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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강의를 들으면서 처음든 의문은 인명학이 왜 필요한가였습니다.
제 생각에 인명학은
외도들의 논리학과 달리, 중론의 논리학을 이은 속제의 인식인 비량의 논리학으로, 연기법을 더욱 잘 드러내고 외도들을 논파하며,
외도들에게는 없는 진제의 인식인 현량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아서, 허구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제 이해한 바로는 이 둘이 인명학의 필요이자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역시 맞는 지 모르겠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이 인명학 또한 제 분수를 넘어서는 말씀이라 어렵습니다.
비록 나열에 그치더라도 올리는 것은
교수님의 귀한 강의를 어떻게든 잘 알고자 함이고,
어렵더라도 꼭 알아야할 강의이기에 함께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아시는 분은 지적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순 서
1. 인명학이란 무엇인가?
① 현량이란 무엇인가?
② 비량이란 무엇인가?
③ 왜 동아시아에서 인명학이 일찍 사라졌는가?
2. 인명학의 대가들
① 진나(디그나가, 딩나가, 陳那 480~540) : 집량론과 인명정리문론(漢譯본)을 저술한 최고의 논사다.
② 상갈라주(商羯羅主) : 인명입정리론(因明入正理論) 저술
③ 법칭(다르마키르티 法稱 600~660경) : 러시아 철학자 체르바스키가 불교사상가중 최고의 철학자라고 극찬, 라이프니즈 뉴튼보다 1000년 앞선 미분의 발견자로, 진나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저서에 정리일적론, 양평석(석량론), 삼반다빠르샤가 있다.
④ 법상(法上) : 책이 많은데 거의 주석서, 정리일적론소(正理一滴論疏) 저술
3. 인식방법의 종류, 현량 비량 - 법칭의 정의
1) 현량(직접지각)은 네가지인데
①감각지와
자기의 대상과 인접한 대상의 공조에 의해 즉 감각지에 의하고 등무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 ②의근식과
모든 심법과 심소법들인 ③자증지와,
참된 실재에 대한 명상의 절정의 극단에서 생기는 ④정관지이다.
2) 비량(추론)은 두 가지인데
① 자기를 위한 것(위자비량, 내가 즉각 아는 것으로 추리지만 저기 불이 있겠구나 하는 것)
② 남을 가르치기 위한 것(위타비량)
a. 남을 위한 비량, 삼지작법(서양 삼단논법과 순서가 반대)
b. 인(因)의 삼상(三相) - 이유의 세가지 조건
4. 현량과 비량의 둘로 나눈 근거는 진속이제설이다.
a. 현량의 대상 :
b. 비량의 대상 :
c. 불교의 논리학과 외도의 논리학
5. 오류론, 삼지작법 추론식의 오류
① 주장(宗)의 오류 (사립종似立宗) - 현량상위 등 아홉가지
② 이유(因)의 오류 (사인似因)
a. 불성인 (不成因불성립적 사인) - 양구불성 등 네가지
b. 부정인 (不定因불확정적 사인) - 공부정 등 여섯가지
c. 상위인 (相違因모순적 사인) - 법자상상위인 등 네가지
③ 실례(喩)의 오류 (사유似喩)
6. 불교논리학의 개념론, 아포하(Apoha)
1) 디그나가의 집량론 제5장 제 1게와 전후의 주석
① 인식수단에는
② 증언을 통한 인식은
③ 왜냐하면,
2) 집량론 제5장 제 33게 전반부와 전후의 주석
① 다른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② ‘만들어진 것’에 근거하여 ‘무상함’을 증명하는 삼지작법의 추론식
a. 부존관계에 근거한 부정식
b. 타의 배제를 통해 단어의 의미가 드러나는 과정
1. 인명학이란 무엇인가?
인명학은 불교의 인식론이자 논리학, 즉 불교의 인식논리학이다.
인식은 현량(現量)이니, 직접 자각(직접 측량)하는 것이다.
논리는 비량(比量)이니, 추리(빗대서 측량)하는 것이다.
인식 논리를 현량 비량이라 함은
인식도 논리도 저울에 달듯이 마음으로 달아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인도인의 독특한 사고 때문이다.
수백년간 지속되었던, 인명학의 소재가 되는
“소리는 항상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聲상주론(聲현현론) <--> 소리는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으로 생겨나는 것이라는 聲무상론(聲발생론)”의 논쟁에서 보듯,
인도인들의 사유방식과 인식체계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① 현량이란 무엇인가?
직접 자각인 현량은 자상(自相) 즉 점찰나(포인트 인스턴트 point instant)를 자각하는 것이다.
세상은 점의 모자이크, 점의 흐름이니, 한 찰라도 머물고 있는 게 없어 점찰나만 존재한다.
한찰나만 존재하는 점의 번쩍 번쩍임이다.
점찰나만 존재하기에 삼세실유 법체항유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어떤 것도 머무는 게 없고, 한순간도 머물지 않는다.
포인트 인스턴트의 명멸이기에 우리의 주의력 이동에 따라 우르르 변한다.
즉 나의 주의력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지금 여기는 방금전 여기가 아니다.
제행무상의 지독한 연구결과라 할, 모든 게 떤다는 양자역학도 이와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진정한 현량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만나 아트만에 각인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방법 인식대상 인식결과 삼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다 주관적 통찰이다.
핸들잡고 자동차 안에서 앉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직 한 점, 포인트 인스턴트, 이것만이 우르르르 흘러가는 게 세상이다.
이것이 심신탈락, 몸과 마음이 다 떨어져 나간 것, 세상이 다 무너진 것이다.
이것이 불교논리학의 현량론이다.
현량은 있는 그대로 본 것으로, 진제가 현량이다.
② 비량이란 무엇인가?
비량은 속제이다.
머리굴려서 본 것, 굵게 본 것, 대충본 것, 구성된 것이 있다는 전제위에 사유하는 것이다.
③ 왜 동아시아에서 인명학이 일찍 사라졌는가?
한문은 직관의 언어이고 분석적이지 않은 언어이고, 조사가 없는 논리학에 적합하지 않은 다의적인 문자라 논리학이 불가능한 문자이다.
기본 전제를 딪고 앞의 전제를 딪고 쌓아가는 것이 논리학인데, 전제가 흔들려서 쌓아갈 수가 없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인명학의 전통이 얼마 못가 없어졌다.
조사가 붙어 단어역할이 분명한 교착어인 우리말이나 일본어가 논리학에 적합한 언어이다.
그래서 일본에도 논리학에 뛰어나 엄청난 양의 인명학 주석서를 남긴 선주나 장준 같은 이가 나왔고, 그들은 원효를 높게 보고 그의 글을 많이 인용하였다.
2. 인명학의 대가들
① 진나(디그나가, 딩나가, 陳那 480~540) : 집량론과 인명정리문론(漢譯본)을 저술한 최고의 논사다.
a. 집량론(集量論,올바른 인식수단 모음집) - 구논리학이 아트만의 사고방식이 들어있는 논리학이기에, 용어는 그대로 쓰면서 정의를 모두 바꿔 쓴 책이다.
불교 인식논리학을 최초로 집대성하여 불교 인식논리학의 토대를 닦은 책이다.
b.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 - 漢譯본이 있고, 원효가 애독한 책이다.
(원효는 교만할 정도로 자존심이 높고, 상상초월의 논리학의 대가이자 진나의 후신이라 불리는 논쟁과 화쟁을 자유자재 쓴 논쟁국사이며, 남의 것 절대 따라 하지 않는 창의성을 갖춘 분이다.)
② 상갈라주(商羯羅主) : 인명입정리론(因明入正理論) 저술
인명정리문론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불교논리학의 토대가 된 인명학의 개론서 입문서이다.
(내용상 진나의 논리학과 다르지 않아 티벳에선 저자를 진나라 함)
③ 법칭(다르마키르티 法稱 600~660경) : 러시아 철학자 체르바스키가 불교사상가중 최고의 철학자라고 극찬, 라이프니즈 뉴튼보다 1000년 앞선 미분의 발견자로, 진나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저서에 정리일적론, 양평석(석량론), 삼반다빠르샤가 있다.
보통 현량은 오감 갖고 하는데, 의식이 작동을 하는데 현량이 있다.
즉 머리굴리는데 현량이 딱 하나있다.
무엇인가? 의근식이다.
기억은 의식에 있고, 기억은 의근이며, 의근은 앞찰라의 육식이다.
이같은 한 찰라전에 내가 봤던 위치에 대한 기억이 내재해 있어야, 거기 빗대 느리다 빠르다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미분적 사고이다.
이 미분적 사고가 바로 의근식이니, 변화에 대한 인지다.
이같이 차이(변화량)을 계산해 내는 것이 미분이니, 모든 생명체는 미분기계라 할 것이다.(러시아 철학자 체르바스키)
그리고 미분과정이 불교의 인식과정과 똑같다.
a. 정리일적론(正理一滴論) - 가장 연구가 많이된 책으로 범어 원문이 남아있다.
正理一滴은 온갖 논리를 물방울 하나에다 비치듯이 요약했다는 의미, 滴은 물방울적으로, 범어로 빈두, 힌두어로 빈디이다.
b. 양평석(量評釋=석량론釋量論) - 가장 중요한 문헌, 방대한 양으로 현재까지 완역 안됨, 부분 부분만 번역.
c. 삼반다빠르샤 - 관계(심반다=함께 붙임)에 대한 고찰, 관계는 실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관계항이 미리 있었다면 굳이 관계함으로써 피관계항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피관계항이 원래 없었다면 어떻게 관계하겠는가?
예를 들어 말하면)
긴 것은 짧은 것에 의존해서 긴 것이 있다. 했을 때는
긴 것 짦은 것은 피관계항, 의존한다가 관계,
긴 것 짧은 것이 미리 있었다면 뭐하러 관계하는가?
반대로 긴 것 짦은 것이 원래 없었는데 관계를 통해 발생한다. 했을 때는
원래 없었으면 어떻게 관계하겠는가?
이것이 양도 논법으로 철저하게 중관학의 토대위의 논리학이다.
법칭도 그렇고 진나의 논리학은 철저하게 공사상과 중관학의 토대위의 논리학이다.
④ 법상(法上) : 책이 많은데 거의 주석서, 정리일적론소(正理一滴論疏) 저술
3. 인식방법의 종류, 현량 비량 - 법칭의 정의
1) 현량(직접지각)은 네가지인데
①감각지와
자기의 대상과 인접한 대상의 공조에 의해 즉 감각지에 의하고 등무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 ②의근식과
=> 자기 대상은 나한테 감각되는 것이고, 인접한 대상은 앞찰라에 내가 느꼈던 것을 말한다.
또 감각지는 자기의 대상이고, 등무간연은 인접한 대상이니, 위 문장은 반복해 말한 것이다.
발생하는 것은 앞에 느꼈던 것 비교해서 떠오르는 것이니, 의근식이다.
모든 심법과 심소법들인 ③자증지와,
=> 감각기관이 특별히 없는데 기쁨 슬픔 등을 그냥 느끼는 것이라 자증지이다.
사실 이것도 정확한 게 아니다. 기쁨 슬픔 탐욕 분노도 못느낀다. 수와 상으로 변했을 때 느끼는 것이다.
오온중 의식의 내용은 수와 상 밖에 없다. 여기 의거해서 서양의 심리학과 철학을 다 다시 쓸 수 있을 정도이다.
※ 그리고 고락할 때 모든 고통은 사실 몸에서 신근에서 생기는 촉에서 오는 것이다. 고찰해보라.
참된 실재에 대한 명상의 절정의 극단에서 생기는 ④정관지이다.
=> 정에 들어가서 보는 지혜이니, 사성제에 대한 통찰 즉 현관이다.
수다원부터 정관지가 생긴다.
사성제를 직관하는 것이니, 여기의 직관은 견도의 견이다.
견이 현량이다.
견도한 이는 우리와 똑같은 세상을 보나 우리와 다르게 본다.
정관지 현량이 견도에서 일어나는 견의 대상이다.
(인식방법 인식대상 인식결과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심신탈락, 점찰나, 사성제 통찰의 끝이고 핵심인 멸, 반야경에서는 공, 선의 본래무일물, 십이연기의 환멸문이 멸함, 점찰라의 집합이나 흐름이다.
(공이나 점찰나의 흐름이나 같은 것이다. 공하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점의 모임은 최소점의 긍정을 설정해 표현한 것이다.)
2) 비량(추론)은 두 가지인데
① 자기를 위한 것(위자비량, 내가 즉각 아는 것으로 추리지만 저기 불이 있겠구나 하는 것)과
② 남을 가르치기 위한 것(위타비량, 남에게 전달하려면,
저기 불이 났어, 연기가 있기 때문에, 왜냐하면 연기가 있는데 불이 있어 마치 아궁이처럼.
이같이 삼단논법으로 표현된 비량)
a. 남을 위한 비량, 삼지작법(서양 삼단논법과 순서가 반대)
추론식의 예 - 주장(宗) 저 산에 붙이 있다.
이유(因) 연기가 있기 때문에
실레(喩) 마치 아궁이와 같이
이것을 삼단논법으로 표현하면,
연기가 있는 곳엔 반드시 불이 있다. 마치 아궁이처럼
저기에 연기가 있다
그러므로 저기에 불이 있다.
내용은 같지만 삼지작법에서는 주장을 먼저 내세우나, 삼단논법에서는 주장을 결론으로 나중에 내세운다.
서양 삼단논법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것을 삼지작법으로 표현하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왜냐하면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죽는다 마치 제논처럼
b. 인(因)의 삼상(三相) - 이유의 세가지 조건
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이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유이므로 “연기가 있기 때문에”가 가장 중요,
근거(조건)가 되는 것이 인(因)인데, 이유명제는 반드시 셋을 갖추어야 한다.
제1조건 : 주제에 소속된 성질인 점(遍是宗法性)
=> 변시종법성 = 연기는 반드시 저산에 있어야 한다.(저산이 주제, 연기가 저산에 소속되어야 하므로)
제2조건 : 동질적 주제에 존재하는 점(同品定有性)
=> 동품정유성 = 불이 있는 곳에는 연기가 있었어야 한다. (없어도 상관 없다. 가스불 같이 연기가 없을 수도 있다. 단 한번이라도 불이 있는 곳에서 연기가 있은 적이 있어야 한다.
연기는 불이 있는 곳에는 있을 수 있지만 없는 곳에는 없다.에서 앞의 의미이므로)
제3조건 : 이질적 주제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점(異品遍無性)
=> 이품편무성 = 불이 없는 곳에는 절대 연기가 없어야 한다. (불이 없는 곳이 이질적 주제)
연기라는 이유 즉 인이 이 세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그 삼지작법은 올바른 삼지작법이다.
4. 현량과 비량의 둘로 나눈 근거는 진속이제설이다.
현량은 직접지각 비량은 추리지인데, 진나논사가 인식 방법을 이같이 둘로 나눈 이유는 진속이제설에 근거한 것이다.
무엇인가?
진제란 딴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본 것, 왜곡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진제적 인식이 현량이다.
감각할 때 왜곡되지 않는다.
감각할 때는 왜곡되지 않으나, 머리굴릴 때는 왜곡될 수 있다.
잘못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비량이다. 이와 같은 속제적 인식이 비량이다.
a. 현량의 대상 :
그 대상은 자상(自相)인데, Stcherbatsky는 이 자상을 Point-instqnt(점 찰나)라고 하였다.
가깝고 멀고에 따라서 인식된 모습에 차이가 있는 대상, 그것이 바로 자상이다.
그것만이 승의적 존재이다. 참된 존재이고 진제의 존재다.
실유는 실질적 작용능력을 특징으로 삼기 때문이다.
즉 같은 불이나 데는 불은 현량의 불이고, 데지 않는 불 머릿속의 불은 비량의 불이다. 개념으로서 비량된 것이다.
b. 비량의 대상 :
자상이 아닌 다른 것은 공상(共相)인데 보편 그것은 비량의 대상이다.
공상은 보편을 의미하고 현량은 특수를 의미한다.
서양의 특수는 항상 바뀐다.
동물이 보편이면 소 말 개 돼지...는 특수
개가 보편이면 도베르만 세퍼트 치와와...는 특수
치와와가 보편이 되면 검은 것 작은 것 큰 것...이 특수
이와같이 보편과 특수의 위계가 있다. 인도논리학도 마찬가지다.
불교논리학은 다르다.
특수는 자상 점찰나뿐, 모두가 보편이다. 모든 개념은 보편이다.
즉 보편이나 특수를 그대로 쓰지만 정의가 다르다.
그 전까지 논리학에서 썼던 용어를 그대로 쓰지만 정의가 의미가 변한다.
불교적으로 공 연기법 무아에 근거해 모두 바꿔버린다.
이것이 진나의 위대한 점이다.
c. 불교의 논리학과 외도의 논리학
불교논리학은 인식방법 인식대상 인식결과가 모두 똑같다. 나누지 않는다.
외도는 인식방법 인식대상 인식결과가 다르다고 한다. 구분한다.
전혀 구분이 안되는 것을 구분하므로 허구의 세계이다. 그래서 외도들의 논리학은 세상과 무관한 것이다.
불교의 논리학은 세상을 그대로 본 것이다. 세가지가 같다.
진제의 통찰이다.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용어는 똑같이 썼지만 전부 재조직한 것이 진나의 불교논리학이다.
5. 오류론, 삼지작법 추론식의 오류
아래 세가지(①②③)는 굵게 나눈 것이다. - 다시 세분하면 33가지로 나눠진다. (인명입정리론)
① 주장(宗)의 오류 (사립종似立宗) - 현량상위 등 아홉가지
현량상위 - 그 중에서 현량에 모순되는 것은 예를 들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질수 없기 때문에(因)
=>이러면 현량상의 오류에 빠진 주장을 하므로 토론의 장에서 나가라고 한다.
세간상위 - 세간의 모순되는 것은 예를 들어 토끼를 갖는 것은 달이 아니다.(宗)
존재이기 때문이다.(因) 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남자의 두개골은 청정하다.(宗)
생명의 일부분이기 때문에(因), 자개와 같이(喩) 라고 하는 것과 같다.
=> 토기를 갖는 것(회토懷兔)은 달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금성은 샛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 위배되기에 토론장에서 나가라고 한다.
② 이유(因)의 오류 (사인似因)
a. 불성인 (不成因불성립적 사인) - 양구불성 등 네가지
그 중에서 ‘소리는 무상하다’는 소증에 대해 ‘눈에 보이기 때문에’ 하고 하는 것이 ① 양측에 대해 불성립인 것이다.
=> 눈에 보이기 때문에? 소리는 눈에 안보이는 것인데 보인다 하니 토론장에서 나가라고 한다. 인의 오류이다.
b. 부정인 (不定因불확정적 사인) - 공부정 등 여섯가지
모순이 확정적인 것(상위결정)은 다음과 같다.
소리는 무상하다.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물단지 등과 같이,
소리는 상주한다. 들리기 때문에. 소리성과 같이 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양자 모두 의심스러운 이유를 갖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이렇게 두 가지임에도 불확정적인 것은 하나뿐이다.
(※ 둘다 성립해야 하기에 둘다 의심스러운 이유를 갖는다 하는 것이다.
일어난 것은 둘이지만, 무상하면서 상주하고, 만들어진 것이면서 들리고, 물단지 같으면서 소리성 같은 불확정적인 것은 하나라는 말이다.)
=> 불확정적 사인(似因=이유의 오류)은 상위결정의 오류로, 서로 모순된 것이 확고부동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가 얘기한 이율배반과 같은 것이다.
즉 누가 삼단논법을 구성했더니 반대결론이 나는 삼단논법을 구성하여, 어느게 맞는지 알 수 없을 때, 둘 다 틀렸다고 하게 된다. 이것이 상위결정이다.
같은 학파의 세계관 하에서
소리는 무상하다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물단지 등과 같이,
소리는 상주한다. 들리기 때문에. 소리성과 같이
이 둘다 성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너희들 주장은 서로 모순된 걸 주장하므로 틀렸다 한다.
불교밖 외도 중에는 승론(바이세시카)학파의 주장이 이같은 상위결정의 오류이다.
소리성 즉 개라고 할 때, 개가 떠오르는 것이 불교에선 비량이나 외도들은 현량이라 한다.
개라는 소리성, 그 보편이 직접 지각되기에 현량이라 한다.
(이것은 근대 이전의 이데아 실제론이나 개념 실재론을 주장하는 서양철학과 같은 것이다.)
이런 보편실재론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서 소리 즉 언어는 직접 지각된다고 주장하는 학파가 승론학파이다. 그러면서 소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소리는 무상이 되어야 하는데, 직접 지각하는 것이라고 하니 상주하는 게 되어야 한다.
서로 모순이다.
같은 학파 세계관 내에서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두 가지 추론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의 주장은 틀렸다 비판하게 된다.
이것을 상위결정의 오류를 통한 비판이라고 한다.
원효가 현장의 주장인 “모든 게 마음이 만든 것이다.”할 때, 이와 상반된 추론식인 바깥 사물은 마음과 무관하다고 소승은 주장할 것이라고 제시함이 그런 것이다.
즉 같은 학파의 세계관 하에서 서로 모순된 것을 주장하니 틀렸다는 상위결정의 오류를 통해 비판한 것이다.
c. 상위인 (相違因모순적 사인) - 법자상상위인 등 네가지
그 중에서 법 그 자체의 성질과 상반되는 능증이란 예를 들어
“소리는 상주한다.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또는 노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는 이질적인 주제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모순된 것이다.
=> 만들어진 것이 이유인데 상주하는 것과 상반되므로 모순된다.
이와 같은 서른 세 가지의 잘못된 추론을 예로 들고 있는 것이 인명입정리론이다.
③ 실례(喩)의 오류 (사유似喩)
사동법유(似同法喩) - 능입법불성 등 다섯가지
사이법유(似異法喩) - 소립불위 등 다섯가지
위의 몇가지 번역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말로 번역해 놓고 보면 어렵지 않으나, 한문으로 보면 어렵기에, 집량론이 당나라때 번역이 되었으나 얼마안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6. 불교논리학의 개념론, 아포하(Apoha)
아포하는 개념의 이해에 대한 얘기이다.
1) 디그나가의 집량론 제5장 제 1게와 전후의 주석
① 인식수단에는 현량(지각)과 비량(추리)의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증언(언어적 표현)’ 역시 별개의 인식수단이라고 생각한다.
=> 현량은 진제적 인식,
비량은 속제적 인식,
증언은 성언량(聖言量)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세친도 선언량을 별도의 인식수단으로 인정했다.
② 증언을 통한 인식은 비량이기 때문에 별도의 인식수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 등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을 배제함(他의 배제, anya-apoha)‘에 의해 그 자체의 의미를 언표하기 때문이다. - 제1게 -
=> 그러나 진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성언량은 별도의 인식수단이 아니고, 비량에 포함된다.
말을 통한 인식같은 경우에도 이게 별도로 분리할 게 아니고 추리를 통한 인식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이것이 아포하론이다.
어떻게 인식되느냐?
타의 배제를 통해서 말의 의미가 인식되기 때문에 그 과정은 추리와 다르지 않다.“
이게 아포하사상인데 난제중의 난제다.
③ 왜냐하면, 단어란 것은 그것이 결합된 대상에서 그것이 적용되는 부분과 ‘필연적 수반관계(avianbhavutva-sambandha)'를 가지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 따위와 마찬가지로 다른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그것(이 적용되는 부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증언(성언량)은 비량과 구별되지 않는다.
=> 처음에는 티벳어 번역문만 있고 난삽하여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1984년 북경에서 집량론의 범어 원문이 섞여 있는 주석서가 발견되어, 어디에 공지가 되니까, 세계논리학의 중심지 오스트리아의 학자들이 북경에 찾아가서 1987년도에 사본의 사진을 보았고, 그걸 얻어 갖고 와서 20년을 연구해서 2009년 집량론의 아포하장(총5장)이 번역은 안되고 교정문만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의 가츠라 쇼류(Shoryu Katsura)가 4장 교정,
비안나대 연구자 호르스트 라직(Horst Lasic)이 1장 교정,
올레삔드(Ole Holten Pind 1945~2018)가 박사학위에 5장의 교정문을 실었다.
아포하 규명위해 불교논리학에 뛰어난 20명이 모여 스위스 로잔대학에서 합숙하며 토론했으나 아포하 의미가 무언지 알 수 없었고, 각자 논문을 써 책이 나온 것이 있다.(아포하 권서용역)
그런데 다 해매고 있고, 틸레만 같은 이는 아예 틀렸다고까지 했다.
나도 2009년부터 15년 고심하였는데, 최근에야 실마리를 풀었다.
2) 집량론 제5장 제 33게 전반부와 전후의 주석
① 다른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어떤 의미에 있는 보편개념을 증명하는 것과 같이,
어떤 단어에 있는 보편개념은 다은 단어를 배제함으로써 언표된다.(제33게ab)
예를 들어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라면 반드시 있는 보편개념인 ’무상함‘에 도달하는 것과 같이,
어떤 단어에 있는 보편개념은 다른 단어를 배제함으로써 언표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 /다른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무상함‘에 도달하는 것과 같이/는 일반적인 삼단논법이다.
그런데 만들어진 것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배제함으로써 하니, 이게 아냐-아포하(他의 배제)다.
만들어진 것이라면, 반드시 보편개념 만들어진 것과 다른 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타의 배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배제함으로써, 라고 하니,
이 문구를 갖고 논란이 일어났고, 미맘사 등 온갖 외도학파들이 틀렸다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1600년에 걸친 난제중의 난제다.
왜 해맸는지 결론만 말하면, 진나의 논리학이 반야 공사상에 근거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실재론적 사고방식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나의 아포하를 풀지 못하고 해맨 이유이다.
진나의 아포하는
그 무엇이 무상하다 할 때,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배제함으로써 무상함을 논증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언어도 발화가 될 때, 어떤 단어 말할 때, ‘나무’ 할 때, 타의 배제를 통해서 이해가 된다는 이런 애기를 하는 것이다.
반야공사상에서는 눈도 코도 나무도 없다.
만들어진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본래 무일물이기 때문에,
그런 공의 토대위에서 있다고 해야 되는 논리를 건립해야 하기에, 나온 것이 진나의 아포하론인 것이다.
② ‘만들어진 것’에 근거하여 ‘무상함’을 증명하는 삼지작법의 추론식
주장: 이것은 무상하다.
이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례: 마치 물단지와 같이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다) -공존관계
마치 허공과 같이 (상주하는 것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부존관계
a. 부존관계에 근거한 부정식
이것이 상주한다면 이것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부존관계
이것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타)이 아니다.(배제) - 후건의 부정
그러므로 이것은 무상하다. - 가언적 삼단논법
b. 타의 배제를 통해 단어의 의미가 드러나는 과정
원래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 반야공사상
이 세상에 나무가 있다면 나무 아닌 것이 있다. - 반사실적 가정
이것은 나무가 아닌 것이거나 나무이다. - 선언적 판단
그런데 이것은 나무 아닌 것(타)이 아니다.(배제) - 부정식
그러므로 이것은 나무다. - 선언적選言的 삼단논법
=> 보라.
원래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근데 이 세상에 나무가 있다면 나무 아닌 것이 있다. 이러면서 나무가 세상에 등장한다.
일반적으로는 여기에 컵이 없다고 하면 컵 아닌 게 있다.
컵이 없으면 컵아닌 게 있다. 이게 일반논리학 즉 존재자의 차원이다.
즉 나무가 없으면 나무 아닌 다른 것이 있다.가 일반적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불교의 공사상은 이와 다르다.
여기에 나무가 없으면 나무 아닌 것도 없다.
역으로 나무가 있다고 나무를 설정하면, 나무 아닌 것이 발생한다.
이게 공사상의 연기법이다.
긴 것을 설정하면 짧은 것이 생긴다.
긴 것이 없으면 짧은 것도 없어진다.
어디에서?
세상 전체에서, 지금 여기에서가 아니고 세상 전체에서,
그러니까 표현이 다르다.
여기에 컵이 없으면 다른 것이 있다.는 일반논리학이다.
여기에 컵이 없으면 컵과 다른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이게 용수의 중론의 논리학이다.
만일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공이 있다.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면 공도 없다. 이것이 공공, 연기법이다.
용수의 전체 논법이 다 이렇다.
진나는 용수의 중론의 환멸연기를 전제로 한 것이다.
나무가 없으면 나무 아닌 것도 없고,
나무가 있으면 즉 나무를 설정하면 나무 아닌 것이 생긴다.
나무와 나무 아닌 게 세상 존재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생각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나무를 봤다. 이게 나무 아닌 게 아니다. 그러면 나무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 밑에 삼단논법이 발생한다.
원래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반야공사상) 이것이 사실
이 세상에 나무가 있다면 나무 아닌 것이 있다. (반사실적 가정)
실제 나무를 보고서 이건 나무인가 아닌가 하면
나무 아닌 게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무다. 라고 하게 된다.
즉
이것은 나무가 아닌 것이거나 나무이다. (선언적 판단)
그런데 이것은 나무 아닌 것(타)이 아니다.(배제) (부정식)
그러므로 이것은 나무다. (선언적選言的 삼단논법)
서양논리학에 삼단논법이 세가지가 있다.
정언적 삼단논법
가언적 삼단논법
선언적 삼단논법이 그것이다.
진나의 타의 배제가 이렇게 불교의 공사상에 근거해서 개념의 성립과정을 해명하려 하다보니, 그렇게 타의 배제란 특수용어를 도입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은 철저하게 연기법에 근거하고, 그렇게 해서 삼단논법을 구성하면 현대논리학의 선언적 삼단논법이 되는 것이다.
즉
선언적은 or로 연결된다. 이것은 a거나 b이다.
이것은 b가 아니다. 할 경우에
그러면 이것은 a이다.가 된다.
그런 식의 삼단논법이다.
(그래서 지금 진나 논사가 쓴 아포하에 대한 문장들을 다 대조하면서 이렇게 설정했을 경우에 이게 들어 맞을까 하면서 보는데, 이게 답일 것 같다.)
나무일 경우는 쉽다.
그거 말고 물질을 들어 말해보자.
물질은 물질 아닌 것에 대비해 물질이라 한다.
그런데 물질 아닌 것과 물질의 경계선이 무엇인가? 없다. 원래는 없다.
왜냐하면, 화엄으로 보면 일 즉 일체이기 때문에, 물질로 보려면 다 물질이고, 물질 아닌 것으로 보려면 다 물질 아니다. 다 마음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거 물질이구나 하려면 벌써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에, 내가 선을 그었단 얘기다.
이렇게 물질과 물질 아닌 것에 경계를 나눈 것이다.
물질 아닌 것을 내가 선을 그었기 때문에, 분별해 갖고 잘랐기 때문에, 임으로 내 멋대로 나눈 것이다.
원래 실상의 세계에서는 일즉일체, 모든 게 물질이고 모든 게 물질 아니고, 절대긍정 절대부정의, 생각이 다 해체가 되어 있는 게 원래 실재의 세계인데, 내 멋대로 임으로 나누면 분별의 세계 가상세계 허구의 세계가 된다.
이 허구의 세계에서 물질이라는 개념을 내가 쓸려면, 물질이 아닌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래서 물질이 아닌 것이 있으면 물질이 있고, 물질이 있으면 물질 아닌 게 있다.
그러면 세상은 물질과 물질 아닌 것 둘로 구성된다.
그런데 지금 이걸 보니까
내가 볼 땐 물질 아닌 게 아니다. 물질 아닌 것을 배제시켰다.
그럼 바로 이게 물질이 된다.
그래서 이제 그런 식으로 공사상에 근거해서 삼단논법을 구성할려고 나온 이론이 아포하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 난해한 집량론 책을 올 봄에 내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뭐라 말할 수가 없군요...
책을 안 내시더라도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연이 다하면 어쩔 수 없음이어서, 인생이 참으로 속절없습니다.
어느 천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누구 말대로 극락에 계실까요?
그래도 이 지구에서 하시던 일이 있으니, 돌아오실 것입니다.
어려운 강의를 저같은 사람도 대충이나마 알게 해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_()_
귀한 영상 올려주신 불광미디어와 양순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오시는 모든 분들의 평안을 빕니다.
감사합니다._()()()_
첫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영상은 올려놓고 아직 다 보지는 못했는데 청정님의 요약 해설이 큰 도움 될것 같아요.
별 말씀을요,
귀한 영상을 올려주신 공덕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_()_
재가 듣고 옮기다 보니, 교수님의 강의는 토씨하나 허튼 말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강의가 그대로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오랜 정련을 거쳐 나온 보배 단어들의 하모니라고나 할까요
이미 달통한 경지에서 글이 절로 나오고 강의가 절로 나온다는 느낌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_()_
청정님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포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공님, 저도 아직 잘 모릅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한번 두번이 아니라 자꾸 듣고 또 듣다 보면, 알아지는 바가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함께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_()_
그리고 쓴 글도 다시 보고
문맥이 잘 안통하거나 의미가 잘 안통하는 부분에 대해 수정을 몇차례 하였습니다.
수희찬탄합니다. 🙏🙏🙏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