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가 선정한 이 한 편의 시: 조용미의 작약을 보러간다
선정자 임현준
작약을 보러간다
조용미
먼 산 작약
산작약
옆 작약
백작약
저수령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간다
당신 없이,
백자인을 먹으면 흰 머리가
다시
검어진다
잠을 잘 수 있다
백자인을 먹으면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측백나무의 씨
운석 같은 열매 속에는
백자인 여섯 알이
가만히
들어있다
저수령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간다
----애지 여름호에서
생각을 머물게 하는 시
-조용미, 「작약을 보러간다」
임현준
좋은 시는 생각을 머물게 한다. 낯설게하기나 객관적 상관물이나 시적 난해성 같은 것들이 생각을 머물게 하는 문학적인 기법들이다. 시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유의 머묾’은 인식을 지연시키거나 주체와 객체의 일치를 경험케 한다는 점에서 숭고에 가까운 미학성을 띤다. 그렇다고 모든 좋은 시가 미학성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문학적 기법보다도 더 윗길의 초식(招式)을 구사하는 ‘어떤 좋은 시’도 있기 마련이다. 직관에 값하는 단순성의 시, 감정의 직접적 노출을 꺼리는 절제의 시, 행간의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워 도약하는 시 같은 기본기에 충실한 작품들은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네 마음까지 사로잡아 시 속에 머물게 한다.
이번 <애지가 선정한 이 한 편의 시>에 조용미 시인의 「작약을 보러간다」를 ‘윗길의 초식을 구사하는 어떤 좋은 시’로 올린다. 「작약을 보러간다」는 채근담의 한 대목 “대교무교술(大巧無巧術)”, “큰 재주는 잔기술을 쓰지 않는다”로 일갈할 수 있는 좋은 시이다.
가령, 시 도입부에서 “먼 산 작약/산작약//옆 작약/백작약”으로 운을 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후행하는 문장 “저수령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간다//당신 없이,”로 시적 정황과 시적 태도와 시적 주제를 간명하게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유종호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동시나 동화는 문학이 존재하고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서 단순하기 때문에 더욱 선명한 빛을 던져 준다”고 말하면서 권태응의 「감자꽃」을 인용한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하얀 꽃 핀건 하얀 감자” 같은 자연의 원초적인 이치와 말 되풀이는 단순하지만 오묘한 리듬을 만들어내는데, “먼 산 작약/산작약//옆 작약/백작약”도 그에 버금가는 운율감을 느끼게 한다. 뒤이어 “저수령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간다”는 오르막길 여정 또는 등산이라는 정황을 드러내는데, 반복되는 시어 “작약”이 등반 중의 리드미컬한 가쁜 호흡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내뱉는 “당신 없이,”는 그 쉼표의 깊이만큼이나 절제된 여백을 만들어 거기에 서사들이 채워질 사색의 문을 열어놓는다. 이 여백이 제공하는 상상력의 울타리는 독자가 특정하는 인물에 대한 연모가 될 수 있겠고, 작약 같은 생명과 순수한 영혼에 대한 추도에의 시의성이 될 수 있겠고, 언젠가 조용미 시인이 밝힌 “나는 항상 시적 발견에 의해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목마른 희원도 될 수 있겠다.
돌연하게 등장한 문장 “당신 없이,” 뒤에 떠올린 “백자인”도 다시 한번 상상의 지평을 도약시킨다. “백자인”을 연상하게 된 것은 산행 또는 여정 중에 마주한 늦봄의 “측백나무의 씨”를 통해서인데, 이 느닷없는 또 한 번의 시적 도약에서는 “흰 머리가/다시/검어진다”든가, “잠을 잘 수 있다”든가 하는 백자인의 육체적 자양 효능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상상하게 한다. “나의 자리로/돌아간다”는 차원이 다른 “백자인”의 효능을 예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하게 하는 새로운 상상의 장이 열리고, 나아가 치유에 가까운 서정성에 공명할 수 있게끔 만든다. 그리고 내처 “백자인 여섯 알이/가만히/들어있”는 “운석 같은 열매 속”으로 이 모든 여정이 수렴되면서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루어지지 않은 그리움 또는 염원 등을 ‘장자의 나비’풍으로 현실에 귀속시킨다.
시의 말미에 반복 등장하는 문장 “저수령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간다”는 경사가 급하여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저수령(低首嶺)”의 이름처럼 우리의 삶이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오르내리는 여정 또는 등산의 도상 위에 있음을 재차 깨닫게 한다. 그리고 저수령에서 은풍골까지 역사의 굴곡마다 피난길로 이용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생의 굽이라는 시적 무게감 앞에, 그리고 그 무게를 담고 있는 여백의 서사성 앞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오은의 「지는 싸움」은 “창”의 안과 밖이라는 구도를 통해 “지는 싸움”을 대하는 현대인의 심리와 정서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시의적 해석이 자유로운 시이다. 장옥관의 「봄꽃」도 삶의 깊이와 연륜의 두께가 명징하게 드러난 수작이다. 역시 좋은 시는 가타부타 잔기술을 쓰지 않아도 읽는 이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생각을 머물게 만든다. 그중 조용미의 「작약을 보러간다」는 절제된 쉬운 언어로 빚은 운율이 세상 어떤 문학적 기법보다도 우리를 감화하게 하고 상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어떤 좋은 시’이다. 그러한 ‘어떤 좋은 시’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즐거움을 주는 글이 문학이다’란 진술이 보기보다도 한결 탄탄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유종호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을 일이다. “탄탄한 기반”이란 단순성의 시, 절제의 시, 상상력으로 도약하는 시와 같은 기본기에 충실한 것임을 <애지>는 재차 되새김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