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 일심봉천(一心奉天) 1. 가정에서 학교로 - 2
14 세 번째 꿈은 소련군이 쳐들어 왔는데 내가 옛날 페르시아군의 장군들이 입는 갑옷을 입고 그들과 싸우는 꿈이었다. 나는 둥근 철방패를 들고 높은 계단을 자유롭게 나르다시피 오르내리며 싸웠고, 위험할 때는 잘 피해서 결국 승리했다. 이것은 이 길에서 공산주의와 싸워서 승리한다는 것을 예시해 주신 것으로 풀이된다.
15 또, 네 번째 꿈에서는 전주 남쪽에 남고산이 있는데 그 중턱에 맑고 푸른 큰 호수가 있고, 그 호수가 흘러 그 밑에 또 그와 같은 호수를 이룬 곳이 보였다. 그 호수의 물이 밑으로 흘러내리는데 참 아름답고 시원스러웠다.
16 이 꿈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어쩐지 잊을 수 없는 것으로 언제나 생생하게 남는다. 그 당시는 꿈을 해몽하지 못했지만 후일 물은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을 듣고 계시적인 몽시였다고 생각된다.
17 전북여고를 졸업하고 동경여자약학대학(東京女子藥學大學)에 유학하고 있을 때, 같은 반 한국 친구 한 사람이 교회에 나가면서 참되게 믿어 보려고 고민하는 것을 보고, 그 진실됨에 감동하여 그가 나가는 메구로구(目黑區)에 있는 일본인 교회에 나가 보았다.
18 그런데 그 목사의 설교는 좀 더 고답적인 것을 추구하러 간 나에게 너무 실망이 컸다. 그 후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성경의 내용이라도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판(日語版) 성경을 사가지고 읽어 보았다.
19 나는 독서를 무척 즐겼다. 강의시간 중에도 쉬운 과목은 강의도 듣지 않고 독서만 했다. 세계문학전집을 거의 다 독파했었고, 철학, 과학, 예술에 관한 것까지 무엇이든 읽었다.
20 동경 유학 4년 동안 기숙사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다방면의 책을 서로 빌려 볼 수가 있었다. 우리 외조모님이나 모친도 독서를 즐기셨다. 내가 대학을 갈 때 문과를 택하고 싶었으나 왜정 때에는 국문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약학을 택하였다.
21 풋내기 과학도 탓이었던지, 그때 나는 하나님도 영계도 다 부질없는 것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그런 정신 상태로 성경을 읽었으니 창세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신약에 나오는 족보의 나열, 구약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성경을 읽어 보았지만 그 진수를 알 길이 없었다.
22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하는 말씀에서 감동을 받고 실천을 하려고 했으나,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나 나름대로의 종교관을 갖고 있었다.
23 즉 인간은 약하고 악에 물들기 쉽기 때문에 종교는 그런 인간을 선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하나의 수단이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태여 종교를 갖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양심을 지키며 선을 지향해 가려고 노력하면 되지 않는가.
24 만일 내가 나이가 많아지고 육신과 마음이 약해져서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때는 기독교를 택하고 만년에는 꼭 이스라엘에 가서 성지순례를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의 뜻을 모르는 철없는 생각이었다.
25 약대를 졸업할 때 학장이 동경제대 생물학 연구실에 가지 않겠느냐고 나의 의사를 물었다. 나중엔 꼭 가라고 강요하다시피 했다.
26 사실은 동경제대(東京帝大) 연구실은 우수한 성적이 아니면 갈 수 없었고, 성적이 우수해도 하늘의 별 따기 만치나 가기 힘든 명예로운 곳이었다. 나의 졸업시험 성적이 아주 우수했기 때문에 교수들이 경탄하고, 다른 일본인 학생을 제쳐놓고 나를 추천한 것 같았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