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지인이 그러더군요.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기억이란 게 한계가 있고 보면 당연한 말로 들립니다.
한편 개념을 조금 확장해보면 우리 삶도 여행에 다름 아니죠. 공간의 이동보다는 시간의 이동이 주가 되겠지만 어쨌거나 여행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다만, 장면 장면의 사진에서는 차이가 좀 나겠네요. 공간-여행의 사진처럼 인화하거나 메모리칩에 저장할 수 없고, 오로지 뇌에 입력하는 수밖에 없으니. 그럼 울님들은 삶의 어떤 장면에서 셔터를 누르셨나요?
저 역시 주요 장면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중 몇 장을 소개해 드리면
사진1. 1979.12.25. am 04시. 서울 은평구 신사동 00교회 지하기도실
중2 겨울방학. (성탄 이브) 새벽-송을 마친 후 엄마의 새벽잠을 깨우기 싫어 뜨끈한 연탄난로 앞에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제법 피곤했던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모두 귀가하고 3학년 ㄱㅎ누나와 나. 둘만 남았더군요. 헌데 의뭉스럽게도 누나의 어깨에 의지해 잠든 모양새였습니다. 이미 잠은 깼는데 눈도 못 뜬 채 가슴만 콩닥콩닥. 제 미세한 움직임에 누나가 잠을 깼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으나, 풋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진2. 1984.10.07. pm 7시. 서울 서대문구 연희교차로 143번 버스
대1 학기 중. 신촌의 모교에서 시국투쟁연합집회가 있었고, 저도 돌 좀 나르는 척 하다 뒷구멍으로 빠져나왔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긴 했는데 뭔가 울컥했던 모양입니다. 기사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이십여 명 승객에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설 수밖에 없는 시대의 아픔’을 침 튀겨가며 설파했다는...
숫기 없는 제가 어찌 그리 황당/무모 해프닝을 벌일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불가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3. 2001.01.01. am 02시. 강원 미시령 중턱
백수 1년차. 사업을 하다 IMF란 놈을 만나 밀레니엄 시작과 동시에 청산절차를 밟았습니다. 아무런 희망/의지를 가질 수 없어 무작정 떠난 여행. 이름 모를 해안에서 새해를 맞았고, 달빛도 없는 외설악을 오르다 갓길에 주차를 하고, 무릎 정도 높이의 돌-난간 위에 섰습니다. 한 발만 내디디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던 찰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하마터면 울 종달님 노래도 못 듣고 갈(?) 뻔했죠.
2004년 봄. 결혼직전 난소에 혹을 떼는 수술을 하고 회복실에 누워있는데.. 마취가 살짝 깨서 귀는 들리는데 눈도 뜰 수 없고 손가락도 안움직이던 그때 목구멍에 뭔가 걸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숨이 막혔습니다. 간호사 의사들이 저를 보지 못하고 지들끼리 떠들기만하느라 1분가량(?) 저는 컥컥거리다 황천길 가기 직전의 경험을 했답니다..... ㅋ
첫댓글 세월만큼 쓰윽~ 스치는 컷들이 몇 있지요~
헌데 년.월.일.시.까지 기억하시다니..대단하십니다~^^
2004년 봄. 결혼직전 난소에 혹을 떼는 수술을 하고 회복실에 누워있는데.. 마취가 살짝 깨서 귀는 들리는데 눈도 뜰 수 없고 손가락도 안움직이던 그때 목구멍에 뭔가 걸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숨이 막혔습니다. 간호사 의사들이 저를 보지 못하고 지들끼리 떠들기만하느라 1분가량(?) 저는 컥컥거리다 황천길 가기 직전의 경험을 했답니다..... ㅋ
헉... ㅎㄷㄷㄷ 고생하셨군요!!
에구, 아찔한 한 컷. 클 날 뻔 하셨네여. ㅠ
배달부님 사진 아련하게 '보고' 갑니다...
근데 딴 얘기지만.. 낭만 배달부2 아이디는 별도로 쓰시나요?
아,낭배2는 업무용 폰입니다. 배달할 때..ㅋㅋ
비업무용폰이 그냥 낭배구요.
@낭만배달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