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박잠 외 2편
박응식
질주하는 세상은 늘 평행이다
양보 없는 혼돈의 놀음판
윌킨스 빙붕 꼭대기에 물범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눈바람에 감은 눈 바닷물이 스며들어 온다
빙하 벌어진 틈도 가늠하지 못한 채, 나는
궤도 변경 손잡이를 잡으려 하는데
빙산이 탄소에 질식해 바다에서 길을 잃고
간간이 눈꺼풀 사이로 밤이 희미하게 지나간다
매연 흠뻑 뒤집어쓴 잠은 털거덕털거덕,
일찍이도 기적소리에 젖어
구석구석 박힌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대기권 온도가 올라갈수록 술 취한 체온 떨어지고
겨울과 봄의 모호한 경계,
뚜벅뚜벅 계절 넘기면서도 얼음조각은 철을 알지 못했다
폭설과 이른 더위, 일갈하는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화산재가 항로 이탈하는데
눈을 뜨면 어느새 어둠 차창에 붙는다
분간할 수 없는 안과 밖,
고주박잠이 송정리역을 깜박 삼켜버리고
술과 밤기차 허방이 로스해를 교차하는 밤
목포역 대합실에서
무호흡증에 걸린 폐가 사레 걸려 켁켁거린다
내릴 곳 지나쳐버린 취한 잠
둥둥 떠밀려가는 빙산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 고주박잠: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자는 잠.
여우비
여우 장가가는 날이었어
이웃 아재는
간간이 오는 비에 젖어 오지게 술 푸다
아득한 곳에서부터 쑤셔오는 바람을 안고 헛소리했지
위장이 경련하는 사시나무 아래에서
죽기 살기로 목매던 여자를 토해내고 있었어
양다리 걸쳐 휘어지다 고꾸라진 골목이 부풀어 터지자
벌떡 일어나 극락강으로 내달렸지
한밤중이면 강 우는 소리 희미하게 들리곤 했어
얼굴 한번 보면 안 되냐고
벚꽃잎같이 나풀거리는 혀 들이대는,
비염 앓는 콧소리 쥐어뜯으며
소주병 나발 불다 날라리 불었지
치맛단 한 올 한 올 풀리고 있었어
꼬리 아홉 개 흔들리는 걸 내가 보았던 거지
나는 문고리 꼭 잠그고 이불 뒤집어썼지
발가락 자꾸 꼬물거리는 어정쩡한 날
콧바람 피해서 터벅터벅 걷는 아재는
낯익은 길에 흠칫 도리질 쳤지
창 밖엔
여우 장가가고 있었어
간이역
아들을 전자부품 조립공장에 밀어 넣고
돼지껍질 잘근잘근 씹는다
찬바람 줄줄 흘러내리는 돌아오는 길이
자꾸만 차선 이탈을 했다
자기 똥 삼 일 먹지 않으면 못산다는데
아버지를 먹고 또 아들을 맛보고 있다
기름 먹은 아들이 푸시식푸시식 연기에 싸인다
돼지 혓바닥이 너 너머에 있는 너를 핥고
짠한 별 번개살로 흩어지는 차창
취한 불판에 내가 시커멓게 타고 있다
벚꽃잎 볼에 스치는 것은 관념 밖의 일
아들은 앞만 보며 출근시간 바쁜 버스를 탄다
우스꽝스런 세상과 소통의 물꼬 터 보려는 듯
별다른 생각 없는 몸 던지는 것이다
탁자 밑에서 돼지가 내 발목을 꽉 문다
지적장애 2급 꼬리표가 지글지글 오므라들며 밤을 싸대고 있다
사방에서 엄습해오는 비아냥거리는 소리
칙칙한 실내에 빈 메아리로 돈다
* 간이역: 옛날식 술집.
박응식
전남 화순 출생. 2009년 『시에』로 등단.
―『시에티카』 2010년 하반기 제3호
첫댓글 휘몰아치다 살살 도닥이다 ... 정신 잃고 읽었습니다.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