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바의 'Sie sind noch jung' (그들은 아직 너무 어려)
이 노래는 이태리 출신의 대형가수인 밀바(Milva)가 부른 노래로, 영화음악의 거장이자 올림픽 육상을 다룬 영화 'Chariots of Fire (불의 전차)' 주제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Vangelis와 함께 만들어진 '동물의 묵시록' 이란 영화 주제음악에 가사를 입힌 곡으로, 1981년도 'Ich hab'keine Angst(두려워 하지 않아요)' 란 앨범에 수록된 노래. | | |
우주의 비밀, ‘암흑물질 단서 어떻게 찾았나’ |
지구 궤도에 거대 자석 설치, 우주 입자 16조 개 검색
2011년 5월 왕복우주선 인데버(Endeavour)호의 마지막 비행. 우주선 짐칸에는 인류 과학의 새 장을 열 새로운 우주 관측 장비가 들어 있었다. 약 7t 무게의 알파 자기 분광계(Alpha Magnetic Spectrometer · AMS) 다.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우주 입자 속에서 암흑물질을 찾아내기 위한 초대형 자석을 장치한 탐지 장비다. 암흑물질을 찾아내면 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최대 과제와 우주 탄생의 비밀이 풀린다.
지구 궤도를 돌며 우주선을 탐지한 AMS는 18개월 동안 250억 개의 기록을 지구로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5일 유럽핵물리학연구소(CERN)의 연구팀은 “양전자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 양전자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과학 이론이 좀 필요하다.
암흑물질은 말 그대로 암흑(dark)이어서 빛을 발사하거나 반사하지 않아 보이지 않는 물질을 총체적으로 말한다. 이런 생각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었다. 물ㆍ불ㆍ흙ㆍ공기의 4원소설과 더불어 제5의 물질, 즉 암흑물질이 있다는 설도 병행돼 왔다.
빛 반사하지 않아 안 보이는 암흑물질
5원소설은 플라톤이 주장한 것이어서 ‘플라톤의 고체(Platonic Solids)’라고도 하는데 세상의 모든 물질은 이런 다섯 개의 모양을 가진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주장이다. 암흑물질은 플라톤 주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인공위성이 우주로 올라가고 이어 허블 우주망원경이 지구 궤도에 올라 먼 우주를 정확히 관측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일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게 발견됐다. 그 우주의 팽창을 역으로 추적하니 시작은 대폭발(Big Bang)이었으며 그 폭발에서 나온 찬란한 빛이 지금은 마이크로파 형태로 우주 가장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마이크로파는 파장이 짧은 전파로 우리가 쓰는 전자레인지에서 활용된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로 표현되는 바로 그 ‘창세기의 빛’인 배경복사를 분석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세 번에 걸쳐 모두 7명이나 나왔다. 가히 노벨상의 보고다. 이런 과학적 연구에 의해 밝혀낸 우주의 콘텐트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우리 우주는 약 137억 년에 대폭발로 탄생했다. 2) 우주는 팽창 중이며 약 40억 년 전부터 더 빨라져 가속팽창하고 있으며 그 원동력이 되는 미지의 에너지가 ‘암흑에너지’다. 그러나 그 에너지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3) 우주의 성분은 ▶별과 지구, 사람과 산, 바다처럼 원자로 구성된 물질은 우주 전체의 4~5% 정도이며 ▶암흑물질은 약 21~22% ▶암흑에너지 (오른쪽 아래 설명)는 약 74%다. <그래픽 참조>
오늘날 과학이 발달됐지만 인류는 우주에서 4~5%뿐인 보통 물질도 아직 제대로 모른다. 그중 암흑물질은 은하계의 회전속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존재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됐다. 줄에 달린 공을 돌리는 힘은 실을 통해 전달되는 힘, 즉 구심력이다. 그 구심력에 맞춰 공의 속도가 결정된다. 구심력과 속도는 비례한다. 은하계의 회전도 구심력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계산해보니 은하계 외곽의 회전속도가 구심력에 비해 너무 빨랐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시작됐다. 그 ‘보이지 않은 힘’을 암흑물질이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면 그 암흑물질 덕에 우리 우주가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암흑물질을 추론한 사람은 괴팍하기로 유명한 불가리아 태생의 천체물리학자 즈위키(Zwicky)였다. 우주에 암흑물질이 있으며 그 양에 따라 우주 배경복사의 모양과 무늬가 달라진다. 복잡한 설명을 간단히 하면 이 배경 복사를 연구했더니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합해도 있어야 할 질량의 10%밖에 안 됐다. 나머지 90%는 어디로 갔는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 하자고 한 것이다.
암흑물질은 빛을 이용해 보는 망원경이나 전파를 이용하는 망원경에는 잡히지 않는다. 빛이나 전파를 내지도 않고 반사하지도 않고 그냥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중성미자(뉴트리노)처럼 통과는 하면서 물질과 일절 반응을 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빛ㆍ전파의 방해가 없으면 쉽게 찾을 것으로 보고 지하에 망원경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물질로 된 관측장비가 반물질인 암흑물질을 탐지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  | 김제완 교수가 본 새뮤엘 팅(Ting, Samuel Chao-chung) 무엇이든 끊임없이 묻는 과학자다. 대학생이던 필자는 1960년대에 대학원생이던 팅 박사와 함께 컬럼비아대에 다녔다. 학구열이 왕성했고 엄청나게 따지는 사람이었다. 별 이상한 것까지 물었다. 심지어 ‘사람은 왜 발로 걸어야 하느냐’고까지 했다. 그래서 그가 “그렇다”고 하면 다들 믿었다. |
그러나 20년 전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인 MIT의 새뮤얼 팅(Samuel C.C. Tingㆍ사진) 교수가 독특한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우주를 눈여겨봤다. ‘지구의 공기 때문에 차단되는 희귀입자들이 우주에선 좀 더 쉽게 관측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참(charm)쿼크라는 양성자ㆍ중성자 속의 소립자를 발견해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과학자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우주에서 암흑물질은 반(反)암흑물질과 충돌하면서 보통 전자(-전자)와 반(反)전자(+전자)를 만든 뒤 소멸한다. 반전자는 우주를 떠돌다 지구로 들어오면 전자와 충돌하면서 완전히 소멸한다. 그러므로 지구엔 반전자를 관측할 수 없지만 우주엔 많을 것이다. 그 반전자를 찾으면 암흑물질의 존재는 증명된다.” (※반물질과 물질의 충돌-소멸을 주제로 만든 영화가 ‘천사와 악마’다. 영화에선 반물질 폭탄으로 바티칸궁을 폭파하려 한다.)
에너지가 높은 반전자는 별의 폭발로 생기는 펄서(pulsar)에서도 나올 수 있지만 학계는 암흑물질과 반암흑물질의 충돌-소멸에서 나오는 것이란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팅 교수는 그 논리를 증명해줄 자석을 이용한 +, - 전자 식별법도 고안했다. +전자와 -전자는 전하가 달라 자석의 자기장 앞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휘어진다. 자장의 방향을 기준으로 +전자는 오른쪽, -전자는 왼쪽으로 굽는다. 그래서 우주에 자석을 갖다 놓을 수 있다면 반물질인 +전자를 찾아내는 게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AMS가 궤도로 오르면 우주 입자를 연간 16조(兆) 개 탐색, 이 가운데 반전자를 발견해 낼 확률을 높인다. 그런데 전자의 방향을 휘게 만들 만큼의 강력한 자장을 만들려면 대형 자석(AMS)이 필요하다.
팅 교수, 91년부터 2조원 모금 직접 뛰어
이 장치의 설계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이를 제작해 우주 궤도로 올려보내는 데 필요한 약 2조원이 문제였다. 그는 1991년부터 직접 모금에 뛰어들어 세계를 돌아다녔다. 한국에도 96년에 왔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CERN도 설득했다. 마침내 16개국에서 이에 동참하면서 2011년 5월 드디어 AMS는 지구 궤도로 올라갔다. AMS는 이후 16조 개가 넘는 우주 입자를 검색해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하는 40만 개의 반전자를 찾아냈다. CERN도 강입자충돌기를 이용해 암흑물질을 찾고 있지만 AMS가 한발 빨랐던 것이다. NASA의 찰스 보던 국장은 “이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꿀 수 있는 첫 발견” 이라고 말했다.
보통 세상에선 95% 정도 확실하면 이를 받아들이지만 과학계에서는 확률 오차가 ‘10만분의 1’ 정도가 될 때 믿기 시작한다. 팅 교수는 “앞으로 1년 안에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돼 확실한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주의 물질 중 90%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발견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우주 생성의 원리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다.
암흑에너지 연구의 역사는 암흑물질보다도 짧다. 우주의 팽창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40억 년 전쯤 팽창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가속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암흑물질이 인력으로 우주의 물질을 잡아당기면 느려져야 할 텐데 설명이 안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에너지, 즉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이 팽창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흥미로운 점은 가속팽창이 시작되던 40억 년 전에 우주에 생명체가 태어났고 지구도 탄생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연인가.
- 중앙선데이 제317호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대명예교수·물리학) | 201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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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입자’ 는커녕 ‘망할 놈의 입자’ 였다는데 …
‘힉스’가 뭐길래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하고 있을까. 힉스는 전자처럼 이 세상을 이루는 근본 입자인 소립자다. 과학자들은 이제까지 발견된 물질의 근본이 되는 입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곱 가지 발견을 전자, 원자핵, 양성자, 중성자, 중성미자, 쿼크 그리고 ‘힉스’를 꼽는다. 전자와 원자핵을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고 수소의 원자핵인 양성자와 더불어 중성자까지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성미자부터는 알쏭달쏭할 수 있다.
원자 속의 전자가 궤도 위치를 바꾸면서 빛(광양자)을 만들어 낸다면 중성미자는 원자핵 속의 중성자가 깨어지면서 나온다. 그래서 중성미자는 원자핵이 만드는 제3의 빛(레이저의 빛을 제2의 빛이라고 할 때)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성미자는 빛과 달리 철판도 뚫고 지나고 지구도 ‘존재하지 않는’ 듯 지나가는 유령 같은 입자다. 쿼크는 원자핵 속의 양성자·중성자 속에 들어 있는 아주 작은 입자로 물질을 만드는 가장 기본 단위다.
지금까지 알려진 소립자는 전자족(6개), 쿼크족(6개), 힘을 전달하는 보손(Boson)족(4개)이 있는데 모두 합해 16개가 있다. 이들이 모여 산과 들, 사람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든다.
힉스 입자(사진)는 이런 모든 입자에 질량(무게)을 주는 특이한 입자다. 또 힉스 입자는 이 모든 소립자와 관계하는 특별한 입자여서 ‘신의 입자 (God Particle)’라고도 불린다. 힉스 입자의 이름이 나오는 데는 재미난 스토리가 숨어 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언 레이더먼은 힉스 입자를 다루는 책을 만들면서 책 제목을 ‘Goddamn Particle’, 즉 ‘망할 놈의 입자’로 지었다. 그런데 출판사가 그래선 책이 안 팔린다며 뒤의 damn을 빼고 ‘God Particle’이라고 한 것이다. 아무튼 힉스 입자가 나타나기 전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된다. 빅뱅 직후 우주는 에너지만 꽉 차 있고 질량을 가진 입자는 하나도 없다. 질량이 없는 전자장, 쿼크장들이 만들어 내는 무게가 없는 입자로 꽉 차 있었다. 앞서 말한 16개의 입자도 이때는 질량이 없었다. 질량이 없어 모두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로 날아 다니면서 원자핵보다도 작은 우리의 ‘씨앗 우주’를 순식간에 자몽의 크기로 팽창시켰다.
이렇게 밀어붙이는 힘은 불안정하게 큰 에너지를 가진 힉스장이 정상적인 안정 위치로 가면서 방출하는 에너지일 것이란 생각을 하는 물리학자들이 많다. 그런데 어쨌든 ‘힉스’가 어떻게 입자들에 질량을 준다는 말인가? 비유를 위해 힉스장을 넓은 평야를 뒤덮은 눈이라고 해 보자. 스키를 타는 사람은 눈 위를 미끄러지듯 가면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장화를 신고 가면 눈에 장화가 빠지면서 엄청 힘이 든다. 그 차이는 눈의 속성으로 발생한다. 눈은 스키를 탄 사람과 장화를 탄 사람을 만드는데 그게 비유적으로 말해 힉스장이다. 힉스장의 ‘힉스’가 소립자(스키 또는 장화 신은 사람)에 질량을 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1965년 예견한 이래 실제로 힉스 입자가 발견되는 데 왜 47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양성자보다 130배 무거운 힉스 입자가 현재 자연계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를 만들려면 출력이 강한 가속기가 필요하다. 이번에 ‘힉스’를 발견한 유럽 공동핵연구소의 LHC 가속기는 10조원을 들여 만든 둘레가 27㎞나 되는 거대 시설이다. 완성되기까지도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그처럼 큰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힉스 입자는 수명이 1조 곱하기 1조 분의 1초밖에 되지 않아 그 자체론 볼 수 없고 힉스가 없어지면서 나오는 다른 입자들을 관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LHC의 두 팀이 공통으로 관측한 것도 충돌로 나온 광양자 2개의 움직임이다.
그런데 LHC가 ‘힉스 같은 입자를 발견했다’고 아직 단정하지 않은 만큼 좀 더 두고봐야 할 부분이 있다. 관측량이 힉스 이론에서 예상한 것과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3개 채널에서 나오는 입자들의 움직임도 더 관찰해 봐야 확신할 수 있다. 이번에 분석한 힉스 입자 데이터는 1초 사이에 분철된 4억 개 데이터 가운데서 300개 비율로 뽑은 것이다. 기준에 따르긴 했지만 ‘모래사장에서 모래알 하나를 고르는 격’인 그 작업에서 혹 잘못이 끼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도 나온다. 지난번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발견’ 기사도 잘못이었는데 원인은 10만 개 이상의 전선이 얽힌 기기 가운데 하나가 오작동한 게 원인이었다.
우리의 몸은 뼈와 살의 모음인데 이들이 원자들의 집합이고 그 원자들은 전자와 쿼크 같은 소립자의 집합체다. 그런데 힉스 입자가 없다면 이들은 무게가 없고 우리 자신도 허공에 뜬 유령 같은 존재가 된다니 힉스 입자에 보통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앙선데이 제279호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대명예교수·물리학) | 20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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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비게이션엔 ‘아인슈타인 시간’이 흐른다 … 시간의 비밀
잠들기 전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려고 벨을 맞춰놓는다. 집을 나서면 시간은 왜 그렇게 빠르게 흐르는지…직장에 지각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이렇듯 시간은 흐른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다면 그 흐르는 실체가 무엇일까? 시간은 영원한가?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일까? 또는 영원무궁하게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일까? 오랜 시간을 지나면 다시 제시간으로 돌아올 것인가? 의문은 꼬리를 문다.
시간이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라면 종교가 설 땅이 좁아진다. 신(神)은 틀림없이 우리와는 다른 존재이고 따라서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무한하다면 신이 시간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존재할 근거가 없어지고 그래서 우리와 섞여 있다는 논리로 비약된다. 어쩐지 하느님을 격하하는 느낌이 든다. 현대과학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의 상식인 뉴턴적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24시간이라고 하고, 이를 다시 분·초로 나눈 개념이다. 뉴턴적 시간은 우주 어느 곳이나 같은 절대시간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인슈타인이란 천재가 ‘시간도 공간처럼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4차원 시공(Space-Time)의 개념을 도입한 상대성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시간은 속도에 따라 변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의 시간은 정지한다. 시간은 속도의 함수이고 중력이 강한 곳이면 시간도 역시 늦게 간다는 것이다.
허황된 말처럼 들리지만 자동차 내비게이션에도 이런 원리가 반영돼 있다. 자동차의 위치를 알려면 지구위치확인시스템(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을 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보내는 신호를 3개의 인공위성들이 받아 신호가 오는 시간으로부터 거리를 알아내 삼각측량법으로 자동차의 위치를 정한다. 그런데 GPS에서는 상대시간이 작용된다. 위성은 빠른 속도로 돌고 있어 상대시간이 ‘자동차의 시간’보다 늦어진다. 또 우주 공간의 약한 중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저런 효과를 다 합해 위성시간은 약 4000나노초가 늦어진다. 이런 상대론적인 차이를 보정하지 않으면 자동차의 위치가 거의 1㎞ 오차가 나 내비게이션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렇게 우리는 ‘아인슈타인 시간’을 쓰고 있다.
그러면 원자 같은 극미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미시 세계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지 않는다. 시간이 +로 흐르건 -로 흐르건 상관하지 않는다. 시간의 방향에 대해 무감각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항상 일어난다. 보통의 삶에서 우린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는 인과법칙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미래도 현재에 영향을 주는 게 상식화되어 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전자가 지닌 지남철의 크기가 정확히 2가 아니고 2.0023193041992 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시의 세계에서는 미래로부터 돌아올 수 없을까? 미시세계의 원리를 이용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가?
일반상대론은 타임머신을 원리적으로 허용한다. 어렵게 말하자면 ‘일반상대론의 굽은 시공에서는 닫힌 시간곡선에 해답이 있다’는 것인데 풀어 말하자면 ‘불가능하다고 금지된 현상이 아니면 이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물리 법칙이다.
타임머신이 불가능하다는 대표적인 논리를 소위 ‘할아버지의 모순(Grandfather Paradox)’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면 옛날로 돌아가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기 전에 살해한다. 그러면 아버지가 태어나지 않았기에 나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이건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이를 피하는 방법이 양자론의 해석에서 나왔다. 양자론에서는 전자가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언뜻 ‘할아버지의 모순’ 못지않게 상식에 어긋나 보인다. 휴 에버렛 (1930~1982)이라는 미국 물리학자가 있었다. 그는 ‘쌍둥이처럼 똑같은 세상이 무한히 존재한다. 전자가 여러 곳에 동시에 있다는 것은 이런 쌍둥이 우주에 퍼져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아버지를 살해하더라도 쌍둥이 우주의 다른 곳에 사는 할아버지는 그래도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는 나를 낳는다. 우리는 쌍둥이 우주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과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하겠지만 많은 물리학자가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진지하고도 어려운 실험을 설계하고 있다.
시간이란 종족에 따라 달리 여겨진다. 호주 원주민들은 ‘꿈시간’이란 것을 믿고 있다. 시간이 앞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꿈에서처럼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흐른다는 것이다. 이 꿈시간은 ‘에버렛의 시간’을 연상케 한다. 언젠가 누군가 시간을 정말로 터득하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일 수도 있겠다.
-중앙선데이 제277호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대명예교수·물리학) | 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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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물리학자 베스(Julius Wess·1934~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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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니 콩보다 구별하기 힘든 닮은꼴 … 양성자
지하철을 탄다. 차 안엔 승객들이 꽉 차 있다. 학생, 아가씨, 중년신사, 노인 등 다양하다. 문득 소립자의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들의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소립자란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 원자핵보다 작은 기본적 미립자다. 이들의 세상은 전철 속처럼 다양하지 않다. 그와는 정반대로 양성자는 모두가 똑같다. 가마니 속 콩알보다 더 구별이 안 될 만큼 똑같다.
질량(무게)이 1.6726485×10-27 kg인 것도 꼭 같고, 1.6021892×10-19 쿨롱의 전기량을 갖고 있는 것도 똑같다. 양성자는 모두 1초에 1022번 회전한다. 더 늦거나, 더 빨리 도는 것도 아니어서 회전하는 양성자는 구별되지 않는다. 모두 똑같은 입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두 양성자가 서로 자리를 바꿔도 이를 알 수도 없고 알 길도 없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치환 대칭성이 있다’ 고 한다. 소립자가 하나같이 같아서 치환해도 외형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아무 차이도 없기 때문에 이런 분야는 할 수 없이 수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다 알겠지만 치환이란 바꾸는 것이다. 두 개의 대상이라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복잡한 수학적 개념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A와 B를 한 번 치환하면 B와 A가 된다. 한 번 더 치환하면 다시 A와 B가 된다. 다시 말해 대상이 두 개일 때 두 번 치환하면 원상복귀된다. 치환을 제곱해도 제곱하기 전과 같다는 것인데 이를 숫자로 표현하면 ‘1’이다. 1은 어떤 숫자에 곱해도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8×1도 8이고 100×1도 100이요, 1000×1도 1000인 것처럼 1은 곱하건 곱하지 않건 차이가 없다. 치환을 두 번 하면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수학자들은 이런 경우에 ‘치환의 제곱은 1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제곱해서 +1이 될 수 있는 숫자는 두 개다. +1의 제곱도 +1이지만 -1의 제곱도 역시 +1이다.
바보스러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겠지만 이런 성질은 소립자 세계에서 너무나 중요한 원리다. 요약해 말하면 소립자들은 치환 대칭성이 있는 까닭에 모든 소립자들은 ‘치환에 대해 -1이 되는 것’과 ‘치환에 대해 +1이 되는 것’으로 분류된다. 전자를 ‘페르미온’, 후자를 ‘보존’이라 부른다. 페르미온이나 보존은 모두 회전하는 성질, 즉 ‘스핀(Spin)’을 갖는다. 똑 떨어지지 않는 반정수로 스핀하는 것이 페르미온이고 0, 1, 2, 3… 등 정수로 되는 것이 보존이다. 너무 어려우니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그렇다고만 여기면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기본적 소립자 가운데 주변 물질을 이루는 소립자의 주종인 양성자, 중성자와 전자는 치환에 대해 -1로 표현되는 페르미온이며 빛의 기본 알갱이인 광양자, 중력을 전달하는 중력양자 등은 +1로 표현되는 보존이다. 보존은 생겼다 없어질 수도 있지만 페르미온은 전체 숫자가 일정하다.
빛은 보존으로 구성돼 있는데 검은색 표면에 흡수돼 없어지면서 온도를 높이지만, 페르미온으로 구성된 물질은 다른 물질이 돼도 전체적 양은 변하지 않는다. 좋은 예가 얼음이다. 녹아서 물이 돼도 무게는 그대로다. 옛 과학자들은 이를 ‘물질 불변의 법칙’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페르미온은 ‘물질의 기본 입자’이고 보존은 ‘힘을 전달하는 기본 입자’다.
그런데 1974년 독일 물리학자 베스(Julius Wess·1934~2007·사진)와 이탈리아 물리학자 즈미노(Bruno Zumino·1923~)가 획기적인 이론인 ‘초대칭 이론’을 들고나왔다 (일본·소련에서 1971년 비슷한 이론이 발표됐지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그들의 초대칭 이론에 의하면 페르미온이 있으면 그에 대응되는 보존이 꼭 있어야 하며, 보존도 마찬가지다. 빛의 알갱이인 광양자(포톤, 보존)에는 대응하는 페르미온 포티노가 있어야 하고, 페르미온인 뉴트리노가 있으면 반드시 대응하는 뉴트랄리노(보존)가 있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세계 최대의 가속기 LHC는 ‘신의 입자’와 이 초대칭 입자를 찾아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초대칭성이 맞다면 페르미온과 보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물질과 힘의 구별도 더 모호해진다.
이렇게 어려운데 요즈음 물리학자들은 ‘제곱해서 +1이 되는 것 외에도 네제곱해야 +1이 되는 것에 해당하는 입자’까지 연구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네 번 거듭 곱해야만 +1이 되는 숫자를 허수(수학에서는 i로 표시된다)라고 하는데 이런 성질을 가진 입자를 ‘에니온’이라고 한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에니온이 고온초전도체의 원인이 되는 입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의 ‘똑같이 닮은 단조로움’이 우리들이 사는 현상계의 복잡함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게 놀랍다. 수학이 만든 헛된(?) 허수마저 우리 생활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신기하다. 필자는 지하철 승객들과 소립자의 집단을 연결시켜보며 ‘물리 하는’ 재미를 누린다.
-중앙선데이 제273호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대명예교수·물리학) | 201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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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립자 세계 ‘양자장’ (quantum Field) |
왼쪽 사진은 양자론의 창시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1887~1961)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비롯한 양자 역학에 대한 기여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오른쪽 사진은 폴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1902~1984)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비가환 대수학을 기초로 한 별도의 양자역학 이론체계를 건설하고 복사장의 양자론과 ‘변환이론’을 제출,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의 통일에 공헌했다. 또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개척하고 다시간이론으로 장(場)의 이론 형성에 공헌했다.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 |
양자(量子場 · quantum field) …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소립자 만들어내는 ‘직조물’
성 아우구스틴(St. Augustin, 354~430)은 시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시간은 익숙하지만 누군가 물으면 설명할 수 없다.” 마음도 시간처럼 다들 느끼긴 해도 실체가 뭔지 알지도 설명도 못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마음이 모든 존재의 근본 같긴 하지만 더 생각할수록 알 수가 없다. 너무 철학적이고 어려운 얘긴 말고 구체적인 질문을 해보자.
①마음은 뇌가 만드는 것인가 ②물질이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③마음이 형체 없는 형이상학적 존재라면 물질인 뇌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양자론의 창시자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1887~1961)의 생각을 소개 하고, 양자론을 토대로 마음을 이해하려 한 스테프와 펜로즈의 학설을 참고해 나름대로의 답을 해보려 한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작은 책자에서 마음에 대해 이런 문답을 했다. “등대가 있다. 거기서 1초에 60번 불연속적으로 켰다 껐다 하며 빛을 비춘다. 그러면 두 눈은 불을 연속적인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한쪽 눈에 30번, 다른 쪽 눈에 30번 비추면 눈은 이를 불연속적이라고 인지한다. 그렇다면 왼쪽 눈의 정보를 인식하는 마음과 오른쪽 눈의 정보를 인식하는 마음이 따로 있고 이를 종합하는 더 큰 마음이 있지 않는가.”
이런 현상들을 설명하려면 뉴턴적 사고로는 불가능하며 양자론적인 사고의 변환이 필요하다. 짧은 글에서 양자론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므로 느낌을 전하는 정도를 유지하자. 지난번에 소개했듯 막스 프랭크는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불연속적이라고 했다.<중앙SUNDAY 2012년 5월 6일자>
이어 프랑스 물리학자 드 보로이는 입자라고만 생각했던 전자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물질파 이론을 내놓았다. 그 주장은 데이비슨 저머의 실험으로 증명됐고 다른 미소 입자도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갖는 게 확인됐다.
그뿐만 아니라 전자는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고, 극단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전자가 마치 텔레파시를 전하는 것처럼 정보가 동시에 전달된다는 것도 밝혀졌다. 닐스 보어(Niels Bohr,1885~1962), 하이젠 베르그(Heisenberg,1901~1976), 슈뢰딩거, 디렉(Paul Adrian Maurice Dirac, OM, 1902~1984) 등이 이런 기괴한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파동 방정식을 개발했다. 그중 디렉의 방정식을 깊게 해석한 게 양자장론(量子場論, quantum field theory) 이다. (* 좁은 의미에서는 양자장론은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이론이다.) 요는 ‘우리가 존재하는 시공이 만물의 기본 요소인 전자 같은 소립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우주의 공간은 전자와 원자핵을 구성하는 쿼크 같은 소립자(물질의 최소단위 입자)를 만들 수 있는 직조물처럼 돼 있다는 주장이다. 그 직조물이 양자장이다. 그래서 진공의 양자장을 자극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게 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텅 빈 곳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다니. 터무니없는 양자장이론 같으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이 방정식을 이용해 전자의 자기능률(지남철의 세기)을 계산하면 ‘2.00231930419923’인데 측정치인 2.00231930419922±(1.5×10의-12승)과는 소수점 이하 열한 자리까지 딱 맞아떨어진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정확한 이론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터무니없어 보이건 말건 이 양자장 이론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양자장의 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존재가 뭔지 헷갈린다. 전자는 관측하면 입자이고, 보지 않을 때는 파동이라는데 그럼 우리 몸이 입자이자 파동이란 말인가. 어떻게 한 실체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건가. 그 이론의 고매함을 아인슈타인은 “달은 우리가 쳐다볼 때만 존재하는가”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제 글머리에서 던진 ‘마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럴듯한 답을 구성해보자. 마음은 양자장 같이 형태도 없고, 물질도 아닌 형이상학적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형태도 없는 어떤 존재에 외부 자극이 오면 사랑과 미움의 감정과 마음이 생겨난다. 텅 빈 공간 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잉태돼 있는 양자장은 외부 자극을 통해 드러나는 마음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갖는 전자를 탄생시키는 양자장처럼 마음도 그런 존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슈뢰딩거의 말처럼 오른쪽 눈의 마음과 왼쪽 눈의 마음이 따로 있을 수 있고, 이 두 마음을 합치는 그런 마음도 있을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마음들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의 마음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근본이 되는 물질을 칼라파라고 한다는데 그것도 양자장 이론을 연상시킨다. 앞으로 언젠가는 양자장이 종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과학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선데이 제271호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대명예교수·물리학) | 201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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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는 양자역학의 성립에 핵심적 기여를 한 독일의 물리학자이다. 1899년 새로운 기본 상수인 플랑크 상수를 발견한다. 일 년 후 플랑크의 복사 법칙이라 불리는 열 복사 법칙을 발견한다. 이 법칙을 설명하면서 그는 최초로 "양자"의 개념을 주창하였고, 이는 양자역학의 단초가 된다. 플랑크는 스위스의 아마추어 과학자에 불과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발굴한 사람이며, 1차 대전 기간 중 과학계의 교류가 완전히 중단되는 것을 막고자 끝까지 노력하였다. 플랑크는 양자역학의 창시자로 위대한 과학자인 동시에, 독일 과학계의 수장으로 후배 과학자 발굴과 과학계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는 20세기 독일 과학계의 눈부신 성과에 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핵심적인 기여를 한 양자역학에 의구심을 품었으며 양자역학을 수용하지 않고 부정하는 태도를 지녔다. |
양자(量子 · quantum)의 탄생 … 양자론은 독일판 ‘제철보국’의 부산물
독일과 프랑스의 보불 전쟁(1870~71)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절이었다. 전리품으로 제철 중심지 알자스로렌을 얻게 된 독일은 좋은 철을 만드는 데 요새 말로 국가적인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좋은 철을 만들려면 용광로의 온도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온도에서 제련하는가에 따라 철의 강도와 탄성이 달라진다. 지금은 전자칩인 서모 커플(Thermo Couple)로 용광로 온도를 전자적으로 측정하지만 당시엔 숙련공들이 용광로 내 불 빛깔로 가늠했다. 중요한 제철 산업이 과학보다 사람의 감각에 의지하는 게 불안했던 독일은 오늘날처럼 대학에 많은 연구비를 투입해 용광로 속 온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연구를 장려했다.
이런 투자 덕에 열역학으로 알려진 물리학의 한 분야가 전성기를 맞았고 차츰 빛의 성질을 연구하는 분광학(分光學)의 시대로 넘어갔다. 이 분야 개척자들은 오늘날까지 명성을 떨치는 맥스웰(J.C. Maxwell), 패러데이(Faraday), 헤르츠(Hertz)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 전자기(電磁氣)학의 개척자에 의해 전파의 속도가 빛과 마찬가지로 초당 30만㎞이며 빛도 파장이 짧은 전파라는 게 알려지게 됐다. 그럼에도 아직은 알자스로렌의 제철 사업에 꼭 필요한 빛과 열의 관계까지는 널리 연구되지 않았다.
사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열을 많이 내는 적외선은 빛보다 파장이 짧은 전파이고, 극히 짧은 파장인 X선도 전파이며, 열을 낸다. 빛을 포함해 모든 전파는 열을 만든다. 그래서 당시 본(Bonn)대학의 물리학 교수이자 빛과 전파, 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던 막스 플랑크 (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 박사는 용광로 속 빛의 색깔로 온도를 귀신같이 알아내는 숙련공의 감각을 과학 이론으로 정리하려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특히 집중 연구한 것은 열의 중간지대였다.
|  | 막스 플랑크 (Max Planck) 박사 | 복사의 법칙이라 불리는 열 원리는 당시 저온과 고온 파트에는 나름대로 이론이 있었다. 저온엔 영국의 레리와 진스가 내놓은 초보적 이론이 있고 고온엔 빈의 법칙(Wien’s law)이란 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온과 고온의 공백을 연결하는 이론은 많은 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견되지 않았다.
그 공백을 플랑크가 알아냈다. 한데 그 방식이 과학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리저리 꿰 맞추다 우연히 정답을 발견한 식이었다. 그게 박사는 못마땅했다. 기초과학에선 결과보다 도출 과정과 논리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박사는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몰라 고민했다. “왜 그런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 하는 자연의 연속성이 실제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태양에서 오는 빛의 강도는 진폭을 연속적으로 조절하면 연속적으로 더 강해지거나 더 약해질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연속적으로 되지 않고 띄엄띄엄 변할 수 있겠다는 가정이었다.
빛의 강도가 불연속적으로 변하면 강도의 합은 그냥 더하면 된다. 단순한 산수다. 그러나 연속적이라면 다르다. 적분을 해야 한다.(적분은 고등 학교에서 대부분 학생이 골치를 싸매는 수학적 수단이다.) 플랑크 박사는 빛의 강도, 즉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변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계산했다.
그렇게 한 결과 놀랍게도 추정대로 복사열의 에너지 공식이 나왔다. 박사는 몇 주를 망설이다 발표했다. 복사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고, 불연속적이며 그리고 복사열의 최소단위인 ‘양자(量子)’가 있다는 것이었다. 현대 물리학의 가장 골치 아픈 이론의 하나인 ‘양자론(量子論)’의 탄생이다. 당시는 엄두도 못 낼 생각이었다.
양자론은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맛보기로 약간 설명한다면 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고, 최소 에너지량인 h (플랑크 상수,Planck 常數)는)의 배수 라는 것이다. h 는 6.63×10-34승J (줄)의 에너지를 1초간 공급하는 것이다. 양자가 10의36승 (즉 10억×10억×10억×10억)개 있어야 30와트짜리 전등 하나를 1초간 밝힌다. 그보다 작은 에너지 뭉치는 없다.
플랑크의 양자 개념을 재빨리 다른 곳에 응용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20세기가 낳은 과학의 영웅이며 천재의 대명사인 박사는 전파나 빛은 그때 대부분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파동이 아니며 수많은 양자로 이뤄져 있다고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빛이 광양자(光量子)의 흐름이라는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그 개념은 아인슈타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겼다.
플랑크의 양자론이 왜 그리 획기적이고 나아가 현대 물리학에 얼마나 큰 영향 을 미쳤는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반도체 · 레이저 등 현대 기술의 90%가 이를 바탕으로 한다. 이뿐만 아니라 존재의 모습과 실체조차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문재(文材)가 넉넉지 못해 우주의 실체를 가장 가깝게 보여주는 이 주제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다음엔 마음과 양자론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써 보겠다.
-중앙선데이 제269호 김제완 한국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대명예교수·물리학) |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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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원 맴돌기 3000년 … 아인슈타인 만나 4차원으로 승격
옛날 희랍시대 사람들은 퍽 현명했던 것 같다. 그때 석학들은 과학과 예술을 함께 연구했다. 요즈음 우리 교육과학기술부도 이들처럼 과학 · 공학 · 기술 · 예술 및 수학을 하나의 유기체로 교육하는 스팀(STEAM: Science · Technology · Engineering · Arts · Mathematics) 교육에 정열을 쏟아 붇는다. 필자처럼 ‘구시대 사람’ 들이 대학 다닐 때는 문리과 대학이란 단과대학에서 아테네 학당처럼 철학 · 미학(aesthetics) · 과학 · 수학 등을 포함한 교양을 쌓았다. 이 아테네 학당을 대표하는 인물에 플라톤, 피타고라스 같은 현자들이 있다.
그중 플라톤은 이상주의적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물질의 원소설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물·불·공기·흙 그리고 제5의 물질(Quintessence라 고 하며, 우주에 퍼져 있는 형체 없는 물질이라고 했다)로 이뤄져 있고 이들을 잘게 쪼갠 기본단위인 원자는 다섯 개의 ‘플라톤의 고체(Platonic Solid)’ 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불의 원소는 정4면체, 흙은 정6면체, 공기는 정8면체, 물은 정20면체이며 이들을 이어주는 제5의 물질은 정12면체의 모양이란 것 이다. 요약하면 세상은 5개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모양은 다섯 종류의 정다면체라는 것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물론 그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 현대과학은 세상이 5원소가 아니라 수소·산소·질소·우라늄 등 100여 종 원소 로 돼 있다고 본다. 그러나 원소의 기본은 양성자 · 중성자 · 전자이고 여기에 빛의 알갱이인 광양자 그리고 요즘 입자물리학자들이 열을 올리며 찾고 있는 ‘암흑물질’ 을 합하면 플라톤의 5원소설이 일리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플라톤의 원소설에서 더 음미해야 할 점은 원소설의 배경인 기하학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물질·현상의 배경인 5원소는 정육면체들의 기하학적 쌓임’이며 따라서 기하학이야말로 과학과 자연의 밑바탕을 이루는 본질이라는 관찰이다.
그러나 우리 인류는 거의 3000년 동안 플라톤의 ‘자연 기하학’ 을 깊이 새기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 비로소 아인슈타인이란 천재가 자연의 기하학을 살려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한발 더 나아가 플라톤 기하학을 완전히 창조적으로 극복해 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만유인력을 새로운 기하학으로 풀이했다. 뉴턴은 두 물체가 있으면 이들 사이에 그들의 질량(무게)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역비례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안했다. 이 법칙은 모든 천체의 움직임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여기에 불만을 가졌다. 태양이 지구를 끈으로 묶어 당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긴다’는 만유인력이 전달되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수성은 태양을 돌 때 ‘한 바퀴 돌면 제자리에 오는 게 아니라 궤도가 뉴턴의 만유인력이 예측한 것보다 43초 어긋나는’ 세차운동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특허국에서 일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26세의 청년 아인슈타인은 1905년 획기적인 논문 4개를 발표한다. ‘특수상대성이론’, ‘E=mc²’, ‘브라운 운동’ ‘광전효과’ 인데 하나하나가 노벨상 감이다. 그중 특수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시간(1차원)과 공간(3차원)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융합된 4차원 세계인 시공(時空)으로 돼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 주장을 하면서 아인슈타인은 플라톤 이후 뉴턴까지 지배한 유클리드의 3차원 기하학을 버렸다. 새 사고방식으로 기하학을 4차원 세계로 승격시켰다.
젊은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핵심은 ‘우주는 무거운 천체가 있는 근방에서는 굽 는다’는 것이었다. (그림참조) 쉽게 말해 무거운 별일수록 주변 공간은 더 휘고 굽는다는 것이었는데 ‘공간이 휜다’는 건 당시로선 획기적 발상이었다. 이를 태양계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지구는 정지해 있으면 무거운 태양이 만드는 계곡처럼 굽은 공간을 따라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속도를 갖고 도는 지구는 원심력 덕택에 굽은 경사를 이겨내고 계속 돌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생각을 기초로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었는데 이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면 ‘굽은 공간의 기하학 방정식’ 이다. 새 방정식으로 수성의 세차운동도 계산했더니 뉴턴처럼 43초 오차가 사라지고 딱 들어 맞았다.
그는 이런 생각도 했다. 빛은 직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무거운 천체 근방의 공간은 굽어 있어 이를 지나는 빛은 당연히 굽어야 된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빛이 굽는 각도를 계산했고, 곧 뒤이어 에딩턴(Arthur Eddington,1882~1944)이 이를 확인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세계 제1의 과학자가 된 것이다.
플라톤적 사고방식의 훌륭함은 과학-공간-모양-기하 같은 것을 한데 묶어 융합적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도 천체-공간-기하학 같은 것을 융합해 사고했다. 그 뿌리가 바로 플라톤이다. 그래서 플라톤의 생을 구체화하면 좋은 STEAM 교육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교육을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중앙선데이 제267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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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노벨 물리학상 공신 … 알고보니 선조 때 ‘손님별’
해마다 10월 중순이 되면 그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은 ‘가속 팽창하는 우주’ 를 발견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레이 캠퍼스의 솔 펄머터 교수와 존스홉킨스대의 애덤 리스, 호주 국립대의 브라이언 슈밋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빅뱅(big bang)이라고 알려진 순간에서 90억 년, 지금으로부터 40억 년 전쯤 갑자기 가속도가 붙으며 빨라졌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그 전엔 중력이 잡아당기기 때문에 팽창 속도는 느려지리라 예상했었다. 빅뱅은 티끌보다 작은 공간에 현재 우주의 모든 별과 에너지가 눌려 가둬져 있다 그 막대한 에너지 때문에 폭발한 현상으로 천문학자들은 보고 있다.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저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자기 방정식을 우주에 적용했더니 우주는 팽창한다는 답을 얻었다. 그러나 밤하늘을 보면 별들은 조용히 반짝이고만 있지 움직이지 않는다. 팽창 우주를 믿을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라는 팽창을 막는 힘을 자기 방정식에 억지로 넣어 팽창을 못하도록 했다. 후에 미국 천문학자 허블이 1920~30년 우주 팽창을 관측하자 아인슈타인은 자기 방정식을 망가 뜨리면서 억지로 집어넣은 우주상수를 일생의 가장 큰 실수라고 후회했다.
아무튼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우주의 가속 팽창 현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성간 거리를 재는 데 밝기가 일정한 초신성 Type-1a를 이용하는 새로운 기법을 썼다. 초신성 Type-1a는 태양 질량의 1.4배 되는 별이 터지는 까닭에 폭발 질량과 밝기가 일정하다. 최고 밝기는 태양의 100억 배 정도여서 먼 거리까지 잴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우주 팽창속도를 더 정확히 잴 수 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이 우주는 팽창할 뿐만 아니라 팽창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세상에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이 활용한 초신성 유형-1a(Type-1a)가 조선의 기록에도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중 하나인 조선왕조실록 178권 ‘선조조’ 편(1604년 10월 13일)은 윤 아무개를 공조판서에 임명했다는 말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별 얘기로 마친다.
초저녁에 손님별이 미수 10도 거극 110도 자리에 나타났는데 목성보다 작고 적황색 빛깔로 흔들리고 새벽녘에는 안개가 끼었다. (夜有一更 客星左尾宿十度 去極百十度 形體小於歲星 色黃赤動搖 伍更有霧) (우리 조상은 초신성을 손님별이라고 했다.)
이날 ‘목성보다 작았다(덜 밝았다는 뜻)’ 라 기록한 실록은 다음 날에는 ‘목성보다 정말 조금 작았다’ 라고 썼다. 그 다음 날엔 ‘목성만큼 밝았다’, 그 다음 날에는 ‘목성보다 조금 더 밝았다’라고 기록했다. 날씨에 따라 ‘목성보다 훨씬 밝고, 금성보다는 많이 어두웠다’ 는 식의 기록이 이어진다.
실록에 실린 밝기 변화(light curve)는 애석하게도 천문학 연구를 위해 한 것은 아니었고 호기심이나 왕조의 운세를 점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용은 서양에는 케플러별로 알려진 당시 Type-1a 초신성에 대한 최초의 가장 자세한 기록이다. 케플러도 1604년에 이 별을 발견했었지만 기록이 이처럼 자세하진 못했다.
이 손님별의 밝기 변화를 현대 천문학자들이 현대 과학의 힘과 좋은 망원경을 활용해 연구하자 흥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옛날엔 육안으로 볼 수 없던 우리 은하계와 다른 은하계(우리 은하계 외에도 1000억 개의 은하계가 있다)에서 폭발한 초신성들까지 합해 분류를 했더니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았다. 초신성 밝기 곡선이 규칙적인 유형 1(type-1a)과 밝기 곡선이 불규칙한 유형 2(type-2a)다.
앞서 말한 유형-1 초신성은 백색 왜성이 주위의 별이나 성간 물질에서 기체를 끌어당겨 비대해지면서 태양 질량의 1.4배가 돼 폭발한 경우이고, 유형 2는 태양보다는 10배 이상 무거운 별이 폭발한 경우다.
1604년 초신성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빼고 케플러의 데이터만 보면 마치 유형 2와 같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을 합해 보면 유형 1임이 분명해진다(그래프 참조). 결국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용한 초신성 유형-1a들은 실제론 그 원형을 우리 조상이 처음으로 밝혀낸 셈인 것이다. 그들이 이를 미리 알았다면 우리 조상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선조들이 후세 과학자들을 위해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이 붓으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덕분에 1604년에 폭발한 초신성은 어떤 종류이며 크기와 무게가 어떤지 등을 400년 뒤 필자와 같은 과학자들이 알아낼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 것이다. 과학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
-중앙선데이 제265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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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은 실험실에서 나노 크기의 판을 진공 에너지를 이용해 움직이는 장치가 실현되고 있다 |
아무 것도 없는 듯, 온갖 능력 품은 공간
진공(眞空)은 직관적으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아무것도 없는 무와는 다르며, 진공은 무(無)와는 다르게 물질은 없지만, 공간은 있는 상태이다.
세상은 시간과 공간속에 담겨 있다. 태양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막막한 공간 속에서 오랜 시간 있어온 실체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별과 은하계, 그리고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과 동물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바이러스, 공기 까지 모든 것을 들어내면 텅 빈 공간과 말없이 흐르는 시간만 남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진공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게 존재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실체가 있어야 존재한다고 할 텐데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없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궁금증이 생겨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완전한 진공은 이상적인 이야기지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진공소제기의 경우 그 진공의 질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대부분 공기를 모터로 밀어내 만든 텅빈 공간, 즉 진공으로 바깥 공기와 함께 먼지도 빨려 들어가서 청소가 가능해진다. 완전한 진공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을까? 그렇지 않다. 설명을 위해 이 세상이 두 개의 전자로만 구성돼 있다고 가정해 보자. 떨어져 있는 두 전자는 서로 밀어낸다. 서로 접해 있지도 않은 전자가 서로 밀어낼 수 있는 것은 둘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기와 자기의 힘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장(場)’ 또는 ‘필드(Field)’라는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지남철이 좋은 예다. 막대 자석에 흰 종이를 덮고 고운 쇳가루를 뿌리면 무늬가 나타난다. 무늬는 자기장(磁氣場)의 모습이다. 자기장을 따라 작용하는 자력 덕에 지남철은 닿지 않고도 작은 쇳덩어리를 잡아당길 수 있는 것이다. 전기가 있어도 전기장이 생긴다. 전기를 띤 물체가 움직이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동시에 생겨나고 이들이 얽혀 전기장과 자기장의 진동하는 모습이 파동처럼 퍼져 나간다. 이를 우리들은 전파라고 한다. 전파는 빛의 속도, 즉 초속 30만㎞다.
그중에서 FM라디오 방송에 쓰는 전파는 메가헤르츠인데 1초에 수백만 번 진동한다. 파장이 더 짧아지면 적외선이 되고 이보다도 짧은 전파를 우리는 ‘빛’이라고 한다. 빛은 초당 수백조 번 진동하는 전파다. 빛은 파장에 따라 색깔이 다르며 파장의 크기는 대략 원자나 분자의 크기에 버금간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들어내도 아주 약한 전파는 그럴 수 없다. 손등을 확대하면 주름마다 세균이 보이듯 원자나 분자의 공간에 있는 약한 전파는 원리적으로 절멸(絶滅)이 불가능한 대상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주 약한 전파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너무 어려워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불확정성 원리(不確定性原理, uncertainty principle)’ 때문이다. 이 알듯 말듯한 현대 물리학 원리에 따르면 아주 좁은 진공이라도 거기엔 운동이 있고 약한 전파가 있다. 이게 어렵다면 ‘진공 에너지를 끌어내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장치가 있다’ 는 설명이 진공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 좀 쉬울 수 있겠다.
아무것도 없다는 진공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것처럼 허황되고 기막힌 말로 여겨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다. 진공에서 에너지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원리는 이를 밝혀낸 사람의 이름을 따서 ‘카스미어 효과’ 라고 한다. 실험실에서는 나노 크기의 판을 진공 에너지를 이용해 움직이는 장치가 실현되고 있다(사진).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이지만 실제론 온갖 능력을 갖고 있다. 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자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기본 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물질장 도 있다. 이런 능력이 자극을 받을 때 전자도 튀어나오고 쿼크(중성자나 양성자 같은 원자 핵의 요소 입자들을 구성하는 더 작은 기본 입자)나 중성미자도 ‘창조’된다. 텅 비었다고만 생각됐던 진공 혹은 허공은 모든 물질을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장(場)으로 짜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공이란 ‘자연의 테피스트리(직물에 무늬를 짠 걸개)’ 라고 할 수 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전파가 깔려 있는 허공의 테피스트리는 빛이 만들어 내는 무지개 빛 무늬를 지니고 있을까? 중성미자를 만들어 내는 그 장(場)은 모습이 있다면 어떤 무늬일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름 모를 요소들은 어떤 무늬를 지니고 있을까?
이런 환상에 사로잡혀 진공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오늘도 많은 과학자가 상상의 날개를 펴기도 하고, 어려운 실험을 하며 땀 흘리고 있는 것이다. 허공은 말처럼 허공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비밀을 간직한 실체이며 찬란한 테피스트리라는 상상에 생각을 싣는다.
-중앙선데이 제263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3.24
물리학의 양자 마당 이론에서의 진공(眞空)은 매질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의 요동이 있어 입자가 쌍생성되고 쌍소멸한다. 이때 지나가는 빛은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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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성적 천재 에토레 마조라나’ · Ettore Majorana |
|  | Ettore Majorana disappeared in 1938. This photograph was taken from his university card, dated 3 November 1923. |
‘마조라나 페르미온(Majorana Fermion)’ 발견 ... 유명세 싫어 논문 거부
미국 물리학회는 전통적으로 매년 3월 봄 학회를 연다. 올해 보스턴 학회에선 발표 논문 가운데 ‘마조라나 페르미온(Majorana Fermion)’ 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화제가 되고 눈길을 끌었다.
‘마조라나 페르미온’ 이란 낯선 단어는 좀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100년 전, 장화같이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끝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 라는 소도시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은 ‘에토레 마조라나’(Ettore Majorana, 1906~1938?). 아이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서 천재성을 나타냈으나 아주 내성적이어서 책상 밑에 숨어 문제를 풀곤 했다.
17세에 로마대에 입학해 22세엔 ‘원자 스펙트럼’ 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활동이 저 유명한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Enrico Fermi, 1901~54 · 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눈에 띄었고 마조라나는 그때부터 페르미와 함께 일하게 된다. 그때 지도교수 페르미는 마조라나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뉴질랜드 태생인 러더퍼드가 ‘초미니 태양계’ 원자모형을 내놓고 퀴리 부인이 발견한 방사성원소 라듐을 이용해 무거운 원소들의 내부를 연구 하고 있을 때였다.
그즈음 퀴리 부인의 딸 이렌 퀴리(1935년 노벨 화학상 수상)와 그 남편이 어머니의 뒤를 이어 무거운 원소들을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의 결론은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입자에 의해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알려진 기본입자는 양성자, 전자 그리고 광양자(감마선이나 빛 같은 전파에너지의 알갱이)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양성자가 튀어나오는 반응을 유발한 것은 광량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마조라나의 생각은 달랐다. 양성자 정도로 무거운 입자를 쫓아내 원소 질량의 변화를 일으키고 다른 원소가 되게 만들 정도라면 무게조차 없는 가벼운 감마선 알갱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양성자와 무게가 비슷한 중성입자, 즉 전기를 띠지 않는 양성자 정도의 질량을 가진 새로운 입자가 있어야만 비슷한 무게의 양성자를 밀어낼 수 있다고 추론했다.
이 ‘양성자 정도의 질량을 가진 새로운 입자’ 는 그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중성자를 예언한 것이다. 페르미는 마조라나의 생각을 듣자마자 논문을 쓰라고 권했다. 하지만 내성적인 마조라나는 더 이상 주장하지 않았고, 이 중요한 이론을 논문으로도 남기지 않았다. 몇 년 뒤 마조라나와 같은 추론을 한 채드윅이 중성자 발견을 주장했고 193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마조라나는 그 이외에도 과학 역사에 길이 남는 두 가지 일을 더 했다. 첫째는 ‘중성미자’ 또는 ‘뉴트리노’라는 이름을 가지는 작은 소립자에 관한 연구였다. 빛은 원자 속의 전자가 이동하거나 전기를 띤 물체가 움직일 때 나온다. 태양을 예로 들어 보자. 태양 속에선 수소들이 핵융합을 해 에너지를 만든다. 융합으로 생기는 막대한 에너지가 밖으로 전달되면서 태양 표면을 섭씨 6000도 정도의 이온화된 가스로 변화시킨다. 이때 전자가 움직이고 이온화된 원자의 변화가 생겨서 빛이 나온다.
그때 원자 속의 원자핵도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성미자가 나오게 된다. 원자의 변화에서 나오는 것이 빛이고 원자핵의 변화가 방출하는 것이 중성미자다. 이런 뜻에서 중성미자는 제3의 빛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광은 제1의 빛, 레이저는 제2의 빛이라고 할 때 중성미자는 제3의 빛이다. 제3의 빛 중성미자는 빛의 알갱이인 광량자보다 훨씬 더 많이 태양에서 날아온다. 태양으로부터 지구 표면 1㎠의 면적으로 매초당 약 2000만 개의 광량자가 날아오는데 중성미자는 그보다 훨씬 많은 100억 개 정도다. 빛은 눈에 보이고 잡히지만 중성미자는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우리들이 못 느끼고 있지만 태양은 이 제3의 빛을 끊임없이 쏟아붓고 있다.
마조라나는 이런 중성미자가 ‘자기 자신인 동시에 자기의 반입자’ 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동물로 따지면 수컷인 동시에 암컷인 양성 동물이라는 얘기다. 정말 획기적인 이론이다. 자기 업적을 기록하는 데 소극적인 마조라나는 이렇게 중요한 이론을 또 논문으로 쓰지 않았다. 페르미는 논문으로 쓰라고 권해도 보고 야단도 쳤지만 소용없었다. 답답해진 페르미는 자기 손으로 중성미자 이론을 써서 마조라나의 이름으로 학술지에 게재했다 (제자의 업적을 자기 이름으로만 발표하는 한심한 과학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70년 전에 쓰인 이 논문을 시작으로 ‘스스로가 스스로의 반입자인 소립자들’ 을 ‘마조라나 페르미온(Majorana Fermion)’으로 분류한다.
올해 봄, 보스턴 물리학회에선 ‘마조라나 페르미온 발견 논문’ 을 쓴 벨기에 델프트대의 쿠벤호벤 초청 강연이 있었는데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강당이 꽉 찼다. ‘빛보다 빠른 입자’의 발표가 허구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요즘, ‘마조라나 페르미온’ 의 발견은 의미가 새롭다. 그럼에도 그 발견에 70년 세월을 기다렸으니 좀 더 시간을 두고 과학적으로 소화해야 할 것 같다.
-중앙선데이 제261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3.11
Ettore Majorana was maybe the most brilliant student of Enrico Fermi, and an outstanding physicist. He disappeared on March 25th 1938 at the age of 32 years, under mysterious circumstances and leaving no trace behind. The hypothesis that he committed suicide appears weak in the face of his withdrawing a conspicuous amount of money from his bank on the eve of his disappearance -he had a rational mind and such an action would have made little sense. Other hypotheses include an escape to Argentina, and even a collaboration with the third reich in Germany, where he had previously worked -Majorana had expressed anti-jew ideas in the past. ... |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 · Rutherford's atom mo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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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 태양계’ 의 구세주, 아인슈타인 (Einstein)
자,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이제 스승인 톰슨의 ‘건포도 빵’ 모형은 원자모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또 원자 속에 전자보다 8000배 무거운 방사선 알파 입자 (헬륨의 원자핵)에 버금갈 만큼 무거운 원자핵이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본지 제257호 2월 12일~13일자 28면 참조>
그러면 그 원자핵은 얼마나 클까. 러더퍼드의 관심은 이곳에 집중됐다. 그는 금박지(금의 원자)에 알파 입자를 100억 번 쏘면 하나 정도 튀어나오는 것을 알았다. 이를 러더퍼드는 ‘원자 대부분은 빈 공간이어서 알파 입자가 그냥 지나가고, 원자핵과 부딪힐 경우만 튕겨 나온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충돌하는 알파 입자와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원자 내 빈 공간의 단면적과 원자핵 단면적의 비율이 100억 대 1이라는 의미다. 면적은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하고, 원자와 원자핵의 반지름은 10만 대 1이란 공식, 원자의 반지름이 0.00,000,001(10-8)㎝라는 점을 다 고려하면 핵의 크기는 0.0,000,000,000,001㎝ 즉 10-13㎝라는 게 나온다. 태양계처럼 중심부에 원자핵이 있고, 원자핵 지름의 10만 배 되는 거리에서 전자가 행성처럼 돈다. 초미니 태양계인 셈이다. 전자는 원자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궤도를 돈다.
그런데 이 러더퍼드의 ‘초미니 태양계’ 모형에서 곧 치명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전자기학 때문이다. 19세기에 완성된 전자기학에 따르면 전기를 띤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하면 반드시 전파(물리학자들은 전자기파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전파는 전기장뿐만 아니라 자기장의 파동을 포함하기 때문이다)가 발생한다. 따라서 초미니 태양계의 외곽을 도는 전자도 전파를 방출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자는 빨리 돌지만 워낙 가벼워 운동 에너지가 크지 않다. 그런데 운동하는 전자에서 전자파가 방출되면 ‘그나마 갖고 있는’ 운동 에너지가 전자기파의 형태로 방출된다. 실제로 전자의 질량 10-31㎏, 전기량 10-19 쿨롬, 궤도 반지름 10-8㎝ 등 구체적인 값을 활용해 어렵고 골치 아픈 물리 계산을 해보면 10-20초라는 짧은 시간에 전자는 갖고 있는 운동 에너지를 모두 방출하고 원자핵으로 떨어져 버린다. 처음에는 천천히 에너지를 방출하지만, 소용돌이 중심부로 빨려드는 조각배처럼 원자핵에 잡히는 마지막 순간에는 순식간에 모든 에너지를 잃고 양전기를 띤 원자핵에 빨려 들어간다. 즉 원자가 소멸된다.
‘원자 소멸’ 은 엄청난 얘기다. 눈앞의 쇠뭉치가 갑자기 수축하면서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현상을 본 사람이 있는가. 사람의 원자도 그렇게 된다. 사는 것, 즉 생명도 있을 수 없다. 이는 물질의 안정성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그러므로 원자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말도 안 되는 것이 돼 버렸다.
사실 러더퍼드의 스승인 톰슨도 이 문제 때문에 건포도 빵 모형을 내놨다. 건포도 빵 모형에 따르면 양전하를 띤 가벼운 ‘어떤 것’과 음전하를 띤 전자가 건포도 빵처럼 배치돼 전기적 척력과 인력이 비겨 원자는 정적인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정지하고 있는 대전체(전기를 띤 물체)는 전파를 방출하지 않아 건포도 빵 모형에서는 러더퍼드 모형의 불안정성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래서 물리학계는 골치 아파졌다. 러더퍼드의 실험에서 엄연히 드러난 무거운 핵의 존재와 텅 빈 공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자 소멸은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랑을 따르자니 돈이 울고, 돈을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신파극의 주인공과 같은 처지가 됐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 물리학자들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 一見)’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근사한 이론이라도 실험을 통해 확인되지 않으면 믿지 말라는 철칙이다.
우선 과학계는 러더퍼드 모형의 기본 틀인 무거운 원자핵은 실험으로 확인됐고 톰슨 모형은 실험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기에 당연히 러더퍼드를 따라야 한다고 봤다. 대신 러더퍼드의 초미니 태양계 모형에 미처 깨닫지 못한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 했다.
무거운 원자핵과 전자기학을 조화시킬 수 있는 원자 모형은 무엇일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 슈레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 등이 새로운 이론인 ‘양자론(量子論)’ 을 개발했다. 양자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어서 덩어리로 방출된다. 그런데 정상 궤도를 도는 전자가 첫 단계에서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는 이런 덩어리보다 훨씬 작다. 결국 전자기파의 방출이 정상 궤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원자 소멸은 없다는 얘기다.
양자론(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내 생각엔 별로 없다. 그래도 이 이론을 근거로 레이저와 반도체 등 현대 산업의 기본이 개발됐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레온 레더만 교수는 “현대 산업의 80%는 양자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했다. 더 설명하고 싶지만 양자론은 워낙 어렵고 복잡하니 러더퍼드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편익의 출발대를 만들어준 것을 잠시 생각해보는 선에서 마치겠다.
-중앙선데이 제259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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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역학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와 양자역학이 용용된 사례들 |
 ‘러더퍼드’ (Rutherford) 와 원자의 진실 |
|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 |
스승님 ‘건포도 빵’ 모형은 안 되겠는데요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뉴질랜드의 조그만 마을 넬슨 출신이다.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의 캔터베리 대학교 에 입학했고, 졸업 때 성적은 600점 만점에 580점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 이었다. 졸업 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캐번디시 연구소를 거쳐 1898년 캐나다의 맥길 대학교 교수(물리학)로 초빙됐다. 캐나다에서 그는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해왔던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구에 몰두했다. 베크렐과 퀴리 부부가 발견한 방사선의 성질은 그때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 연구는 물리학보다는 화학 쪽에서 더 활발했다. 왜냐하면 당시 과학자들은 방사선에 노출된 원소들의 성질 변화를 화학적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질량 분석기 같은 ‘물리학 기기’를 사용해 바로 알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물질의 성질 변화는 화학반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러더퍼드는 좀 색다르게 생각했다. 방사선 가운데 알파선으로 알려진 것을, 엷은 금박지에 쪼여 알파선이 얼마만큼 통과할 수 있는지 조사해 보기로 했다. 당시 상식에 따르면 알파선의 통과 정도는 물질의(이 경우 금의 박막의) 화학적 성질과 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원소를 말하기 전에 분자라는 것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기 중의 분자들은 초속 1000m로 움직인다. 한 과학자가 그걸 실험했다. 금속으로 솥뚜껑 같은 걸 두 개 만들어 붙인 다음, 가장자리는 고무 패킹으로 밀폐하고 공기를 빼 뚜껑 사이의 공간을 진공으로 만들었다. 그 다음 말 6마리가 솥뚜껑을 양쪽으로 잡아당기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뚜껑 안쪽에 공기를 채우면 쉽게 떼낼 수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뚜껑 사이가 진공이면 그 속엔 공기가 없다. 즉 움직이는 분자가 없다. 그렇지만 뚜껑 밖에서는 양쪽으로 수많은 분자가 사방에서 뚜껑을 때리고 민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 의 좁쌀 인간들이 뚜껑을 양쪽에서 밀고 있는 것과 같다. 좁쌀 인간 하나하나의 힘은 얼마 안 되지만 6.25×1023개, 즉 10조×10조×6250개의 공기분자가 기를 쓰고 뚜껑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면 그 힘은 말 여섯 마리가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하게 되는 것이다. (6.25×1023이라는 수는 아보가드로수다. 즉 표준상태인 섭씨 25도, 1기압 상태의 기체 1L에 든 공기 분자의 수다.) 그러나 두 뚜껑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면 바깥에서 안으로 미는 공기분자의 힘이나 안에서 밖으로 미는 힘이 같아지므로 손쉽게 두 솥뚜껑을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들이 쌓이면서 공기가 운동하는 분자들로 이뤄져 있다는 게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분자에 대한 상상이 과학적으로 해명되자 이번엔 원자로 관심이 쏠렸다. 원자의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 19세기 후반 과학의 큰 과제였다. 지극히 작은 원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많은 과학자들은 온갖 추정을 했다. 콩알같이 생겼을까? 호떡처럼 생겼을까? 럭비공처럼 생겼을까?
과학적인 원자 모형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사람은 영국 물리학자 조지프 존 톰슨(1856~1940)이었다. 전자의 발견자이기도 한 그는 전자가 물질의 근본 요소인 원자 속에서 뛰어나온 것이라고 봤다. 물질은 전기가 없는 중성인데 원자의 구성 성분인 전자는 음전하이므로 이를 중화시키는 양전기가 원자 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전하의 전자와 질량은 비슷하지만 양전하를 띤 신비한 요소가 원자 내에서 뒤섞여 다른 것끼린 당기고 같은 것끼린 미는 힘이 맞비겨 평형 상태를 이룬다고 추정했다. 건포도가 두루 박힌 빵을 연상해도 된다. 건포도와 밀가루가 뒤섞인 것처럼 양전하 요소와 음전하 전자가 뒤섞인 원자 모형이다.
톰슨의 제자였던 러더퍼드도 그런 가정에서 출발했다. 원자가 가벼운 음전하 전자들과 가벼운 양전하 입자의 혼합체라면, 트럭과 사람의 충돌사고에서 트럭은 끄떡없듯, 무거운 알파 입자가 금 박막의 입자와 충돌한 뒤 뚫고 나오더라도 진행 방향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했다. 실제로 얇은 금막을 만들어 알파 입자 빔을 쏘았다. 이 입자는 헬륨 원자핵으로 전자보다 8000배 정도 더 무거워 진짜로 ‘무겁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대부분 알파 입자의 진행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간혹 많이 휘어져 나오는 게 발견됐다. 이 결과를 두고 러더퍼드는 ‘원자 속엔 알파 입자와 비슷하게 무거운 작은 원자핵이 있어 부딪힐 경우 튕겨 나온다’고 추론했다. 톰슨의 ‘건포도 빵’ 모형은 틀렸고 원자는 무거운 원자핵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를 전자들이 마치 태양계의 행성처럼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자의 진실’ 을 밝힌 최초의 학자가 된 것이다. 그는 또 원자핵의 크기가 원자의 10만분의 1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하도록 하자.
-중앙선데이 제257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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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The Heartstring, 1960 |
얼음 낚시 미스터리 … 물은 왜 위부터 얼까?
지구 표면의 4분의 3은 물로 덮여 있다. 왜 그렇게 물이 흔해졌나. 해답은 태초의 우주 공간에 있다. 그 공간엔 수소가 가장 흔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수소들이 뭉쳐 별이 생기고 별 속 온도가 올라가면서 산소를 만들었다. 이 산소가 수소와 결합해 그 많은 물을 만든 것이다.
물이 변해 비가 내리고 태풍이 돼 여름철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러나 해보다 덕이 많다. 인간은 안 먹고 일주일은 살아도 물을 그렇게 못 마시면 죽는다. 물은 생명수다. 그런 물을 우리는 ‘물 쓰듯’ 한다. 1㎏ 커피를 재배해 마시는 커피를 만들려면 물 2만L가 필요하다. 샤워도 하고 수세식 화장실 등 정말로 물을 많이 쓴다. 아프리카와 인도 대륙에서는 먹는 물 부족으로 전쟁인데….
과학적으로 보면 물처럼 신기한 물질도 없다. 물은 얼음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 액체, 고체, 기체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다. 그중 고체가 재미있다. 고체의 한 형태가 겨울에 내리는 눈이다. 함박눈, 싸라기 눈 등 다양하다. 모양의 차이는 땅에서 올라간 수증기가 어떤 온도와 습기 속에서 눈으로 변하는가에 달려 있다. 영하 10도~ 0도에는 바늘 모양이나 프리즘 또는 육각형 평판 모양의 눈이 된다. 영하10도~영하 20도 사이에선 함박눈에 해당하는 나뭇가지 모양이 된다. 여러 개 나뭇잎이 모여 육각형을 만든 모양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습이 가능하다.
또 다른 형태가 얼음이다. 추운 겨울 한강에선 물이 언다. 강태공들이 얼음구멍을 뚫고 얼음 낚시를 즐긴다. 그런데 물이 강 표면부터 어는 것은 특이한 자연 현상이다. 왜 그럴까. 온도에 따라 밀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물은 신비를 담고 있다.
이렇게 겨울철에도 낚시를 할 수 있는 것은 물이 가진 특이한 성질 때문이다. 물은 0도에 얼음이 된다. 그런데 물의 밀도는 약 4도일 때가 가장 크다. 얼음 밀도가 4도에 가까운 차가운 물보다 가벼워서 얼음은 위로부터 얼게 된다. 그런데 고체가 액체 때보다 밀도가 낮은 물질은 물 외엔 없다. 보통 물질 같으면 아래부터 언다. 우리가 마시는 다른 음료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물이 보통 액체처럼 밑에서부터 언다면 강물 전체가 아래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해 물고기도 같이 얼어 죽게 된다. 신의 조화로 얼음은 위로 떠 꽁꽁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 밑에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살 수 있기 때문에 강태공들의 낚시가 가능한 것이다.
얼음은 출생부터 신비롭지만 과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빙판 위에 서면 미끄럽고 넘어지기 일쑤다. 왜 얼음은 그렇게 미끄러울까? ‘얼음은 미끄러운 것’ 이라는 게 너무나 상식적이라 “왜” 라고 묻는 게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얼음이 왜 그렇게 미끄러운지 규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얼음을 결정 구조로 따지면 일곱 가지 종류가 있다. 각각의 성질을 이야기 하기보다 제각기 다르다는 것만 짚고 넘어 가기로 하자. 얼음이 미끄러운 것은 사실 표면에 물이 생기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예를 들어 스케이트를 타면 얼음과 스케이트 날의 접촉면은 큰 압력을 받고 그 부분의 얼음이 녹아 ‘물막’이 생기게 된다. 그런 물막 때문에 얼음이 그렇게 미끄러운 것으로 추정한다.
말이 나왔으니 얼음의 성질도 원재료인 물과 어는 환경에 따라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약간의 산을 섞으면 영하 160도에 언다. 수증기가 나노 크기의 두 면 사이에서 응고하면 얼음이 미끄럽지 않고 풀처럼 찐득한 성질을 띠게 된다. 이와 반대로 물에 적당한 전기적 작용을 가하면 실온에서 얼기도 한다.
서울대 강현 교수팀은 주사현미경을 써서 물의 성질을 연구하고 있었다. 주사현미경의 바늘보다도 더 뾰족한 금속침을 전기로 움직이면 얇은 막을 이룬 물분자의 전자적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금속침이 이상한 저항을 받았다. 이를 실온에서 실험 중인 물속에서 주사 현미경 침이 만들어내는 전압 때문에 ‘나노’ 크기의 얼음이 생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이 이런 성질을 나타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물분자의 수소 결합이 가지는 특이성에서 온다. 물분자의 화학구조는 H2O이며 수소원자는 (+)로 산소원자는 (-)전기를 띤 상태에서 소위 쌍극자(dipole)를 이루며 결합하고 있다. 그런데 수소 결합은 양자력에 의해 지배되고 진동하는 고유 운동 때문에 물의 밀도가 4도에서 가장 커진다고 생각된다.
물의 과학적 성질에 관한 연구는 프랑스 과학자 앙트앙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희랍인들의 4원소설에서 주장하는 ‘물이 근본 원소’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분해해 수소와 산소로 구성돼 있음을 보여줬다. 근본 원소가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그는 외국 태생의 수학자 라그란지 같은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했고 세금 징수인으로서 부를 축적했다는 죄목으로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과학자가 정치적인 이유로 처형되었다는 점은 퍽 드문 일이다. 물의 과학은 그 태생으로부터 색다른 사건을 안고 태어난 신비로운 물질이기도 하다. 요즘 춥다. 얼음도 얼고 눈도 내린다. 그런 걸 볼 때 물의 과학을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중앙선데이 제253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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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이언스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호주 매콰리대 데이비드 크리스찬(David Christian) 교수는 거대사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성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1월 1일 창세기 · 9월 14일 지구 탄생 · 12월 31일 22시30분 인간 출현
호주의 맥과이어(매쿼리)대 역사학과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 교수는 올해 ‘큰 역사(巨大史 · Big History)’ 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인류 역사보다 더 큰 틀인 우주의 역사를 편찬하려는 것이다. 우주는 ‘빅뱅(big bang)’ 으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언제 이 우주에 첫 번째 별이 나타났는지, 생명체는 또 언제 나타났는지 같은 것을 역사적 관점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인데 공감이 간다.
피타고라스·플라톤 같은 희랍의 학자들은 우주의 과학적 근거를 일찍부터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면이 꼭 같은 모양인 입체가 다섯 있다. ‘플라톤의 고체’ 다.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을 면으로 하는 4면체 ▶정사각형으로 된 정육면체 ▶정삼각형으로 된 정8면체 ▶정오각형인 12면체 ▶삼각형인 20면체 모두 다섯이다. 같은 면들로 만들어진 다면체는 수학적으로 더 이상 없다고 알려져 있다. 희랍인들은 이들 다섯 개 고체에 해당하는 물, 불, 흙, 바람 그리고 제5의 원소로 세상 만물이 이뤄져 있다고 봤다.
근대과학은 물론 다르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돼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그 외곽을 도는 전자로 돼 있으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현대과학은 원자핵 내부를 볼 수 있는 가속기를 써서 중성자와 양성자, 그 속에 들어 있는 ‘쿼크(quark)’라는 더 작은 입자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런 기본 물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현대물리학의 추론은 우주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빅뱅 순간 우주는 티끌보다 작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불씨였다. 원자핵보다 작은 이 불씨는 10의 -36승 초 만에 10의 42승 도로 되고 그 후 식어간다. 그 이전의 시간에는 공간 자체가 없어 아무런 계산도 할 수 없다. 10의 -11승 초가 되면 불덩어리는 수박 크기만 해지며 3,000,000,000,000,000도로 식는다. 이때 물질의 기본요소인 쿼크(quark)가 나타났다.
이 쿼크가 원자핵을 이루는 데는 약 3분, 수소원자를 만드는 데는 약 30만 년 걸린다. 이때 원시 양성자와 전자에 갇혀 있던 특 3000도의 복사광이 나타난다. ‘창세기’의 빛이다. 우주가 더 팽창하고 식으면서 이 빛은 사라지고 10억 년가량 암흑시대가 전개된다. 이후 우주에 퍼져 있는 수소들이 뭉쳐 별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원시 별들의 밝은 빛들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우주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우주는 나이 80억 년이 되면서 갑자기 팽창 속도가 다시 빨라진다. 이를 발견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펄머터, 존스 홉킨스대 리스 박사와 호주 국립대의 슈밋 박사는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 무렵 우리 태양계와 지구가 탄생하고 원시 생명체도 생겨난다. 팽창 속도가 커질 무렵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게 우연인지 아닌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이야기는 핵 융합반응에서 시작된다. 우주에 처음 생긴 별은 거대한 수소 뭉치였다. 이 덩어리가 스스로의 만유인력에 의해 응축되고 중심에 압력을 가한다. 중심부 수소 원자들 사이의 공간이 축소되고 결국 원자 사이의 빈 공간이 없어지게 된다. 그래도 압력이 계속되면서 ‘수소 원자들이 견디지 못해 부서지고’ → ‘원자핵들이 겹쳐 속에 있는 양성자끼리 충돌하며’ → ‘양성자가 주위 전자와 결합해 중성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연속된다. 즉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나오는 에너지는 압력에 대항해 별을 안정시키는 힘이 된다.
그러다 수소가 탕진되면 핵융합 과정에서 형성돼 별 내부에 쌓여 있던 헬륨을 태우고 리슘을 생성한다. 이 역시 핵융합 반응인데 그 과정에서 더 무거운 원소들이 계속 만들어진다. 탄소에서 마지막으로 철에 이르기까지 많은 원소가 탄생한다. 새로 만들어진 원소들도 차례차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끝없는 반복이다. 그런데 철은 핵융합 반응을 더 못 일으킨다. 핵융합 반응은 여기까지다. 이때부터 다른 과정이 시작된다.
거대한 별의 무게가 중심부를 향해 누르는데 이 압력을 ‘핵융합으로 생산된 에너지’ 로 대항하지 못하면 별은 폭발한다. 이 폭발하는 별, 즉 초신성이 온갖 원소를 우주 공간에 뿌린다. 그래서 빅뱅 이후 80~90억 년은 흘러야 이 무렵 생겨난 태양계의 지구라는 행성에서 탄소와 산소를 기본으로 하는 생명체가 시작됐으리라고 추리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우주의 변화를 1년으로 압축해 우주의 달력을 만들어 기념될 만한 날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창세기=1월 1일, 은하의 탄생=5월 1일(노동절), 지구의 탄생=9월 14일(신학기), 생명체의 출현=10월 9일(한글날), 쥐라기 시대=12월 25일(크리스마스), 최초의 인간=12월 31일 밤 10시30분00초, 농업=밤 11시59분35초, 로마제국=밤 11시59분57초, 문예부흥=밤 11시59분59초. 이렇게 우주의 역사를 보면 인류문명사는 겨우 마지막 1초다. 그런 짧은 시간에 해당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서로 헐뜯고 끊임없는 전쟁을 하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중앙선데이 제251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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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의 시작 · 스티븐 호킹의 The Big Bang · 2012-04-24 |
 빅뱅 초기 우주가 자몽만 할 때 모든 소립자에 질량 부여
태초에 힉스입자가 있었다. 빅뱅 10의 -36승 초 뒤 나온 이 입자가 없으면 질량과 무게가 없었다. 137억 년의 신비를 간직한 이 입자가 요즘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요즘 ‘힉스입자’가 대서특필되고 있다. 그게 뭐길래 그렇게까지 보도할까. 힉스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주는 네 가지 힘으로 움직인다. 첫째가 중력. 뉴턴이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는 그 만유인력이다. 둘째는 전자기력이다. 원자를 묶고 전파를 만들고 번개가 치게 만드는 힘이다. 셋째는 핵력 또는 강한 힘(Strong Force)이다. 원자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 두는 힘이다. 넷째는 동위원소가 붕괴하고 방사선을 내게 하는 약력 (Weak Force)이다.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은 전기·자기 통합이론인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었다. 자기장 속에서 전압이 발생하고 거기에 전기를 흘리면 주위에 자기장이 생긴다는 데 착안해 ‘전기와 자기는 모습은 달라도 하나의 실체’임을 밝혀냈다. 전기와 자기 이론을 통합해 전자기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전자기 이론을 원자에 적용했을 때 이론과 실제 관측 결과가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는 게 확인됐다. 전기양자역학이다. 그런데 50년대까지만 해도 전기양자역학을 써서 전자의 자기능률(자석의 세기)을 계산하니 답이 무한대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의미다. 그런데 50년대 초 이를 맞는 답, 즉 ‘재규격 이론’ 으로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 도모나가 신이치로 및 슈빙거였다.
60년대엔 전자기와 약작용을 통합한 이론, 즉 전기양자역학과 약작용 (Weak interaction)을 통합한 전기 · 약작용 이론(Electro · Weak theory)을 개발하려는 노력들이 일어났다. 퀴리 부인이 발견한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지배하는 힘이 약한 힘 또는 약작용이다. 그런데 새 이론을 개발하려 해도 계속 ‘무한대 답’이 나왔다. 전기양자역학에서는 힘을 전달하는 광양자(빛의 원자)에 질량(무게)이 없다. 그런데 약작용을 전달하는 힘의 입자 ‘약한 보손(Weak Boson)’엔 질량이 있어야 한다. 질량이 없는 힘의 입자는 빛처럼 얼마든지 날아가지만 질량이 있는 ‘약한 보손’ 은 멀리 못 가고 원자핵 정도의 거리에만 힘이 국한된다.
바로 이 질량을 갖고 있는 입자를 활용해 어떤 현상을 계산하면 답이 늘 무한대가 됐다. 다시 말해 아무리 이론을 만들어도 그 이론을 써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부정확)하다는 의미다. 그런 이론은 쓸모가 없다. 또다시 ‘답이 무한대가 나오지 않는 계산 가능한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숙제가 됐다. 66년 스티븐 와인버그와 압두스 살람 교수가 거의 같은 시기 각각 독립적으로 새 이론을 만들어 이를 해결했다. 와인버그-살람 또는 W-S 이론 이란 것인데 답이 무한대가 아닌 유한대로 나온다. 이론의 핵심은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처음부터 질량을 갖는 것이 아니다’ 는 점이다.
나중에 질량을 주는 입자에 대한 논문은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와 다른 두 연구팀이 동시에 발표했다. 모두 8명이 관여돼 있다. 그런데도 힉스입자로 불리게 된 것은 작고한 한국인 물리학자 이휘소 때문이다. 그는 ‘게이지 이론’이란 해설 논문에서 이 입자를 힉스입자라고 불렀다. 그래서 ‘힉스입자’와 와인버그와 살람의 전기·약작용 이론은 물리학계에 퍼지게 됐다.
원자핵보다 작은 초기 우주의 진공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너지면서 우주는 갑자기 빠른 팽창을 한다. 눈깜짝할 찰나보다 더 짧은 약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초(10의-36승) 만에 자몽 크기만큼 된다. 진공이 무너질 때 힉스입자와 질량이 없는 ‘난부-골드스톤’ 입자가 나온다. 난부-골드스톤 입자는 약작용 힘의 전달자인 W와 Z입자에 질량을 제공하고 없어진다. 살아남은 힉스입자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모든 입자의 기본 요소인 전자와 쿼크가 질량을 얻게 한다. 모든 소립자(素粒子·더 쪼갤 수 없는 기본 입자, 예를 들어 전자)들이 비로소 질량을 얻게 되는 것이다. 힉스입자가 나타나기 전 입자들은 우주를 공기 속처럼 힘 안 들이고 움직였다. 그런데 힉스입자가 나타나면서 우주는 물 같은 액체로 변한다. 날씬한 물고기는 힘 덜 들이고 물속에서 잘 움직이지만 뚱뚱한 사람은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물고기에 해당하는 전자는 힘을 작게 들여도 움직이기 때문에 작은 질량의 입자가 되고 뚱보 같은 톱쿼크(쿼크라는 소립자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는 큰 질량을 갖게 된다. 최근 유럽핵물리공동연구소(CERN)가 힉스입자의 영상이 포착된 것 같다고 발표했다. 아트라스와 CMS 두 팀이 “질량이 양성자의 약 125배 되는 새로운 입자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게 힉스입자라면 와인버그와 살람이 제시한 이론의 모든 근거가 다 발견된 것이고 그 이론은 전기양자역학처럼 확고한 반석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발표대로 125배밖에 안 된다면 좀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진공 자체가 불안정할 수 있어 ‘초대칭 이론’이란 어려운 개념이 도입돼야 하는데CERN의 데이터에선 초대칭 이론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힉스입자의 질량이 양성자의 125배라면 초대칭 이론이 성립하는 것이므로 초대칭 이론 자체가 힘을 얻게 될 수 있다. 물리이론은 이렇게 드라마처럼 얽히고설키는 묘미도 보여 준다. 그래서 과학은 멋진 것이다.
-중앙선데이 제249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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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 같은 소립자, ‘중성미자’ · Neutrion |
‘빛보다 빠른 입자’로 새삼 주목 …실체 여전히 물음표
요즘 과학계에선 중성미자(Neutrion)가 큰 관심거리다. 얼마 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이탈리아 팀들이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검증했다” 는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빛보다 빠른 입자가 발견됐다면 과학엔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예를 들자면 변압기나 발전기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적용되는 전자기의 법칙 같은 것을 비롯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한다.
이 중성미자는 태생부터 특이한 소립자다. 보통 소립자들은 먼저 존재가 발견되고 성질을 뒤에 연구하게 되는데 중성미자는 그 반대였다. 먼저 존재가 예언되고 30년 뒤 발견됐다. 예언자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30년 12월 당시 동위원소 연구의 권위자들이 ‘난처한 문제’ 해결을 위해 튀빙겐 대학에 모였다. 동위원소 붕괴 시 방출되는 베타(β)선이 마치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를 설명할 방법이 막막했던 것이다. 이 현상은 당시의 모든 기초 과학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일이었다.
동위원소 붕괴에는 알파, 베타, 감마 붕괴가 있는데 이 중에서 전자를 방출하며 붕괴되는 현상을 베타(β) 붕괴라고 한다. β선은 전자로 되어 있어 자장을 통과하면 휘어지고, 얼마만큼 휘어지는가에 따라 에너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β 붕괴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전자가 갖고 나가는 에너지보다 많아 마치 에너지 일부가 아무 원인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말하자면 사라진 에너지는 100인데 눈에 보이는 전자가 갖고 나간 에너지는 50뿐이어서 나머지가 어디로 갔는지 파악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권위자들이 모여 고민하고 있을 때 당시 30세였던 파울리(Wolfgang Ernst Pauli, 1900~1958)는 무도회에 참석해 여유 있게 사교 춤을 즐기고 있었다. 자기는 이미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애하는 동위원소 권위자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선배학자들에게 보냈다. 거기서 ‘눈에도 안 보이고 전기나 자장의 영향도 받지 않으며 무게도 없는 유령 같은 작은 입자가 동시에 방출된다. 이 입자는 전기도 갖지 않고 무게도 없지만 에너지를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β 붕괴의 에너지는 없어진 게 아니라 유령 같은 이 소립자가 갖고 달아난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말을 들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페르미는 작은 중성자라는 뜻으로 ‘중성미자’ 라고 이름 붙였다.
중성미자는 아주 미미한 존재다. 100억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뚫고 지나가도 아무 느낌이 없다. 빛의 알갱이인 광양자 몇 개가 눈에 들어와도 곧 빛을 알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다르다. 중성미자야말로 유령 같은 소립자다.
중성미자는, 태양이 내는 찬란한 빛의 원동력인 수소핵융합 반응에서 에너지 를 갖고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초 100억 개의 중성미자가 태양으로부터 오고 있다. 말 재치로 유명한 리언 레더먼(1988년 노벨상 수상)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관측할 수 없으면 이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중성미자는 겨우 존재하는 실체다’라고 표현했다. ‘겨우 존재하는’ 중성미자도 파울리의 예언 60년 뒤 드디어 발견됐고(1995년 프레더릭 라이너스가 발견했다) 이제는 요긴하고 필수불가결한 소립자로 정착됐다. 그러나 ‘겨우 존재하는’ 까닭에 아직 무게조차 모른다. 이처럼 아직도 신비한 입자인데 빛보다 빠르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경천동지할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가장 상식적인 이유는 상대성이론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질량이 있는 입자가 진공 중 빛의 속도를 넘자면 무한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무한대 에너지는 불가능하다. 둘째 이유는 충격파다. 비행기가 음속을 넘어서면 충격파가 생기는 것처럼 입자가 빛의 속도를 넘어서면 충격파가 생긴다. 이런 현상 중의 하나가 ‘체렌코프의 빛’으로 알려져 있고 이를 연구한 러시아 과학자 파벨 체렌코프는 노벨상을 받았다. CERN의 실험이 맞는다면 빛의 충격파에서 파생되는 전자-반전자 쌍이 관측돼야 하는데 이카루스라는 실험 팀이 독립적으로 조사했더니 그러지 않았다. 셋째, 발표대로 중성미자가 빛보다 60나노초 더 빠르다면 1987년에 폭발한 16만 광년 떨어진 초신성을 관측했을 때 중성미자가 적어도 3년 전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빛과 동시에 관측됐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를 댈 수 있다.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 과학은 실험 결과로 말해야 한다. 이번 이탈리아 팀의 실험과 별도로 중성미자의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미노스란 팀은 미국의 페르미연구소 가속기에서 발생된 중성미자가 미네소타주의 검출기에 도착하는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기획하고, 일본의 도쿄 근교 쓰쿠바에 있는 가속기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오사카 근방 가미오카의 검출기로 찾는 T2K(Tokyo to Kamioka) 실험도 있다. 모든 실험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면 이탈리아 팀의 실험이 옳은 것이다. 어쨌든 CERN의 관측이 맞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게 물리학의 새 장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선데이 제247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201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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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아인슈타인 3.0' 전시회 연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이사장 · |
두 천재 공통점은 ‘4차원’ … 과학 · 예술 함께 접한 게 힘
‘피카소&아인슈타인 3.0’. 얼핏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 두 거장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이 특이한 문구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지난 5일 시작된 전시회 제목이다. 우주의 탄생과 조화, 4차원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이 전시회엔 작가 25명의 작품 83점이 전시되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이는 과학문화진흥회 김제완(79) 이사장. 그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했다 한다. 1972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해 97년 정년퇴임한 김 이사장은 요즘도 매일 아침 두 시간씩 각종 과학잡지와 유명 과학연구소 사이트를 통해 과학의 최신 흐름을 좇고 있다.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을 한데 묶은 제목이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피카소는 예술계를, 아인슈타인은 과학계를 대표해 서로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공히 ‘4차원’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카소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 기하학적인 형상을 도입한 것을 알 수 있다. 피카소가 처음으로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모형으로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그림을 보는 위치에 따라 가장 앞으로 나와 보이는 여인이 달라진다. 이걸 보면 피카소는 자기 그림 속에 큐비즘(입체파)이라는 운동을 통해 4차원을 도입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과학에 4차원을 도입해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3.0은 그동안 웹버전이 2.0까지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것까지 앞서서 전시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 거다.”
|  | | ▲ 강영민 ‘중력제로’ | -피카소의 과학적 측면, 아인슈타인의 예술적 측면을 좀 더 설명한다면.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가 말하길 ‘상상은 지식을 넘어선다’고 했다. 상상의 세계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 걸 예술적·음악적 감각을 바탕으로 자기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가 만들어낸 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은 딱 한 줄(E=mc² (에너지 E, 질량 m, 광속 c))이다. 그런데 그 속에 우주의 모든 신비가 들어 있는 게 과학자인 내가 봤을 땐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또 피카소의 ‘마라 부인’을 보면 눈 속에 눈이 있고 코 속에 코가 있다. 피카소는 ‘나는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나의 생각을 그린다’고 했다. 4차원을 생각하면서 그린 것 같다. 4차원 입방체를 3차원에 사영(射影)하면 입방체 속에 입방체가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 속에 눈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전시회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전체적인 흐름은 우주가 시작되고, 다시 우주에서 지상으로 와 인체 속으로 들어가고, 또 더 작은 원자로 들어가는 순서다. 큰 데서 작은 곳으로 가는 흐름으로 여기에 맞춰 작가들을 섭외하고 전시장을 꾸몄다. 제1전시장은 ‘우주의 탄생’으로 태초의 모습, 빅뱅 등 거대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보여준다. 제2전시장 ‘우주의 조화’는 신비로운 무중력의 세계를 회화와 사진, 입체작품 등을 통해 표현한다. 제 3전시장 ‘피카소&아인슈타인 3.0’은 우주를 건너 만나는 4차원의 세계를. 제4전시장 ‘이상한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전자·원자·양자 등 미시의 세계를 소개한다.”
|  | | ▲ 송운창 ‘In the beginning, there was light(태초엔 빛이 있었다)’ | -전시회의 의도를 대표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송운창의 ‘In the beginning, there was light(태초엔 빛이 있었다)’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에서 빛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시점을 표현하고 있다. 어떠한 기운에서 시작해 뭉치고 팽창하면서 증폭되는 찰나의 그 창조와 혼돈의 순간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오경환의 ‘생성의 우주2’는 우주 생성의 신기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다. 강영민의 ‘중력제로’는 고층 아파트와 도로가 가득한 서울의 모습과 재난이라는 상황을 연결해 마치 세상이 무중력 상태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흔히 예술은 감성적이고 과학은 논리적이라고 한다. 둘은 너무 다르지 않나. “둘을 떼어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그리스 시대에만 해도 과학과 예술의 구분이 없었다. 아르스(Ars)라는 라틴어는 과학과 예술을 통틀어 가르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처럼 과학과 예술은 한 뿌리에서 같이 자라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과학이 세분화되고 발전되면서 예술과 떨어지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과학과 예술은 닮은 점이 너무 많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다같이 4차원적인 생각을 했고 많은 작가가 중력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과학의 이점을 응용하지 않으면 현대작가가 아니라고 할 정도다.”
-예술과 과학이 접목된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한다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락(Jackson Pollock,1912-56)이 대표적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붓 대신 물감통을 들고 뛰어다니면서 물감을 부어댔다. 그렇게 무작위로 뿌리며 그린 그림에서 ‘프렉탈’ 구조가 명확히 발견된 것이다. 프렉탈은 같은 구도가 축소판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같은 프렉탈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잘 표현된 그의 대표작 ‘#8’(1949년작)은 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카오스 현상’의 기본인 프렉탈을 연구하기 15년 전에 완성됐다. 폴락의 작품은 연도에 따라 프렉탈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면 진품인지를 가릴 수 있다. 과학과 예술은 모두가 아름다움을 먹고 사는 분야다.”
-국내에서 예술과 과학의 접목을 위한 노력은 어떤 수준인가. “외국에 비하면 많이 뒤처져 있다. 정부에서 스팀(STEAM)교육을 생각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실행 여건이 잘 안 돼 있다. 스팀은 과학(Science) · 기술(Technology) · 공학(Engineering) · 예술(Arts) · 수학 (Mathematics)을 한데 모아 교육해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를 하는 인재를 길러내자는 것으로 전 세계적 추세다. 예를 들어 상대성이론을 가르칠 때 먼저 피카소부터 시작해 수준별로 아인슈타인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잘돼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만 해도 300개 카운티에서 스팀교육을 실험하고 있다. 스팀이 잘 이뤄지려면 가장 중요한 게 교사 교육이다. 초·중·고 교사들이 스팀교육을 소화할 만한 능력이 돼야 한다. 미국에서도 교사 20만 명을 교육했는데 그중 5만 명이 중도에 포기했다. 우리 정부가 스팀을 하려면 이 교사 교육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과학문화진흥회의 향후 계획은. “그동안 5년에 걸쳐 매년 노벨상과 건강, 에너지환경, 정보산업, 국가안보, 문화예술 등을 접목한 전시회를 열어왔다. 과학 하면 노벨이 떠오르니까 그를 통해 과학을 대중화하려고 한 것이다. 보통 노벨상은 과학자들만의 잔치로 생각하지만 거기서 나온 결과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뢴트겐의 X선이 대표적이다. 앞으로는 노벨 e-라이브러리를 만들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연애 관계 등 재밌는 부분부터 시작해 필요한 것, 알고 싶은 것을 듣고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웹사이트 형식으로 만들어 무료로 다 공개할 것이다. 또 그 속에서 영재에 대한 것도 얘기하려 한다. 우리는 영재를 나이 어린 애가 높은 수준을 미리 아는 거, 예를 들어 중2가 대학의 미적분을 풀면 영재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자기 레벨에서 독특한 생각을 하는 게 영재다. 다 있는 거 미리 아는 게 무슨 영재냐.”
-중앙선데이 제237호 강갑생 기자 |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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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적 감성과 과학적 이성 접목해야 · · M. C. Escher |
| 에셔(Escher,1898-1972), Reptiles, 1943. Lithograph |
더 창의적인 사회로 가려면 …
우리의 과학교육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대부분의 국민이 초·중·고 12년 동안 수학을 배운다. 하지만 국민의 99%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빼고 보태고 곱하고 나누는 수준을 넘어서는 수학을 쓰는 예가 거의 없다. 이 정도라면 왜 12년의 긴 세월이 필요한지 납득하기 어렵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과학만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속 다르고 겉 다른 말 인 것 같다. 법률과 정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회와 경제에 대한 상식은 지식인이 꼭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과학은 오히려 잘 모르는 것이 덕목이고 과학이란 속 좁고 무식한 ‘공돌이’ 의 얕은 교양이라는 생각을 은근히 비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넘치고 있다.
왜 그럴까? 과학은 감성에 호소하는 힘이 적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몰라도 넘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나라가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프로젝트 2061’이다. ‘전 미국인의 과학화’ 라는 슬로건을 걸고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과학을 사회 친화적으로 접근하자는 시도다.
우리는 과학을 수학·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과 같이 과목별로 인위적이고 딱딱하게 구분해 마치 서로가 연관이 없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프로젝트 2061’은 이를 탈피해, 예를 들면 ‘사회와 에너지’라는 제목하에 사회에 필요한 에너지 개발·공급 등에 관련되는 과학을 설명하면서 물리 · 화학 · 생물 · 지구과학 등을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  | | ▲ 에셔(Escher,1898-1972)의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Circle Limit IV, 1960) 같은 무늬가 연속되는 형태인 프랙탈 개념을 회화에 적용했다. 검은색을 보면 박쥐가, 흰 바탕을 보면 천사가 보인다. 프랙탈 수학적 개념은 20세기 들어 처음 정립됐다. | 미국은 1995년에 시작해 2061년에 완성하는 야심적인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핼리 혜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온 95년부터 그 혜성이 다시 나타날 때인 2061년까지를 연구기간으로 잡았다.
우리도 하루 바삐 과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과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게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의 대중화’ 에 예술과 문학을 접목하는 것이 과학 속에 숨어 있는 감성을 표면화하고 어려운 과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보자.
공간 전체를 몇 개의 모양으로 표현한 에셔(Escher,1898-1972)의 미술 작품 은 수학의 대칭 개념을 아름다움과 감성에 호소해 표현하고 있다. 미국 작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1912-56)의 작품에서는 ‘프랙탈(Fractal)’과 ‘카오스(Chaos)’를 표현하고 있다. 프랙탈이란 수학에서 도형의 어느 부분을 확대해도 전체를 볼 수 있는 구조를 이른다. 놀라운 것은 폴락(Pollock)이 프랙탈 · 카오스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보다 훨씬 앞선 195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라는 것이다.
| 피카소의 ‘마라 부인’ 과 달리의 ‘사차원 십자가의 예수’ |
입체파와 초현실파 화가들은 4차원의 세계를 표현하는 피카소의 ‘마라 부인’ 달리의 ‘사차원 십자가의 예수’ 등의 작품을 내놓았고, 과학소설가 조지 웰슨(Herbert George Wells, 1866~1946)의 소설 ‘타임머신(The Time Machine)’ 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 앞서 미래사회를 표현했다. 미술 · 소설의 상상력이 실제 과학을 앞선 것이다.
음악만 해도 그렇다. 그 옛날 피타고라스는 기하학적인 접근으로 음악이론을 개발했고 기하학적으로 이상적인 입체(Platomic solid)를 이용해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어 이로부터 ‘천체교향악’ 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현대 과학자들은 팽창하는 초기 우주의 소리를 재생하고 DNA 속 염기소의 스펙트럼을 음악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미술과 음악, 문학과 종교는 과학과 얽혀 있고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를 갖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이 원하는 바를 따라가야 하듯, 과학도 사회가 싫어하는 어렵고 딱딱한 요소만 고집하지 말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에 호응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전문적인 과학기술자의 교육은 따로 하되 모든 국민을 위한 과학교육은 감성에 호소하고 사회 친화적이어야 한다.
배울 때는 조금 알다가도 세월이 흐르면 완전히 잊어버리는 과학교육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하버드 대학 총장이었던 제임스 코난트의 말로써 바람직한 과학교육을 대변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교육이란 배웠던 모든 것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 남는 그것을 말한다.”
음악과 과학의 만남
우주 탄생의 교향악: 미국 버지니아대의 마크 휘틀 교수, 지난해 6월 빅뱅 60만 년 후 발생했던 우주배경복사(CMB)의 최신 데이터를 분석해 우주 탄생의 소리 포착. 빅뱅 후 처음 100만 년 동안 밝은 장3도 음정에서 어두운 단3도로 바뀌었다고.태양이 만들어낸 화음: 태양계의 행성이 저마다 음을 가지고 돈다는 피타고라스의 ‘천체의 화음’론에 이어 케플러는 1619년 ‘천구의 교향악’ 작곡. 지난해 내한한 미국의 크로노스콰르텟도 태양의 이글거림을 수학적 논리로 작곡한 ‘Sun Rings’ 연주.DNA의 진동 음악: DNA를 구성하는 티민 · 아데닌 · 구아닌 · 시토신의 진동 파장을 늘려보면 구슬픈 퉁소 소리 등 서로 다른 악기의 연주를 듣는 듯하다.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도 진동 파장을 늘리면 아코디언과 실로폰의 합주를 들을 수 있다.
-중앙선데이 제43호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 정리=윤아름 인턴기자 | 200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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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출신으로 과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 ⊙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 물리학) ⊙한국과학재단 연구개발심의회 위원장, ⊙전국대학 기초과학연구소 연합회 회장, ⊙아 · 태 이론 물리센터 상임이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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