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11시, ‘양정 작은 도서관 달팽이’(울산시 북구 양정동) 에는 울산상록 작은 도서관 봉사단 8명이 테이블에 서적을 쌓아놓고 둘러앉아 책 수선에 여념이 없었다.
‘양정 작은 도서관 달팽이’는 울산 현대자동차 인근 지역에 2010년 11월 설립한 이후 현재까지 마을의 문화 사랑방, 마을 공동체의 중심, 만남과 소통의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으며 이제는 마을주민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하현숙(52) 관장은 “도서관의 주 이용자가 지역의 특성상 현대자동차 근로자와 그 가족, 그리고 인근 학교의 어린이와 학부모들로 인문학 관련 도서를 다수 비치하여 타 도서관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도서관의 운영은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주 1회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도서선정 위원회를 겸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도서는 14,000여 권, 비도서는 137점이다.
또한 “인근 현대자동차에서 도서구입비를 간혹 지원해 주고 있지만, 운영자금은 북구청의 지원금과 30여 명 후원자의 후원금이 대부분인데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에 거의 지출되고 나머지는 서가 봉사단, 가족 봉사단, 자율 봉사단 등 재능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요즘 도서관마다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작은 도서관 달팽이에서도 매월 네 번째 주 금요일 저녁의 ‘TV보다 잼나는 도서관’ 시간에는 학생들과 어머니가 참여하여 책과 관련한 재미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공모사업인 ‘상주 작가 지원사업’에도 최봄, 최미애 등 시인, 동화작가와 함께하는 시 쓰기 교실, 수필 낭독 프로그램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립 공공도서관으로 출발한 우리나라의 작은 도서관들은 1970년대 노동자 독서교육을 시작으로 양서협동조합운동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견인해왔으며 1990년대 이후 마을 도서관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기존의 공공도서관이 하지 못했던 자발적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의 양정 작은 도서관도 명칭은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일반 공공도서관보다 작지만, 기존의 도서관이 간과하고 있는 마을 도서관으로써 주민의 일상가운데 개입하여 그들의 삶을 책과 연계하여 문화시민으로 성숙해 가는 것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작지만 큰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또한,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목표를 향해 꾸준히 앞으로 나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경기도 용인시의 느티나무 도서관을 작은 도서관의 모델로 꼽았는데 애초 지하에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뿐만 아니라 내용도 손색이 없는 모범적인 작은 도서관으로 발전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책이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책이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책을 만나는 기쁨을 선사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상록봉사단의 봉사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공직을 마치고 다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에서 참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도서관의 향후 과제로는 자립하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대학원에서 부족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으며 카페운영 등 도서관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운용의 묘를 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책 표지를 가다듬고 있던 조기오(69·북구 양정동) 씨는 “2005년 6월 말 군무사무관으로 명예퇴직을 하고 쉬다가 이듬해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는데 적성에 맞아 지금까지 해오고 있으며 2014년에 연금공단의 교육에 참여하고 도서관 지원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주 1회 매주 금요일 오전 2시간 봉사를 하고 있는데 개인택시를 하다 보니 시간을 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책 수선이 보기보다 일이 많습니다. 새 책이 입고되면 표지를 붙이는 작업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이 책 표지 접는 면을 책갈피 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책이 빨리 상하지요. 책 매김이라고 새 책을 펴기 쉽게 접는 일과 오래된 책 표지의 코팅 작업, 가운데 접는 부분 보수, 찢겼거나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기도 하고 책 옆면에 고무인을 찍거나 바코드 분류작업까지 합니다. 서가나 책의 먼지 닦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지요. 사소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서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동안 “책을 손질하면서 마음에 드는 책은 수시로 읽기도 했는데 『허드슨강의 기적』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책은 뒤에 영화로도 소개되었는데 줄거리는 비행기가 미국 뉴욕공항을 출발하여 노스캐롤라이나로 가던 중 버드 스트라이크(새 떼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엔진이 멈추는 사고)가 일어나 위험한 상황에서도 베테랑 기장은 관제탑의 활주로 불시착 유도에도 불구하고 무동력 하강 상태로 허드슨강에 안정적으로 착륙을 하여 전원이 구조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부지런히 책 표지를 닦고 있던 최선학(69·중구 북정동) 씨는 “교직 생활을 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2008년 1월 명예퇴직을 하고 이듬해 지인의 소개로 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여 밥퍼 봉사, 양로원 케어 등을 해오던 중 2014년에 작은 도서관 봉사단 소식을 접하고 가입했다.
한때 다니던 성당의 천주교 봉사자 교육을 받고 다문화 가정 어머니 한글 교육 경험도 있다면서 라이온스 봉사는 지난해까지 계속했다“고 말했다.
“책을 닦다 보니까 책에도 생각보다 많은 때가 묻어 나와서 그동안 책이 돌아다니면서 생긴 손때라는 생각이 들고 자신의 일이 작지만 위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여겨진다”고 했다. 좋은 책을 보면 손자에게 읽혔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영락없는 할머니라고 말하며 웃었다.
양인순(남구 옥동) 봉사단장은 교직을 마치고 쉬고 있다가 2014년 부산 연금센터에 봉사 활동을 건의하여 울산지역 봉사단의 초대 단장을 맡게 되었다. 울산상록 작은 도서관 봉사단 외에도 2017년에는 솔마루길 봉사단 (울산 대공원 주변 산길 정화작업)과 오카리나 봉사단 (재활원 및 요양원 공연)이 창단되면서 첫해 단장을 맡기도 했다.
“우리 봉사단은 도서정리 외에도 해마다 자체 주요행사를 지원하고 있는데 전년도에는 ‘옛 이야기 서정오’행사를 지원하여 주목을 받았고, 대외적으로도 구청단위로 가을철 독서주간에 도서관별로 참여하여 각종 이벤트 행사나 체험놀이 등을 할 때 봉사단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행사 진행이나 공연을 돕는 경험을 통해 봉사활동의 입지를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단의 향후 계획을 묻자 “도서관 근무의 장점을 살려 매월 책을 읽고 독서 발표를 하기도 했고 2015년도부터는 해마다 문학기행을 다녀오고 있는데 올해는 단원들이 의논해서 해외여행을 하기로 하고 미국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다면 연금센터에서 기존 봉사단의 인원확충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우리 작은 도서관 봉사단의 경우에도 아프거나 다른 사유로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만큼 충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댓글 ㅎㅎ 최 봄, 최미애 상주작가가 두 명인 줄 알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