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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목요시낭송회 안윤하시인의 시
눈길
눈이 길을
하얗게 덮는다
익숙했던 길에도
소리 없이 백내장이 내려
뿌옇게 길이 지워진다
낯선 길로 바라보는
눈길이
부옇게 흐려진다
외기러기의 눈길이
까마득하다
지워진 거울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니, 누고?' 하던
요양원의 할머니
가끔은
자신을 알아볼 수 없고
거울이란 것도 몰랐으면 좋겠다던
그 할머니
개울에 비친 얼굴에
마음을 빼앗긴다
지독한 나르시스다
몇 마리 버들치가
주름살도, 흰머리도
지우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소녀적 얼굴만
어리연꽃으로 남아
물살에 흔들리고 있다
겨울 바다
너는 수평선 건너에 있고
나는 여기에서 파도의 고독을 씹는다
너에게 가려고
목이 쉬어도 잠시도 멈출 수 없이
높이 튀어 오른다
뾰족한 바위섬에 부딪혀서라도
얼지 않고 증발한다
칼바람 불수록 더 세게 맞부딪혀
끊임없이 바스러지며
별빛에 씻기고 바람에 닦여서
상념 덩어리, 구름으로
우울을 지운다
떠다니다가, 떠다니다가
두꺼운 옷소매 밖으로
네가 흰 손짓을 하는 그날에
첫 봄비가 되리라
뼛속 깊이 너에게 젖어
스며들리라
석양
두고두고
햇빛 비춰주고 싶어서
속상한 말 쓰다듬고 싶어서
몰래 기대어 울 수 있는
등이 되어주고 싶어서
개망초 자욱한 언덕 지나
해는, 맨발로 산을 넘는다
지나온 발자국마다
못내 아쉬워 자꾸
멈칫멈칫 뒤를 돌아본다
가만두어도 산 능선은
저절로 눈시울 붉다
눈싸움으로
눈 쌓인 금호강에서
가마우지와 대치하는 왜가리가 있다
오른발 뒤꿈치를 살짝 들고
눈 깜빡하지 않고 째려보다가
왜가리는 긴 부리로 눈을 찍어 던진다
눈가루가 반짝이는 강바람 너머로
허겁지겁, 가마우지는 도망친다
추위 속 싸움은 눈싸움으로 할 일이다
냉냉한 비수기에 접어든 시장 사람들
한 먹이를 두고 다투며 대치하다가
차고 묵은 마음들을 단단하게 뭉쳐 던진다
포물선을 그으며 묵직하게 날아가는 눈덩이
켜켜이 벗겨지는 분노의 비늘이
응집력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물컹한 등에 부딪혀 폭죽처럼 하얗게 터진다
추운 줄도 모르고
던진 사람이나 맞은 사람이나
기어이 웃음소리가 터진다
눈싸움으로 생기를 찾은 가마우지
어디로 어떻게 솟구칠지 알 수 없는
머리를 강물에 담그자
멀리서 응시하던 왜가리도
삼각주 돌무더기에 언 발을 담근다
항복
깎깎 우짖던 직박구리와 눈 마주쳤다
짝을 불러들여, 둘이 합심해서
나를 향해 꺄꺆꺄꺆 고함지른다
오래 비워두었지만 내 집이다 집을 지을 때 4층까지 흙 짊어지고 올려. 정원을 만든 사람도 나다 쥐똥나무도 심었고 해마다 거름 주고 전지하며 이쁘게 키운 것도 나이므로 소유권은 내게 있다 둥지는 너희들이 지었다고 하지만 그건 내 허락받아야 하는 거야
보증금을 내라거나 월세를 내라거나 집을 뜯으라는 것도 아니고, 이사하라는 것도 아닌데 웬 난리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눈에 띄기만 하면 쫓아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에 나 커튼도 못 열고, 햇빛도 못 보고, 창문도 못 열고, 청소도 못 하는 이게 뭐야
나무에 물도 못 주게 하고, 너의 시야에 얼씬도 못 하게 하면 우리는 어떻게 같이 살겠니
금 그어 놓고 같이 살면 안 되겠니? 깎
그러면 소송하자. 꺆꺆
그래! 알았다! 깎
네가 산모니까 내가 참을게
네 눈에 안 뜨이게 숨어 살게
반말도 안할 게...
요
까---ㄲ
꽃길일 줄 알았다
오래전 누워서 뱉은 침이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진다
나름 정의로워 외친 직설일지라도
메아리로 돌아와
귓가에 왕왕거린다
부케처럼 던졌던 시들도
땡볕 지렁이처럼 길가에
널브러져 있다
깨금발로 마른 땅 골라 밟다가
발로 밀어 옆으로 치우며
길을 걷는다
앞 만 보고 뱉은 침
나도 모르게 파편처럼 튀겨
옆이 겹쳐져 있어
벌을 받으며 가는 길이다
쓸며 가야 할 길목마다
수숫대 빗자루를 놓아둔다
지금은 햇살교를 지나고 있어요 2
고모령이 깊게 잠영하고 있어요. 고요한 수면처럼 보이지만 겨울 철새들이 넓적한 발로 제 속을 헤집어 묵은 상처를 들쑤시고 있지요. 청둥오리들이 거꾸로 입수하여 내 머리를 쿡쿡 치고 있어요. 물닭은 뾰족한 말로 내 귀를 후벼 파고 있지요. 누구나 자신이 흘러온 물길은 험하고 가파르고 거칠다고 하죠. 그러나 숨결로 알아요. 서럽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요. 저도 거친 숨결로 물결치고 있어요. 그나저나 제 삶도 끝이 보여야 할 텐데요. 곧 팔달교와 하구연을 지나 강창에 다다르면 아이들을 낙동강에 합류시켜야 되겠지요. 새로 만나는 물과 어색하지 않으려면 떠나온 후미는 부끄러운 흔적 따윈 남기지 말아야겠지요.
눈싸움으로
눈 쌓인 금호강에서
가마우지와 대치하는 왜가리가 있다
오른발 뒤꿈치를 살짝 들고
눈 깜빡하지 않고 째려보다가
왜가리는 긴 부리로 눈을 찍어 던진다
눈가루가 반짝이는 강바람 너머로
허겁지겁, 가마우지는 도망친다
추위 속 싸움은 눈싸움으로 할 일이다
냉냉한 비수기에 접어든 시장 사람들
한 먹이를 두고 다투며 대치하다가
차고 묵은 마음들을 단단하게 뭉쳐 던진다
포물선을 그으며 묵직하게 날아가는 눈덩이
켜켜이 벗겨지는 분노의 비늘이
응집력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물컹한 등에 부딪혀 폭죽처럼 하얗게 터진다
추운 줄도 모르고
던진 사람이나 맞은 사람이나
기어이 웃음소리가 터진다
눈싸움으로 생기를 찾은 가마우지
어디로 어떻게 솟구칠지 알 수 없는
머리를 강물에 담그자
멀리서 응시하던 왜가리도
삼각주 돌무더기에 언 발을 담근다
남해 낮달
남해 횟집의 유리창 앞에서 낮달을 본다
투명유리에 엇각으로 시선을 던진다
유리의 반사로 겹쳐지는 상념들 뒤로
식당의 현실은 선명한 밑그림이다
고인 눈물에 난반사되어
부옇게 흐려지는 시간의 흐름, 그 흐름의
물 어귀마다 죽방의 그물이 팔을 벌리고 있다
씨알 굵은 사유들이 그 품속에 들었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걸린다
그물에 투과되는 햇빛의 끝자락을 따라
달의 무의식이 반쯤 깨어나 어룽거린다
절뚝거리며 뒤따라오던 낙엽이
수면에 뛰어들어 멀찌감치 머뭇거린다
말하지 못한 말이 낙엽 위에 겹쳐져
더 흐릿하게 흘러간다
검은 손*
석탄을 캐느라 검어진 게 아니라
속이 타서 시커멓다
갱도에서 떨어지는 침출수 한 방울에도
온몸의 신경들이 곤두서고
탄가루를 들이마시며
불안을 꿀꺽 삼키다 보니
막장의 폐포는 공포로 가득 차고
검은 몸에서 배어 나오는 땀도 검다
주검들이 굳어진 바위, 석탄을 캐는 일은
주검의 옆구리에 해머 드릴 칼날을 쑤셔 넣는 일
석탄의 갈비뼈에 쩍쩍 금이 가면
탄광은 몸부림치며 고함지른다.
‘아파! 나를 그냥 놔둬! 쩡!
갱도를 무너뜨릴 거야! 쩡!쩡!’
손을 씻어도, 얼굴을 닦아도 쩡!
귀를 막아도 귀바퀴를 맴도는 쩡---!
갱도가 무너져 죽은 손이 되더라도
당장 입에 풀칠해야 하는 삶이
밀린 학사금에 어깨 쳐진 삶이
보리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야 하는
애비의 삶이
오도 갈 데 없어 속이 시커멓게 타는
막장의 손이다
*문경의 석탄박물관에 걸려있는 사진
2020 오월, 번데기 일기
이제까지 나는 나비였을까
알 수 없던 나를 알에서 꺼냈다
가늠할 수 없는 무게로
살을 키우며 기어 다녔다
견고한 껍질 속에서
어둠을 엮어 만든 날개를
이제야 끄집어낸다
백일기도로 껍질을 찢고
푸르른 여명이 솔잎 사이로 부서져
움츠린 더듬이를 비출 때
오월, 봄을 건너 내일의 나는
황금빛 햇살에 날갯짓하는
노랑나비가 될까
새벽 명상에서 뽑아낸
끈적한 말들과
겨드랑이에 감춘 겹겹의 파도에서
뼈까지 푸르러진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먼 길
도목수는 서쪽 벽에 창틀을 만들고
담에 문틀도 세웠습니다
이중의 틀 속에
백사장과 낙동강이 길게
흘러들어옵니다
지는 달이 스러져 들어오고
달빛은 강을 따라 들어와 나에게
월주를 던집니다
마루에 앉아 큰 숨을 뱉어내면
단전에 오래 머물던 바람이
창문을 열고 쪽문을 나가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찍습니다
.
하목정 마루에 앉았다가
탱자 울타리를 훌쩍 넘어 떠나며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달의 먼 길이
반짝거립니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 그는
밤의 한가운데를 유성으로 가로질렀다
별들이 휘몰아쳐 떠나가도 잡지 못했다
가래 섞인 한숨을 어둠 속에서 토해냈다
늘 숨죽였으므로
검푸른 소용돌이가 그 밤의 밑그림이었다
숨구멍을 향한 간절한 소망의 회오리였으리라
고흐, 그는
어둠을 헤쳐오는 별들과
시퍼런 눈물을 쏟는 인생과
검붉은 유혹에 헤매는 젊음들이
제자리를 맴맴맴 맴돌고 있을 때도
북극성 네거리에서
어깨 웅크린 채 서성이고 있었다
나도
해 뜨지 않는 창가일지라도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캄캄할수록 또렷한 염소의 눈으로
별을 보고 있다
*고흐의 그림
미용실의 추리소설
1
미용실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고객은 거울에 반사된 미용사를 보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시계와 같은 방식으로 뒤집어 보면 그녀는 왼손잡이다. 그녀가 내 머리를 마음대로 만진다. 내 등 뒤에서 가위와 칼을 파마약이나 독성이 강한 염색약을 들고 서 있다. 그녀는 세상 사는 얘기로 내 정신을 빼앗고 시선을 분산시키며 목 위의 급소들을 모두 장악한다. 목 아래 팔과 다리는 화학물질 튐을 방지한다는 타당성 있는 논리로 망토를 덮었다. 이제 그녀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다.
2
그녀는 먼저 면도날을 들고 머리카락을 자른다. 저 면도칼은 경동맥을 단번에 찾아낼까!?
가위를 머리밑에 서슬 푸르게 집어넣는다. 스텐리스의 섬뜩함이 목줄기를 타고 발끝까지 전해진다. 독성이 짙은 파마약을 머리카락 전체에 도포하며 롤을 감는다. '저 약을 내 눈 가까이 살포하면!?' 하는 생각으로 조마조마할 때, 그녀의 왼손이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고 머리를 뒤로 획 잡아당긴다.
"약이 이마로 흘러내려 눈에 들어갈까 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휴지로 이마에 흘러내리는 파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닦는다. 이게 무슨 전략인가. 그녀는 나의 오른쪽을 장악하고 뒤를 보고 있어서 표정이 비치지 않는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심리, 한 장면이 거울에 비치고 있다.
척추가 뻐근해도 결말은 늘 싱겁다.
파마는 그런대로 잘 나왔다.
국수와 꼼치가 있는 저녁 풍경 2
상을 차리지 않아도 대청마루에 원형으로 둘러앉는 저녁, ‘꼼치’란 단어를 우려먹었다. 가닥가닥 말아진 국수가 식구들을 하나로 묶이게 했다.
둘째 언니가 치마에 붙은 실밥을 툭툭 털며 대청마루에 올라앉자, 모두 마루에 올라와 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엄숙하게 기다리는 앉음새에 긴장이 흐른다. 젓가락은 이미 꽂혀 있고 모두 숨죽인다. 오직 귀를 최대한 세우고 눈은 젓가락에 쩌억 붙어있다.
"꼼치!" 오빠가 긴장을 뚫고 입총을 쏘았다.
여섯의 입들이 쩍쩍 노란 입을 벌리며 국수를 몰아 삼켰다. 국물이 노란 부리 속으로 꿀떡꿀떡 넘어갔다. 꼼빼이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국수를 삼키고 마셨다. 꼴찌는 언제나 엄마였다. 그래서 둥근 자리 치우는 설거지 담당도 늘 엄마였다.
국수라도 있어서 배불렀던 저녁의 은어 ‘꼼치’가 그리운 건지, 국수를 먹고 싶다. 매일 저녁 국수를 먹고 형제들은 모두 대궁이 실한 밀처럼 쑥쑥 키가 자랐다.
*‘꼴찌’의 토속어인 ‘꼼빼이’와 ‘치우기’의 두성 약자
불 붙은 재봉틀
─여자의 삶은 소설책 열두 권이다
‘남문시장에 불났다!’ 어머니와 언니는 미친 듯이 뛰어나가고 11살인 나도 같이 뛰었어요. 시장 안 양장점에는 작은언니가 자고 있었지요. 양장점은 우리 가족의 목숨줄이었어요. 작은언니를 깨워 높이 걸려있는 옷감들을 당겨 둘둘 말아 안기며 ‘소전 가에 맡겨두고 빨리 돌아온나!’ 언니는 고함질렀어요. 그리고 나의 손목을 꽉 잡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불구덩이보다 더 처절한 아우성으로 불의 아귀를 틀어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지요. 불붙은 재봉틀을 언니와 둘이 맞잡고 구해왔지요. 재봉틀의 발에 밟혀 발등이 짓이겨진 것도 몰랐고 내복만 입고도 추운 줄 몰랐으며 불구덩이의 뜨거움도 몰랐어요. 다만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에 우리는 가슴이 데었지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연탄 두 장을 외상 달라던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친구인 연탄집 아저씨가 큰소리로 면박 주어, 냉골에서 자던 날 일어난 불이었지요. 몹시 추워서 더 뜨거운 날이었어요.
별
─여자의 삶은 소설책 열두 권이다
누가
깜깜한 밤하늘에
바늘로 구멍을 뚫었나
꼼짝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의 굴레 속에서
은행 카드는 천장을 뚫고 나갈 숨통이었다
숨통이 트여
빛이 새어들고
일어설 용기가 일어서고
살아갈 지표가 반짝거려
터널 끝은 빛의 통로가 되리
막다른 골목 끝에서
어둠 속에 묻혀본 사람들아
밤하늘에 바늘구멍을 뚫어 보라
답답한 가슴에
숭숭 구멍을 내어
타래실처럼 풀려나오는 별빛을 잡고
당겨 올려라
두레박 속의 당신을
졸업
─여자의 삶은 소설책 열두 권이다
언니는 양장 기술자이다. 나는 언니의 재봉틀 소리를 먹고 컸고 졸업할 수 있었다. 언니는 나이가 들수록 학교에 대한 열망이 커져 일흔에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과외지도를 받으러 왔다.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삼차방정식을 가르치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나에게 벌벌 떨었다. 그런 날 밤이면 두통에 시달리고 입술이 부르텄다. 벌겋게 달아오른 해가 안절부절못하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차방정식은 들으마, 좀 알겠는데 삼차방정식은 도저히 몬 알아 묵겠다."
동창 남학생들과 함께 같은 대학 같은 과를를 갔다. 이제 팔순의 언니는 기말고사만 끝나면 졸업장을 받는다. 노을보다 빛나는 졸업장. 이마 주름 출렁이는 남학생들과 파크골프를 치며 황혼을 보내고 있다. 늦은 학교생활이 그녀를 한 해씩 젊어지게 한다.
일흔의 도전, 땅거미 기어드는 산마루 앞에 서 있다.
선 채로 어둠을 맞지 않고
산등성이를 넘어가리라.
나 또한 언니처럼
확률 제로
로또 맞을 확률보다 더 어려운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확률이다. 과거의 선택이므로 현재 그 길을 선택할 수는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의 하늘에는 안타까움이 빚은 환상의 무지개를 얹어 놓거나, '만약에’라는 조건을 버무려 만든 미련의 함박눈을 길에 뿌려 놓아, 길 위의 장애물들을 하얗게 만들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그 눈길은 아름답다.
지난 시절 선택되지 않은 그 길은
사지 않은 로또의 확률이다.
지나간 남자에 대한 상상 같은 것만으로도
눈길은,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다.
아버지의 눈
1960년 봄, 아버지는 마당 위로 그물을 엮어 포도나무 순을 마음껏 뛰어다니게 했다. 짙푸른 그늘을 늘어뜨리며 여름 씨알은 점점 굵어져 주렁주렁 몇 알씩 붉어지는 포도. 넷째 언니가 사다리를 타고 몰래 올라가 붉은 포도 두어 알 따먹다가 툇퇴! 뱉던 설익은 여름이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의 호통 소리는 온 동네에 뛰어다녔다. 보지 않고도 훤히 알고 있는 아버지, 대청마루에 앉아 침을 삼키던 내게 새까맣게 익어가는 포도알은 아버지의 눈이었다. 포도 따는 날, 이웃에 심부름가며 포도 떼어먹고 입을 닦고 또 닦았지만, 아버지의 눈은 나의 입속에 남아있었다.
포도가 송이송이 익는 여름
새, 직박구리가 아버지의 새까만 눈을 따먹고는
줄기에 부리를 닦고 또 닦는다.
첫댓글 수고 많으십니다
석양 낭송해 보겠습니다.
겨울바다 .
낭송하겠습니다.
-지워진 거울- 낭송하겠습니다
눈길 낭송합니다
국수와 꼼치가 있는 저녁 풍경 2 낭송하겠습니다.
이한숙
’별이 빛나는 밤‘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명으로 마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