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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지금부터 마태복음 8장에 대한 아주 난해한 말씀을 여러분들과 교제를 특별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대적 의미를 지닌 표격들에 관한 나병 환자와 그리고 이 백부장 하인을 고치신 이야기와 그리고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웠을 때 그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신 그 사건과 그리고 8장 16절에 나오는 병든 모든 사람들을 다 고쳐주셨다 라는 이 시대적 의미를 지닌 표적들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말씀은 아주 중요한데요 우리가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성경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또 오해할 수 있는 그런 여지가 있기 때문에 좀 비교적 자세하게 여러분들과 이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8장 11절부터 12절에서 하늘의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8:11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 앉으려니와
8:12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여기에서 하늘의 왕국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엄격하게 말한다면 이 8장 11절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서 앉으려니와 라는 말씀이 있는 하늘의 왕국은 사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서 잔칫상에
앉을 것이다라는 천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12절에 이 왕국의 아들들은 바깥 어둠 속에 던져서 여기서 이 왕국은 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얘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구주에 대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고 설정돼 있는 이 하나님의 왕국과 천국에 대한 이 말씀의 깊은 진리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말씀들 까지도 연결되어져서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일들이 발생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왕국과 천국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천국 얘기가 나오고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 있는데요. 여러분 아주 단편적으로 집약해서 여러분들에게 설명 드린다면 하나님의 왕국은 전체가 다 포괄적이고도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얘기가 바로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인간이 조성되어져서 창조되어짐과 동시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에게 빛과 소망이 되어 주신 새 예루살렘 성을
계시록에서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거처할 새 예루살렘 성은 영원후의 얘기입니다.
그러면 영원전의 얘기는 사람을 기점으로 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 창세전에 곧 영원전에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영원부터 곧 창세전부터 창세후인 새 하늘과 새 땅 끝이 없는 그 시대까지 새 예루살렘 성까지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왕국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처음과 끝이 되고 시작과 나중이 되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영원부터 영원까지가 전체적인 하나님의 다스림인 하나님의 왕국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 포함되어 있겠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어느 정도 이렇게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바로 이 천국의 실제이신 그리스도께서 2천년전에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또 50일째 되는 날에 주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그 은혜의 시대부터 천국의 실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을 통해서 성도들과 함께하는 그 은혜의 시대부터
바로 이 그리스도와 이기는 성도들인 하늘에 속한 부분인 바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함한 메시아의 왕국
가운데서 땅에 속한 부분과 하늘에 속한 부분에 있는 천국의 출현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림인 하나님의 왕국은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곧 창세전부터 새 예루살렘 성까지의 그 기한을
말하고 있다면 천국은 은혜 시대부터 왕국 시대까지가 천국이라고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천국 안에는 그리스도의 초림의 실제가 있었고요.
그리고 두 번째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까지도 포함한 것이 천국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재림하시는 그 사건을 통하여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죠.
예 그리스도와 함께 이기는 성도들이 함께하는 그 천년 왕국까지도 모든 것을 포함한 곧 은혜의 시대와 왕국 시대
모두를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셨습니까?
예 천국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전체적인 것이라면 천국은 전체적인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은혜 시대와 왕국 시대 곧 은혜 시대와 천년 왕국 시대에 속해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해하고 인식 하면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 네 개의 복음서를 읽는다면 여러분들 아주 쉽게
말씀들을 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곧 창세전부터 모든 성도들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처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끝이 없는 세계까지 포함한 모든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전체적인 다스림이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성경은 이렇게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창세전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존재하는 영원까지 하나님의 다스림 전체가 전체적인 포괄적이고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그런 반면에 천국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 포함된 것으로서 바로 그리스도께서 2천년전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리고 주님의 영을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이 요한복음 19장 34절에 기록돼 있는 물과 피를 쏟으신 후에 곧 물과 피를 통하여 산출되어진 교회의 산출부터 천년 왕국 끝까지의 하늘에 속한 다스림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교회 은혜 시대부터 왕국 시대까지 곧 교회의 산출부터 천년 왕국 끝까지의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 있는 자들이 천국인데 천국 안에 있는 자들은 곧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반드시 포함된다 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천국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전체적인 것을 포괄하고 있다면 천국은 은혜 시대와 왕국 시대에 국한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당연히 반드시 천국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모든 이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고 모두가 하나님의 왕국 안에 들어가지만 그들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까? 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 되어 임마누엘 하는 삶을 산 이기는 삶을 산 믿는 자들만이 천국의 실제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과 하나님의 왕국의 차이인 것입니다.
천국 안에 속한 자의 삶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 놓인 자들의 삶은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 왕국은 새 왕이신 참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바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시기가 천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그러한 시간이라면 바로 이 천국의 출현을 말하고 있죠.
그런 반면에 천국은 천년 왕국의 하늘에 속한 부분입니다.
천년 왕국의 하늘에 속한 부분으로써 여기서 그리스도와 이기는 성도들이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할 것이라고
계시록 2장 26 절 27절과 계시록 20장 4절, 4절, 5절, 6절에서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시록:2:26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2: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며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부수어 산산조각 내리라.
이것은 곧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과 같으니라.
계시록:20:4 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더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첫째 부활이라.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예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에 한 번 교제를 나눴고 차후에 한 서너 편의 교제를 더 나누어서 여러분들에게 더욱더 이해를
도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메시아의 왕국과는 사실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다른 것입니다.
메시아의 왕국은 엄격한 면에서 천년 왕국의 땅에 속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면 반면에 이 천국의 출현은 천년 왕국의 하늘에
속한 부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왕국은 땅에 속한 것이고 천국은 하늘에 속한 것인데 메시아의 왕국이 바로 이 땅에 속한 부분이 오기 전에
천국 곧 이기는 자들이 소유하게 되는 천국의 실제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메시아의 왕국인 이 땅에 속한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 있는 자들은 장차 복원되어지고 완전히 회복되어 질
그 유대인들과 그리고 이방인들을 위한 왕국인 반면에 천국은 교회 안에서 특별히 이기는 자들을 위한 왕국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기를 애써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리스도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로 만들어진 자들 그리스도의 성전을 가진 자들, 그리스도의 처소를 만든 자들 정금과 은과 12가지 형형 색색의 보석으로 조성되어진 자들 그런 이기는 자들을 위한 왕국이 천국인 것입니다. 교회는 이기는 자들을 위한 바로 그런 특별한 왕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속한 그 메시아의 왕국은 사실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상 민족들을 또 이렇게 다스리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장차 이기는 자들이 소유할 천국의 출현은
믿는 자들 곧 믿는 자들 가운데에서도 이기는 자들이 소망하는곳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메시아의 왕국인 왕국에는 사실은 제사장들인 유대인들과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방인들이 있을 것이지만 장래에 도래할 그 천국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어서 그리스도 대신 왕의 그런 직분을 가지고
다스리는 그러한 자들은 바로 이 백성들이 아닌 오직 이기는 자들, 왕 같은 제사장들만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특별히 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갈망하고 사모해야 될 것입니다.
장래의 천국에는 일반 백성들이 아닙니다. 믿음 가운데서 오직 그리스도와 같이 이긴 자들, 오직 왕 같은 제사장들인
왕들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장래의 천국에서는 왕들의 다스림을 받을 백성들은 땅에 속한 메시아의
왕국에 있는 사람들 일반적인 사람들 그러나 믿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메시아의 왕국은 그런 면에서 장래에 이기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그리스도 대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다스릴 천국에 종속되어지는 것이 바로 메시아의 왕국인 것입니다.
메시아의 왕국을 다스리는 자 종속되게 하는 자들이 바로 이기는 자들 천국에 있는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장래에 우리를 통해서 이렇게 표현하게 되고 나타나게 될 천국은 메시아의 왕국의 통치하는 권위로 우리를 통해서
그러한 일을 대신한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예 이기는 자들이 얼마 동안? 천 년 동안 어디에서? 바로 이 천년 왕국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다스리며 메시아의 왕국에 있는 땅에 속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또한 다스릴 것이라고
계시록 20장 4절, 6절에서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 19장 28절과 계시록 2장 26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20:4 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더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첫째 부활이라.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계시록:2:26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2: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며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부수어 산산조각 내리라.
이것은 곧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과 같으니라.
마태복음:19:2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시 나게 하는 때 곧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리라.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 포함되어진 이 천국은 오늘날 하늘들의 다스림입니다.
하늘들의 다스림이라는 것은 첫째 하늘도 아니고 이 첫째 하늘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하늘들이고
둘째 하늘은 바로 공중이죠. 셋째 하늘은 하늘들 위에 있는 가장 높은 하나님의 그 보좌가 있는 그곳이라고
시편 148편 4절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48:4 하늘들의 하늘들아, 또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천국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믿는자들 가운데서도 이기는 자들이 하늘들의 다스림을 갖고 오게
할 수 있는 바로 그런 나라가 천국인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이 영역 안에서 다스리는 자들 또 함께 사는 자들은 하늘의 권위에
복종을 하고 하늘의 규제와 통제와 훈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조성되어지고 그리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온전하고도 완전한 그리스도와 같이 될때까지 그래서 장차 우리에게 도래할 천국은 천년 왕국 동안에 하늘들의
통치의 일반적인 출현일 것이라고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어 움직이며 임마누엘 한 삶을 산 자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어서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셋째 하늘은 이 첫째 하늘도 아닌 둘째 하늘도 아닌 셋째 하늘에 있지만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땅 위에 이기는
자들을 통해서 보편적으로 드러나고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 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8장 11절과 12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 앉으려니와 라고 천국에 앉는다는 얘기죠.
8:11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 앉으려니와
8:12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면 이 천국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계시하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입니다.
5:3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 이것은 현재적인 말씀입니다.
또 두 번째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분명히 이 천국 우리가 소망하고 주님께서 그렇게 갈망하고 우리가 소유하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그 천국을 우리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을 비워놓아야 빈 그릇이 되어야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을 우리 영 안에
자리 잡게 하지 않을 때 천국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임한 천국을 계속적으로 실제적인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복이 있다라는 것은
그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과 5장 10절이 천국에 관련된 이 말씀으로 현재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영 안에서 가난해져야 되고, 내 영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자리 잡을 수 있지만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 외에는 그 아무것도 있지 않을 때 그 아무것도 잊지 않은 분량의 정도만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임마누엘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 하신 것을 끝까지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의를 위하여 계속 핍박을 받을 때 그 천국의 현재 천국에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실제적인 일들이 내가 이렇게 의로움을 유지함을 통하여 현재적인 천국의 바로 실제 안에 유지되고
보존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천국은 우리가 이 영 안에서 가난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천국은 소유하였지만 우리가 계속되어지는 그 의를 소유하기
위해서 핍박을 받지 않게 되고 그리고 오히려 불의하게 된다면 우리는 현재 임한 그리스도의 다스림인 왕국의 그 실제 밖에
있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왕국의 실제 밖에 있게 되는 이런 일들을 우리가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5장 10절과
12절에 기록되고 있는 말씀대로 우리가 살아야 될 것입니다.
5:10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5:11 나로 인해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온갖 악한 것을 말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보상이 크니라. 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대언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와같이 우리가 여러 가지 고소당하는 일이 있게 된 때에는 우리들이 천국의 실제 안에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서 계속
존재하게 된다 라는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원리와 원칙이 그렇다 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예 심령이 가난해져야 되고 그리고 그 심령이 가난해짐으로 말미암아 소유하게 된 그 천국의 실제를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불의하지 말고 의로움 안에서 의로움으로 인하여 바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때 이 천국의 실제가 우리 안에 계속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우리 안에 있게 된다는 얘기죠.
그래서 우리는 이 제한 받고 통제받고 그리고 부담스러운 삶을 살아야지 너무나 프리하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다 해서 그 진리 안에서 너무나 자유롭고 너무 의에 대하여 오히려 부주의 한다면 바로 그리스도의 다스림인 왕국의 실제 천국에서의 삶으로부터 우리가 격리되고 분리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 안에서 가난해짐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소유하고 그리고 소유한 그 그리스도의 다스림 그 천국을
우리 의로움 안에서 우리 자신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계신 나 라는 존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을 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계속적인 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들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가 천국에 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끊임없이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
곧 천국의 나타남 안으로 계속적으로 계속적으로 쉬지 않고 들어가는 것과 관련돼 있는 것이 마태복음 5장 20절에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예수님의 그 계시의 말씀을 우리가 보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기꺼이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이런 천국의 나타남인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
속해 있기를 참여하는 것을 갈망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의 실제이신 그리스도의 나타남,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그 서기관들, 바리새인들보다도 훨씬 월등하고 탁월하고 우월한 높은 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높은 의는 바로 영원한 생명이요, 신성한 생명이요, 가장 높은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받을 때 이 의를
이렇게 펼쳐서 우리가 온전해지고 완전해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께서 소유하게 한 이 의를 통하여 우리가 이 의를 표출하고 나타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인 천국의
실제안에 곧 왕국의 실제 안에 있게 되고 우리를 왕국 곧 천국의 실제 가운데로 장차 우리에게 임할 천국의 그 나타남 안으로
실질적으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천국 곧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유지하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장차 이 날 그 왕국의 나타남 안으로
천국 안으로 실제적으로 우리를 끌고 인도하는 것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뛰어나고 탁월한 의를 행할 때
이런 일들이 보장이 되어 진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얘기를 드립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마태복음 5장, 6장, 7장 12절까지의 말씀 이 6가지 주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이 계시해
주고 있는 말씀 가운데서 마지막 일곱 번째 부분인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이유가 뭐죠? 결론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예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름 아니라 우리가 아버지 천부의 뜻 곧 그리스도의 지혜로운 말씀 반석위에 집을 지어야
된다는 겁니다. 반석은 그리스도의 지혜로운 말씀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타내신 그 계시의 말씀이 바로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의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 곧 천국에 나타남안으로, 실제적인 앞으로 장차 임할
그 천국에 나타남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이끌어주고 안내해 줄 것이라는 얘기 것입니다.
그래서 의와 아버지의 뜻에 대한 이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의는 우리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생활을 말하는
것이라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교회 생활을 통해서 나타내지게 되는 사역의 봉사적인 일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들의 실제적인 인생의 삶의 모습인 생활과 우리의 사역의 일들 이 모두는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이신
바로 천부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일 때 바로 우리가 이렇게 의로워질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삶과 생활이 그리고 사역의 일들을 통하여 우리가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반포하시는 이 천국의 헌법을 이렇게 청종하는 삶을 살고 바로 이게 순복하는 삶을 살면 의로와 짐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소유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사역과 일도 천국 헌법이신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반포하시는 그 지혜로운 말씀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뜻을 행할 때 바로 우리를 천국에 나타남 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갖게 함과 동시에 우리를 이끌어서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계속적인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딱 끊쳐지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는 삶, 푯대가 저기 있는데 그 푯대를 향하여 죽기까지 달려가는 삶이 우리의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 안에서 우리가 이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을 소유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가난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천국의 그 실제 속으로 인도되며, 의를 통하여 이 천국의 실제 속으로 인도된 우리는 그 의를 통하여 천국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 우리가 존재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도 훨씬 더 우월한 의와 높은 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아주 높은 의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높으신 의를 우리가 행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뜻인 그리스도의 지혜로운 말씀을 따라 쫓아 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바로 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인 천국의 나타남 안으로 계속적으로 들어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높은 산 위에서 천국의 헌법을 새 왕으로서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공표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새 왕으로서 이 사역을 계속하시기 위해서 산 아래로 내려오시는 장면이 바로 8장의 1절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그분을 따랐다. 산에서 높은 산에서 이 천국 복음 높은 가장 높은 생명의 법인 바로
이 천국 헌법을 공표하신 후에 이것에 대한 이 사역을 계속하시고 제자들에게 믿는 성도들에게 이 계시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보편적으로 설명해 주기 위하여 산 아래로 내려오셔서 계속되어지는 새 왕이신 왕의 사역을 마태복음 8장 1절부터
9장 34절까지 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시대적 의미를 가진 표적들이 8장에서 4개의 표적을 새 왕으로서 사역을 계속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네 가지 표적을 행하는데요. 여러분 마태복음 8장 2절에서 나병환자를 고치십니다. 8:1 그분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그분을 따르니라. 8:2 보라, 한 나병 환자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매
8: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정결할지어다, 하신즉 곧 그의 나병이 정결하게 되니라.
그리고 3, 4절에서 백부장 하인을 고치시고요.
8:5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그분께 나아와 그분께 간청하여
8:6 이르되, 주여, 내 종이 마비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고통을 받나이다, 하매
8: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리라, 하시니
8:8 백부장이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온즉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8:9 나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며 내 아래에도 군사들이 있어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그가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그가 오며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그가 그것을 하나이다, 하매
8:10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놀라사 따르던 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 8:11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 앉으려니와
8:12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8:13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네 길로 가라. 네가 믿은 그대로 네게 이루어질지어다, 하시니
바로 그 시각에 그의 종이 나으니라.
그리고 8장 14절에서 베드로의 시몬이죠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었을 때 그를 치유하시는 장면이 나오고요.
8: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아내의 어머니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8:15 그녀의 손에 손을 대시니
열병이 그녀에게서 떠나고 그녀가 일어나 그들을 섬기더라.
그리고 16절에 바로 병든 모든 사람들 귀신 들린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이 4가지 표적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8:16 저녁이 되매 그들이 마귀 들린 많은 자들을 그분께 데려오거늘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그 영들을 내쫓으시고 병든 자를 다 고쳐 주시니 8:17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그가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도다, 하였느니라.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들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 뒤에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하기 위한 직분을 가진 왕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산에서 내려오신 후에 최초로 사람들을 만나서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최초로 왕으로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 후에
왕의 사역을 공식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이 땅 아래로 내려오신 후에 최초로 하신 사건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더러운 자인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그리고 백부장의 하인인 중풍병자인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그리고 바로
이 베드로의 장모의 집인 이스라엘 집에 장모를 고친 사건과 그리고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이런 자들을 고치신 것입니다.
그것이 왕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왕의 사역을 수행하실 때 최초로 하신 일이 바로 더러운 자를 깨끗하게 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그리고 이 열병에 걸린 바로 이 베드로 장모를 치유하시고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천국 백성인 그들을 이렇게 치유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여금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 바로
왕의 사역을 행하신 그리스도의 최초의 공생애의 일들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8장 2절부터 17절까지 말씀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8장 2절부터 17절까지의 네 종류의 이러한 이 표적들을 행한 것이 나오는데요. 다른 성경과 조금 다릅니다.
마가복음 1장 30절에 시몬의 장모 열병을 먼저 고치시고, 그리고 32절에서 모든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그리고 40절에서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누가복음 4장 38절에서 시몬의 장모를 먼저 고치십니다.
그리고 4장 41절에서 질병과 귀신 들린 자들을 치유하시고, 누가복음 5장 12절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7장 1절부터 10절에서는 백부장 하인을 고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이와 같이 다르게 고치시는 장면이 나올까요? 이 표적들이 시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기록과 마태복음의 기록의 순서가 전혀 다르게 나오는데 왜 마태복음에서는 바로 나병 환자를 먼저 고치고 그리고
두 번째로 백부장 하인 세 번째로 베드로 장모의 열병 그리고 모든 병든 사람을 고치시는데 반면에 마가복음에서는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먼저 치유하시고 그리고 나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마가복음 1장 40절에 가서야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는 이런 순서적으로 바뀌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기록 순서가 역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순서에 따라서 나타난 것이 마가복음의 기록 순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고자 바로 역사에 따른 것을 이렇게 기록했고요.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어떤 영적인 교훈인 교리를 영적 진리를 포함한 하늘의 계시를 포함한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을 통해서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시다 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천국의 왕이심을 증명하는 마태복음에
이러한 나병 환자와 그리고 백부장의 하인과 그리고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고 모든 병자를 고치신 이것은 바로
이 영적인 하늘의 진리를 계시하기 위하여 사례들을 한데 묶어서 그 영적인 진리들의 순서에 따라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이렇게 바꿔 놓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 복음은 뭐죠?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사람이신 구주가 되기에 합당한
사람임을 계시하는 도덕성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먼저 4장 38절에서 시몬 장모의 열병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4장 42절에서는 병들고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5장 12절에서는 나병 환자를 고치고 끝에 7장 1절부터 10절 사이에 백부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으로 오신 구주가 되기에 합당한 바로 이 예수님을 계시하기 위해서 도덕성을 특별히 이렇게 표현하기 위해서 그랬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기록 순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 자신 이 그리스도는 바로 사람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는
다름 아니라 사람의 종으로 오시고 사람의 아들로 오시고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하여 비교적 역사와 어떤 하늘의 영적 지위를 담고 있다 라는 면에서 이렇게 각자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 세 종류에는 바로 마가복음을 통해서는 역사적인 것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마태복음에서는 어떤 영적인 진리, 교리, 교훈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런 것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장 1절부터 17절에 있는 이 4가지 첫 번째는 문둥병자를 가장 먼저 고치시고, 두 번째 이방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자를 치료하시고 베드로 시몬의 장모를 치료하신 뒤에 수많은 모든 사람들을 다 고치셨다 라는 모두 고치셨다는
마태복음 8장 16절의 말씀을 통하여 계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시대적인 의미를 지닌 아주 깊은 영적인 진리를 이렇게
우리에게 계시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첫 번째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이 마태복음을 통해서는 무엇을 예수님께서 보여주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천국 복음을 반포하신 후에 높은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셔서 첫 번째로 행하신 이적과 표적과 기사가 다름 아니라 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쫓으리라. 예 산에서 내려오셨다. 산은 높은 곳에 위치한 곳입니다.
하늘에 속한 왕이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땅 아래로 낮은 세상으로 방문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왕이 산에서 내려오셨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마태복음 8장 1절을 읽을 때에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큰 무리가 그분을 따랐고 또 사람들을 만났고 그리고 나병 환자가 와서 고쳐달라고 하니까 고쳐줬나 보다.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높은 하늘에 계셨던 그 왕이 가장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셔서 왜 문둥병자를 고치셨느냐 이 말입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신 이유에 대해서 영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2절에 보면 보아라 한 나병 환자가 나타나서 절했다.
주님 제발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를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니 고쳐주십시오라고 얘기했을 때 이 문둔병자는 누구입니까? 누구를 위해서? 높은 하늘에 계셨던 왕이 왜 낮고 낮은 이 땅으로 오셨느냐 이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유대인들 때문에
지금 이 나병 환자가 이 8장 2절에서 절하며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라고 간절히 간구하는
이 나병 환자는 다름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에요. 이방인 나병 환자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 가운데 한
나병 환자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 나병 환자는 다름 아니라 유대인 전체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둥병자는 유대인을 대표하는 자입니다. 유대인을 대표하는 자가 이 문둥병자입니다.
이 성경은 그냥 단순하게 아무 의미 없이 기록되어진 것이 아니에요.
한 귀신을 쫓아내든 표적을 나타내든, 문둥병자를 고치든 절름발이를 고치든 죽은 자를 살리든 거기에는 다 영적인
하늘의 진리의 말씀이 계시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나타난 나병 환자는 유대인을 대표하고 있는 자입니다.
가장 높은 하늘에 속한 하늘에 계셨던 그 왕은 이 땅 아래 가장 낮은 곳에 내려오셔서 바로 문둥병자의 모습을 지닌 유대인들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높은 하늘로부터 가장 낮은 땅 아래로 내려오셨다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래서 이 로마서 1장에 16절에 보면
먼저 구원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고 그다음에 이방인을 위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도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하고 예 그렇습니다. 심판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 의의 율법의 지팡이로 때릴 때도 먼저 유대인에게 그 징계와 징벌을 내리신 다음에 그리고 바깥 영역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땅에 속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그 몽둥이를 댄다 라는 것이 먼저 구원이 되었든 심판이 되었든 먼저 유대인들에게 먼저 찾아 임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유대인을 대표하고 있는 이 문둥병자가 주님께 나아와 절하고 주님 제발 저를 원하시면 마음만 먹으시면 나를
깨끗하게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얘기하면서 바로 이 나병 환자가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그분을 주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만약에 이 문둥병자를 대표하고 있는 유대인을 대표하고 있는 이 문둥병자처럼 유대인들 가운데 그 어떤 자들이 새 왕이신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그분을 주라고 부르면 치료해 주시겠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 그 문둥병자 나병 환자가 예수 그리스도 높은 산에서 그 땅 아래로 내려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주여 주여라고 얘기한 것은 그 새 왕이신 그리스도 곧 사람으로 오신 그 그리스도가 주 여호와 하나님임을 깨우쳐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식함으로 말미암아 경배하였다 나와 절하였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왕으로 영접할 때 바로 마태복음 1장 21절에 과 23절에도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1: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1:23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이 임마누엘은 뭡니까?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나병 환자는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비록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인식하고 그분 앞에 엎드려 절하고 경배함으로 말미암아 이 문둥병자는 깨끗함을
치료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이 문둥병자에 대해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라는 주님의 제자는 왜 나병 환자에 대해서 얘기했을까요?
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질병들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나병 환자 문둥병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높은 하늘에 계셨던 그분께서 가장 낮은 땅 아래 내려오셔서 최초로 만나고 치료하시고 구원 사역을
베푸신 것이 나병 환자를 치료하신 것인데 바로 이 왕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금 이 유대인들 모두가 문둥병자가 되어서 치료자로 오신, 구원자로 오신,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이렇게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 모두가 이 왕이신 그리스도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모시고 치유받음으로 말미암아 왕국의 백성, 곧 천국 백성이 되기를 갈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둥병자 이 나병 환자를 최초로 주님께서 이 땅에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통해서 최초로 나타내신 사역이 문둥병자를 고치신 것인데 이 문둥병자는 이러한 영적인 질병을 가진 유대인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왜 유대인들이 문둥병에 걸렸을까요? 무엇 때문에? 미리암과 같은 민수기 12장 1절부터 10절까지 모세를 향한 하나님을 대표하는 모세의 권위를 거스리고 대들고 반역의 마음을 가지고 그 모세를 대했기 때문에 미리암이라는 자가 문둥병에 걸려서 격리가 되었다라고 민수기 12장 1절부터 10절은 말씀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12:1 〔미리암이 벌을 받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12: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삼인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삼인이 나아가매
12: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12: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12: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2: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12:11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12:12 그로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 같이 되게 마옵소서
12:1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12: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았을찌라도 그가 칠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 밖에 칠일을 가두고 그 후에 들어 오게 할찌니라 하시니
12:15 이에 미리암이 진 밖에 칠일동안 갇혔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진행치 아니하다가
12:16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에서 진행하여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유대인들이 지금 왜 문둥병과 나병 환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 때문에 이 특별한 영적인 질병들 세상에 수많은 질병들이 수백, 수천, 수만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 수백, 수천, 수만 가지 중에서 가장 부정한 병이요, 가장 특별한 병이요, 가장 더러운 병이요, 가장 냄새나는 병이요, 가장 나쁜 병이 나병 환자인 문둥병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모세의 권위를 거스리고 반역할 때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린 것처럼 이러한 병이 유대인들이 지금 반역과
불순종 때문에 문등병자의 모습을 가진 자들로 특별한 영적인 질병들을 이 세상에 의학으로는 누구도 고칠 수 없는 그러한
질병에 처해져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 누구도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 이 문둥병자에 걸렸던 한 사람이 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 열왕기하 5장 1절과
열왕기하 5장 9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나아만 장군이라고 있었죠? 예 그렇습니다.
5:1 〔나아만이 고침을 받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5: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5:12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5: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이 나아만 장군은 앗시리아의 아주 높은 왕 다음가는 아주 높은 권력을 가진 장군이었습니다. 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나아만 가문에 속해 있던 여종의 말을 듣고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의 뜻에 따라 더러운 요단강물에 들어가서
7번 들어갔다 나오고 하는 이 순종하는 일을 통하여 그가 걸린 나병, 곧 문둥병이 완전히 온전히 치유가 되어서 깨끗게 되어지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역을 하고 불순종함으로 문둥병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함을 통하여 문둥병이 고쳐질 수 있다 라는 것은 이미 구약 성경을 통해서 이미 예시로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위해서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반역을 하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이 반역과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 눈으로 보기에는 문둥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종교로부터, 자기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듯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바로 모든 유대인들 전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모두가 문둥병자가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발생되어졌고, 문둥병 그 자체는 반역과 불순종의 외적인 표현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문둥병이 걸려서 이렇게 나병 환자로서 드러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실제적으로 이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문둥병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병 환자를 통해서 유대인들 모두가 바로 문둥병자와 같은 처지의 상태에 속해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은 내적인 것이지만 그일을 통하여 내적인 것이 결과물로 나타내져서 보여지고
표현되어지는 것이 문둥병으로 외적인 나타남이라는 것입니다.
반역과 불순종은 보이지 아니하는 내적인 것이지만 외적으로 문둥병, 나병 환자의 그 모습을 통해서 곪고 냄새가 나고,
손과 다리가 막 문드러지는 뭐 말할 수가 없죠. 그것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또 이 주님의 집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지고 분리되어지는 이런 일들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이렇게 반역과 불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들을 심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문둥병과 같은 반역과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처해서 영원한 죽음에 바로 멸망 가운데 처해 있는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 문둥병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유케 하여서 원래 상태의 그 위치와 원래 상태의 사회로 돌아가고 환원시키고, 가족으로부터 또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이런 모든 일들을 온전히 회복케 하시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문둥병에 걸린 유대인들 모두를 치유하심을 통하여 자신의 천국 백성, 곧 왕국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의사로서 치료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이시지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것이 문둥병자를 최초로 치유하신 높은 산에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사역의 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높은 하늘에 속한 왕께서 높은 하늘에 계신 그 그리스도께서 낮은 이 세상의 땅으로 내려오신 이유는 그들 문둥병에 걸려서
영원히 멸망 가운데 처한 그들을 깨끗케 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백성들, 천국의 일원들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통해서 보면 문등병자들은 완전히 치유가 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그 진영으로부터,
울타리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고 벗어나야 되고 제외되었어야 됩니다. 사회로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의 그 진영으로부터
그 이스라엘 진영 안에 성소가 있었죠. 그 성소로부터 제외되는 일은 저주인 것입니다.
이 저주의 삶에서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문둥병으로부터 깨끗게 하심을 통하여 원래 상태로 바로 하늘에 들어가서
살기에 적합한 자들로 되게 하기기 위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엿보아야 될 것입니다.
예 반역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유대인들 모두가 문둥병에 걸려서 그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치료할 수 없지만 세상에서 치료할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높은 하늘에 속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의사로서 이 땅에 치료자로서, 의사로서 내려오셔서 하나님과 이 유대인들 백성들 간에 이 단절되어진 교통으로부터 다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사닥다리가 되어지기 위해서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 바로 새 왕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8장 2절에 나타나고 있는 한 나병 환자가 나와 절하며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표현한 이 문둥병자는 유대인들 전체를 대표하고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반역적이 되었고 불순종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 왕신이 치유자로서 오시고, 구원자로서 오시고, 정말 문둥병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분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거절하고 반대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는 이런 엄청난 일들이 생겨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이 유대인들 모두가 문둥병자들로 보임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죽음을 앞에 놓아두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불쌍한 자들로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왕께서는 새 왕으로서 그들을 왕으로서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그 문둥병을 깨끗케 하기 위해서 치료하기 위해서 먼저 그들에게 오셨다라는 것이
8장 다음에 9장12절에 그래서 의사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라고
이러한 얘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 나병 환자, 문둥병자가 되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온전히 치료함으로 말미암아 그 구원을 주어서 천국 백성의 일원이 되게 하시고자 가장 먼저 유대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에요.
가장 먼저 유대인들 그렇게 하나님의 관심은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 유대인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서셔서 그 유대인들 모두가 걸려 있는 누구도 고칠 수 없는 그 문등병을 고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내려오신 주님의 그 은혜와 그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아버지의 그 생명 안에 속한 그 사랑을 보십시오.
얼마나 크고 깊고 높습니까? 그래서 이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문둥병자로 상징되고 있는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그 한 사람 나병환자를 고치시기 위하여 3절에서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하오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는데 즉시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해졌다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3절 말씀은 아주 특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먼저 내미셨습니다.
그가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높은 하늘에 속한 왕이 가장 낮은 땅으로 내려오셔서 그 내려오신 장면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그 내려오신 그분이 먼저 손을 내미시고 그를 만지셨습니다.
먼저 그분이 치유해 주셔야지 치료하실 마음이 있으셔야지 우리가 치료받을 수 있지 우리가 치료받고 싶다고 해서 치료 받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 그분이 우리에게 손을 내미셔서 우리를 만지시고 여기 만지시고라는 장면이 아주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 구약 성경에 의하면 문둥병자는 그의 더러움과 부정한 질병으로 인하여 바로 죽음 앞에 놓여진 그들은 성한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야 한다 라고 구약 성경에서의 율법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 문둥병자는 그의 더러움과 부정함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되고 그리고 접촉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접촉하지도 말아야 되는 그 부정한 문둥병자 나병 환자에게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죠 손을 내밀셔서
그를 만지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사랑인 것입니다. 염낭거미를 제가 얘기했죠. 자신의 생명을 주어서 그 부정한 병에 걸린
문둥병에 걸린 자를 접촉하게 되면 이 접촉한 자 까지도 여러분 그 부정한 병에 걸려서 나병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높은 하늘에 속한 왕이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이 땅으로 오신 그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선 자신의 이런 일을 염두에
두시고 부정하게 될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손을 내미셔서 그를 만지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장면을 사실은 예표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문둥병자를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아들로서 사람으로서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기 때문에 사람이 나병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되셔서 나병 환자와 접촉하여서 그 나쁜 문둥병에 걸린 모든 나쁜 소극적인 것들, 부정적인 것들은 다 자신이
취하시고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계신 그 생명과 본성을 그 문둥병자에게 전달해 주고 전가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는 살리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문둥병자가 되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이러한 일들이 생기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대치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죽고 너는 살아라. 이 3절의 말씀을 읽으면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손을 내미셔서 그를 만지시고 내가 원하노니 내가 차라리 너의 질병, 너의 문둥병자가 되고
너는 차라리 나의 생명을 가지고 너는 나의 생명을 소유하여서 차라리 깨끗하게 되어라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셔서 그를 만지시고 내가 원하노니 너를 깨끗하게 되어서 살아라 라는 얘기를 마치 막달라 마리아에게
땅에 구부러져서 얘기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문둥병자에게 다가서서 손을 내미시고 그를 어루만지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사람이 걸린 질병을 이 죽음의 병인 문둥병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셔서 성육신 하셔서 왕이신 그리스도 구주께서 그를 만지심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생명을 전달해줌으로 말미암아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 얼마나 큰 긍휼함과 자비입니까? 예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신 분이 바로 보이지 아니하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로 이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만짐을 통하여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아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대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지시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옛 율법의 규정에 따라 계속 행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이죠? 예수님께서는 새 율법으로써 옛 율법을 완전케 하신 분인데 왜 옛 율법의 규정에 따라 그 일을
행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때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한 과도기 때인 것입니다. 아직도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바로 새 율법을 이루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옛 율법이 아직 그리스도께서 구속하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옛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이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공생애 기간의 처음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간이 3년 반 가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바로 구속의 죽음에 의한 새 율법을 이루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구속의 죽음에 의하여 옛 율법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바로 깨끗함을 받은 너는
증거를 위하여 제사장에게 예물을 드리라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바로 8장 5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그에게 나와 간구하였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이방인들을 나타내고 있죠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과 반역과 거역을 통하여 나병환자 곧 문둥병자가 되어서 부정하게 되고 더럽게 되었지만
이방인들로 예표되고 있고 상징되고 있고 이방인들을 대표하고 있는 이 백부장 하인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 찾아 왔죠?
자신의 수족과 같은 하인이 중풍병 환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가 할 수 있는 기능을 잃어버렸어요.
중풍병자는 눈이 멀쩡합니다. 손도 멀쩡해요. 입도 멀쩡합니다.
손과 다리와 모든 지체가 온전하지만 중풍병자가 되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될
기능이 상실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기능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나병환자와 똑같이 나병 환자는 격리되고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고 완전히 멸망당해야 될 처지에 있는
것처럼 중풍병자 역시 죽음에 처해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거동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나병 환자가 되어진 유대인들에게 먼저 오셔서 그들을 치료하시고 그다음에 이방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방인들을 대표하고 있는 백부장의 하인을 찾아오셔서 그를 고쳐주는 데요
이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들을 다스리고 치리하는 높은 고급 장교인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백부장인데
이에 속한 가족의 일원인 하인이 중풍병자가 되었습니다. 움직이지를 못해요.
모든 지체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죽어 있는 자처럼 기능을 잃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로 인하여 중풍병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풍병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들을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없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 유대인들에게 오셔서는 먼저 친히 그를 만지셔서 고치셨고 이방인들로 대표되고 있는
백부장 하인에게는 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8장 8절에 백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나의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의 종이 낫겠습니다.
예 이 백부장의 하인은 주님께서 이 나병 환자를 고치셨을 때처럼 친히 어루만져주셨나요? 아닙니다.
만져주시지 아니하고 말씀만 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가십시오. 그대의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하니
그 시각에 그의 종이 낳았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먼저 찾아오셔서 친히 손으로 만져주셔서 치유해 주시고 이방인들로 대표되고 있는 백부장
하인에게는 죄로 인하여 중풍병자가 된 그에게는 말씀을 통하여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게 하여서
믿을 때 구원받게 하였다 라고 8장 8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죠 내가 이렇게 큰 믿음을 보지 못했다.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을 받는다 라고 13절에서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라고
구원받은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찾아오셔서 친히 어루만져주시고 이방인들에게는 그 다음에 찾아가셔서 가장 높은 하늘에 속한
왕께서 가장 낮은 땅으로 내려오신 그분을 왕으로 영접한 자들에게 자신의 그 새 왕의 말씀을 통하여 전해졌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을 구원하였다 라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이방인 백부장 우리 모두를 유대인들이 아닌 바로 이 세상 열국 가운데 존재하는 이방인들 모두를 대표하고 있는
백부장은 새 왕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권위를 인식하는 장면이 9절에 나오죠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나도 그러한것처럼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내가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식하여서 그분의 말씀에 치유하는 권위가 있음을 알고 순종했을 때 바로 이러한 구원받는 일이 생기게
될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백부장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새 왕으로 오신 분임을 믿고 그 새 왕으로 오신 그분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씀만 하여 주십시오. 주님 내 집에 들어오지 마시고 나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만 하여 주시기를 부탁했을 때 놀라운 이 믿음의 말씀을 통하여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아주 너무나 놀라게 했습니다.
그것이 10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라고
예수님 께서 말씀 하시고 계신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왕이신 그 그리스도께서 높은 곳에서 산 아래로 내려오신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분이 선포하시는 말씀 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그 치유하는 말씀의 권위가 있음을 알고 순종했을 때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생길 수가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8장 11절에서 동서로부터 수많은 사람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서 여기서
킹제임스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써져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1절에 엄격한 의미에서는 천국도 하나님의 왕국 안에
포함되는 천국이나 천국에 포함되어진 하나님의 왕국이나 똑같은 말씀이지만 천국에서 잔칫상에 앉을 것이다 라는 얘기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을 것이다. 12절에 왕국의 아들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음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 이방인들이 왕국의 복음 하나님의 그 왕국의 복음 곧 천국 복음에 참여하게 될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마태복음 8장 11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11절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잔치상에 않겠으나 라는 이
하나님의 왕국은 사실은 천국에 나타남인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이기는 자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전치를 누릴 바로 왕국에 나타남이 있을 것 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12절의 말씀을 왕국의 아들들은 쫓겨난다. 바깥 어둠 속에 던져져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를 통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협착한 길을 들어가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강한 믿음을 갖지 않았으나 구원을 받은 예 좁은문으로 들어갔으나 협착한 길을 가기를 좀 거절하고 반대하고 좀 강한 믿음을 갖지 않은 그 구원받은 유대인들을 왕국의 본 자손들은 좋은 씨 이지만 여기서 보면 왕국의 아들들은 원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선민으로서 좋은 씨를 가진 자들 좋은 하나님의 자손들이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을 감에 있어서 강한 믿음을 갖지 않고 온전해지지 못한 그냥 단순하게 구원받은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왕국의 본 자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의 실제이신 그리스도의 그 나타남 안에서 그 좋은 축복의 잔치를 놓쳐버릴 것이라고 바로 누가복음 13장 24절부터 30절에서는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 바로 여기서 바깥 어두움 가운데 던져져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라는 얘기는 여러분들 이것이 바로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얼핏 생각하면 우리가 바깥 어둠 속에 던져져서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한 완전한 불과 유황 불못이 아닌 바깥 어둠 속입니다. 빛이 없는 곳이에요. 예 밝은 영광 밖의 어둠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깥 어두운대는 천국의 빛으로 상징되고 있는 천국의 나타남 안에 있지 않는 영광 밖의 또 하나의 다른 어떠한 어두움
바로 25장 30절에 달란트 비유에서도 똑같은 말씀이 나오죠
마태복음: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장차 그 천국의 시대에 바깥 어두운데에 내쫓겨나는 것은 바로 천년 왕국 후에 영원한 불못 유황 불못에 던져져서 영원한 멸망
가운데 사단과 적그리스도가 들어가는 그 계시록 20장 15절 말씀과는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말씀은 천년 왕국 후의 영원한 불못과 유황불못이 아닌 밝은 영광 밖에 어둠이 존재하는 곳 그 어둠이 존재하는 곳에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일정 시간까지 그들이 어떤 훈련의 과정과 조성되어지는 어떤 변화되는 삶을 통하여 다시 새 예루살렘 성의
모든 성도들이 거하는 그곳에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훈련받아지는 장소가 천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천년 왕국이라고 성경은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로 유대인 문둥병자는 여러분 유대인으로 대표되고 상징되고 있는 이 나병 환자는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직접적인 만지심에 의하여 치료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태복 8장 3절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 친히 손을 내미셔서 그를 만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런데 왕은 유대인들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어서는 자신의 손을 친히 내밀어 그를 만져서 문둥병자인 나병 환자가
치료받았지만, 백부장의 하인은 직접적인 만져주심이 아닌, 왕의 말씀을 통하여 치료받았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그분의 직접적인 만져주심에 의하여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새 왕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치료받게 돼서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방 백부장은 바로 이 죄로 인하여 중풍병자가 된 자신의 하인을 고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믿었고, 그의 하인은 온전히 구원받게 되었다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하게 이 마태복음 8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하늘의 영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은 항상 왕의 직접적인 만져주심에 의한 궁휼과 그분의 자비와 은혜와 그 인자하심에 의하여 친히 만져지심을 통하여
구원을 받지만, 이방인들은 그분의 직접적인 어떤 어루만지심이 아니라, 그분의 구원하는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치료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예 엄격하게 다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 있는 대상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이방 열국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 가운데 주님의 직접 만지심을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모두는 주님의 친히 직접적인 어루만져 주심에 의하여 구원받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 모두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거듭나게 하는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백부장의 하인은 우리 모든 이방인들을 상징하고 대표하고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하인은 이방인으로서 믿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문둥병자의 믿음은 칭찬하지 않은 반면에 바로 이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 하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고 말씀만 하시옵소서라고 바로 자신에게
말씀을 이렇게 허락해 달라고 얘기했을 때, 그것을 믿은 백부장에게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치료하여 하인을 고쳐주셨고 기능을
회복하게 하게 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백부장의 하인이 백부장을 온전히 섬길 수 있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바로 하인은 주인을 섬겨야 제 할 일을 제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가 중풍병자로서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면 백부장을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백부장을 섬기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능이 회복되어졌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중풍병자와 같이 움직일 수 없는
죽은 자의 모습으로 이렇게 삶을 살고 있었지만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능을 회복해 주시기 위하여 구원한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믿는 자들을 이렇게 구원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치료받은 백부장의 하인처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온전히 섬기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할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병 환자에 대한 얘기가 8장 2절에서 나오고 그다음에 5절부터 13절까지가 백부장에 대한 얘기가 나온 다음에
그리고 이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가장 먼저는 유대인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친히 만져 주시고 그리고 이방인들인 우리들에게는 구원하는
말씀을 이렇게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신 다음에 세 번째 무엇이 나옵니까? 열병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지금 천국 안에 있는 자들의 삶에 대한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은혜 시대와 왕국 시대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오심으로 말미암아 천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속해 있을 그 천년 왕국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함한 이방인들 모두에 대한 얘기를 지금 전반적으로 유대인들인
나병 환자와 이방인들인 백부장과 그리고 이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 얘기를 통해서 전체적으로 지금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경륜을 담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경륜의 전체적인 이상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15절에서 보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예수님께서 그의 장모가 베드로의 장모를 말하고 있죠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아 누은 것을 보시고 그 손을 어떻게 했죠/
베드로의 장모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하지 않으시고 베드로 장모인 그의 손을 만지시사 라고 만져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져주는 것은 특별한 총애의 표현이고 특별한 사랑과 은혜와 인자의 표현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우리 이방인들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구원을 얻었다 할지라도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버금갈 수는 없어요. 유대인들을 향한 택한 백성인 선민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지대하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유대인들을 향한 구원의 모습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병 환자는 이 유대인들을 대표하고 있고, 이방인인 백부장은 이방인들을 대표하고 있다면,
베드로의 장모는 남자가 아닌 여자인 것입니다.
이 시대 끝에 왕이신 구주를 영접함으로 구원받을 그리스도의 신부인 유대인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부터 이 시대 끝까지 바로 이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시는 것 끝까지 바로 왕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모두 구원받을 그리스도의 신부인 아내인 유대인들 모두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 베드로의 장모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대환란이 있은 다음에 천년 왕국이 임하겠죠 바로 이 대환란 기간 전에 있어 그 대환란 동안에 유대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 빠져서 전념하고 갈망하여서 열이 나는 열병에 걸린 자들처럼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4~15절에 보면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현재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나라의 어떤 국력을
더욱더 강건케 하기 위하여 전쟁을 위해서 자신의 나라를 보존키 위해서 전쟁의 열병이 걸려 있고 또 살기 좋은 나라로 성경에서 나온 것처럼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그러한 좋은 강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주 땅을 개간하고 물을 대고 사막을 옥토로 만드는 그러한 농업하는 일에 아주 열병이 걸린 일에 빠져서 마지막 환란 동안에 주님이 오시기 그 직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와 같은 정치적으로 어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전쟁과 과학, 농업 이런 것에 빠져서 하나님을 갈망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마치 다른 것들로 인하여 지금 현재 처한 이스라엘의 앞으로 이 대환란 동안 지금도 대환란의 기간 가운데 있을 더 어떤 일정한 시기가 지나가면 다른 것들로 인하여 크게 갈망하고 집념하는 삶을 통하여 열이 나는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이 바로 베드로의 장모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방인들의 구원이 충만하게 된 후에 이방인의 숫자가 완전히 구원을 위한 충만하게 된 후에 유대인의 남은 자들을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온전히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신다는 것을 구원을 위한 유대인들만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뭐예요? 지금은 은혜 시대죠 교회 시대죠 비밀의 시대죠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를 건축하고 조성하는 시대 지금은 은혜받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 받을 때가 일정 시점이 지나서 이방인의 구원의 숫자가 충만하게 되어진 그때는 이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이방인들을 관여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을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찾아 가셔서 열병으로 앓아누운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친히 바로 이스라엘의 집을 대표하고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치료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집은 이스라엘 집이에요. 아마 이 베드로의 장모는 베드로의 집에서 생활을 같이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장모는 베드로의 집에서 치료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집을 대표하는 베드로의 집에서 치료받았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시대 끝에 유대인의 모든 남은 자들은 은혜의 시대인 지금은 주님께서 유대인들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받아들이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방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지만 일정한 때가 되어서 이방인들의 구원의 숫자가 충만하게 되어진 때에는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스라엘 집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 일을 전적으로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다.
지금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때예요. 그러나 이 구원을 받을 이런 열려진 이 은혜의 시대가 문이 잠겨지는 시대가
곧대환란 기간에 때가 지나면 그것이 바로 이렇게 문이 잠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베드로 장모는 바로 이 이스라엘의 집을 대표하는 베드로 집에서 찾아오신 예수님에 의하여 바로 유대인을 대표하고 있는 문둥병자가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져주심을 통해 구원받은 것처럼 15절에서도 베드로 시몬 장모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손을 만지시사 만졌습니다.
이방인들은 만짐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새 왕이신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말씀을 보내심으로 받는다는 것이 다릅니다.
이 시대 끝에 대환란의 시기가 끝난 이 시대 끝에 바로 이 천년 왕국이 임하기 바로 그 직전의 구원은 이방인들에게서
유대인에게로 완전히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까지 일정 시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의 구원은 유대인들이 아닌 전적인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을 통하여 이렇게 우리가 소유하게 되지만 일정한 시대가 끝나는 대환란의 시기가 끝난 그 시점 후에는 이방인들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전적으로 구원의 은혜의 영이 임하셔서 그들을 구원시키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흩어진 유대인들에게가 아니라 이스라엘 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집을 대표하는 베드로 집은 흩어진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고토의 땅으로 돌아와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고토의 땅으로 유대인들이 지금 막 돌아가고 있죠.
그 돌아가는 일들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주 성서적으로 정말 깨어 있는 자들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고토의 땅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찾아오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되는 삶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삶의 상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모두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나라를 보존하고 또 국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또 이렇게 열악해진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황폐해진 땅을 아주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젖과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전심전력하고 갈망하고 집중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취하기 위해서 빠져 있고 치우쳐 기울어진 삶을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매우 높은 열을
가진 열병에 걸린 자들의 삶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을 위하여 얼마나 그들이 국력을 이렇게 기울입니까?
또 이 황폐해진 이 땅들을 옥토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정치적으로 어떤 사회적으로 얼마나 이렇게 관심을 기울입니까? 이 모두가 마치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처럼 그러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들은 아직까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생명에 대한 갈망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국력에 대한 뜨거움과 열렬함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열병을 가진 자들처럼 되어질 수 있는 그 시기가 지금도 도래하고 있죠. 그 시기가 곧 아주 확연하게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하신 것처럼 이 시대, 그 대환란의 시대 끝에, 마지막 시대의 끝에 오셔서 그 열병에
걸린 열렬하게 불타고 있는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들을 취하려고 치우친 삶을 살고 있는 유대인들 모두를 치료하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이것은 흩어진 유대인들에게가 아닌 이스라엘 집에 있는 그 유대인들에게 치료의 손길을 만져주심을 통하여 베푸시겠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얘기입니다. 나병에 걸린 얘기는 유대인들을 향한 얘기이고요, 이방인 백부장에 대한 얘기는 이방인들을 향해 우리들을 향한 얘기입니다. 예 세상에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 모두를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도 열병에 걸린 이들은 어떡할 겁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그 은혜와 보살핌과 돌봄에 의하여 열병에 걸린
유대인들까지도 치료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그 크신 관심과 돌봄과 사랑을 엿보세요.
그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방인 백부장의 하인처럼 그 백부장의 믿음을 통하여 하인을 치료한 것처럼 하시지 않고 친히 시몬 베드로의
장모에게는 직접적인 만지심을 통하여 치료하신 것이 8장 15절 말씀입니다.
8: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주님의 대환란이 지나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때에는 유대인들이 바로 그 주님의 다시 오시는 강림의 때 직전에 주님의 재림 때에는 유대인들 모두가 바로 이 그리스도의 친히 오심으로 말미암아 친히 만져주심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시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베드로 장모가 치료받은 직후에 일어나서 왕이신 그리스도께 시중을 들은 것처럼 바로 15절에 글 써 있죠 그 여인이 일어나 예수님을 섬겼다. 치료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섬길 수가 없었어요.
치료받은 후에 왕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게 되고 시중 들게 된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대환란의 그 마지막 시점 전에
주님께서 친히 오셔서 어루만지심을 통하여 남은 유대인들이 치유받아 구원받게 된 후에 천년 왕국에서 천년 동안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 시중들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15절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의 장모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백부장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요. 나병 환자, 문둥병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전체 하나님의 왕국 안에 포함되어 있는 천국에서의 삶을 사는 모든 자들의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의 꿈을 담고 있는 구원자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지 어떤 개인의 얘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나병 환자 한 사람이죠, 백부장 하인 한 사람이죠, 시몬 베드로 장모 한 사람의 얘기를 담고 있지만 이것은 전체적인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적인 의미를 지닌 표적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왜 왕으로서 이 구주로서 세상에 오셔서 그 왕의
사역을 행하셨느냐 라는 넓은 차원에서의 하늘에 속한 바로 경륜의 일들을 이렇게 계시하고 있는 것이지 일반적인
그러한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문둥병자 고쳤으면 고쳤나 보다 백부장 하인 말씀으로 고쳤나 보다 시몬 베드로 장모 고쳤어 고쳤나 보다 그런 얘기들이
아니에요. 여기에는 엄청난 하늘의 비밀들의 얘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을 성령의 영을 통해서 빛비췸을 통해서 보지 않으면 이런 성경을 우리가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나오는 이러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앉은벵이를 고치고 소경을 고치는 이런 얘기들을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6절에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라고 왜 저물때 얘기를 하고 계십니까? 예~ 여기서 모든 자들과 병든 사람들 모두는 뭡니까?
천년 왕국에 들어와서 살 구원받을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여기에서 나오는 병든 사람들 모두입니다.
장차 천년 왕국에서 구원받을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는 그들까지도 주님께서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고쳐주시겠다 라는 아주 강한 열망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년 왕국은 옛 하늘과 옛 땅의 마지막 시대에 펼쳐지는 것이 천년 왕국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의 마지막 시점이 그때 마지막 시점에 도래하는 것이 천년 왕국입니다.
그 옛 하늘과 옛 땅의 마지막 시점에 도래할 것을 저물 때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물 때가 뭐예요? 주님이 대환란을 지나서 주님이 다시 강림하실 때 초림이 아닌 두 번째 오실 때 그제서야 천년 왕국이
이렇게 도래하게 되는데 천년 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바로 그 시점인 옛 하늘과 옛 땅에 바로 그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어떤
정점의 그 시간대를 저물었을 때로 여겨진다 라고 해서 16절에 날이 저물었을 때 얘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시는 옛 하늘과 옛 땅의 마지막 시대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새 왕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와 같이 치료가 되고 구원을 받게 할 것이라는 마지막 때에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그 알곡조차도 잃어버리지 않으시려는 주님의 그 갈망을 우리가 저물매 라는 말씀으로 엿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바로 저문 뒤에 저녁이 오죠 저녁 후에 새날이 오죠 그렇습니다. 옛 땅의 마지막 시점인 이 천년 왕국이 저물었을 때로
여겨진 이후에 천년이란 시간이 지난 다음에 새 예루살렘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것입니다.
저녁 후에 저물었을 때 저물어진 그 시점이 지나는 옛 하늘과 옛 땅의 마지막시점인 이 하늘과 옛 땅이 저물었을 때가 지나면
저녁 후에 새 날이 오게 되듯이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도래할 새 예루살렘 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 왕국에서는 모든 병든 자들 모든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새 왕이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대환란의 그 마지막 시점에
최고조로 펼쳐진다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것이 이사야서 35장 5절, 6절에서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5: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35: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모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 병든 자들, 사단으로 인하여 실족당하여서 살게 된 그 모든 자들이 이렇게 주님의 그 생명의 말씀으로 인하여 치유받게 함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소생과 회복과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주님의 영을 통하여 간간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것은
앞으로 오는 그리스도의 그 놀라우신 크신 원대하시고 광대한 능력에 대한 조그마한 맛을 보는 어떤 예시적이고도 예표적인
일들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후에 저물 때 옛 하늘과 옛 땅의 마지막 시점인 그 저물었을 때에 천년 왕국이
오기 전에 바로 이러한 모든 자들을 고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다시 오신 후에는 유대인들 모두가 정말 유대인들
대부분이 구원받고 천년 왕국이 새롭게 시작될 것임을 가리키고 있는 장면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라는 이 기간 동안에 모든 병들이 치료가 된다는 것을 마태복음 8장 2절부터 17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나병 환자와
백부장 하인의 치유와 그리고 열병에 걸린 베드로 장모의 이야기와 병든 모든 사람들을 고치신 이야기를 통하여 이 표적들 모두가 시대적인 의미를 갖고 우리에게 영적인 진리를 계시해 주시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나 모든 병든 사람들에게 행한 이러한 모든 치료들은 주님의 그 십자가를
통한 구속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있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완전한 치료를 이루셨다. 어디에서요? 십자가 위에서 그래서 신성한 능력에 의한 이런 광대한 정말 놀라운 이런
치료를 적용하는 것은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보인 것과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진
이러한 치료의 현상들은 앞으로 임할 그 광대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의 최고점을 아주 조그맣게 맛보는 정도의 것입니다.
완전히 맛보는 것은 장차 오는 시대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라는 얘기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8절을 보면 주님께서 잠시 무리들이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떠나가기를 명령하십니다. 건너편으로 네 개의 복음서에서 다 이 장면이 나오죠.
예수님께서는 항상 무리들로부터 물러나십니다.
모이면 물러나고 모이면 또 배를 타고 어디로 가시고 모이면 또 산으로 올라가시고 호기심이 있는 자들과 주님께서는
함께 있기를 원치 아니하신것을 볼수 있는데 왜냐면 호기심은 호기심으로써 끝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호기심을 가진 큰 무리를 주의하지 않고 그분의 생명 여호와 하나님이신 새 왕이신 그리스도인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그리스도만을 추구하는 자들을 집중하시고 관심 가지시고 주의하셨지 호기심을 가진 자들은
주님께서 멀리 하셨다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8절부터 왕을 따르는 길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어떤 율법학자와 그리고 제자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바로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와서 8장 19절 선생님 어디로
가든지 내가 따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를 격리하기 위해서 그를 떼어놓기 위해서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둥지가 있는데 사람의 아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너 고생 바가지로 한다. 노숙하고 고생하고 따라다니면
좋을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노숙자 생활인데 너는 감당할 수 없다 라고 일부러 떨쳐지게 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 높은 자죠 여기서 서기관이라는 자는 그때 당시에 율법학자는 굉장히 부와 명예와 지위를 모두 소유한 높은 지위를
가진 그때 당시에 존귀와 덕망이 있는 자였습니다. 모든 부족함이 없는 자가 바로 서기관인 율법학자인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질 희생의 크기나 대가 고통의 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과 희생과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이러한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는데
나 사람의 아들 인자는 머리 둘 것조차도 없이 노숙을 하면서 동가숙 서가식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데
니가 감당하겠느냐라고 일부러 떨쳐버립니다.
우리는 그 떨쳐버린 예수님을 통해서 왜 떨쳐버렸을까? 저런 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얼마나 예수님이 더욱더 존중받고
더욱더 우대를 받을 수 있는데 왜 그랬을까라고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자신을 사람의 아들 인자로 언급하심으로 말미암아 왕의 사역에서 성육신하신 새 왕이신 그
리스도께서는 계속 사람의 아들을 취하셨습니다.
계속적으로 이것이 16장 13절부터 계속 인자의 위치를 취하신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인자로서 사람의 아들로서 바로 인자는 머리 둘 것이 없다 라는 얘기를 통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나타내고자 하는 그 말씀의
본질은 바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인자를 통해서 수립하고 있는 새 왕이 설립하신 이 왕국은 땅의 본질에 속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인자 사람의 아들이라는 얘기를 통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너는 지금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나를 따르면 넌 감당할 수 없다 도무지 네가 나를 쫓음으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지금 당신이 높은 지위와 부와 명망을 가지고 있는데 나를 따르면 이 모든 것들을 하나도 네가 소유할 수 없다 라고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그에게 이런 실망의 말을 줌으로 말미암아 주님 자신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우리는 새 왕신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어떤 안식이나 누림이나 평안이나 어떤 자신의 어떤 만족을 위한 물질적인
그 어떤 누림이 없다 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21절 제자 중에 또 하나가 말하되 주님 저로 먼저
가서 제 아버지를 먼저 장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바로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에게 말한 이 말은 그 곁에 있었던 제자에게
그 말을 듣고 큰 도움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 예수님을 따르면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구나! 근데 나는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있다. 단지 나에게는 지금 문제가 아버지가 지금 죽었는데 먼저 나로 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고 당신을 따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감수하겠습니다. 고통이 있고 희생이 있고 큰 대가를 치를 각오가 나는 되어 있습니다. 단지 아버지에 대한 의무만은 내가 이렇게 세상에서 제일 으뜸가는 부모에 대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왜냐하면 흠이 될까 봐 그 일을 좀 제가 할 수 있도록 좀 배려해 주십시오 라고
얘기를 하였을 때 바로 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냉정하게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케 하고 넌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율법학자인 서기관에게는 의도적으로 그 고통과 희생의 대가가 너무나 크다 라는 것을 그 큰 것이 자신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발생시킬 수 있게 되는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첫 번째 사람을 실망시키셨고 두 번째 사람인 그 제자는 오히려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장면을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주 지혜롭게 대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 두 번째 사람에게는 정말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하셨지만 첫 번째 사람에게는 아주 냉정하게 격려의 말씀도 하지 않고
이렇게 그를 오히려 내쳐버리는 일들을 볼 수가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높은 지위에 있는 이 율법학자 서기관을 매우
실망시켜서 주님을 따르는 일을 오히려 가로막게 하는 말씀들을 해주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하는 일들과 사람을 솎아내는 일들이 아주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은연중에 알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실망시켜주고 한 사람은 격려하심으로 말미암아 따르게 하는 일들을 통하여 이 두 가지
경우의 삶을 통하여 하늘에 속한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그 어떤 물질적인 누림을, 또는 어떤 지위를, 어떤 명예를 절대 1%치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런 자들은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세상 가운데서 가장 높은 요구인 바로 부모에 대한 의무를 마지막으로
죽은 자에 대한 내가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아들로서 자식으로서 초상을 치를 수 있도록 그것도 길지도 않은 하루 이틀 삼일
일텐데 그런 시간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22절에 보면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처음에 나오는 그 죽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나 두 번째 죽은 사람을 장사하도록 하십시오라는 얘기는 제자의 아버지를 얘기하고 있어요.
죽은 제자의 아버지는 살아있는 당신이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당신이 가서 그 일을 처리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영적으로 죽은 자가 육신적으로 죽은 당신의 아버지를 장사지내는 의무를 이루게 하고 당신은 나를 따르는
그 의무를 그것을 먼저 해야 된다. 그 일을 하면은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의무를 잃어버리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육신적으로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그 의무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통해서 의무를 이루게 하고 당신은
나를 따르는 의무를 충실하라 라고 아주 단호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너의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산 사람 생명을 가진 자 너는 산 사람들을 계속 이끌기 위해서 새 왕신 그를 따라야 된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서기관과 율법학자와 같이 그 어떤 물질의 누림이나 지위나 명예를 생각하거나 또는 죽은 자들에 대한 세상의 아주 가장 높은 부모에 대한 의무조차도 여러분 오늘부터 한 일주일간의 추석일 텐데요. 이때 제사를 지내는 문제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향의 가족들과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시간을 할애해야하죠.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죽은 자들에 대한 죽은 의미들을 너가 버려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되지 못한 자의 삶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예 죽은 자들에 대한 죽은 의무까지 세상에서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가장 제일로 여기는 부모에 대한 의무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가장 우선적으로 하고 있는 그 일들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마태복음
8장 말씀의 교제를 마치도록 하게습니다.
첫댓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아주 중요하고 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하나만 곰곰히 묵상해 보시고 잘 깨달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의 가운데 거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 이 말씀을 정리하면서 제가 문둥병자인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앞에 깨끗한자 인줄 알았습니다. 백부장 하인처럼 중풍병자가 되어 기능을 다 가지고 있으나 상실해버린 그럼으로 그래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인을 더이상 섬길수 없는 그런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으로 치유되고 씻어짐으로 다시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종이 되어져 가고 있으며 기능을 하나하나 회복되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또한 베드로 장모의 열병처럼 하나님을 관심두지 않고 다른 세상일에 집중하고 있는 저의 열병을 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위한 금식 하나님을 위한 기도외에는 능력이 나올수 없음을 이길수 없음을 다시금 깨달으며 오직 금식과 기도로 이길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두가지 길에 대한 말씀과 저물때 라는 말씀과 건너편에 관한 비유의 말씀들을 많이 되새김 하시고 참으로 주의 의와 뜻대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해요