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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주어졌을 때
성경본문 : 느헤미야 5:14-19
14.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왕 이십년부터 삼십 이년까지 십 이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일백 오십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찌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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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여인천하"가 유행인 것 같습니다. 여인천하가 아니라 음모 천하인 것 같이 보입니다만 여인천하 말고 "3일 천하"라는 이야기 들어 보았습니까? 고대 페르시아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잘 생기고 체격이 좋은 노예를 3일 동안 왕으로 삼았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3일 천하" 그야말로 짧은 시한 부 왕입니다. 이 3일 동안 "시한부 왕"은 세상에서 좋다는 옷을 다 입어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어 보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해 본다고 합니다. 만일 3일 동안 세상을 다스리는 힘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물론 3일이 지난 후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3일 천하"를 호령하던 노예왕을 잔인하게 죽이면서 축제를 벌였다고 합니다.
힘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
사람을 살맛나게 하고 신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힘이란 "동물이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힘살의 작용" 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힘을 설명한다면, 힘이란 "자신 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능력, 실력, 권력, 세력 따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빈토플러는 "권력의 이동(power Shift)"에서 권력의 원천, 즉 힘의 원천은 폭력. 부. 지식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차관이 된다는 것, 어느날 과장, 이사로 진급한다는 것, 어느날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합격한다는 것, 어느날 사장이 되고 큰 부자가 된다는 것, 어느날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것, 어느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른다는 것 이것 얼마나 신나고 살 맛나겠습니까? 능력, 실력, 권력, 세력, 재력 등을 얻는 것은 보통 즐거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어렵게 그 힘을 얻고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요즈음 매스컴을 통해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쓰러지고 감옥에 갇히고 수치를 당합니까?
힘을 잘 못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힘이 주어지면 힘이 없을 때는 상상치 못할 유혹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유혹을 넘어가지 못하면 결국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입니까?
대부분 세 가지로 옵니다.
첫째는 힘의 오용입니다.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힘의 남용입니다.
권리나 권한 따위를 본디의 목적에서 벗어나 함부로 행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힘을 이용한 사리 사욕 추구입니다.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 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하고 그 권력으로 사리 사욕을 채우려다가 넘어진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았습니다.
요즈음도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어렵게 쌓아 온 것을 단숨에 잃어버리고 얼굴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것은 권력가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매일 매일 삶 속에서 격는 문제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가정에서 가장으로, 어머니로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책에 맡는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모두에게 건강의 힘, 지능의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음악, 미술, 조각, 말, 운동 등 갖가지 재능의 힘도 주어졌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크고 작은 힘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힘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지속적으로 그 힘을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넘어지지 않고 그 힘으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14-15)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코람데오 정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힘이 주어지면 그 힘이 나의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힘을 주신 분을 잊는 것입니다. 자기 잘나 받은 것으로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잘나서 성공하고 자기 잘라 권력을 받았고 자기 잘라 아름답고 자기 잘라 출세한 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힘을 오용하고 남용하게 됩니다. 그 힘으로 부당하게 통제하려 들고 심지어는 힘을 주신 분까지 통제하려고 합니다. 가인처럼 되는 것입니다. 동생의 예배까지 통제하려 합니다. 결국 하나님 마음까지 통제하려 합니다. 당대의 입술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상대의 마음까지 통제하려고 합니다. 남편의 입술, 아내의 입술, 사장의 입술, 목사의 입술과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다 스스로 실족합니다. 그 힘은 주신 분이 거두어 가버리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힘을 거두어 가는 것 중의 최악의 것은 생명을 거두어 가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제 것인양 교만하게 사용합니다. 결과는 왕권도 잃고 그 힘 때문에 생명도 잃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힘이 주어지면 주신 분의 뜻에 맡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12년 동안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지내었던 느헤미야를 보십시오.(14절)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힘이 주어졌습니다.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그는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였습니까?
이전 총독은 지나치게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전 총독들은 백성을 토색하였습니다. 돈이나 물건을 억지로 빼앗아 갔다는 말입니다. 양식과 포도주와 은 사십 세겔을 세금으로 취하였습니다. 그의 직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상을 보십시오.
부자들은 이자 놀이하고 호화 호식하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집과 자녀를 저당 잡혔습니다.(느5:1,2,10)
이런 때 총독과 관리들은 부패하여 힘을 남용하고 오용하고 그 힘으로 자기 사리 사욕만 채우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4절 하반절에 보니까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한 해가 아니었습니다. 12년 동안입니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형제 하나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1:2; 7:2).
자신은 선한 채하며 동생들을 통하여 몇억씩 챙기는 것 아니었습니다.
그가 힘이 있는데도 그렇게 살았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던 것 같습니까?
그가 도덕적으로 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그가 충분히 돈을 벌어 왔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 원동력에 대하여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5절 하반절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이것이 느헤미야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느헤미야는 자신을 그 지위에 놓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보내신 분도, 자신을 총독의 지위에 올려놓으신 분도, 자신에게 책임을 주신 분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지위에 대하여 열쇠를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힘을 잘 사용하는 자들은 바로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을 잃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기업들의 전쟁이라는 책을 보면 60년 동안 미국의 오토바이 시장을 70%를 석권했던 할리가 일본 회사 혼다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일을 써 놓고 있습니다. 그책에서 할리가 힘을 잃은 이유를 3 C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자기 만족(complacenct 켐프레이즌트), 과신(confidence 콘피던스), 오만(conceit 캔지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입니다. 힘 주어졌을 때 교만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말하는 능력 주어졌다고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보는 힘, 걷는 힘, 아는 힘, 상상하는 힘, 물질, 재능 주어졌다고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힘이 주님께서 주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가면 죄 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93장 1절)"
이 사실을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조금만 뭐 주어지면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해집니까?
그러다가 그것으로 결국 망하는지 모르고 날뛰는 사람들 얼마나 주변에 많이 있습니까?
지난 주에 월마트 coo(chief operating officer)인 단 소더퀴스트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120만명의 사원 거느린 월마트 최고 운영자입니다. 세입 2천억 달러 세계 2위 기업의 총책임자입니다. 그는 교만할 만도 합니다. 힘있는 사람입니다. 힘을 남용할 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사업가 이전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이 사업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월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처럼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이 옷을 입고 평일에는 다른 옷을 입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인도의 선교사로 보내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찾아오면 기도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말하는 대로 하지말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 하라고 직원들에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활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힘이 주어지면 그 힘을 남용하거나 오용하거나 내 것으로 알고 잘못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사용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권력을 남용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을 때 자기 마음대로 상대를 통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오용하는 것입니다.
2. 사랑하는 데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16-18).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착취형 인간, 거래형 인간, 사랑형 인간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착취형 인간은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피해를 주는데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힘이 주어지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데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힘이 주어지면 다른 사람을 매장하고 죽이는데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거래형 인간(공생형 인간)은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한 개 주고 한 개 받고 사는 인간입니다.
양심있는 인간들을 대부분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랑형 인간, 희생형 인간은 이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힘이 주어지면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자연질서를 지배하시는 힘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하였습니다.
비난하는 자 용서합니다.
채찍을 때리를 자 용서합니다.
배신하고 저주하는 자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힘이 주어졌지만 그 힘으로 끝까지 사랑을 사랑하는데 사용하십니다.
생명을 내어놓기까지 사랑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하나님의 사랑받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확장시키는데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힘을 가진 느헤미야 전 총독들의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백성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착취형 인간입니다.
기생충같은 인간들입니다.
백성은 단지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백성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자신의 자녀들을 종으로 팔 지경이 되어도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부 축적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성 역사에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습니다.
땅을 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계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기 전에 미리 땅을 사놓고 다 건축한 후 값이 오르면 팔면 얼마든지 계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을 가지고 그의 힘을 가지고 오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궁중에서 편안하게 살수도 있었지만 오직 민족의 어려움을 보고 민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고국에 돌아 와 성벽 건축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이일 밖에 없었습니다.
1장 3절을 보십시오.
이 일 때문에 수색이 가득찼습니다.(2:2)
그래서 그 일을 하기 위해 전심을 다했습니다.
왕을 설득하였습니다.(2장)
반대하는 자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2:10, 4:1,7,8)
방관자들에게 동조하지 않았습니다.(3:5)
흉년으로 백성들이 원망합니다.(5:1)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백성을 끝없이 사랑합니다.
조정합니다.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1-13).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이 일에 매달립니다. 항상 실패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힘으로 무엇을 얻을까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신에게 있은 힘으로 무엇을 줄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그 일을 같이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합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동정하는 것입니다. 배려하는 것입니다.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관대함을 배푸는 것입니다.
17절 18절을 보십시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열흘에 한번씩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러면서도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입니다.
백성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였습니다.
힘을 무자비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힘이 주어지면 사랑하는데 사용하여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부당하게 착취당함을 알고 어떻게 합니까?(5:6)
분노합니다.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 기분에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힘이 주어지면 자기 기분에 따라 분노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월마트를 만든 사람은 샘 월튼 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10센트 점포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의 비전 가장 큰 회사에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원리 황금률의 적용에 비전을 두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모아 그들로 하여금 한 가족 의식과 팀웍의식을 느끼게 하고 고객들을 그들 스스로가 남에게 받았던 것보다 더 잘 대해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맨 처음 6천 달러로 10센트 가게 열 때 일부는 빌린 것 일부는 군복무시 저축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 큰 회사 현재 판매고 1천 9백 10억 달러 회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여전히 픽업 트럭을 몰고 다녔습니다.
고물 픽업 트럭이 고장나 있을 때 마침 그가 시외로 나가 있는 동안 그의 가족이 이 고물 트럭을 처분해 버렸습니다.
이를 알고서도 그는 새 차를 원치 않았습니다.
가족을 다시 보내 그 고물 픽업 트럭을 사오개 했습니다.
그의 겸손은 진짜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적 원리에 근거를 둔 문화, 가치 지향적인 문화, 개개인들의 성취를 기대하고 그들의 최대 역량 발휘를 기대하며 다른 어떤 이유없이 오로지 바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바른 것을 행하는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격이 능력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고 단 소더퀴스트가 21년 동안 회사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치관에 반하는 것을 행하도록 요구받은 적인 한 번도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힘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경영을 했다는 것입니다.
힘이 있습니까?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알량한 힘으로 사람 죽이고 스트레스 받게 만들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데 사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하였습니까?
자신이 저주를 받는다 할 지라도 골육 친척 형제를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얼마나 백성을 사랑하였습니까?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다해도 백성을 살려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모습이 우리 의 모습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나는 사랑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성도님과 제가 우리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주님만 사랑합니다. 주님만 사랑합니다. 예수님만 예수님만 언제나 사랑합니다."
것이 우리의 사랑고백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미 힘을 주었습니다.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믿음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면 됩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10)"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한 평생 멋지게 힘을 사랑으로 사용하도록 하나님 건강의 힘, 지력의 힘, 물질의 힘, 신앙의 힘, 권력의 힘, 마음의 힘을 주십시오.
간구하시면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겠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낙심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실망하십니까?
힘은 사랑하는데 사용할 때 더욱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면서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19)
사람이 조금만 힘이 생기면 그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자기 특권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재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것은 현재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한 평생 사는 것으로 끝이니 이 땅에서 한 번 잘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남이야 어떻든 주어진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 땅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느헤미야도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도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계발 이익 챙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나 일가 친척을 시켜 땅 투기도 할수 있었습니다.
헐값에 샀다가 성벽이 다 건설하면 땅값이 치솟을 것은 자명한 일이니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런 문제로 갈등한 흔적은 성경에 보이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라고 해서 이땅에 편안하고 잘 살고자하는 욕망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절제했을 것입니다.
그는 오늘만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본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의 기도가 나옵니다.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그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이 땅에서만 은혜를 받고자 하는 기도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으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잘했다 칭찬받아야 합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히브리서에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26)"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했습니다.
죄는 즐거운 것이고 재미가 있고, 따분하지 않은 흥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세상에서 모세처럼 힘을 가졌던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특권을 포기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보상보다는 영원한 상급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힘이 주어졌을 때 너무 이 땅만 바라보고 사용하지 마십시오.
물질의 힘이 주어졌을 때 이 땅에만 쌓아 놓으면 창고를 더 지을 것을 걱정하는 부자가 되지 말고 좀도 동록도 해하지 못하는 하늘 나라에 쌓아 놓기 바랍니다.
건강의 힘이 주어졌을 때 썩어져 가는 것만 추구하다가 땅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발로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더욱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말할 수 있는 힘 주어졌을 때 더욱 기도하고 전도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재능 주어졌을 때 그 재능 아무 쓸모 없을 때가 되기 전에 더욱 주를 위해 봉사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지식 주어졌을 때 그 지식 다 달아나고 손자 이름 기억하기도 어렵기 전에 주를 위해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세종류의 인간형이 있습니다.
☛감정 따라 힘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즉흥 적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기분대로 입있다고 아무렇게나 내뱉습니다. 머리 있다고 아무렇게나 제마음대로 생각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증오하고 분노하고 정죄하고 다른 사람 난도질합니다.
☛조울증 환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해지면 정신 이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에 붙들려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혼자 대낮에도 히죽거리고 울며 거리를 다닙니다.
감정대로 힘을 처리하면 안됩니다. 이런 사람들 큰일 저지릅니다. 살인까지 하게 되고 전쟁도 얼마든지 일으키게 됩니다.
☛조금 나은 사람은 이성따라 힘을 처리합니다.
감정대로 흐르는 힘을 절제하여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조금은 교양있는 사람들입니다. 감정따라 처리하는 사람보다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따라 처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인식한 것, 자기가 경험한 것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구주로 섬기는 사람들, 이 땅이 이땅으로 끝나지 않고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 모든 힘은 하나님에세 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힘이 주어지면 신앙따라 그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재능이 주어지면 믿음으로 어떻게 사용할까를 생각합니다. 물질이 주어지면 믿음으로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생각합니다.
건강이 주어지면, 명예가 주어지면, 지식이 주어지면, 권력이 주어지면, 미모가 주어지면 믿음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면 모든 것은 하늘에 쌓이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장차 상급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면 가난해도 실력이 없어도 물질이 없어도 아름다움이 없어도 그것을 결코 패배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면 모든 것은 승리한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결국 승리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힘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권력자들이 힘을 잘못 사용하다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만 비난할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의 장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지금 크던 작던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부모로서 직분자로서 직장인으로 이미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남용하고 오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사용해야 합니다.(14-15)
(2) 사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16-18)
(3)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면서 사용해야 합니다.(19)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