화재가 있지만 볼 수가 없어 엄청 아쉽다.
표충사, 사당이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 등 세 분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표충사와 표충서원/경남 유형문화재 제52호
표충사와 표충서원은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에 있었다. 1669년 사액을 받았다.
사천왕문
다문천왕 한자가 틀렸다. 다문(多門)이 아니고 다문(多聞)이다. 문이 많은 게 아니고 많이 듣는 것이다.
충예당, 서래각과 천황산, 사진 좌측 바위 봉우리, 사자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사자봉이다.
표충사 만일루/경남 문화재자료
1860년(조선 철종) 월암선사가 만 일 기도 후 세웠던 H자형 독특한 건물이다.
서래각, 무량수각이라고도 한다. 영남제일선원이란 현판도 걸려 있다.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통일신라시대 아담한 탑, 기단은 단층이며 3층으로 높이는 7.7m이다.
(1층 몸돌과 2, 3층 몸돌의 합이 1:1일 때 안정감이 있다고 한다. 이 탑은 2, 3층 몸돌 합이 1층 몸돌보다 작다.
탑 위치와 주변 경치와는 잘 어울린다.)
칠성각
영각, 여러 승려 진영과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사진도 있다.
팔상전/경남 문화재자료
산신각은 전면 보수 중이다.
팔상전 앞에서 본 우화루와 범종루, 우화루는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대광전/경남 유형문화재 제131호
신라 때 지어졌다고 하지만 전란 등으로 불 타고, 1929년 지어진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 다포계 건물이다.
우화루에서 본 대광전. '고영정' 같다. 옛날 절 이름이 '영정사'였다.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며 좌우엔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협시하고 있다.
관음전
관음전과 명부전
명부전/경남 문화재자료
효봉대선사천진보탑비와 사리탑, 사리탑이 독특하다. 자연석을 파고 사리를 봉안한 것 같다.
효봉대선사는 표충사에 머물다가 입적하신 모양이다.
1969년 노산 이은상이 글을 짓고 운여 김광업이 글씨를 쓰고, 김영원과 도상복이 글을 새겼다.
승탑과 비석
내원암으로 향한다.
수진 해산(守眞海山)대선사 승탑과 비
내원암, 표충사 산내 암자.
경내 정리정돈이 안 된 것 같다. 갇힌 개들이 불쌍하다. 산책을 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2022년 10월 1일(토) 이른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