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한국 원 시세는 전날 대비 17.3원 저가(환율 상승)인 1달러=1354.9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거래 중 1355.1원까지 밀려 전날 거래 중에 기록한 올해의 저가(1달러=1352.3원)를 하루에 갱신했다.
원시세는 이달 들어 세계 금융 위기였던 2009년 4월 28일(1달러=1356.8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화 하락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긴축 기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2회 자이언트 스텝(정책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데다 이달 20~21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FOMC)에서도 0.75%포인트 인상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강하다. 고용 등 경제지표의 호조로 FRB가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꿀 기대는 희박해지고 있다.
달러화를 불러오는 긴축의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원가치를 인하한 것은 6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무역적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월 무역적자는 94억 7000만 달러(약 1조 3275억엔)로 통계를 취하기 시작한 지 월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높인 것은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다. 전 세계적인 수요 약화 등으로 반도체 수출액이 1년 전보다 7.8% 감소했다. 한국 수출의 흐름을 읽는 '카나리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반도체의 수출 감소로 한국 경제에 대해 경고등이 켜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 '8월 금융·경제 이슈 분석'에서 "당면 무역수지는 높은 국제 원유 가격, 주요국의 수입 수요 둔화 등의 영향으로 수출 둔화가 지속되며 적자의 흐름은 불가피하다" 라고 전망했다.
대외환경도 달러고를 부추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달 31~2월 2일 유럽으로 향하는 파이프라인 '노드 스트림 1'의 가동을 중단했다. 시설 정비를 이유로 들었지만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는 에너지 대란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의 급등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유로권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9.1% 상승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짙다. 여기에 중국이 인구 2100만명이 사는 서부 중심도시인 청두(成都)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발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도 다시 점화했다.
모두 달러고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1973=100)는 전날 대비 0.37% 상승한 109.067을 기록했다. 종가 기준으로 2002년 6월 19일(109.63) 이후 20년 만의 최고 수준이 된다. 달러화 때문에 일본에서도 통화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24년 만의 엔저 수준을 기록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엔 시세는 거래 중에 1달러=139.69엔까지 진행돼 심리적 지지라인인 1달러=140엔에 한층 더 접근했다.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 박상현 씨는 “유럽 에너지 대란은 결국 한국의 에너지 수입 단가를 끌어올리는 원인이 된다”면서 “미국이 긴축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원시세는 1달러=1400원까지 밀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