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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나라가 임하시오며” (마태복음 4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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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5월 달력에 있는 주기도문 성구를 가지고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5월 달력에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주기도문의 제목이 있고,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라는 오늘 본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이 이루어지는 거기에 임한다.」는 문구가 씌어져 있습니다.
제가 주기도문 설교 첫 번째 시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가지고 설교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정해진 어떤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그 통치하심에 우리가 완전하게 굴복하고 복종하는 자세가 하나님 나라의 진짜 의미가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잘 훈련 된 사냥개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이 이루어지는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5월 달력 문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좀 더 노골적이고 직선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구체적인 상황, 상태, 결과, 이 모든 순간들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강하게 역사 하신다는 것은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가 항상 함께 갑니다.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말씀이 들리는 데도 내 멋대로 하고, 말씀과 가까이 하는 것이 안중에도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매일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싶으면, 오직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 듣기를 즐겨하고, 말씀 보기를 습관화 하고, 말씀이 들리는 데로 즉각 순종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 따라가는데 최대의 관심과, 최선의 노력을 다하셔서 매일 같이 천국 행복 잔치에 참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에 있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4복음서라고 합니다. 그 중에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를, 관점에 있어 공통점이 있다는 한자의 뜻을 담아.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은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세 개의 복음서와는 큰 차이를 보여서, “제4복음서”라고 구분합니다. 복음서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네 개나 되는 복음서가 말하고 싶은 주요 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설교제목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나라(Kingdom), 곧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가 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일관되고, 공통된 주제였습니다.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천국(헬-우라노스, 하늘)”이라고 말씀한 것이 159번, “나라(헬-바실레이아, 왕국”라고 말씀한 것이 117번, “낙원(헬-파라데이소스)”이라고 말씀한 것은 1번이었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왜 가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기도문에도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문구를 넣어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 같이 구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매일같이 살아가라는 행동지침을 주기도문에 영원토록 담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 같이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매일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경험하고 계시나요? 안하고 계신가요? 못하고 계신가요? 포기하고 계신가요? 왜 우리는 복음서를 무수히 읽으면서도, 예수님이 그렇게 강조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할까? 왜 나는 무수히 많은 주기도문을 고백했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지독한 고정관념을 깨트려야 합니다.
제가 무수히 많은 말로 하나님의 나라가 영토, 영역, 장소가 아니고, 예수님이 나하고 함께하는 시간, 곧 소통하고, 응답이 이루어지는 그러한 순간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 드려도, 이것을 현실화 하지 못하는 장벽에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벽에 철저하게 갇혀 있던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 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 할 때 두 세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세대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이 세대(this age)”, 또는 “이 세상(this world)”이라는 한 세대가 있고, 이 세상이 끝나면 “오는 세대(the age to come)”, 또는 “오는 세상(the world to come)”이 구분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이 끝나 후에야 오게 되는 완전하게 다른 세상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생각 속에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경험 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각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눅 17:20a)라고 질문을 합니다. 어느 때 입니까? 이 질문에는 당신이 메시아라면 지금이 그때냐? 아니라면 누군가 더 기다려야 되느냐? 이런 비웃음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이 답변 하시기를, “20.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b,21)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어느 때, 어느 시점,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는 마른 두 가지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해석은 “너희 마음속에(within, 내부에)” 있다라는 해석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렇게 해석된 설교를 들와 왔습니다. 그런데, 말하고 있는 대상이 바리새인들이죠. 그러면 바리새인들 마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라는 해석이 되기 때문에 좀 이상하게 됩니다.
두 번째 해석은, “가운데(in the midst, among)”에 있다는 의미로,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그 가운데(위치상의 중심)에서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다는 해석입니다. 곧, 너희 가운데 있는 바로 나, 예수님이 함께하는 바로 이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해석을 받아들여서, 시각적으로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볼 때나, 말씀이 마음속에 감동(은혜, 평안, 응답.....)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느낄 때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상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종말 때에야 볼 수 있는 나라, 때가 되어야만 볼 수 있는 나라, 어떤 메시아가 왕국을 세우고 통치를 해야만 하는 나라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벽을 세워놓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많은 신앙인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스스로의 벽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멀찍이 미뤄 놓고, 지금 당장 바쁘고, 급한 나의 시간,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는 거리감을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적이고, 실체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계획된 미래의 환경이라는 막연한 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멀고 먼 나라이고, 나중에야 신경 쓸 나라로 여기기 쉽습니다. 복음서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 하나님의 나라를 멀찍이 떼어놓고 살아간다면, 복음서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곧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매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기 전에 나병환자 치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10명을 치료해줬는데, 9명은 그냥 사라져 버렸고,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 한명만 다시 예수님을 찾아와서 감사의 표현을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보인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로 지나가시는 것을 알고 나병환자 10명이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눅 17:13)
2. 예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제사장에게로
가다가(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눅 17:14)
3. 나음 받은 10명 중 사마리아 이방인 한 명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눅 17:15,16)
4. 예수님이 사마리아 이방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에서 보듯이, 치유 받기 전과 후의 상황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몸이 아플 때는 “긍휼히 여겨 주세요, 불쌍히 여겨 주세요” 목이 터져라 기도합니다. 여기 까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막상 아픔이 사라지자 대부분은 기쁨에 겨워 세상 속으로 뛰어가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이방인 만큼은, 낫기 전에 큰 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던 그 모습 그 대로, 여전히 큰 소리로(아마 더 큰 소리로 했을 것)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나왔습니다. 바로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나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만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과,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 된 후에도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이 두 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돌아온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감사 했습니다. 진심으로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선언이 내려집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아멘. 사죄의 선언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선언을 받은 사람은, 완벽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영원토록, 영광 돌리고, 매일 같이 엎드리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경험하면서 평안과 소망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하게, 그리고 매일 같이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마리아 나병환자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① 예수님을 향하여 몸과 마음을 돌려 돌아가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회개) ②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삶의 예배자) ③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제대로 엎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간구와 기도) ④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입에 담지 않기 때문입니다.(감사 생활) ⑤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선언을 듣지 않고, 세상 속으로 함부로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구별된 삶)
돌이키고, 큰 소리로 영광 돌리고, 발아래 엎드리고, 감사하는 삶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멀리하고 떠나는 순간, 곧바로 보기에도 흉측한 영적 나병환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몸과 영혼이 썩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반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이 기도문에, 우리의 진정한 고백을 담아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찾고, 만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돌아오지 않은 9명의 나병환자를 향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눅 17:17, 18) 이 말씀이 울림이 되고, 찔림이 되신다면, 우리를 낫게 하시고, 구원으로 이끄신 예수님에게 나아가 엎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충만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특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누리지 못하고 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멀리 두지 마시고, 매일 같이 내 곁에 두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주인 되시는 예수님에게 절대 복종, 절대 믿음의 마음으로, “나라가 임하시오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매일 매일 엎드리고 기도 하셔서, 매일 같이 영광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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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나라가 임하시오며”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 같이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기도의 능력을 더하여 주셔서, 더 영광 돌리고, 더 엎드리고, 더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