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08 08:00 | 기사원문
[맛난 집 맛난 얘기] 사가식탁
요리사가 된 인테리어 사업가 아빠
딩씨가 이 집을 차린 이유는 조금 특별하다. 물론 식당이니 돈은 벌어야 한다. 그렇지만 돈벌이만을 위해 차린 식당은 아니다. 그는 음식 조리할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 요리를 맘껏 해볼 자신만의 공간. 자기 음식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수 이웃들과 함께 할 장소를 갖고 싶었다. <사가식탁>은 그런 부부의 꿈이 결실을 맺은 식당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번잡스런 ‘대박집’이 되는 건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행복한 긴장의 균형이 깨질까 우려해서다.
딩씨는 본시 인테리어 사업자였다.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요리를 배우고 즐겼다. 혼인하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되자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었다. 식구들에게 자신이 조리한 음식을 먹이는 게 취미이자 큰 기쁨이었다. 차츰 ‘평생 요리하면서 사는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굳힌 후 딩씨는 베이징의 요리학원에서 6개월간 본격적인 실전 수업을 받았다. 중국 남부와 서부 내륙을 종횡무진 누비며 ‘음식 순례’도 다녔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중국에서 맛있다는 요리들은 모두 섭렵하며 내공을 쌓았다. 주로 가정식으로 적당한 요리들을 눈여겨봤다. 특히 면 요리에 관심을 갖고 배웠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아무추어라며 겸손해 한다.
“저는 프로가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은 못 만듭니다. 그러나 좋은 음식은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없는 게 많아서 믿음이 가요!”
부부는 중국에서 새를 소재로 한 소품들을 들여왔다. 화조도가 그려진 대형 천을 천장에 드리워 좌석간 칸막이로 삼았다. 흰색 톤의 벽과 잘 어울린다. 새를 소재로 한 공예품들로 꾸민 공간은 소박하고 편안하다. 6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식당은 작지만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이 집은 없는 게 참 많다. 우선 음식에 조미료가 없다. 중식당에서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퍽 드문 일이다. 딩씨네 가정식이다 보니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 한국식 중식당의 기본 메뉴 또한 없다. 술을 진열한 쇼우 케이스도 안 보인다. 주인장 부부가 주류나 탄산음료는 가급적 판매하지 않으려 한다. 손님들이 음식을 너무 많이 시키면 적당량만 주문하라고 권고하는 모습도 다른 식당에선 보기 쉽지 않은 풍경.
주문 후 바로 조리에 들어가는 것도 일반 중식당과 다른 점. 조리시간이 좀 걸리지만 맛은 살아있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메뉴가 수시로 바뀌는 점도 특이하다. 80여 가지 메뉴 가운데 10여 가지 고정메뉴를 제외하고는 늘 순환해가며 선보인다. 계절성과 재료수급 사정에 따라 가장 맛있을 시기에만 해당 메뉴를 내놓는 것. 예전에 먹은 메뉴를 다음에 가서 찾으면 없을 수도 있다.
“여긴 없는 게 너무 많아서 믿음이 가요! 그 어떤 메뉴를 내와도 집에서 만들어먹는 음식 같은 편안함이 있어요.” 얼마 전 암 수술을 받고 서울에서 찾아왔다는 한 30대 여성 고객의 말이다.
남성味와 여성味 대표하는 볶음면 ‘요포미엔’과 ‘총요미엔’
요포미엔(油泼面 8000원)은 좀 특이한 국수다. 달걀, 숙주나물, 청경채, 목이버섯과 함께 넓적한 면이 들어간 볶음면이다. 얼핏 도삭면 같은 얇은 면이 마치 레이스처럼 나풀거린다. 탄력 있는 면발은 천천히 먹어도 쉬 불지 않는다. 조미료 맛이 없고 간이 세지 않아 가정식임을 실감케 한다.
센 불을 이겨낸 숙주나물이 아삭아삭 씹힌다. 간장 베이스의 당기는 맛과 약간 매콤한 고춧가루 향기가 아주 구수하다. 독특한 풍미를 내는 이 고춧가루는 중국 스촨에서 왔다. 딩씨 중국 본가의 누이동생이 이 고춧가루를 비롯해 간장 세 종류와 각종 식재료를 보내준다고 한다. 덕분에 딩씨 음식의 본맛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총요미엔(蔥油拌面 7000원)은 이름처럼 대파와 샬롯을 잘게 썰어 말린 새우와 잘 저어주면서 기름에 볶아낸 면이다. 샬롯은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대부분 식당에서는 양파로 대체한다. 샬롯 특유의 순하게 매운 향이 입맛을 돋운다. 요포미엔이 넓적하고 터프한 면이라면 총요미엔은 가늘고 다소곳하다. 남성적 스타일의 요포미엔에 비하면 총요미엔은 여성적인 국수다.
끝맛으로 올라오는 기름의 고소함이 예전 짜장면 먹고 났을 때와 흡사하다. 살짝 불맛도 느껴진다.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짭짤하게 말린 새우도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난다. 면에는 밀가루 소금 물 외에 다른 첨가물은 넣지 않는다. 반죽한 뒤 숙성시켜 제면해 소화가 잘 된다.
탕수육과 또 다른 표정의 돼지고기 튀김 ‘잉토우로우’
딩씨는 음식의 맛과 향을 내는 조미재 가짓수를 가급적 자제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단순한 맛을 추구한다. 웬만한 음식은 간장과 식초로 맛을 낸다. 그의 음식이 간이 세지 않고 강렬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이유다.
잉토우로우(櫻桃肉 1만8000원)는 딩씨의 요리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메뉴. 돼지고기 안심에 피망, 양파, 마늘 등 채소들을 썰어 넣고 간장과 식초로 맛을 낸 튀김요리다. 세 번을 튀겨 시간이 적잖이 소요된다. 같은 돼지고기 튀김인데 탕수육과는 또 다른 맛과 느낌이 난다. 바삭한 맛으로 먹는 탕수육과 달리 한 입 크기로 자른 돼지고기 안심이 쫄깃하고 부드럽다.
딩씨는 최상의 음식을 내놓기 위해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쉬고, 매주 일요일은 휴무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성복2로76번길 26-3 031-266-3489
글 사진 이정훈 음식문화연구자(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